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8)
24. 러셀 애시그린 실종사건
“정령사님들! 새 환자예요!”
수인 간호사의 외침에 한달음에 달려간 아카샤와 아이아나 앞에 놓인 환자는 근래 지겹도록 본 열사병 환자였다.
응급처치는 간단하다. 빙결장치로 체열을 급랭시킨 뒤, 정령의 힘으로 의식을 회복하면 끝.
러셀의 지시로 사브와라 종합병원에 의료 지원을 나온 두 사람이 마주하는 환자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초열사병 환자.
지옥이나 다름없는 혹서에 노출되었으니, 고가의 빙결장치를 구할 수 없는 평범한 도시민들이 픽픽 쓰러져 나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나마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병원에 들어온 순간 환자들의 예후가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병원에서 나가는 순간 그들은 또다시 이례적인 자연환경에 신변을 위협받게 될 거다.
실제로도 의무지원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같은 환자가 몇 번씩 쓰러져 실려 오기도 했다.
“이건 밑 빠진 독에 마력 붓기네요….”
“그러게. 도미니엘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정령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하니 믿고 기다려 보자, 아카샤.”
아이아나는 아카샤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보고 사르르 눈을 접으며 웃었다.
“그래도 아티팩트가 큰 도움이 되네. 나 혼자였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다 천사 아이아나 덕분이죠!”
사브와라에서 얻어(?) 온 사마드라의 지팡이는 아카샤의 회복 능력을 기하급수적으로 발전시켰다.
단 두 사람이 병원에 투입되었을 뿐인데도 위급환자가 훨씬 줄었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정령사님들. 덕분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수인 간호사 한 명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전해 왔다.
두 사람은 ‘이게 다 여신의 뜻인걸요.’ 같은 상투적인 화답을 해 준 뒤 뿌듯한 표정으로 응급실에서 빠져 나왔다.
“은퇴 이후에 병원에 취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어머, 벌써 은퇴 후를 생각하는 거야? 임관도 하기 전에?”
아이아나가 아카샤의 팔에 팔짱을 끼며 걸었다.
어느덧 병원 내에서도 유능한 정령사 콤비로 유명해진 탓인지, 돌아가는 길에도 힐끔힐끔 시선이 날아든다.
“그나저나… 바깥에 있는 동료들이 걱정이네요. 날이 너무 더워서. 다른 소식은 없죠?”
“씨씨는 인근의 도적 떼를 거의 다 소탕할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고 하고… 빌레나는 생각보다 그 일이 적성에 맞나 봐. 무슨 천재 탐정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원래부터 추리, 미스터리 이쪽에 관심이 많았다잖아요. 티는 안 내도.”
“그러게. 우리도 몰랐던 사실을 러셀은 어떻게 알았대.”
“그 인간 독심술 쓰잖아요. 몰랐어요?”
“뭐어? 진짜?”
“가끔 막 눈 시퍼렇게 뜨면서 쳐다보잖아요. 진짜 그럴 때면 알몸으로 앞에 서 있는 느낌이라니까….”
“아. 나도 가끔 느꼈어. 그 시선.”
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며 대기실로 되돌아왔다.
방 안의 공기는 시원했지만, 바깥으로는 어마어마한 햇빛이 내리쬐는 중이었다.
“아무튼 다들 열심히 하고 있네요. 모처럼 바쁜 기분이랄까….”
“그러게. 근데 나는 그쪽이 걱정이야.”
“그쪽이라면… 선배님 팀이요?”
“응. 아무래도 뭔가, 그 셋의 조합은 상상이 잘 안 되잖아.”
“그렇긴 하죠. ‘그런’ 일도 있었으니.”
아카샤는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던 ‘욕망의 항아리’ 사건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러셀은 무슨 의도로 그 셋만 똑하니 떨어트려 임무를 보낸 건지 모르겠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간이다.
“근데 왜 날씨가 좀 서늘한 것 같지?”
아카샤가 몸을 부르르 떨다 말고 아이아나를 바라봤다.
섬뜩한 생각을 해서라고 여겼는데, 실제로 기온이 좀 떨어진 것 같아서였다.
그때였다.
창문 밖으로 새하얀 알갱이들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머, 눈이에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더운 날씨 속,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렸다.
곧장 창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불어 들어온다.
“예쁘다.”
맑은 날씨에 내리는 눈송이는 뭔가 가슴을 간질이는 풍경이었다.
“도미니엘이 성공했나 보네.”
“…대단해요.”
