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37)
6. 입학, 영웅 사관학교
“어서 오세요! 「밤을 밝히는 촛불」입니다!”
수료식을 마치자마자 도시 구경을 몇 군데 한 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번화가 구석진 곳에 자리한 여관이었다.
주점과 숙박업소를 겸하는 곳으로, 적당히 깨끗하고 적당히 낡은 여관을 골랐다.
“1인실 3박이요.”
“1인실은 하룻밤에 5만 골드입니다! 룸 식사는 따로 필요하실까요?”
“끼니당 얼마죠?”
“뭘 드시냐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만 골드 내외입니다!”
“그냥 필요할 때 내려와서 먹을게요.”
숙박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건 50만 골드.
옷도 사야 하고 무기도 구해야 하고 심지어 교재들도 사야 하는데.
막상 준비하려고 보니 돈이 모자란다.
나, 거지였네?
어차피 기숙사비 포함 학비는 한동안 면제고 적당히 필요한 만큼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리 물주님… 벌써 그립습니다….’
자칫하면 입학 전부터 일용직 막노동을 하게 생겼다는 사실에 앞길이 막막해졌다.
나는 여관방에 들어오자마자 짐을 대충 풀어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팔까.’
숙소에 오기 전 잠깐 들렀던 무기상에서 확인한 결과, 그냥 정상적인 무기 정도만 돼도 가격이 100만 골드를 넘었다.
임시로 쓰던 재블린들도 전부 훈련소에 반납한 터라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무기는 팬티라도 내다 팔아서 구해야 하는 상황.
보잘것없는 재산들을 주르륵 침대 위에 흩트려 놓았다.
우선 오백여 개가 넘는 하늘석.
‘이건 아니지. 어떻게 모은 건데.’
하늘석의 가치는 골드에 비할 수가 없다. 이건 성장과 직결된 재화였으니까.
두 번째로 우수 병사 포상으로 받은 [소울 연공법]이 담긴 오르비스의 숨결. 이것도 당연히 안 된다. 이건 시간이다. 시간은 곧 금이고.
내 마음에 사탄이 들기 전에 곧바로 오르비스의 숨결을 깨트려 권능을 흡수했다.
마지막으로 위트머가 죽을 때 남긴 [유성 낙하] 오르비스 숨결. 솔직히 이건 팔아도 된다.
A급 권능이지만, 마도사 전용이라 어차피 배울 수 없다.
위트머를 잡는 건 원작에도, 내 계획에도 없던 일이라 스토리에 지장을 주지도 않을 거고.
상급 오르비스 숨결은 부르는 게 값이다.
보유 권능은 곧 힘인 시대니까.
나는 거지지만, 동시에 제법 부자기도 했다.
‘팔기엔 너무 아까워서 문제지.’
나머지 물건들은 그냥 쓰레기를 겨우 면한 생활용품들이다. 내다 팔 곳도 없는.
나는 드러누워 지난 에피소드 이후 벌어진 일들을 되돌아봤다.
마인 위트머를 잡은 뒤 우리는 섬 안에 남은 마수들을 청소했다.
마지막 마수를 잡을 때쯤 도착한 지원군은 어안 벙벙한 표정으로 어리버리하게 굴다 돌아갔다.
‘전리품은 사냥한 자에게 귀속된다는’ 대륙의 관례에 따라 [유성 낙하] 권능은 내게 들어왔다.
최종적으로 배정된 하늘석과 내가 직접 수거한 하늘석을 합쳤더니 500여 개가 넘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그대로 날름 처먹었다.
이 사달이 난 가운데 하늘석을 배분해 주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는 훈련병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억했어도 안 줬을 테지만.
애초에 남들 쓰러져 쉴 때 부지런히 하늘석 수거하러 다닌 보상이다.
놈들은 이걸 어디에다 쓰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저 성적 때문에 받으려고 했던 걸 테니 문제없다.
하늘석이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는 걸, 에너지를 담은 조각인 걸 알게 되는 것도 사관학교 입학 이후의 일.
나는 최종적으로 21기 훈련병 차석으로 이수했다.
초기 목표였던 우수 병사를 달성한 것.
모르비안 가문의 방계 귀족 빌레나를 제외하면 대부분 주인공 일행이 우수 병사를 달았다.
콘레드는 요양을 위해 은퇴했고, 그림로어 훈련소는 한동안 폐쇄될 예정이라고 한다.
