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30)
5. 시험의 섬, 습격
“하아아! 으아아아!”
활자로만 펼쳐졌던 끔찍한 참상이 눈앞에 현실로 내밀어진 순간, 현실감은 지독하리만큼 잔인하게 다가왔다.
강한 척 씨불여도, 결국 나도 얼마 전까지 게임이나 하던 방구석 광대였다.
선연한 죽음을 이겨 내야 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했던 생각을 계속 반복하는 느낌이 들 만큼, 어지럽고 정신없다.
“후욱, 후욱.”
나는 호흡을 고르며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우수수 날아와 꽂힌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번엔 진짜 온다. 준비해.”
하늘을 새까맣게 메운 하피 떼가 협곡 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놈들은 우리에게 죽음에 적응할 시간을 줄 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 * *
시험의 섬은 평화로웠다.
“소장님!”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험은 순조로웠고, 분위기는 평화 그 자체였다.
이번 21기는 유난히 단합이 잘 되는 듯해 초반부터 포기하는 훈련병들도 거의 없었던 데다, 부상자들도 전년에 비해 월등히 적었다.
무난한 시험이 될 거라고.
그저 자신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섬 휴양을 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레 섬 전체를 둥글게 감싸는 반짝거리는 장막을 보기 전까지는.
뒤이어 공기가 찢어지고, 상공에 거대한 와이번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지평선 한가운데에서 나타난 마수, 반은 인간의 몸을 반은 독수리의 몸을 한 하피 떼는 곧바로 섬 안쪽으로 날아들었다.
해안에서는 악어의 입과 뱀의 꼬리, 도마뱀 몸통을 한 푸른빛 드라고나들이 산란 철 거북이들처럼 기어 나왔다.
현실감 없는 장면이었다.
‘소장님.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마지막 시험 중에 마신군의 습격이 올 겁니다. 진짜입니다. 확실한 방비를 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헛소리라 치부했다.
감히 추천장을 거절한 건방진 훈련병의 질 낮은 장난이라고.
전쟁이 끝난 지 21년이다. 마신병기를 봉인했던 그 성역 전투 이후에 마신군들은 단 한 번도 전면전을 벌인 적이 없었거늘.
그런데 왜 하필.
왜 하필, 지금, 이곳인가.
“이 콘레드가 얕보인 모양이군….”
그가 팔목에 끼고 있던 팔찌에 소울 에너지를 불어 넣었다.
그러자 팔찌에서 빛이 확진되더니 몸 전체를 감쌌다.
빛줄기는 어느덧 매끈한 전투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웅들의 전투복, 통칭 아머드 슈트.
‘5년 만인가.’
현역 은퇴를 선언한 뒤로는 무장을 입을 일이 없었다.
다만 늘 몸에는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나간 전쟁에서 얻은 교훈 같은 것이었다.
“훈련소 상황실 연락은.”
“죄송합니다… 전파 방해가 있는 듯해……!”
조교의 보고에 콘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운을 보니, 이것은 [훼방 장막]이다. 지긋지긋하게 봤던 권능이지. 상위 마인이 함께 온 모양이군. 아마 마도사들의 권능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런… 제가 배를 몰고 나가 육지에 상황을 전하겠습니다!”
“아서거라. 바다 드라고라 한 마리면 너는 물고기 밥이 된다.”
“으으….”
“지금은 무엇보다 간악한 마신의 졸병들을 해치우고 훈련병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이니.”
와이번의 포효가 통제실을 덮쳤다.
포효와 함께 쏘아진 불덩어리를 베어낸 것은 콘레드였다.
반으로 갈라진 불덩어리는 양쪽 바닥에 거대한 스크래치를 남겼다.
“쯧. 너무 안이하게 시간을 보냈군.”
무리하게 소울 에너지를 일으킨 손목이 욱신거렸다.
“지금부터 우리는 임시로 와이번 토벌대를 구축하겠다. 다른 잡졸들은 훈련병들에게 맡겨라. 저 흉악한 마수를 잡지 못하면… 이곳은 지옥이 된다.”
