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38)
6. 입학, 영웅 사관학교
선택지는 두 개였다.
어떻게든 가진 자산을 팔아 무기를 들고 입학하든가, 아니면 맨몸으로 일단 들어가서 배를 째든가.
사관학교는 생도들, 특히 특별 장학생들에겐 필요한 모든 걸 제공하지만, 무기만큼은 예외다.
흔히 급식 시절에 한 번쯤 교사에게 들어봤을 ‘너는 전쟁터 나가는데 무기도 안 들고 나왔냐?’라는 질문을 받아 본 적 있을 거다.
지금 내 상황이 문자 그대로 그런 경우다.
만약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수업이고 훈련이고 시험이고 대나무 잘라서 죽창으로 해결하게 생겼다.
‘안 될 일이지.’
내 후원자인 빌트레드 삼촌이 이 상황을 몰랐을까?
아닐 거다.
분명히 삼촌 놈은 내게 준 용돈이 무기 하나 사기도 모자랄 거란 사실을 알았을 터.
급한 것들은 해결해 줬으니 이 정도쯤은 알아서 헤쳐나가라는 뜻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는 내게 동전 한 푼 건네주지 않을 거고.
‘아 뭔가 장르가 이상해지는데.’
이건 뭐 흡사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가 아니라, ‘아카데미에서 먹고살기’가 아닌가.
부자 친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코리 그는 신인가….
도시 안내 약도가 그려진 광장 한가운데서 나는 곰곰이 떠올렸다.
정사에서 뭔가 기연 느낌으로 엮이는 대장장이나 무기 상인이 있던가?
특별히 떠오르지 않는다.
휴고의 무기는 그의 은사가 준 보물이었으니까.
팬픽 정보로 아가리를 털어서 공짜로 무기를 뜯어내는 요행 따위는 바라기 힘들단 뜻이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두뇌를 풀 가동해 내가 만든 캐릭터 중 한 번이라도 언급했던 대장장이들, 무기 상인들을 떠올렸다.
연재하는 도중 한 번이라도 등장했던 장면, 대사, 성격까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가만히 서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는데도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메인 에피소드들. 첫 번째 일상 에피소드, 두 번째, 세 번째….
그러다 문득 특정 에피소드를 복기하던 중 내 생각이 멈췄다.
‘있네!’
메인 에피소드에 엮이는 무기상 겸 대장장이가 하나 있었다. 중요한 비중은 아니지만, 에피소드의 시작을 알리는 의뢰인으로서 등장하는 캐릭터.
그리고 어쩌면 무기를 날로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난 휴고가 아니라, 러셀이니까.
“저기요, 길 좀 물을게요. 여기 마리하 무기상이 어디죠?”
* * *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고 길을 물어물어 도착한 곳은, ‘웨폰 스트리트’ 중간 즈음 위치한 한 무기상이었다.
그리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아주 새것도 아닌 가게. 으리으리한 주변 무기상들에 비해 규모도 작아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기에 십상인 소규모 가게.
딸랑.
나는 곧바로 목재 문을 열어젖혔다.
“오, 제법 넓네.”
내부에서 봤던 것보다 실제 내부는 꽤 널찍했다. 벽에도 빼곡히 각종 무기가 붙어 있고 진열대 위에는 작은 소무구가 놓여 있었다. 암기류 같은 것.
계산대로 보이는 나무 탁상 건너에는 낡은 천막이 쳐졌다. 아마 안쪽으로 개인 공방이 준비된 듯.
“주인장. 손님이요.”
“기다리쇼.”
내 부름에 안쪽 공방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빙의 전이었다면 ‘어디 손님이 부르는데…’ 라고 생각했겠지만, 여긴 적자생존 힘의 세계.
힘 있는 놈은 좀 그래도 된다.
그리고 저 안에 있는 대장장이의 탈을 쓴 남자는 힘깨나 쓰는 양반이고.
급할 필요가 없었다. 남자가 나오길 기다리며 천천히 가게 안의 무기를 구경했다.
“흐음…….”
솔직히 말해서, 봐도 잘 모르겠다.
