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59)
24. 러셀 애시그린 실종사건
“고맙습니다.”
“헤. 별말씀을요….”
에뜨랑제는 [클린] 마법으로 제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 주고, [염동력]으로 쓰레기더미 위를 걸어 다니지 않게 해 준 리지에게 감사를 표했다.
임무 완수를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감내하리라 다짐했지만, 이곳의 환경이 주는 생리적인 거부감은 차마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게 했다.
유령 해협을 거치면서 비위가 단단해졌다고 자부했건만… 아무래도 자신은 여전히 온실 속 화초였던 모양이다.
에뜨랑제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리며 반성을 거듭하고 있던 때, 미마의 안면부 레이더가 반짝거렸다.
“적이야.”
그녀는 짤막하게 말하고는 에뜨랑제에게 시선을 보냈다.
“전투 준비하죠.”
그녀의 단단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면에 착지했다.
지저분한 환경 때문에 할 일을 그르칠 수는 없다.
그것도 러셀이 맡긴 일이었다.
가장 믿음직한 세 사람을 보냈다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순 없었다.
물컹.
“으으으….”
그냥 공중에서 싸워야겠다.
리지는 발바닥에 닿는 끔찍한 촉감에 그대로 다시 지팡이 위로 올라탔다.
뒤이어 나타난 적은 언노운이었다.
뭔가 미끄럽고 말캉거리는 몸체에, 몇 개의 몸체가 달리고 또 중간 크기의 몸체에 작은 몸체가 달려 있는 외양.
흡사 말미잘이나 지렁이, 환형동물 또는 해면동물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몸체의 끝부분 검은 구멍은 쉴새 없이 꿀렁거리며 역한 액체를 토해내는 중이었다.
“으… 싫어어엇….”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니었다. 처음 등장한 개체를 시작으로 쓰레기 더미 여기저기서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광경은 마치 화농성 여드름이 터져 나오는 것과도 유사해 도저히 손속을 나누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다.
리지는 본능적으로 미마와 에뜨랑제를 다시 [염동력]으로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미마의 견갑골이 열리더니 3개의 기관총 포신이 등장했다.
[모듈 변경 완료.] [Serial Number:4-Machine Gun] [소울 에너지 출력 25%]뚜두두두―!
화망이 전개되고.
머리를 빼꼼히 내미는 언노운들의 몸체에 바람구멍이 송송 뚫리기 시작했다.
몇몇 언노운들이 돌출구에서 괴이쩍은 액체를 토해냈지만, 리지의 [마력 방패]를 뚫지 못했다.
물컹거리는 몸체로 튀어 올라 세 사람을 덮치려던 언노운은 에뜨랑제의 검격에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다.
“그냥 쓸어버릴래.”
한바탕 소울 탄을 쏟아부었던 미마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모듈을 변경했다.
그러고는 발밑을 향해 광범위하게 소울을 사출했다.
번쩍, 하는 광원이 퍼지고.
화마가 언노운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쓰레기 산이 순식간에 먼지를 일으키며 가라앉는다.
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언노운인 만큼,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놈들이 몇몇 보였다.
잔당들은 리지의 [윈드 커터]가 깔끔하게 삼 등분으로 베어냈다.
한순간에 마신군 떼를 제압한 세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워낙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탓일까.
특별한 지시가 없어도 마치 한 몸처럼 손발을 맞춰 움직인 게 새삼 신기해서였다.
“일단 안쪽을 쭉 둘러보죠.”
에뜨랑제는 오물이 뚝뚝 떨어지는 검신을 털어낸 뒤 넓게 펼쳐진 산등성이를 가리켰다.
* * *
에뜨랑제 일행이 카오스 게이트 안쪽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걸린 시간은 꼬박 한나절이 넘었다.
게이트 안쪽에는 해가 없어 낮밤의 경과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게이트 바깥쪽에는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을 터다.
“으음….”