토벌급 마수.
그리고 이쪽은 현역 영웅이 전무한 상태.
조교들이라고 해 봤자 사관학교에 임관되지 못한 낙오자들이다.
주변의 시선도 그랬고, 스스로의 자격지심 또한 그러했다.
와이번 토벌대라는 말에 조교들이 사형 선고를 받은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했다.
“어깨를 펴라. 고개를 들어라. 그리고 적을 똑바로 보아라.”
하지만 콘레드는 그들과 달랐다.
세상 낙이 사라진 표정으로 훈련소 한쪽에 처박혀 젠체하던 전직 영웅은, 오랜만에 생기가 도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우리더러 낙오자라더냐. 우리도 엄연히 여신에게 목숨을 바친 여신의 병사다.”
두려워할지언정, 누구도 도망치지 않는다.
“너희의 선서를 기억하라.”
「내 검과 방패를 모두 여신과 이제라에 바치며」
“고작 반쪽짜리 용 한 마리다.”
「내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여신을 위해 싸울 것을」
“비늘, 뼈, 심장, 모두 버릴 것 없는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이지.”
「서약의 증거 아래 맹세합니다.」
“사냥하라. 저 도마뱀의 멱을 따 너희에게 새 무장을 선물해 주겠다.”
우우웅.
콘레드의 애병이 강대한 기운을 머금고 공명했다.
“전진! 앞으로!”
* * *
내 손에서 뻗어 나간 재블린이 하피 한 마리의 날개에 명중했다.
부상당한 병사를 노리고 급하강하던 하피를 노린 일격이었다.
캬아아악!
하피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뚫린 날개로 열심히 날갯짓했다.
“이리 와. 새새끼야.”
그러나 각인된 창이 회수되면서 하피가 내 손 방향으로 빨려 들어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방패로 놈의 안면을 가격한 뒤 날개를 갈가리 찢어 창을 힘껏 뽑아내고 장벽을 지키던 탱커들에게 던졌다.
재블린의 창날을 살짝 다듬어 낚싯바늘의 미늘처럼 반대쪽을 뾰족하게 해 놨더니, 아주 걸리기만 하면 훌륭하게 빨려왔다.
[별빛 강타] [마력 폭탄]루트비히와 리지.
두 마도사는 마력 소모가 적고 정확도 높은 공격으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지친 기색은 없다.
[블레이저]파지지직!
그리고 또 한 명의 마도사.
주인공 영혼의 단짝 로벨리아는 묵직한 한 방으로 하늘길을 만들어 버렸다.
‘…열 마리는 사라졌겠네.’
한 방 크게 날리고는 그대로 지쳐 주저앉는다.
루트비히와 리지가 효율 좋은 저격총과 기관단총이라면, 저건 일종의 자주포다.
하피들은 물론, 같은 동료들까지 일순 움찔하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화력.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로벨리아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마리의 하피가 그녀를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그 순간 날아든 탄환 여러 발이 하피의 몸을 꿰뚫었다.
코리의 대마수용 산탄총이 적중한 것이었다.
마수는 괴성을 지르다가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 퇴각했다.
날개를 꺾어 바닥으로 떨어트리지 않는 한, 놈의 질긴 생명력은 끝나지 않는다.
어지간한 상처쯤은 자연 치유로 회복하는, 하늘의 트롤이라 불리는 마수였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로벨리아는 서둘러 일어나려다 바닥에 흥건한 마수의 피에 다시 미끄러졌다.
“빨리 일어나!”
나는 코리가 녀석을 부축하는 것까지 확인하고선 다시 작살을 던지듯 하강하는 하피에게 창을 날렸다.
전투 시작 후 1시간.
아직까지 사망자는 없었다.
좁게 펼쳐진 협곡은 고속 비행과 날카로운 발톱으로 먹잇감을 사냥하는 하피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주·조연들의 활약을 바탕으로 훈련병들은 제법 단단하게 버티는 중이었고, 그중 가장 활약하는 건 역시 주인공 동료 중 유일한 힐러, ‘수다쟁이 주디’였다.