주무기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건 수도 없이 언급한 사실이지만, 정작 어떤 무기가 좋은 무기인지 알아볼 안목이 부족한 탓이다.
일단 창 중에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놈을 골라잡아 붕붕 휘둘러 보았다.
확실히 튼튼한데 가볍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날 끝을 살짝 만져 보니 곧바로 피부가 갈라질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를 뿜는다.
“어허. 함부로 피를 먹이면 곤란하지, 예비 생도 형씨.”
“아. 미안합니다. 이렇게 날카로울 줄 몰랐어서.”
남자가 헝겊을 휙 던졌다. 나는 곧바로 피부가 찢어진 손을 닦았다.
“……창을 닦으라고!”
“사람이 먼저죠. 거, 손님한테 너무하시네.”
“참나. 무기에 주인의 피를 먹이는 건 길들일 때나 하는 짓이요. 잘 알아두시라고.”
“명심하죠.”
창에 묻은 피를 슥슥 문질러 닦았다.
“원하는 건?”
“투척용 창이요.”
“기성품? 맞춤 제작?”
“이왕이면 맞춤 제작이 좋겠죠?”
“개수는?”
“2자루. 손잡이는 중앙에 있고 창날은 양쪽 끝에 달렸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가능하면 좋고.”
“[무기 각인]을 가진 건가?”
“용하시네요.”
“하나는 메인, 하나는 스페어. 예산은?”
“50만 골드.”
“나가, 거지 놈아.”
“아… 진짜 손님한테 너무하시네.”
굵은 소금이 내 얼굴을 향했다.
이건 또 언제 꺼낸 거야?
역시나 내가 가진 재산으로는 턱도 없는 모양이다.
“제일 싸게 만들면 얼마쯤 하는데요?”
“자루당 2백만은 줘야 그래도 무기 비스름한 거라도 만든다.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마야.”
“개비싸.”
“썩 꺼져라. 경비대원 부르기 전에.”
“정 그러면 이건 어때요?”
나는 하늘석이 담긴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그러자 미심쩍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상인이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표정이 변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얼굴에 푸른 빛이 번질 정도로 많은 양의 하늘석.
영웅들의 권능을 강화하는 힘의 원천이자 재료, 부르는 게 값이어도 파는 사람은 병신 소리를 듣는 재화.
“이걸 대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지금 장난―”
“아니면 요건 어떨까나.”
내가 그다음으로 꺼낸 건, 보호용 유리막 안에 잘 보관된 오르비스의 숨결이었다.
“[유성 낙하]라는 권능이 담긴 건데.”
“…….”
잠시 말문이 막혔던 상인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나를 찌르듯 바라봤다.
“원하는 게 뭐야. 똑바로 말해.”
500개가 넘는 하늘석이나 권능이 담긴 오르비스의 숨결을 팔아 무기를 장만하는 미친놈은 없다.
그건 이 도시의, 아니 이 세계의 상식이다.
설령 정말로 내가 그렇게 손해 보는 거래를 하겠다고 나서도, 이 캐릭터의 성격상 거절할 게 분명했다.
“나이는 10대 후반. 최근에 그을린 피부. 급하게 무기를 구하려는 걸 봐선 이번에 훈련소 수료한 예비 사관생도일 텐데. 50만 골드 운운하는 걸 보면 귀족은 아니고. 상위 권능석과 대량의 하늘석을 가지고 있다면… 네 녀석, ‘시험의 섬 승전’의 주역이군. 대장군께서 키운다는 소문의 망나니가 너냐?”
“와. 일개 무기상치고는 정보도 많고 판단도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아. 일개 무기상이라고 하면 너무 후려치는 호칭이려나. 그래도 전직 영웅 출신인데. 그렇죠, 카터?”
무기점 안의 공기가 급랭했다.
카터는 살기를 일으키지도, 표정을 바꾼 것도 아니었으나 마치 대기의 온도가 몇 도쯤은 내려간 것처럼 서늘했다.
“…….”
“소문의 그 망나니가 접니다. 경이라고 호칭도 제대로 붙여 드릴까요?”