뭐, 유서 깊은 훈련소긴 하지만 이제라에 여기 말고도 훈련소는 몇 군데 더 있으니까 요람 역할은 문제없이 돌아가리라.
[간파의 눈]을 발동해 상태창을 확인했다. [러셀 애시그린]성별 : 남자
나이 : 18세
직업 : ???
전투 능력치 : 320
[칭호]①마인 사냥꾼의 후예
②나태한 염세주의자
③시험의 섬 승전 주역
[권능]애시그린 일족 비기(S)(전용) : ★☆☆☆☆☆
사냥의 시간(A) : ★☆☆☆☆
먹잇감 등록(B) : ★☆☆☆
개발자 노트(F)(전용) : ★
그림자 걷기(B):★☆☆☆
무기 각인(C):★☆☆
소울 연공법(C):★☆☆
아이고 배부르다.
전투 능력치는 어느덧 320.
다양한 권능을 익힌 것, 8주 동안 부지런히 몸을 다듬은 것, 그리고 온종일 이어졌던 숨 막히는 실전 전투 경험이 낳은 결과다.
물론 전투력은 단순한 척도에 불과하다 해도, 막상 또 오르면 기분 좋은 게 전투력이다.
나는 정좌한 채 손을 무릎에 얹고 눈을 감았다.
[소울 연공법(C):★☆☆]신체 안의 소울 에너지를 감각하고 유동할 수 있습니다.
제법 어려운 설명이지만, 직관적이다.
소울 에너지를 감각한다. 감각한 순간 오감을 넘어선 새로운 감각이 탄생하는 것.
몸 안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근육을 움직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소한 느낌.
표현하자면 구체 형태의 열기가 배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것과 같다.
가만히 있는 건 아니다. 구 형태로 흐르듯이 회전한다.
마치 내 몸이 골짜기고 그 안에 물이 흐르는 듯했다.
정신을 집중하고 느끼고자 하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
소울 에너지를 유동한다. 이번엔 에너지의 흐름을 조종해 본다. 낯설고 어색하지만 점차 내 의지를 따라 에너지가 흘러간다.
이치는 설명할 수 없다. 마치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움직이는 것마냥.
팔 움직이는 방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소울 에너지를 다루는 건 사관학교 커리큘럼의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생도들에게는 ‘첫 번째 통곡의 벽’이라고 불린다.
권능으로 익히지 못하면 괴롭고 지난한 시간을 통과해야 할. 어쩌면 그것 때문에 꿈과 목표를 포기하게 만드는 과정.
실력을 증명한 훈련병들에게는 그 시간을 단축시킬 치트키를 준다.
말하자면 족보다.
이걸 전투에 응용하는 방법은…
모르겠다.
내가 짠 세계관이지만, 학습 과정은 대충 ‘사관학교 전공 시간에 이렇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고 넘어가 버렸거든.
‘…당장은 휴대용 난로일 뿐이네.’
* * *
…잠들었다.
분명 몸을 뭉근하게 데우는 에너지를 한껏 느끼던 중이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하루가 꼬박 지나 있었다.
‘이건 진짜 신전을 가 보든가 해야겠다.’
주디는 이 증상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 보였으니 언제 한번 제대로 물어봐야겠다.
대충 씻고 일어나 1층 식당에서 가장 싼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때웠다.
그런 다음 향한 곳은 그림로어 영웅 사관학교 입학처.
입학시험을 보거나 입학을 신청하는 절차가 아니다. 훈련소를 수료한 순간, 이미 입학 가능 여부는 결정된다.
훈련소별 상위 100명의 병사만이 사관학교 입학의 자격을 얻는다.
지금은 말 그대로 입학 절차를 밟는 기간이다.
입학처 수속 담당자 앞에는 제법 길게 줄이 늘어져 있었으나, 대기자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어? 러셀?”
어딘지 익숙하지만 이름도 모를 훈련소 동기 하나가 알은체를 해 온다.
나는 대충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 뒤로 몇 번이나 내 이름이 불려 눈을 떠야 했다.
진짜 인기인은 피곤하다니까….
“서랍에서 입학신청서 1부 꺼내 작성하시고 훈련소 수료증과 함께 제출하세요.”
“예예.”
이름, 나이, 출신, 희망 클래스, 가족관계 등등 시답잖은 개인정보를 작성하게 한 뒤 수료증과 함께 내밀었다.
수료증을 확인한 접수원이 내내 일관하던 무표정을 지우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우와. 그림로어 훈련소 차석 수료네요? 이번에 거기 엄청 치열했다고 들었는데.”