“몸통 쪽 공격은 허용하지 마! 팔다리는 고치면 되지만 아머드 메일은 수리가 안된다구우!”
문제는 슬슬 훈련병들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아머드 메일이 하나둘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러셀! 놈들이 공격을 멈췄다!”
북쪽 장벽을 지키고 있던 파의 외침에 푸드덕거리는 하피를 발로 지그시 누르고선 고개를 들었다.
악착같이 달려들던 하피들이 일순 공격을 멈추고 협곡 위로 빠져나가 원을 그리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 날갯짓 한번 없이 공중에서 부유하는 은색 하피.
3성급 마수이자, 하피 부대의 지휘관인 하피 메이지.
녀석이 형형한 안광을 빛내며 협곡 사이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아마도 150여 마리뿐인 단독 부대로 사냥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이내 공중에서 선회하는 몇 마리를 남겨 둔 채 하피들은 사라졌다.
“……막아냈어.”
“끝난 건가?”
“일시적 후퇴일 뿐이야. 일단 빠르게 정비하자.”
놈들은 퇴각한 게 아니다. 흩어져 있는 마수들을 모아 다시 진입하기 위해 잠시 물러난 것일 뿐.
다음에 오는 것은 아마도 적들의 전력(全力).
“힐러들이랑 법사들 마력 잔량 체크하고, 원딜러들 투사체 개수 확인해. 아머드 메일 부서진 인원도.”
내 말에 각 부대의 리더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멀쩡한 인원들은 하늘석 회수하고 마수 사체 한쪽으로 모아. 괜히 싸우다 발 걸려서 이승 하직하기 싫으면.”
지시와 행동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처음 사망자를 마주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진지함이다.
칠십여 마리의 하피 격추. 동시에 사망자 제로.
1페이즈의 성과는 병사들의 사기를 고양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반도 못 잘랐나.’
하피 부대 전체가 온 것도 아니고 1개 부대다.
1개 부대 상대로도 크고 작은 부상자와 아머드 메일 파손까지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제 500마리나 되는 괴물 도마뱀을 막아내면서, 딜러들로만 남은 하피를 전멸시켜야 했다.
마력 탈진으로 비틀거리는 로벨리아를 부축하던 휴고를 불렀다.
“휴고. 불을 피우자.”
“지금?”
“어. 소강상태일 때 한 명이라도 더 합류하게.”
하피와 한창 전투 중일 때도 몇몇 훈련병들이 합류했다.
하지만 대부분 혼자 또는 둘.
부상도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바깥쪽 상황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다는 의미였다.
“합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소강상태일 때 못 들어오면… 이제 장벽 밖의 훈련병들은 거의 다 죽는다고 봐야지.”
미마가 이끄는 수인족 조. 그리고 데나스 일행 중 데나스. 그 외 귀족가의 유망주 자제 몇.
정사대로 간다면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 훈련병은 죽은 목숨이라고 봐야 했다.
내 말에 훈련병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곳에 합류하지 않은 동기들과 친했던 사람도 분명히 존재했으니까.
“쉬어둬라. 다음 싸움은 더 힘들 거야. 이 망할 몸뚱이, 눈이 계속 감긴다….”
그렇게 말하고선 나는 누구보다 먼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경계는 탱커 조가 2명씩 교대로 보자. 부탁 좀 해.”
“응. 걱정하지 말고 쉬어.”
비교적 전투가 덜 치열했던 탱커조에게 경계근무를 맡긴 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체력을 회복했다.
빌어먹을 몸뚱이 같으니….
* * *
“러셀, 러셀!”
그새 잠들었는지 날 깨우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주디였다.
“세상에. 진짜 잠들었던 거야? 진짜 너는 겁이 없는 건지 배짱이 두둑한 건지 모르겠다니까? 남들은 다 걱정돼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는데―”
“적이냐?”
“으응. 협곡 끝에 드라고나 종족이 나타났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