솔직히 이 넓은 범위의 기온을 내리라는 미션을 들었을 땐, 말도 안 되는 지시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정령왕의 후계자라 한들, 그런 초자연적인 힘을 발휘할 순 없을 거라고.
하지만 까마득하게만 여겨졌던 일을, 그들의 동료가 해낸 것이었다.
창문 아래로 모든 사브와라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정지화면처럼 보여서, 아카샤는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느꼈다.
* * *
흡사로 향하는 길.
리지는 불편한 마음에 손가락을 꼼질거렸다.
‘과묵하네….’
그녀가 여정 내내 느꼈던 감상은 이러했다.
에뜨랑제와 미마, 두 사람은 정말이지 못 견딜 만큼 과묵하다고.
솔직히 두 사람 중 더 불편한 사람을 꼽으라면 에뜨랑제 선배다.
희한하게도 미마는 리지와 스스럼없이 지냈고, 에뜨랑제 선배와도 제법 친해 보였다.
가끔 에뜨랑제 선배가 헝클어진 미마의 머릿결을 손봐 줄 때도 별 저항 없이 손길에 머리를 내맡길 정도로.
넉살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붙임성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미마는 대하기가 편했다.
다만 이렇게 셋이 뭉쳐 있으니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기류가 풍긴다.
그녀가 먼저 나서서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해도, 뒤셀노크트의 사건이 떠오르는 바람에 차마 한 걸음 다가설 수 없었다.
처음에는 설마 설마 우리끼리 사생결단이라도 벌여서 자신을 쟁취하라는 메시지인가(아니다.) 싶었는데….
왜 하필 멤버를 이렇게 설정했냐는 질문에 러셀은.
‘당연히 제일 위험한 미션이니까. 우리 분대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조합을 구성한 거지.’
라는 말로 리지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리지는 답답한 기분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런 모습을 확인한 에뜨랑제가 곧바로 물어 온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에요. 선배님. 러셀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좀 마음이 불안해서.”
“제가 못 미더울 수 있죠. 이해합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아뇨!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래도 두 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너무 염려치는 마세요.”
“그… 죄송합니다아….”
역시 선배는 너무 어렵다….
리지는 울상을 지은 채 터덜터덜 걸어갔다.
가장 앞서 걷던 미마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저기야.”
미마의 말에 리지가 화색을 띠었다.
어색한 여정을 계속하느니, 차라리 빨리 들어가서 몸 바쁘게 움직이는 게 나을 듯해서였다.
세 사람이 도착한 흡사는 회색 사막 한가운데 개미지옥 집처럼 움푹 들어간 거대한 구덩이였다.
원래는 자연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흡사 인근에 접근하지 말라는 크라우의 공문 이후 투기가 금지된 지역이라고.
“확실히 마기가 느껴지네요.”
에뜨랑제는 흡사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선 채로 턱을 괴었다.
“임무는 단순해요. 이 안에서 ‘세계의 파편’을 찾으면 됩니다.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뒤셀노크트에서 보았었죠? 안에는 미궁이 발생했을 수도 있으니 단단히 마음먹읍시다.”
“영 꺼림칙한데요….”
어째 뒤셀노크트의 흡사에 진입할 때보다 거부감이 든다.
본능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이 안에 들어간 순간,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리라는, 그런 직감.
다른 두 사람도 같이 느꼈는지 움직임에서 머뭇거림이 느껴진다.
가장 먼저 발을 뗀 건 에뜨랑제였다.
“제, 제가 리더니까.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에뜨랑제는 침을 한번 삼키고선, 눈을 부릅뜨고 슈트를 착용한 뒤 흡사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미마가 사뿐히 도약해 들어가고, 좀 더 머뭇거리던 리지가 마지막으로 입장했다.
두 번 겪어도 감각은 여전히 불쾌했다.
마치 바닥이 없는 깊은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처음에는 흰색 빛이 내려오는 듯한 시야는, 몸이 점점 깊숙이 내려갈수록 어두운 흑색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슈트에 와 닿던 까끌거리는 눈 모래의 촉감이 사라지고 마치 미끄럼틀을 타듯 비스듬한 부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연한 암전.
이내 찌릿거리는 감각과 함께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그런 뒤, 세 사람은 공간에서 뱉어졌다.
어두워졌던 시야가 다시금 밝아지고 흐릿한 안개 속에서 몸이 낙하한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세기말을 연상케 하는 황량한 쓰레기 산이었다.
“여기는 미궁일까요.”
