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29)
5. 시험의 섬, 습격
동기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대문짝만하게 찍혔다.
그러나 쉽사리 입을 여는 대신 곰곰이 상황을 떠올려 본다.
제 목숨도 함께 걸려 있는 만큼,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에 빠진 동기들을 차분히 기다려주었다.
이들 스스로가 납득해야 작전 성공에 한 발 가까워진다.
남이 시키는 정도의 의지로는 힘겨운 싸움이 될 테니까.
“뭘 다들 어렵게 생각하구 그래? 눈, 코, 그리고 다리를 자르겠다. 끝! 이거잖아.”
가장 먼저 답을 도출한 것은 우리의 귀족 영애, 변덕쟁이 리지였다.
역시 마도사답게 머리 회전도 빠르다.
“정답.”
나는 깔끔히 인정했다.
“우리의 목표는 적을 섬멸하는 게 아니야. ‘하피’를 잡는 거다.”
하피를 싹 다 사냥하면, 더없이 위협적이던 드라고라는 그저 느리고 탱탱한 파충류에 불과하다.
“전면전을 유도한 뒤 탱커조가 드라고라를 막아내는 사이, 딜러들이 하피를 싹 다 사냥한다. 그런 다음 드라고라들만 남았을 때 본격적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거야. 그렇게 되면 생존율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테니까. 그러니까.”
“탱커조들의 역할은 사냥이 아니라는 거군. 그냥 벽으로 놈들이 넘어오지만 못하게 계속 떨어트리기만 하면 되겠어.”
“바로 그거지. 파.”
“이해했다. 확실히 합리적이야.”
적의 밸런스를 부수고 무너트리는 것.
그게 이번 전투의 핵심이었다.
* * *
이후로도 좀 더 세부적인 인원 배치, 궁사들의 화살 관리나 마도사, 정령사들의 마력 관리에 대한 의견 조율이 오갔다.
다양한 의견이 난립하는 가운데, 내가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의견을 정리한 뒤 미리 각자의 위치에 자리 잡게 했다.
애초에 큰 그림을 그린 게 나기에, 처음보다 나를 향한 시선이나 태도가 훨씬 협조적인 게 느껴졌다.
“고마워, 러셀.”
모두 자기 위치로 돌아간 사이, 휴고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뭐가?”
“그냥. 믿어 줘서. 그리고 도와줘서. 만약 네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못 하겠어.”
“흐음…….”
내가 없었다면.
당연히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거다.
지금은 정사와 달리 훈련병들의 단합도 훨씬 잘 되었고 전력도 높을뿐더러, 정확한 작전과 지휘체계까지 마련됐다.
어쩌면 50%, 또는 그 이상의 생존율을 달성할지도 모른다.
“우리 살아서 꼭 같이 사관학교로 가자.”
“플래그 꽂지 마, 등신아.”
주인공이 플래그를 꽂으면 어떡하냐, 뒤질라고. 앞으로 네가 해 줄 일이, 굴러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
내 가차 없는 폭언에 주인공의 눈이 동그래졌다.
“능력도 되는 게, 왜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남쪽 벽 지켜라. 네가 해 줄 거라 생각하고 북쪽보다 남쪽을 좀 더 말랑말랑하게 배치했으니까.”
“……넌 이상하게 나한테 신뢰를 보내네.”
일단은 초중반부까지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주인공이니까.
중반부터 하렘 라이프에 젖지만 않았다면 말이지.
아, 생각해 보면 그것도 딱히 이 녀석 잘못은 아닌가?
아무튼.
“로벨리아나 다른 친구들도 그렇고. 그… 계시도 그렇고. 나한테 과분한 기대와 신뢰가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
“…….”
뭐 어쩌라고.
왜 여기다 대고 한탄을 하고 있는 거냐, 너는.
“뭐 어쩌라고, 라는 표정이네. 하하.”
“???”
나는 머리 위에 갈고리를 세 개쯤 띄운 표정을 했다.
주인공이 미쳐서 창조주의 마음을 읽고 있다. 이게 나라냐…?