“네. 사인해 드릴까요?”
“뭐라구요?”
접수원은 깔깔 웃더니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접수대 위 입학신청서를 끄적거리며 묻는다.
“정신치료를 받는 분도 계신다던데,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요. 혹시 선생님께 그런 나약한 소릴 떠든 제 동기가 누군지 알려 주시면 정신교육을 다시 시켜서 치료해 줄까 하는데.”
“어머, 재밌는 학생이네. 입학금은 400만 골드예요.”
“진짜 개 비싸네. 이 도둑놈들.”
“…네?”
“아니, 아니에요. 맞다. 이거.”
나는 수료증 위에 빌트레드 대장군이 써 준 추천장을 올려놓았다.
“……!”
그러자 이번엔 접수원의 표정이 더 드라마틱하게 뒤바뀌었다.
카멜레온 같은 양반이다.
“어, 어어…?”
“그거 맞아요. 추천장.”
“……어?”
“선생님, 저 오늘 안으로 입학할 수 있나요?”
선 채로 죽은 건 아닐까 걱정할 무렵, 접수원은 양 손바닥으로 뺨을 후려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 진짜 미안해요. 제가 이 일 하면서 처음 본 추천장이라. 우와. 이분도 추천장을 쓰긴 하시는구나. 우와… 유려한 글씨체….”
“이보세요?”
“아 진짜 미안해요. 러셀 군은 보나 마나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하겠네요. 프리마관 기숙사 생활은 생도들의 꿈이잖아요. 부러워라….”
그녀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고선 한숨을 내쉬었다.
나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신체 능력 스캔할게요.”
접수원은 바코드 리더기 같이 생긴 스캐너를 내민 뒤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스캐너 구멍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더니 내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고 지나간다.
신체 능력치와 소울 에너지 양 등등을 체크해서 수치화하는 검사다.
훈련소 성적과 함께 입학생을 줄 세우기 위한 척도.
마지막 절차인 전투 능력 검사까지 끝나고 나서야 나는 입학 안내문을 받을 수 있었다.
‘옷이며 뭐며 이것저것 필요한 게 많지만… 일단 기숙사에서 제공되는 기본 생활복만 있어도 어느 정도 해결돼. 중요한 건 역시 무기인데.’
돈이 문제다, 돈이.
“어, 러셀? 입학 수속 밟으러 왔구나?”
그새 또 동기 한 명이 알은체해 왔다. 이번엔 얼굴이 분명하게 기억난다.
시험의 섬에서 함께 싸웠던 동기 중 하나다.
곰곰이 머리를 굴리던 나는 손가락을 튕기고선 이름 모를 동기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야, 반갑다.”
“응응. 내 이름은 야가 아니라―”
“돈 좀 빌려주라.”
동기 놈은 대답도 없이 웃는 얼굴 그대로 문워크 스텝으로 사라졌다.
치사한 녀석. 동기사랑 나라사랑도 모르냐?
이렇게 된 이상 이판사판이다.
좀 구닥다리 클리셰지만 어떠랴. 이게 다 세상을 구하기 위한 일인걸.
나는 그대로 그림로어의 골목길을 구석구석 쏘다니기 시작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아주 으슥한 골목길을 다니다 보면 으레 등장하는 뒷골목 왈패들을 만나기 마련.
돈 좀 있냐고, 가진 집 자식 같다고 시비를 걸어 오겠지.
그럼 아주 반갑게 몸의 대화를 나눈 후 가진 것 다 내놓으라고 한 뒤 돌려보낸다.
걔네들한텐 그래도 된다. 왜냐하면 정당방위니까.
하지만 내 작전은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하고 끝났다.
입학 수속 기간 나흘 중 둘째 날이 다 지나갈 때까지 단 한 명의 양아치도 마주치지 못한 거다.
뒤늦은 깨달음이 몰려왔다.
이곳은 군사도시다.
영웅 후보생, 사관생도들이 우글거리는 데다 교육기관에 종사 중인 영웅들도 심심찮게 지나다닌다.
치안?
전 대륙에서 이곳만큼 확실한 지역이 없다.
목숨이 아깝지 않고서야 깡패들도 이 동네에서는 더러워서 깡패짓 못 한다는 소리였다.
‘권법가들도 주먹 보호대는 끼고 올 텐데, 맨땅에 헤딩도 정도껏이지, 슈바….’
아무래도 나는 무장도 없이 사관학교에 입학하는 최초의 생도가 될 듯싶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