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41)
6. 입학, 영웅 사관학교
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는 강제로 의식이 끌어 올려지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떴다. 암막 기능 훌륭한 프릴 커튼 사이로 미세하게 빛이 새어들어 왔다.
“러셀 님. 메이드장 앤입니다.”
“들어와.”
앤이 무슨 일이지?
나는 잠이 덜 깬 표정으로 상체만 일으켰다. 정전기가 오른 머리칼이 부스스하게 솟구쳤다.
“무슨 일이야?”
“전날 주무실 때 조식 시간에 맞춰 깨워 달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 그랬었지. 벌써 아침이야?”
“네. 정확히 12시간 56분 주무셨습니다. 지금은 7시 30분이고, 씻고 내려가시면 딱 맞춰서 식사하실 수 있으십니다.”
“……많이도 잤네.”
“다른 도움이 필요하실까요?”
“아냐. 고마워. 근데 부하직원들 시키면 되지 메이드장이 뭘 알람 업무까지 직접 하고 그러냐.”
“첫 주말이다 보니 미리 휴식을 취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아직은 생도분들께서 프리마관 생활이 익숙지 않아 저희의 일이 많지 않거든요. 러셀 생도님이 독특한 경우이지요.”
“귀찮게 하는 사람이 나뿐이란 소리군. 거,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급여를 받고 속없이 쉬는 건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요. 실언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나는 괜찮다는 듯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조용히 사라졌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발소리 하나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
시답잖은 생각 끝에 몸을 일으켰다.
햇빛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걷어 올리고 대충 얼굴을 문대 씻었다.
‘진짜 모처럼 푹 잤네.’
훈련소나 여관에 있을 땐 자는 시간이 많아도 일어나고 나면 피곤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간밤은 정말이지 푹 잔 느낌이다. 모처럼 정신이 맑고 상쾌하다.
‘침대가 고급이라 그런가.’
개인실 침대는 몸을 뉘자마자 물속에 빠져 잠에 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드럽게 몸을 감싸 안았다.
눕자마자 잠들었고, 눈을 뜨니 12시간이 지나 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 듯하다.
슬리퍼를 끌면서 걸었다. 세면실에서 옷장까지 걸어가는 데 한 세월이다.
프리마관 개인실은 침대, 옷장, 화장대, 학습을 위한 공간, 화장실과 세면대까지 갖추고도 가운데 공간이 탁 트일 정도로 넓었다.
방 한 칸이 최소 20평은 넘을 것 같다.
그야말로 돈지랄의 끝판왕이 아닌가.
일반 입학생들이 내는 돈, 그림로어 도시에서 걷히는 세금, 그리고 왕국과 졸업생 영웅들이 보내는 지원금 중 3할 이상이 장학생을 위해 쓰인다는 소문이 납득될 정도였다.
고양이 세수하듯 적당히 얼굴에 물을 묻힌 뒤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다른 건 몰라도 앞으로 삼시 세끼는 꼭꼭 챙겨 먹을 계획이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벽면엔 각종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오빠 여기 너무 뜨거워요.
침이 따끔따끔
온몸이 들썩들썩
-수지침 혈자리 연구 동아리」
“…….”
나는 눈길을 사로잡는 동아리 홍보물을 고개를 저으며 지나쳤다.
사관학교라 불리지만, 유사 아카데미물의 플롯을 따르는 만큼 「아카데미의 기갑병기 마스터」에서 동아리 활동은 꽤 중요한 소재였다.
심지어 학사에서도 활동 시 1학기마다 특별가점 1점을 부여하면서 모든 생도들의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있었다.
지덕체를 모두 갖춘 영웅을 양성하려면 다양한 경험과 건전한 취미생활도 반드시 필요하다나, 뭐라나.
아무튼, 첫 주말을 틈타 신입생들을 확보하려는 동아리들의 포스터들이 자극적이고 유쾌하게 붙어 있었다.
홍보물들을 지나 식당으로 도착하자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다.
“러셀!”
한쪽 구석에서 1학년들이 모여 있는 걸 발견한 나는 손을 들어 인사하고는 원형 그릇에 음식물을 퍼담기 시작했다.
프리마관의 식사는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모두 뷔페식이다.
그것도 대륙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던 주방장들을 직접 초빙해 만드는 특급 뷔페식.
