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6)
24. 러셀 애시그린 실종사건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살해 시도는 미수로 그쳤다.
코리의 애원에 가까운 만류라든가, 주변 기술자들의 기겁 때문이라든가, 하나밖에 없는 파트너 신수의 부탁 같은 평화로운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내 덕분에 직업을 얻은 주제에 나를 음해하려 한 배은망덕한 기술자에 살초(殺招)를 날렸고, 그것은 과학 문명이 레인가르보다도 더 발전한 폴리티아에서나 볼 법한 신기, 플라즈마 역장에 가로막혔다.
“…막아?”
“하하. 평범한 인간은 이런 걸 맞으면 죽습니다.”
위이잉―!
이드라가 펼친 역장은 웅웅거리며 반투명한 막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술 쪽으로야 한가락 하는 인물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한 수까지 숨겨 두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진심으로 공격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이놈의 얄미움이 코리를 넘어서서 한번 위협 삼아 콧대를 납작하게 해 줄 생각이었을 뿐.
하지만 놈은 내 손에서 소울이 튀어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고,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내가 그대로 공격을 처박았을 뿐이다.
[간파안]에도 특별히 걸리는 게 없었는데, 템빨이었냐….“일개 기술자는 아니라는 건데.”
“말씀드렸잖습니까. 여왕께서 직접 신경 써서 보내 주신 인선이라고. 요 며칠 함께 지내다 보니 조금 친해져서 제가 선을 넘은 거라면 사과드리지요. 하지만 저를 죽이신다면 여왕께서 슬퍼하실 겁니다. 그분은 인재를 아끼시니까요.”
“죽일 생각 없다는 거 뻔히 알면서 능글거리긴.”
“하하. 다시 말씀드리지만 평범한 인간은 그런 걸 맞으면 죽어요.”
“말을 말자….”
나는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라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그냥 받아들이고 가야 할 모양이다.
진짜 고무마냥 타격감이 없는 놈들은 상대하기 어렵다니까….
결국 내가 두 손 든 표정을 짓자 코리가 나서서 이 상황을 마무리했다.
워낙 친화력 좋은 녀석인지라, 살짝 감돌았던 긴장감마저 빠르게 날려 버렸다.
“그보다 이거 계속해도 괜찮은 건가요? 통증이 느껴지는 게 뇌 쪽이라던데… 러셀이 더 이상 머리를 다치면 안 되거든요….”
“아이고 머리야….”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랬다….
나는 이제 꿀밤형 따위는 두려워하지도 않는 코리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상단주님. 저건 상상 통증이거든요.”
“상상 통증이요?”
“음… 원리를 설명하자면 좀 어렵습니다만, 고통이라는 건 사실 뇌의 위험신호입니다. 피부나 신경 등에 손상이 났을 때, 뇌가 위험을 알리기 위해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이드라는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코리를 대견스럽다는 듯 바라보며 설명을 계속했다.
“이 경우는 프리마의 조각이 직접 뇌 파장을 건드려 고통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몸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데도요.”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팀 닥터를 통해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실제로 계승자께서도 포션을 먹지 않으시잖습니까. 먹어 봤자 효험이 없다는 걸 이미 경험하셨거든요. 정령술도 마찬가지고요.”
“진짜 개 같다고….”
사정없이 이어지는 내 욕지거리에 이드라가 허허로이 웃었다.
“다만 너무 반복된다면 정신적으로는 좋지 않겠죠. 그래서 자주 시도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훼까닥하거나 더 예민해질지도 모르거든요.”
“큰일이네요….”
“큰일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모르겠네요. 이러다 제 커리어에 오점이 남겠습니다만….”
“혹시 러셀, 그것 때문은 아닐까?”
코리가 문득 떠올랐다며 꺼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마인 기스의 저주에 걸렸던 후유증 같은 거 말이야?”
“저주에 걸렸던 이력이 있으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라는 황급히 캐비닛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내 빠르게 종잇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정말이군요…. 그런데 보고엔 흉수를 제거하고 저주에서 벗어나셨다고 적혀 있는데요.”
