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48)
7. 형만 믿어라, 휴고야
나는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힘없이 앉았다.
진짜 개 같은 사망 플래그가 꽂혀 버렸지만, 일단 침착하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뒤 천천히 머리를 굴렸다.
우선 가장 가능성 큰 해결안 첫 번째.
마법부 교수진들을 찾아다니며 해주를 부탁하는 것.
명색이 교수들인데 분명 해주 전문가가 한 명쯤 있을 거다. 내 설정집에는 없었지만, 아무튼 있을 거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내 저주를 확인한 교수는 학사에 보고한다. 학사에 난리가 난다.
감히 지엄한 이제라의 사관학교에서 생도에게 저주를 거는 악독한 마인이 있다니!
학사 관계자들이 돌대가리가 아니라면 분명 레몬의 꼬리가 밟힐 거다.
3년 전에 저주를 걸 수 있었으며, 지금 사관학교에서 저주가 잘 통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자.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비록 증거가 없어서 내게 저주를 건 혐의는 벗는다고 쳐도, 레몬을 조사하다 보면 그녀가 해 온 마인 활동의 꼬리가 밟힐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날이 곧 4막, ‘마인 준동’ 개막식이다.
2막, 3막, 그사이 모든 달달한 이벤트를 건너뛴 주인공 일행의 전멸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해 볼 만한 해결책이긴 하네….’
두 번째 방안.
레몬 근처를 뒤져 저주를 건 자를 찾아낸 뒤 족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레몬에게 걸려 내가 뒤질 수도 있다. 아니면 선배를 족쳤다는 이유로 내 이미지가 나락으로 간 뒤 퇴학 엔딩을 맞을지도 모른다.
세 번째 방안.
그냥 유서나 써 놓고 친구들에게 ‘내가 마인이 되거든 고통 없이 해치운 다음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 줘.’라고 부탁한 뒤 얌전히 죽는다.
뭐, 최후의 전투는 알아서들 잘해 보라지.
나만 배드 엔딩인 거보단 모두가 배드 엔딩인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을 접었다.
어째 점점 인성이 파탄 나는 느낌인 게, 혹시 내게 걸린 저주는 인성이 부서지는 저주 아닐까?
안 그래도 4막에서 어떻게 혈육을 손절할지에 대한 고민도 안 끝났는데, 난이도가 헬 모드로 바뀌었다.
복잡한 심경을 다스리고 있는데, 아까부터 자꾸 강의실 뒤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순간 열이 확 뻗친 내가 벌떡 일어나 뒤돌았다.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순간적으로 찾아온 정적.
소란의 원흉을 확인해 보니 호메르를 비롯한 레드햄 훈련소 출신의 관심종자들이다.
“확 씨! 아무튼 요즘 애새끼들은! 나 때는 말이야, 어? 학교에서 떠들다가 죽도로 처맞고 그랬어, 어! 엑스칼리버라고 들어봤냐!”
“미쳤냐, 너? 지금까지 니가 더 시끄러웠거든?”
그리고 그들이 둘러싸고 괴롭히고 있는 건 ‘좀비 데나스’.
훈련소에서 내게 덤볐다가 짚 인형 됐던 그 녀석이다.
호메르와 그 추종자들이 데나스의 뒤통수를 때리고 책상을 발로 차는 등 수준 낮은 괴롭힘을 벌이고 있다.
“하, 이 새끼들 정신 못 차리고 또 신성한 강의실에서 학교폭력질이네. 학교폭력 멈춰!”
내가 손바닥을 펼쳐 당당히 앞으로 뻗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파가 주디에게 귓속말했다.
“러셀 오늘 왜 저래? 원래 성질 나쁘기야 했지만, 저 정도로 정신이 나간 느낌은 아니었는데?”
“에휴. 그런 게 있어….”
다 들린다, 친구들아.
이놈의 청력은 쓸데없이 좋아져가지고.
나는 두 사람을 힐끔 일별한 뒤 곧바로 호메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녀석은 눈을 부릅뜨며 데나스의 머리채를 놓고 내 앞에 섰다.
데나스는 별일 없었다는 듯 머리를 툭툭 털고 펼쳐 놓았던 책 위로 시선을 돌린다.
내게 참교육을 당한 다음부터는 호메르 일당의 표적이 데나스로 바뀌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 끈끈하게 뭉쳐 다니니 차마 시비 걸기가 껄끄럽고, 그림로어 훈련병 출신 중에 외따로 떨어진 건 미마와 데나스 그리고 빌레나 셋.
한데 저놈들도 차마 귀족인 빌레나나 학년 수석인 미마를 건드리기엔 엄두가 안 나, 데나스가 표적이 된 것이다.
사실 1:1로 붙으면 웬만한 놈은 데나스가 이기겠지만, 저쪽도 우르르 몰려다니니 그냥 적당히 참고 넘기기로 한 모양.
‘쯧. 그러게 오랄 때 오지.’
데나스 녀석도 나름 세력이 있었다. 성격도 남자답게 호쾌한 편이라 훈련소에서도 스무 명이 넘는 추종자들이 그를 따랐었다.
그러나 모두가 ‘시험의 섬 습격 참사’ 때 죽었다.
그의 일행 중 살아남은 건, 데나스 혼자였다.
사실 그렇게 심한 괴롭힘이라고 보긴 어려웠기에 휴고나 나나 그냥 저러다 말겠지 하고 넘어가는 중이었는데, 오늘은 왠지 누군가를 잡아 조져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야. 데나스.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마라. 저딴 놈들, 이길 수 있잖아?”
“남의 일에 신경 꺼.”
성질머리하고는.
그 와중에도 적당히 선을 긋는 그의 모습에 실소가 나왔다.
