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6)
5. 시험의 섬, 습격
서펜섬.
과거에는 화산 활동이 있었지만, 현재는 산지와 숲지가 조성된 섬.
넓이는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울릉도보단 두 배쯤 큰 사이즈로 설정했던 걸로 기억한다.
쏴아아―! 철썩!
바닷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건너편에는 에메랄드빛 해안이 펼쳐져 있다. 찬란한 태양빛을 머금은 물비늘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진짜 너무 예쁜 바다였다.
과거 여행 삼아 갔던 태평양의 해안도 그림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바다는 정말이지 투명한 보석이 액상화된 것 같은 느낌을 풍겼다.
감상적으로 변한 건 나뿐만은 아닌지, 여기저기서 감탄과 붙잡지 못한 시선들이 허공에서 흐트러졌다.
수송선이 정박한 부두 바로 앞쪽에는 임시로 지은 듯한 목재 건축물이 자리했다. 십자 모양의 붉은 깃발이 꽂힌 걸로 보아 여기가 비상통제실 겸 의무실일 것.
마지막 분대까지 시험의 섬에 도착하자 콘레드가 ‘편히 쉬어’ 자세를 하던 훈련병들을 다시금 다잡았다.
“지금부터 훈련소 마지막 시험을 시작하겠다. 기존에 전달한 안내문을 통해 숙지했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설명한다. 집중해서 듣도록.”
“예!”
“시험은 총 닷새 동안 진행된다. 너희들이 이곳에서 뭘 하든 자유지만, 최종 성적은 너희의 행동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어진 설명은 이미 대부분 훈련병이 숙지한 내용이었다.
시험 기간은 총 5일.
배분 점수는 20점이지만, 바닥이 없는 평가다. 즉, 마이너스 점수를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곳에서 하루를 버틸 때마다 2점. 시험이 끝날 때까지 버티는 데 성공하면 기본 10점으로 시작한다.
추가로 점수를 얻는 방법은 ‘인간 사냥’과 ‘마수 사냥’이 있다.
‘인간 사냥.’
이 섬에선 자유롭게 결투를 벌여 타인의 명찰을 빼앗을 수 있고, 시험 종료 후 보유한 명찰 수에 따라 추가점이 1점에서 5점까지 부여된다. 명찰을 빼앗기면 ?5점이다.
‘마수 사냥.’
이 섬에는 사전에 훈련소에서 풀어 놓은 마수들이 다수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마수를 잡아 얻는 ‘하늘석’ 수에 따라 추가점이 1점에서 5점까지 부여된다. 단, 아머드 메일이 부서지면 ?5점이다.
“이번 시험은 참가한 순간 다치거나 죽어도 본인의 책임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자신 없는 자는 지금 거수하도록.”
물론 거수자는 아무도 없었다.
훈련병들은 대부분 징집되었지만, 사관학교 입학 후 인생 역전이라는 꿈을 모두가 꾸고 있다.
시험도 치르지 않고 포기할 거였으면 여기까지 버티지도 못했다.
“중도 포기를 원하는 자는 여기, 의무실로 오면 된다. 부상자도 마찬가지. 귀하들의 건투를 비나, 너무 무리해서 시험을 치르진 않도록 하라. 특히, 마수를 사냥할 때는 조심 또 조심하라. 고의로 타인을 살해한다면 군법에 회부되니 함부로 선을 넘지 말도록. 이상이다.”
콘레드는 설명을 마치고선 뒤돌아섰다.
통솔 조교가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아머드 메일을 착용합니다!”
병사들이 복명복창 후 빠르게 각자의 발밑 바구니에서 아머드 메일을 착용했다.
“아머드 메일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 스캐너가 지급되었습니다! 이걸 마수의 사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면 하늘석이 있는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에 한 번 보았던 마공학 용품이 손에 쥐어졌다.
이건 하늘석, 그러니까 웹소설로 따지면 마정석 같은 마물들의 에너지원을 빠르게 추출하는 데 쓰는 물건이다.
잡은 마물 사체를 일일이 해체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앞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물건이다.
나는 스캐너를 지잉, 작동해 본 후 다시 포켓에 넣었다.
“발밑의 바구니에 개인 소지품이 있다면 모두 내려놓습니다!”
이번 시험에서는 개인 물품이 철저하게 금지된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인가받은 무장과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군장뿐.
“1분대 1조부터 조별로 마법진 위로 이동합니다!”
한 개 조씩 미리 준비된 마법진 앞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소지품 검사가 이어진 후 4개의 개인 군장과 1개의 조별 군장이 지급됐다.
“건투를 빈다.”