“맞아. 기스는 죽었고 저주는 사라졌어. ‘마인 준동’ 사건 이후 딱히 후유증이나 저주 비슷한 것도 느낀 적 없으니까.”
“하지만 흔적 같은 거라도 남을 수 있잖아?”
코리의 질문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면 하니앤이 눈치챘겠지. 얘가 마기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내 말에 하니앤이 콧대를 세웠다.
“여우도 갯과라고 얼마나 개코인지 도시 밖에 있는 마인도 잡아낼 정도니까.”
– 개코라고 하지 마라!
“아무튼 그건 아닐 거야.”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계승자들이 저주에 내성을 가지는 건, 신수들이 마기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숨겨져 있어야 의미가 있는데, 신수 앞에선 숨길 수가 없거든요.”
“그렇댄다.”
턱을 여러 번 쓰다듬던 이드라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승자님의 심리 상태가 원인인 것 같습니다만.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거든요.”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
이 남자는 마치 알록달록한 앵무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시때때로 그 분위기를 달리하는, 해석하기 어려운 인물.
“러셀 애시그린 님. 그대는 정말로 여신을 위해 세계를 구하고자 하는 사명이 있습니까?”
나는 그 첨예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단순히 그렇다니까, 하고 눙치고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좌중에 경악이 퍼져나갔다. 흡사 마인의 끄나풀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들을 보며 덧붙였다.
“내가 원하는 건 내 생존이야. 싸움은 그래서 하는 거고. 사명이나 구원 같은 건 솔직히 겸사겸사지.”
“…충격적인 발언이긴 합니다만 도리어 인간답게 느껴지긴 하네요.”
“인간답지 못할 건 또 뭐야.”
“제가 지금까지 본 계승자들은 대부분 너무도 성인 같아서 인간미가 없었거든요.”
이렇게까지 흐른 이상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넌 정체가 뭐야?”
마치 계승자를 처음 보는 게 아니라는 듯한 뉘앙스, 외관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과 타 대륙의 이기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까지.
일개 기술자라고 볼 수는 도저히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하… 제 정체가 무엇이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지금은 여왕의 지시로 계승자님을 보좌하기 위해 파견된 기술자일 뿐인 것을요.”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이드라의 모습에 나는 가장 그럴듯한 추론을 꺼내 놓았다.
“에우레카의 용족인가?”
“…….”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항상 평온해 보이던 얼굴에 미미한 균열이 생겨났으니까.
당황이나 당혹감이라기보다는 감탄이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동료 기술자들이었고.
“과연, 남다르시군요.”
“힌트는 충분했으니까. 에우레카 대륙에서 리타니아까지 넘어와서 기술자 행세하는 용족라니… 사연 넘치는 보좌관이구만.”
“딱히 비밀은 아닙니다만. 다들 알고 나면 새삼스레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계승자님을 보니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하하. 동료들에겐 강제로 비밀을 드러내게 되었지만, 어차피 아랫사람들이니 좀 어려워해도 상관없겠죠.”
이놈은 보면 볼수록 성질머리가 나쁘단 말이지.
아무튼 그의 말이 맞긴 하다.
드래곤이라 하면 이 대륙에서는 낯선, 뭔가 절대자 같은 느낌을 풍기니까.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용은 따지고 보면 와이번의 상위종인, 조금 특별한 하나의 종족일 뿐이다.
궁금증이 완전히 해소된 나는 몸을 일으켜 병기 콕핏으로 올라탔다.
충분히 쉴 만큼 쉬었다.
“결국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건 알겠어. 그리고 이 통증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도.”
딱히 누구에게 들으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이건 그저, 혼잣말이다. 자아가 없는 신수병기를 향해 뇌까리는 혼잣말.
“근데 그게 뭐가 잘못됐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고 싶다는 게 탑승까지 거부할 일이야?”
나는 몸을 옥죄는 미증유의 힘을 거스르려 전신에 힘을 주었다.