“갈게. 남쪽 장벽 탱커조 리더로서 반드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 보이겠어.”
“그, 그래. 파이팅….”
“단 한 마리의 마수도 내 등 뒤로 넘어가지 못할 거야.”
나는 오글거리는 정의 멍청이를 돌려보낸 뒤, 삐질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고선 하늘을 바라봤다.
저 열혈 멍청이는 진짜 좀처럼 적응하기 어렵다. 독자들은 어떻게 내 소설을 본 거지?
그때였다.
섬 위에 반투명한 장막이 돔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저, 저게 뭐야?”
“[훼방 장막]. 장막 안팎으로 전파나 마력이 통하지 못하도록 막는 권능이야. 이제부터 이곳은, 외부에서 먼저 들어와 보지 않는 한, 완전히 고립되었다는 뜻이지.”
내가 설명을 끝낼 때쯤, 정찰차 산 정상에 세워 두었던 리지가 번지점프 자세로 떨어졌다.
“러세에에에엘!”
그러다가 허공에서 뚝, 하고 멈췄다. 그야말로 신들린 마력 운용이었다.
“와아- 진짜 재밌고 무섭다 이거.”
“난 니가 더 무섭다….”
“있잖아, 있잖아. 왔어. 놈들이야. 하늘 가득해. 아주 새카맣게 몰려왔어.”
“왔구나.”
“응. 왔어. 근데 있잖아, 너무 많던데. 나 그냥 도망쳐도 돼?”
“되겠냐. 네가 제일 중요한 전력인데.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다들 목숨 걸린 판국에.”
“내가 제일 중요한 전력이야?”
“그래. 그니까 빨리 가서 자리나 잡어.”
나는 친절하게 발바닥으로 리지의 등허리를 쓱 밀어 주었다. 녀석이 으갹? 소리를 내며 제자리를 찾았다.
우르르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어마한 진동에 지축이 흔들렸다.
“뭐, 뭐야?”
와이번과 콘레드가 격돌한 여파일 거다.
지축이 울릴 만한 진동이 한 번 크게 울리더니 머리 위로 하피 한 마리가 높은 상공에서 빙그르르 선회한다.
“슬슬 온다! 21기! 전투준비!”
어차피 그쪽 싸움은 여기와 별개.
우리는 우리의 싸움을 할 뿐이었다.
나는 빠르게 [개발자 노트] 권능을 사용했다.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으니 혹시라도 변경된 설정값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변경 사항 : 에피소드-「시험의 섬 습격(생존율 : 17%)」
마지막 밤의 일족 루트비히의 합류로 21기 전력이 상승하였으니, 이에 맞추어 마신군 측 전력도 상향 보정합니다.
[변경 전]2성급 마수-하피X200
2성급 마수-바다 드라고라X500
3성급 마수-하피 메이지X2
3성급 마수-드라고라 워커X5
6성급 마인-위트머
토벌급 마수-옵시디언 와이번
[변경 후]2성급 마수-하피X300
2성급 마수-바다 드라고라X500
3성급 마수-하피 메이지X2
3성급 마수-드라고라 워커X5
6성급 마인-위트머
토벌급 마수-옵시디언 와이번
‘하피 백 마리 추가… 차라리 드라고나가 추가되는 게 좋았겠지만, 이 정도면 감당 가능한 범위 안이야.’
루트비히 한 명을 하피 백 마리 정도의 전력으로 계산했다는 게 놀랍긴 해도 어쨌든 큰 이변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꿀꺽.
고요한 좌중 속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대체, 이 시험의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걸까.
왜 하필 우리 때….
나약해 빠진 속내들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형님. 생각보다 잠잠한데요?”
나와 함께 중위를 받치는 건페이가 다리를 달달 떨며 말했다.
중위의 역할은 전위의 구멍이 생길 때 막는 것, 그리고 후위를 지키는 것.