에뜨랑제는 난처한 듯 탄식을 내뱉었다.
꼼꼼히 게이트 안쪽을 살폈으나, 기억 속 ‘세계의 파편’과 유사한 물체나 그것을 품은 듯한 마신군이 발견되지 않은 탓이다.
“아마도… 이 쓰레기 더미들 밑에 파묻혀 있는 모양이에요.”
세계의 파편은 게이트가 생겨날 때 함께 발생했을 터.
그 위로 흡사가 빨아들인 쓰레기들이 수도 없이 쌓였을 테니 제법 합리적인 추론이다.
다만 방법을 알게 되었다 한들 까마득한 건 어쩔 수 없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장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것.
차라리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게 더 쉽지 않을까?
“되돌아가서 지원을 요청하는 게 어떨까요…?”
리지의 말에 에뜨랑제가 화면에 지도를 띄웠다.
하지만 현재 위치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는다.
“일단 카오스게이트 안에 진입하면 들어간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누군가가 들락날락할 때마다 게이트의 붕괴 속도가 빨라진다고요. 브레이크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니… 조금 위험한 선택일 듯해요.”
“으으….”
“그리고 저는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결연함이 옮은 탓일까. 리지와 미마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의 파편, 부서져도 돼?”
“상관없습니다. 견본은 이미 하나 확보해 두었고, 파괴해도 게이트와 흡사는 사라진다고 전달받았어요.”
미마의 물음에 에뜨랑제는 러셀에게 들었던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가루로 만들어 버리자.”
“일단 뒤져서 찾아봐야 하는 건 어쩔 수 없겠죠.”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에요. 시간이 흐르면 후발대가 구원을 오기로 했으니까.”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들이 나오지 않으면, 러셀은 후발대를 보내겠다고 선언했었다.
즉, 그들끼리 임무를 완수할 시간은 일주일이 최대치다.
“잠은… 어떻게 하죠?”
리지의 물음에 에뜨랑제가 난처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편안히 잠을 청할 만한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 정도는 안 자도 돼.”
“저도요.”
미마의 말에 리지가 곧바로 동의했다.
이미 크라우의 특훈을 겪으며 수마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된 이들이다.
이런 곳에서 불편하게 잠드느니, 차라리 잠을 안 자는 쪽을 선택하리라.
에뜨랑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최대한 수면 없이 일주일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해 보죠.”
* * *
공략 닷새 차.
흡사 공략팀에는 대화가 사라졌다.
첫날까지는 세 사람 모두 소울을 아낌없이 퍼부으며 쓰레기 산을 청소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웅들이라 한들, 소울이 무한정할 수는 없는 법.
언제 적이 등장할지 모르는 카오스게이트에서 소울 탈진 상태로 돌아다닐 수 없다는 생각에, 에뜨랑제는 결국 힘을 아끼고 몸으로 때우자고 제안했다.
리지의 영물 요키까지 동원된 수작업이 시작된 건 이틀 차. 드문드문 있었던 대화마저 사라진 건 그즈음부터였다.
리지는 스크린에 비친 제 핏발 선 눈동자를 보며 한숨지었다.
수마와 피로가 물밀 듯이 몰려온다.
잠을 못 자니 식사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식욕이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 슈트 내 에너지 공급 장치가 없었다면 정신을 놓아 버렸을지도 모를 극한의 환경.
흩어져 구역을 뒤지기로 한 터라 미마와 에뜨랑제의 모습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 끼잉, 끼잉.
한결같이 제 곁을 지키는 영물 요키만이 짧은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며 자신을 돕고 있을 뿐이었다.
“그냥 포기할까….”
차라리 군단장급 마신군을 홀로 상대하는 게 속 편하겠다.
그리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마나 웹]으로 쓰레기들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 으르르릉….
한쪽에서 부지런히 더미를 파던 요키가 난데없이 입질을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요키?”
– 으르르릉, 컹, 컹!