뒤이어 뇌가 찢어지는 듯한 가짜 통증이 나를 막아섰다.
파직, 파지직.
무시했다.
어차피 신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고통이라면, 그저 감내하면 그만이다.
파지직―!
내가 억지로 움직이려 할수록 고통은 점점 더 강도를 키워갔다.
눈에 핏발이 서고 통증에 입안이 바짝 말라 간다.
콕핏 안은 수많은 고압전선이 끊어진 것처럼 불꽃이 이리저리 튀었다.
– 그만! 멈추세요!
보다 못한 이드라의 목소리가 콕핏 안을 왕왕 울려댔다.
하지만 절대 멈출 생각은 없었다.
움직여, 이 새끼야.
까무러치기 전엔 절대 물러날 생각 없으니까.
– 아무리 정신적인 타격이라도 심하면 폐인이 될 수도 있다고요!
“시끄러워―!”
쩌렁쩌렁한 고함이 터져 나가고.
나는 계속해서 바락바락 악을 내질렀다.
“으으아아악!”
– 멈춰! 계약자야!
– 그만두라고, 이 고집불통 인간아!
– 러셀!!
절정에 이르는 고통에 눈앞이 하얘질 무렵, 마침내 내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쪽 팔이, 반대쪽 팔이, 두 다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기체가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선 채로 기절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 괜찮니?!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여우의 주둥이다.
나는 개 코의 수분이 볼에 닿는 질척한 느낌에 손을 들어 하니앤을 밀어냈다.
극렬한 전투 끝에도 의식을 잃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인데(저주 때문에 잠든 걸 제외하면), 신수병기 싱크로 하다가 기절해 버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모포에 누운 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싱크로에 반작용이 일어난다는 것도 흔하지 않은 현상이지만, 그걸 그냥 억지로 고통을 참고 움직인다니, 뭔 무식한….”
“이번에도 안 움직이면 그냥 다 때려 부수고 다시 만들려고 했어.”
“어차피 핵심은 프리마의 조각이라 애먼 고철에 화풀이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요.”
“됐고. 얼마나 걸어갔지?”
“대충 10m쯤은 나아간 것 같네요.”
“마지막엔 고통이 안 느껴지는 것 같던데.”
“…어디 신경이라도 고장 났습니까?”
이드라의 말투가 전에 없이 뾰족했다.
본인이 용족이라 밝히고 난 뒤라 한결 내가 편해지기도 했겠지만, 아무래도 본인의 제어를 무시하고 강행한 내게 좀 삐쳤나 보다.
“다시 타 보자.”
“…….”
그는 못 말리겠다는 듯 그저 연신 한숨만 내뱉었다.
짙은 한숨 뒤로 콕핏에 올라탄 나는 신호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쏟아지는 은색 빛. 그 뒤에 찾아오는 스파크와 역한 구속감은 여전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인다.
마치 양손 양팔에 철근이라도 끼운 듯 무겁고 걸리적거렸지만, 그럼에도 삐그덕거리며 잘도 움직였다.
– 괜찮으십니까?
“응. 통증은 거의 없어. 이물감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팔다리가 저리는 느낌은 있는데.”
-아무래도 진짜 신경이 고장 난 것 같은데….
“그럼 오히려 좋지. 고통을 못 느끼면 싸울 때 더 편하니까.”
– 진짜 사람이 맞습니까? 수많은 인간을 봐 왔지만, 당신처럼 막무가내에, 고집불통이고, 무모하고, 남의 말 안 듣는 인간은 처음입니다.
“극찬 고맙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 기이한 이물감도 적응하면 괜찮아지리라.
다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이건 문이 닫혀서 안 열린다고 걸쇠를 부수고 들어온 거나 마찬가지인 과정이었다.
제대로 된 과정이 아니니만큼, 다른 신수 병기들이 모두 가지는 고유권능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그러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
“하니앤. 권능 생겼어?”
나는 기체의 움직임에 최대한 적응을 시도하며, 그 어느 때보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물었다.
사관학교의
슈트 입는 영웅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