나는 원형 그릇 위에 음식을 산더미처럼 받고는 동기들이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그때 등 뒤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거 봐라. 큭. 웬 거지새끼가 왔나 봐.”
“내버려 둬라. 평소에 얼마나 못 먹고 자랐으면 저렇겠냐.”
내가 자리에 앉자 훈련소 동기들이 도끼 눈을 뜨고 뒤쪽 생도들을 노려본다.
“왜? 누가 시비 걸어?”
“쟤들이 한 말 못 들었어?”
“들었는데. 아. 나한테 한 말이었냐.”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개새끼들이 말을 좀 심하게 하네. 거지한테 거지새끼라니. 상처잖아. 뒤질래?”
“뭐래, 미친놈이. 니한테 한 말 아니거든?”
“그래? 아니래. 밥 먹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선 음식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내 우아한 식사 예절이 감명 깊었는지 리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천천히 좀 먹어.”
“너나 좀 팍팍 먹어라. 새 모이 처먹는 것도 그거보단 시원시원하겠다.”
나는 깨작거리는 리지의 식사 예절을 지적한 뒤, 그녀의 스푼을 들어 음식을 가득 푼 뒤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많이 먹어라. 그래야 쑥쑥 크지.”
“읍―.”
“음식 입에 넣고 말하는 건 귀족 영애가 할 행동이 아니에요. 자. 착하지. 먹어.”
“…….”
세모눈을 뜨고 부리를 삐쭉거리는 리지의 머리를 대충 쓰다듬어 준 뒤 식사에 집중했다.
“뭉쳐 다니는 거 진짜 꼴보기 싫지 않냐.”
“냅둬라. 자기들끼리 끈끈하다잖아.”
아따 시끄럽네.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려 아까부터 재잘재잘 떠드는 병아리들을 확인했다.
대충 훑어보니 호메르라는 생도를 중심으로 뭉친 레드햄 훈련소의 우수 병사 출신들이었다.
호메르.
레드헴 훈련소 수석이자 전체 성적 5등으로 입학한 녀석. 즉, 내 바로 위의 성적을 기록한 녀석이다.
어쨌든 한가락 하는 녀석이라 이거지.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가는 걸로 봐주려고 했는데. 자꾸만 깨작깨작 신경을 건드린다.
고루한 클리셰긴 하지만, 별수 있나.
원래 학기 초에는 신경전과 서열 싸움이 벌어지기 마련이니까.
“꼴에 무슨, 시험의 섬 승전 주역? 웃기지도 않아.”
“크큭, 맞지.”
“마인 습격 받아 동기들 뒤지고 살아남은 게 뭔 자랑이라고.”
근데 저건 좀 제대로 선을 넘었다.
애새끼가 정신 발달이 덜 됐어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 거다.
“휴고, 참아라.”
파가 부들거리는 휴고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의 무릎을 다독였다.
불합리한 상황에 가장 먼저 앞서는 건 늘 휴고였다.
그러잖아도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동기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저런 모욕까지 당했으니 속이 뒤집힐 거라고.
하지만 다행히 휴고는 떨면서도 화를 삭이고 있었다. 대견하게도.
주디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다른 쪽을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쟤는 언제 저기까지 갔어?”
휴고 이 대견한 녀석.
형만 믿어라.
“뭐야?”
등 뒤에 나타난 나를 발견한 호메르가 홱 고개를 돌렸다.
“선빵필승이다, 병아리 새끼야.”
쾅!
나는 호메르의 정수리를 붙잡아 그대로 음식 그릇에 처박았다.
그릇에 담겨 있던 음식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야!”
“미친 새끼 아냐 이거?”
“어딜 감히!”
레드햄 훈련병 출신 생도들의 고함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식당의 모든 시선이 우수수 날아들었다.
호메르가 발작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내가 놈의 복사뼈를 걷어차는 게 먼저였다.
“마, 말려―”
응, 늦었어.
이제 개같이 굴면 개같이 갚아준다는 게 내 신조거든.
나는 쓰러진 호메르의 안면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놈의 허리 위로 올라타 난타 연주를 시작했다.
“야! 타격감! 죽인다!”
퍽, 퍽퍽!