“잡소리 그만하고 용건을 말해. 아니면 썩 꺼지든가. 개시 손님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이 시간까지 제가 개시 손님이면 먹고살 수는 있어요?”
“남이야. 먹고살든 말든… 대장군께서 보냈나?”
목소리가 한결 가라앉았다.
아마도 대장군이 나를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한 모양.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설마요. 추천장 받은 것 빼고는 딱히 들은 것도, 받은 것도 없어요. 아마 알아서 살아남아 올라오라는 뜻이겠죠.”
카터는 내 말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아마 빌트레드는 충분히 그럴 위인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여전히 자신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한 모양이었지만, 그보다도 왜 찾았는지 이유가 더 궁금한 듯했다.
“제 두 번째 후원자가 되어 주세요.”
“꽁으로 무기 달라는 말을 참 세련되게도 하는구나, 사기꾼 녀석.”
“때가 되면, 카터의 한을 풀어드릴게요.”
카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늠할 뿐이다.
눈앞의 소년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저 나이대의 소년이 알아서는 안 될 지식. 가져서는 안 될 정보력이다. 위험하다. 여기서 없애는 게 후환을 남기지 않는 길일지도.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팽팽 돌아가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부터는 자칫하면 죽는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나를 마신의 끄나풀로 오해하고 확신하는 순간, 즉사는 피할 수 없다.
준비해 온 시나리오를 풀었다.
“대장군의 집무실에 액자 하나가 있어요. 그분의 전 전우들의 얼굴과 이름이 적힌. 카터는 거기서 봤고, 얼굴 보자마자 기억났죠. 그런데 참전용사 자격을 가진 전직 영웅이 이런 작은 무기점을 하고 있길래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눈동자 깊숙이 슬픔에 잠겨 있길래 ‘한’을 가졌구나 하고 짐작한 것뿐이죠.”
“맹랑한 꼬맹이가.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우연히 이곳을 찾아와 보자마자 나를 알아봤다는 걸?”
“어차피 거짓말할 거였으면 그냥 대장군이 보냈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그건 네놈이 그분을 모르기에 하는 소리지.”
“하긴, 맞아요. 대장군은 본인의 뜻을 전할 땐 늘 서신과 인장을 함께하니까. 어쨌든, 제가 그 액자를 정확히 기억한 건 우리 아버지도 그 액자 속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내가 쌓아 온 빌드업의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휴고는 안 되고, 난 되는 이유.
왜냐면 난 국가유공자의 아들이니까.
“칼슨, 애시그린.”
“……뭐?”
이 몸의 생물학적 아버님 죄송합니다.
벌써 두 번째로 아버지를 팔고 있네요.
“제가 칼슨 애시그린의 아들이라고요. 러셀 애시그린.”
그리고 나는 입학 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가족관계를 적는 공간에 ‘칼슨 애시그린(死亡)’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적혀 있다.
“아시죠?”
이렇게 또 한 번 정사가 뒤틀리겠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네가… 칼슨 형님의 아들… 하하. 그랬군. 그랬어. 그래서 대장군께서 너 같은 망나니를 기꺼이 후원하신 거야.”
“망나니라뇨. 진짜 듣는 망나니 서운하네.”
“반갑다. 애송아. 하지만 난 네게 도움을 줄 순 없어. 네 힘으로 알아서 하라는 게 대장군의 뜻이니까. 그래도 네 아버지를 봐서 돈을 가져오면 10% 할인은 해 주마.”
“누가 도와달래요? 거래하자니까?”
나는 다시 한번 계산대 위의 아이템들을 가리켰다.
“이건 그냥 내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 주기 위한 증거예요. 힘을 기른 뒤 반드시 카터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의뢰를 받겠어요. 그러니 선금으로 때깔 좋은 창을 내놔요.”
“허.”
뒤이어 입구 쪽 간판을 가리킨다.
“마리하라는 사람과 관계된 원한이죠? 언젠가 반드시 해결하죠. 하늘에 있는 우리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이제 그는 아예 말을 잊은 듯 헛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작은 목소리로 형님, 아들, 패륜 어쩌고 하고 중얼거리는 것도 같다.
“두 자루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이어진 내 말에 머리를 쥐어뜯을 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