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마법 교관 크릭이 마법진에 마력을 불어 넣었고, 차례대로 훈련병들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우리 조의 차례가 되었다.
“건투를 빈다. 사고뭉치들.”
“덕담 감사합니다.”
내 너스레에 그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법진을 발동했다. 이윽고 아랫배가 간질간질한 부유감과 함께 눈앞이 점멸했다.
몇 초 후, 눈앞에 펼쳐진 건 완전히 새로운 장소였다.
“쓸데없는 짓을 한단 말이지.”
나는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명찰이 어쩌고 하늘석이 어쩌고 하는 평가 기준이나, 이렇게 시작 지점을 다 흩트려 놓는 것 모두 시험의 일종이다.
하지만 이 시험의 결과가 정돈되지 않는 혼돈과 파괴뿐이라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그저 번거로울 뿐이었다.
“어떡할까?”
코리의 물음에 나는 섬 한가운데 솟은 산지를 가리켰다.
“일단 합류부터 해야지. 각자 군장 챙기고, 어셔스, 공용 군장 부탁해.”
개인 군장에 공용 군장, 게다가 상반신만 한 방패까지.
거의 짐꾼이나 다름없는데도 어셔스는 묵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제법 쓸 만한 티를 내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탄탄해진 생활 근육을 툭 쳐 준 뒤 등산을 시작했다.
나한테 자극을 받아서인지 코리와 어셔스, 두 놈 모두 진지하게 사관학교 입학을 목표로 세웠다.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거였는데, 나와 루트비히의 안락한 버스 덕분에 각종 조별 평가에서 제법 높은 점수를 땄기 때문이리라.
뭐, 일단은 응원해 줄 생각이다.
섬 안쪽에는 두 개의 큰 봉우리와 여러 오름이 분포돼 있었다.
그중 거점으로 잡은 곳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당히 완만한 높이의 오름이었다.
“여기에 자리 잡을 거야?”
“아니. 일단 합류 먼저. 다들 신호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 루트비히. 장작 좀.”
“제 권능을 장작 패는데 쓰는 건….”
“그럼 창이나 방패로 나무 베랴? 잔말 말고 빨리 패기나 해.”
나는 군장을 내려놓고 루트비히가 구시렁거리며 건넨 마른 장작 위로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매캐한 연기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협력을 약속했던 훈련병들이 하나둘 합류하기 시작했다.
“형님! 저희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건페이를 끝으로 불을 피운 지 4시간이 흘렀다.
모인 것은 백여 명.
훈련병의 1/10이 넘는 인원이었다.
“얼추 모인 것 같은데? 아마 아직까지 못 온 애들은 시작 지점에서 연기를 못 볼 정도로 멀리 떨어졌을 거야.”
작은 섬이라 해도 섬 끝과 끝을 육안으로 확인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가시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나 초목도 많다.
“합류 못한 인원들은 나중에 기회 봐서 챙기든가 하자.”
“이렇게 많이 모일 줄은…. 고마워, 얘들아.”
휴고가 감동한 듯 말했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뭐… 여기 애들 대부분 코리의 친화력 때문에 모인 거니까.’
정확히 말하면 굳이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고 보는 게 맞겠다. 웬만해선 건드리기 어려운 거대 세력에 합류하면, 적어도 시험 기간은 꽉 채울 수 있을 테니까.
눈에 띄는 훈련병들 무리에 끼고 싶은 건 당연한 귀결.
“이제 어쩌면 좋을까?”
휴고의 물음에 훈련병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향했다.
처음 의견을 낸 건 휴고였고 인원을 모은 건 코리지만, 대부분 내가 주도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일단 여기는 너무 북적거리니까 흩어져서 사주경계하고 있고 조장급들만 좀 모여 봐. 루트비히 넌 남고. 아까 부탁했던 것 좀.”
“아. 네.”
내 말에 루트비히가 [부유]로 확인한 섬 약도를 바닥에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대충 이런 모양이에요.”
“땡큐.”
가로로 넓은 타원형 모양의 섬.
중앙에 두 개의 높은 봉우리.
그 사이사이 크고 작은 오름들.
“대충이라도 눈에 익혀들 놔.”
내 말에 조장급 훈련병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가며 지도를 확인했다.
“일단은 최대한 버틴다는 작전으로 가야 해. 시간이 지나면 분명 훈련소의 본대가 사관학교에서 돌아올 테니까. 적을 제압하기에 앞서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상황일 거다.”
그러면서 두 봉우리 사이를 가리켰다.
“이쪽. 여기에 제법 깊은 협곡이 있어. 여기에 장벽을 쌓고 길목을 좁혀서 일종의 수성전을 하자.”