마신군인가?
에뜨랑제의 몸이 휙 떠올라 요키가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곳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질의 무언가가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용족의 비늘 같기도, 파충류의 가죽 같기도 한 재질.
리지는 곧바로 [염동력]으로 주변 쓰레기들을 휙휙 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쓰레기들 사이 작은 분지가 만들어지고, 그곳에 웅크려 있던 무언가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것은 짐짓 알처럼 보이는 의문의 구체였다.
“여기, 이쪽으로 와 주세요. 선배님. 뭔가 발견한 것 같아요.”
– 확인했어요. 바로 가겠습니다.
에뜨랑제의 원거리 무전에 곧바로 두 사람이 달려왔다.
수색 닷새째.
흡사 공략팀이 발견한 건, 처음 보는 모습의 거대한 언노운이었다.
“제대로 찾은 것 같죠?”
“그런 것 같습니다. 한데 이상합니다. 왜 마기가 느껴지지 않을까요.”
살아 있는 마신군이라면 크든 작든 마기를 풍기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큰 대형의 언노운이라면 거대한 양의 마기를 지니는 게 일반적이고.
하지만 눈앞의 언노운은 사체나 다름없을 만큼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찾는 데 이토록이나 애먹은 것도 이해가 갈 정도로.
“뭔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 같기도 하네요.”
“부숴 볼까.”
“먼저 틈을 찾아볼게요. 느낌이 께름칙합니다.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고 세계의 파편만 확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에뜨랑제의 말에 세 사람이 거대한 구체의 빈틈을 찾기 시작했다.
표면에 묻어 있는 오물들을 치우고, 반쯤 파묻혀 있던 구체를 온전히 바깥으로 꺼내고 나서야 그들은 이게 무언가의 ‘알’이란 걸 확신했다.
“기이한 일이네요….”
언노운의 알이라니.
들어 본 적 없는 이야기다.
언노운들은 지금까지 외세계의 생명체들이 명령에 따라 흘러들어 온 거라고 여겨졌으니까.
하긴, 지금 와서는 이게 언노운인지 분류조차 확신할 수 없다.
“부숴?”
미마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에뜨랑제의 판단을 확인하는 것.
하지만 에뜨랑제로서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 오로지 직감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순간.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순 없겠죠. 제가 하겠습니다. 두 후배님은 잠시 떨어져 계세요.”
에뜨랑제는 부친이 남긴 애검을 들어 올리고선 검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상급 왕실 비전 검술] [낙화]천벼락이 일어나 우중충한 하늘에 번쩍거리는 뇌우가 정체불명의 알을 덮쳤다.
에뜨랑제가 가진 왕실 검술 중 가장 강력한 일격을 그대로 내리꽂자 훈김과 함께 알 표면에서 미미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
에뜨랑제는 짐짓 놀란 표정으로 실금이 퍼지는 광경을 바라봤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었다.
단숨에 깨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해야 금을 내는 게 전부였다니.
대체 껍데기의 강도가 얼마나 단단한 걸까.
“마기가 흘러나옵니다. 대비하세요.”
마기마저 완전히 갈무리하고 숨길 정도로 단단한 알껍데기에 균열이 생기자, 검은 빛줄기가 솟구치고 마기가 조금씩 흘러나온다.
마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감춰진 거였다.
이후 발생할 돌발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에뜨랑제가 검을 그러쥐고 두 사람을 긴장시켰다.
쩍, 쩌저적.
껍데기가 이중 삼중으로 벗어지기 시작한다.
균열 틈으로 거대한 생물체의 일부가 불쑥 손을 내민다.
갑각아문의 다리처럼 보이는 무언가.
세 사람의 머릿속이 핑핑 돌아가며 추론 가능한 마신군 개체의 후보를 추리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알 껍데기가 완전히 갈라지며 마기가 폭발하듯 흘러넘쳤다.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의 강렬한 마기였다.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