주변을 둘러보며 고민에 빠진 에뜨랑제의 말에, 미마가 대답했다.
“아니. 카오스게이트.”
“여기가요?”
미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는 에우레카 대륙에서 넘어올 때 이런 환경을 겪은 적이 있다.
카오스게이트 속의 모습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카오스게이트와는 사뭇 다른 풍경인 게, 황량해도 깨끗한 환경인 것과 달리 쓰레기장처럼 내부가 오물과 폐기물로 가득 차 있었다.
“냄새가 안 나는 게 천만다행이네요. 하지만 시각적으로도 좀… 역겹긴 합니다.”
“우욱….”
폐기물이 쌓여 있고, 그 사이사이 수많은 오폐물이 뒤섞인 모습은 비위 약한 귀족 영애에겐 견디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말로 슈트에 공기 차단 기능이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이곳의 냄새에 그대로 노출됐다면 그녀는 기절하고 말았을 거다.
힘겹게 한 발 내딛자 슈트 발바닥 부분이 뭔가에 쩌억, 하고 달라붙었다가 뚝뚝 떨어졌다.
“아으으으….”
리지는 기겁하며 지팡이 위로 올라타 비행했다. 동시에 미마가 재빨리 리지의 등 뒤를 선점하고 탑승했다.
졸지에 혼자만 땅바닥에 남겨진 데다, 지팡이가 일으킨 바람에 오물 폭격을 그대로 맞은 에뜨랑제가 딱딱하게 굳었다.
오물들이 뚝뚝 떨어져 드러난 그녀의 서늘한 시선이 허공 어딘가를 향한다.
“…러셀 후배님은 알고 있었겠죠.”
에뜨랑제의 혼잣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좀 할 거다.’라며 낄낄대던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엔 어색한 세 사람이 움직이기 때문이라 치부했는데….
세 사람의 원망이 한 곳으로 향했다.
* * *
“아,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러워?”
나는 벌레라도 들어간 듯 고막을 간질이는 기분에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거칠게 솎았다.
시기상 흡사 공략 팀이 도착할 때쯤이니 그 안의 실체를 목도한 세 여자들이 내 욕을 실컷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킬킬 웃으며 개고생이 시작될 세 사람을 위해 무사귀환을 기원해 주었다.
‘친해지길 바란다.’
원래 제대로 고생을 함께하면, 더 끈끈해지는 법이다.
흡사 안쪽에서 느껴지는 마기의 양은 하니앤과 크로스체크를 마쳤다.
세 사람이라면 충분히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을 거다.
물론 한없이 나약한 그녀들의 비위를 기르는 데도 참 좋을 거고.
나는 세 여자의 비명이 들리는 환청을 무시한 채, 신수병기 소환 의식을 재개했다.
지금은 신수를 매개로 신수병기를 소환하는 병기 소환 기술을 익히는 중이었다.
원래 있단 자리에서 좀 떨어진 격납고 구석으로 병기를 소환하는 연습.
싱크로 작업에 애먹었던 것과 달리, 신수병기 소환은 제법 수월했다.
레오는 격납고 위층 연구실에서 한창 기술을 전수받는 중이었다.
소환은 깔끔하게 성공했다.
네 번 중 네 번 모두 성공.
이제 본격적으로 먼 거리에서 소환술을 진행해 보면 될 듯했다.
“놀랍네요. 늘 절반씩만 성공하신 터라 이번에도 절반만 성공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누구더러 반편이래?”
“하하, 그렇게까진 말 안 했습니다만….”
이드라는 깔끔하게 거리를 이동한 신수병기와 나, 그리고 연구실 통창 너머에서 능숙하게 장비를 다루는 레오를 한 번씩 일별한 뒤 감탄하듯 내뱉었다.
“소식들 들으셨죠? 혹서가 드디어 끝났다네요. 저희도 이제 격납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겠어요.”
“그동안 연구한다고 안 나간 게 아니었어?”
“가끔 바람도 쐬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났지 뭡니까.”
“그동안 속으로 칭찬했던 거 다 무효다.”
“하하. 겉으로는 칭찬한 적 없으시니, 생색은 사양입니다.”
이드라는 허허로이 웃은 뒤 능글맞게 화제를 돌렸다.
“확실히 재량들이 뛰어나다는 걸 알겠어요. 여러분이 성장한 뒤가 기대되는군요. 어쩌면… 이번엔 정말 전쟁이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드라의 말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회한이 담겨 있었다.
사관학교의
슈트 입는 영웅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