정사대로라면, 우리가 버텨야 하는 시간은 대략 24시간이다.
알렉사와 크릭, 그리고 조교들이 개학식 일정을 끝내고 복귀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
“조를 셋으로 나눈다.”
나는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소년병들을 말로 홀려 댔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그저 시험에 편승하기 위해 모인 이들. 진지하게 습격이 있을 거라 믿는 병사들은 극히 일부였으니까.
그러니 그들이 의문을 표하지 못하게, 물 흐르듯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휘어잡아 가야 했다.
“첫 번째 조는 사냥조. 이 섬에 존재하는 마수들을 빠르게 제거하는 역할이야. 외부에서 마신군이 침략한다면, 이 섬에 노획된 마수들이 함께 날뛸 수도 있어. 그러니 적을 하나라도 줄여놓는 게 중요해.”
이 역할은 상위권 훈련병들의 역할이다.
“두 번째 조는 캠프조. 어쨌든 사흘 동안 생활할 준비는 해야 하니까. 군용텐트를 치고 화장실을 만들고 식수나 식량을 관리하는 역할이야. 마지막은 장벽조. 계곡의 앞뒤에 장벽을 쌓는 역할이지.”
조장들의 표정에 곤란함이 드러났다.
누가 봐도 장벽조는 기피될 만한 역할이다.
“그럼 조는 누가 정하는데?”
코리의 권유로 합류한 조장 머스터우가 물었다.
“당연히 내가 정하지.”
“…불만이 좀 나올 것 같은데.”
“사냥조가 얻은 하늘석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거로 하자. 공평하게. 남는 건 장벽조에게 먼저 배분해 줄게. 추가로 장벽조 인원을 최대한 많이 배분하는 거로.”
“그렇게 해 준다면야 나쁘진 않은데… 하늘석이 모자라면 어떻게 해? 최소 100개는 얻어야 한다는 건데.”
그때 리지가 끼어들었다.
“얘, 걱정하지 마. 우리 가문 정보에 의하면 매년 시험의 섬에서 회수되는 하늘석 개수는 300개를 넘는다고 했으니까.”
“…음. 그렇다면야….”
로즈 뎁 가문의 정보라면 거의 사실이나 다름없다. 머스터우가 곧바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어쨌든 힘들지만 안전한 일이다.
훈련소장의 말을 빌리자면 ‘쉽사리 공략하려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라는 마수 사냥보다는 훨씬.
안전한 일을 하면서도 성적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야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대신 배분은 가장 마지막 날에 하자. 중간에 이탈하는 사람 없도록.”
“그게 낫겠네.”
“좋아. 이동하자.”
내 말에 조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이동하는 동안 합류하지 않은 몇몇 훈련병들과 부딪히긴 했으나, 그들 모두 우리의 규모를 보자마자 도망치거나 자신들도 끼워 달라 요청했다.
수성전을 할 계곡에 도착했을 땐 20명의 인원이 추가되어 있었다.
“사냥조는 나, 루트비히, 휴고, 로벨리아, 리지, 파, 주디, 건페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스터우까지.”
나는 상위 30명의 훈련병들을 호명했다. 그러고는 장벽 쌓는 데 별반 도움 되지 않을 것 같은 말라깽이 멸치들 몇몇을 캠프 유지보수 역할로 배정한 뒤 손뼉을 두어 번 쳤다.
“사냥조는 개별로 움직이자. 대충 동선 겹치지 않게 짜 줄게. 자신 없으면 2인 1조까지는 오케이.”
굳이 왜 그래야 하냐는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시간은 없고 사냥터는 넓잖아. 일일이 따지지 좀 마라, 새끼야.”
“알았어… 왜 욕을 하고 난리야….”
윽박지르는 듯한 말에 딴지를 걸었던 훈련병이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실 개인플레이를 하는 이유는, 내가 사냥감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아주 숙련된 놀 사냥꾼이었고, 여기서 꼭 얻어야 할 ‘기연’이 있으니까.
“자. 시작하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역량껏 움직이자고.”
내 말에 훈련병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고, 바위를 옮기고, 무장을 가다듬는다.
훈련병들의 분위기는 가지각색이었다.
마치 캠프에 온 것처럼 신나 보이는 놈들, 아무 생각이 없는 놈들, 닥쳐올 시련을 믿고 벌써부터 긴장하는 놈들. 긴장한 놈들이 풍기는 분위기에 어리둥절해하는 놈들.
하지만 이놈들 중 대부분이 이곳에서 살아 나가지 못할 거다.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생존율 20% 미만.
극악무도한 참사가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으니까.
주어진 시간은 사흘.
우리는 그 안에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