호메르는 일방적으로 처맞았다. 정식 결투였다면 이야기는 좀 달랐겠지만, 녀석은 속도 중심의 사수.
무기도 없이 기습적으로 마운트 포지션을 허용한 순간, 퇴로는 없었다.
잔혹한 손속 때문인지 내 동기들을 물론 이놈의 같은 편조차도 말릴 생각을 못 하고 머뭇거리는 중이었다.
데나스는 무언가 PTSD라도 왔는지 몸을 부르르 떨고 있다.
“입 다물어라. 강냉이 삼키면 너 송장 된다.”
친절하게 녀석의 벌어진 턱을 닫아 준 뒤 바닥에 떨어진 스푼을 집어 들었다.
나는 숟가락 살인마다.
전력을 다해 숟가락으로 녀석의 마빡을 내리치려는 순간, 누군가 내 손을 붙잡았다.
“그만하시지요. 러셀 생도님.”
프리마관의 메이드장, 앤 메이였다.
언제 온 건지 그녀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문제는 그 힘이다.
얼마나 악력이 센지 손을 옴짝달짝할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내 손을 내리게 한 뒤 숟가락을 빼냈다.
“더 소란을 피우시면 사감교수를 부르겠습니다.”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이건 일방적인 폭력이 아닌가요.”
“뭐, 그렇다고도 볼 수 있지?”
“그만하신다면 이번은 제 선에서 무마하겠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생활복에 묻은 음식물들을 털어냈다.
어차피 반쯤 기절한 놈을 더 팰 생각은 없었다.
숟가락으로 세 대쯤 더 때리는 정도?
우리 아버지께 배운 밥상머리 교육법이다.
“앞으로 주의 부탁드립니다. 벌점이라도 받게 되면 생도님께도 좋은 일은 아니니까요.”
“사관학교가 고작 생도들끼리 푸닥거리 좀 한 걸로 벌점 줄 정도로 말랑말랑하진 않잖아, 앤. 적당히 끝냈으니 괜한 겁주기는 그쯤하라고.”
내 말에 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골칫거리의 등장에 앞으로의 일이 힘들어지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 그리고 나 너무 미워하지 마라. 저 새끼가 먼저 죽은 내 친구들 욕보였거든.”
마지막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인 뒤 빠르게 내 자리로 돌아왔다.
동기들의 경악 어린 말들이 오갔다.
“진짜 미친놈이야 너는….”
“내가 게으른 러셀보다는 망나니 러셀이 더 어울린다고 했잖아.”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밥그릇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근데 내 도토리묵 누가 먹었냐. 이거 마지막 남은 건데.”
모두의 시선이 한쪽 구석에서 뻔뻔하게 입을 오물거리고 있는 미마를 향했다.
이 도둑다람쥐 쉑….
* * *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주디가 종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뭐야?”
“동아리 가입 신청서. 우린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로 가기로 합의했어. 여기가 유명한 선배들도 많고 가장 유서 깊고 유용한 동아리거든.”
그녀가 내민 건 동아리 가입 신청서였다.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
그건 2학년의 에뜨랑제를 포함해 주인공과 그의 최측근들이 모두 가입하는 동아리로, 사관학교 외부 에피소드의 무대가 되는 곳이었다.
동아리 활동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족족 사건 사고에 휘말려 온갖 기연을 얻고 경험을 쌓는 계기.
“아. 이거구나.”
“응응. 일단 내일 선배들의 신입생 환영회 겸 설명회가 있으니까. 빨리 신청서 내.”
“난 안 할 건데?”
“특별반 장학생들이 많을수록 동아리 지원비도 많아지는데, 여기는 특이하게 장학생들만 신청할 수 있는 데거든. 잠깐만, 뭐?”
“안 한다고.”
내 대답이 예상외였는지 주디가 당황한 표정으로 우다다 말을 뱉었다.
“네가 뭘 모르나 본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 가점이 있어. 모두가 다 할걸? 어차피 할 거 친한 애들끼리 다 같이 하자는 거야.”
“그래. 열심히 해라. 나는 다른 동아리 생각해 둔 게 있거든.”
“뭐어? 무슨 동아린데?”
“농사.”
“……?”
“농사 동아리 만들 거야.”
“??”
“다들 그게 대체 뭔 표정이야?”
내 진지한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