“한두 마리가 덤비기엔 우리 규모가 꽤 크니까. 아마 흩어져 있는 손쉬운 사냥감들부터 잡아먹고, 마수들 중 통솔자들끼리 합의가 되면 박살 내려 들 거다.”
“러셀! 저기!”
말하기가 무섭게 북쪽 방어선에서 파가 소리쳤다.
주둔지 인근에서 자리 잡고 있던 훈련병 한 개 조가 하피 세 마리의 습격을 받아 이쪽으로 도망쳐 오는 것이었다.
“어떡할까!”
“파. 데려와.”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파가 방어선에서 훅 뛰어내렸다.
[그림자 일족 발검술]그러고는 단 한 번의 횡 베기로 두 마리의 하피를 갈라 버렸다.
한 마리는 즉사, 한 마리는 상처를 입은 채 괴성을 지르며 파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파가 상처 입은 하피를 상대하는 사이, 가장 뒤쪽에 있던 훈련병 하나가 멀쩡한 하피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으아아악! 사, 살려 줘!”
후위에 뭉쳐 있던 사수들과 마도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를 바라봤다.
“안 돼. 늦었어. 자리를 지켜.”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판단하고 지시할 뿐.
저 정도 높이와 속도의 적을, 병사에게 닿지 않고 하피만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력과 화살, 총알만 낭비할 뿐이다.
그렇다고 [부유] 권능을 가진 동기를 위험한 상공에 보낼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저 높이면 하피를 떨어트려도 꼼짝없이 머리가 깨져 죽게 될 거란 사실이다.
일단 끌려 올라가면 끝이다.
붙잡힌 동료 때문에 진형을 무너트리지 마라.
내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부분이었다.
녀석들이 나를 사이코패스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온실 속 화초들은 본 게임이 시작하기 전에 두 눈으로 똑똑히 봐두어야 했다.
실전이 주는 충격을 말이다.
그래야 정사에서처럼 전투 시작 뒤에 어리버리 타다 고구마를 먹이는 일이 없을 테니까.
“떠, 떨어진다.”
누군가 말을 하자마자 허공에서 뇌가 파먹힌 병사의 시신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콰직!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깨진 두개골과 박살 난 몸에서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을 적셨다.
“으… 아… 으아아악!”
눈앞에서 동료의 시체를 마주한 병사가 발작하듯 소리를 질러 댔다.
그 울음과도 같은 비명은 전파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주둔지 훈련병 전체에 퍼져 나갔다.
죽는다.
진짜 죽는다고.
공포는 전염병이다.
실시간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곤두박질치듯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마신군이라곤 왕실 소식지나 사관학교 학술지에서나 듣던, 입대 전까지 가족 품에서 뛰놀던 어린아이들.
죽는다, 죽는다, 말만 들었지, 실제로는 누군가의 죽음을 겪어 보지 못한 햇병아리 훈련병.
“저기, 형님… 이대로….”
이대로 괜찮은가? 하고 건페이가 물음을 던지려던 때였다.
퍽!
난데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은 병사가 눈물을 찔끔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질질 짜지 말고 벽 안으로 들어가. 너도 너 친구랑 똑같이 되고 싶어?”
나는 인성 터진 소리를 내뱉으며 병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단 한 명이 죽었을 뿐인데 사기가 바닥이다.
아마도 그건, 여기 있는 대부분이 직시한 첫 죽음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건.
나 또한 이들과 똑같은 온실 속 화초라는 점이었다.
‘제길….’
머릿속이 멍하다.
눈앞의 비현실적인 시신이 머릿속을 지우개로 싹 지워 버린 듯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결국, 내 입에서 내뱉어진 건, 내장에서부터 끌어올린 기합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아!”
모두의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박살 난 전의를 끌어 올리려면 무언가 그럴듯한 연설을 한바탕 퍼부어야 하는데, 그딴 건 자신 없었다.
당장 나부터도 끔찍한 몰골의 시체를 보자마자 낯선 공포가 뇌를 지배하려 들었기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물들어 할 수 있는 게 고함 지르는 것뿐이었다.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눈앞의 현실을 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