내 웃음이 비웃는 걸로 느껴졌는지, 호메르가 발작했다.
“그때 비겁하게 기습해 놓고 잘난 척하지 마라. 안 그래도 너, 기회 봐서 죽여 버리려고 했어.”
“네가? 나를? 농담이 지나친데.”
“궁금하면 덤벼 봐. 이마에 총알 박아서 그 개 같은 눈깔 세 개로 만들어 줄게.”
“와, 너 말 존나게 함부로 한다? 인성 교육이 시급하구나?”
당장에라도 무장을 들어 서로를 겨눌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 호메르의 동기들이 그의 옆에 서서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바로 파가 일어서서 내 옆에 다가온 생도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냈다.
“하하. 친구들. 비겁하게 여러 명이 덤빌 건 아니지?”
뒤이어 휴고와 루트비히가 일어서 내 옆에 섰다.
누군가 방아쇠만 당기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발칸반도 같은 아우라가 특별반을 감쌌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 만한 사람은 리지뿐이다.
“리지, 뭐하냐.”
“으응? 일단 한 방 날리고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
“아니야, 이 자식아.”
그거 날리면 이 강의실 날아가.
나는 캐스팅이 끝나기 직전인 리지를 뜯어말렸다.
저건 진짜 강의실에서 살상마법을 쏴 버릴 인재였다.
일단 사라예보의 가브릴로 프린치프를 꿈꾸는 마법사 소녀를 진정시킨 뒤, 호메르를 향해 경고했다.
“너는 나한테는 물론이고 저기 데나스한테도 안 돼. 나중에 줘 터지지 말고 곱게 말할 때 나대지 마라.”
호메르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한 훈련소의 수석이니 이런 취급은 처음 받아 보겠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난리 치는 캐릭터는 아니었는데, 설마 나 때문인가…?
마치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녀석의 주먹을 응시했다.
그래도 제정신이 박혀 있어서 총을 꺼내 들지는 않는군.
일단 주먹을 뻗으면 왼쪽으로 샥 피한 뒤 손가락을 하나씩 뒤로 접어 줄 생각이었다.
호메르가 기어코 주먹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속박]녀석은 날 때리기 직전의 자세로 그대로 정지했다.
무언가 강압적인 힘에 멈추어진 것처럼, 몸이 덜덜덜 떨린다.
“이, 이이익―!”
눈에 실핏줄이 터지고 혈관이 솟아오른 모습이 가관이었다.
‘이 권능은….’
나는 고개를 돌려 강의실 가장 앞에 앉은 여자애를 쳐다봤다.
이건 빌레나 모르비안의 권능이었다.
내 시선을 느낀 빌레나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작게 말했다.
“교수님 오고 계셔.”
나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린 뒤 부들대는 호메르의 뺨을 한 대 적당한 강도로 쳐 준 뒤 자리로 돌아갔다.
“나대지 마라.”
그러고는 뒷자리의 주디에게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의사 선생님, 제 수명은 얼마나 남았나요. 저 얼마나 살 수 있죠?”
“그냥 지금 죽었으면 좋겠어…….”
* * *
“마신군 수뇌부는 수장인 마신과 그에 협력하는 5명의 사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여섯 악을 퇴치해야만 이 전쟁이 비로소 끝난다고 할 수 있지.”
「마신군 분석 총론」 담당 교수는 흔한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선 곧바로 긴 설명을 이어갔다.
“마신과 사도들은 일반적인 영웅의 힘으로는 대적하기 힘들 만큼 강력하지.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더 강한 힘을 기르고 신수의 힘이 담긴 기갑 병기를 활용하고자 끊임없이 영웅을 육성한다.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한 요람이 바로 이곳, 영웅 사관학교다.”
그는 흰 수염이 자글자글한 나이 지긋한 학자였다.
겉모습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딱 맞게 나긋나긋하고 음 낮은 목소리에 잠이 솔솔 오는 기분이 들었다.
“계승자라 불리는 소수의 선택받은 영웅만이 신수 병기의 운용자가 될 수 있으며, 그 외의 영웅들은 계승자들이 마신과 사도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호위, 보좌하는 역할을 맡지. 아마 너희 대부분의 역할이 그러할 것이니.”
교수는 수염 쓰다듬으며 설명을 이어 갔다.
“그렇기에 내 수업에서 너희가 배울 것은 마신군 병력의 모든 것이다. 마신군의 종류, 능력, 성향, 권능 등등 모든 것을 외우고 숙지한다. 어느 적을 만나도 대처할 수 있도록. 즉, 내 수업은 100% 이론 수업이다.”
쪽지시험 10회. 과제 제출 2회. 그리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쭉 적히는 커리큘럼에 생도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 들어갔다.
대륙에 존재하는 마신군의 종류는 어마어마하다. 그를 방증하듯 전공서의 두께도 살인적이었다. 말 그대로 전공서로 머리를 찍으면 반으로 쩍 갈라질 정도로 살벌한 두께였다.
그 많은 내용을 다 외우기란, 3학기 내내 매달려도 쉽지 않아 보였다.
“마신군의 종류에 대해 말해 볼 생도. 한 번에 정답을 맞히면 중간고사 가점 1점을 주겠다.”
주디가 재빨리 손을 들었다.
“주디. 네가 가장 빨랐구나. 말해 보도록.”
주디는 교수가 오늘 처음 보는 제 이름을 외웠다는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과연 방대한 이론을 가르쳐야 하는 「마신군 분석 총론」 담당 교수다웠다.
“마족, 마수, 마인, 마물입니다.”
“정확하다. 조교. 기록하도록 하거라.”
교수는 조교에게 지시한 뒤 설명을 이어 갔다.
“악마족과 호문쿨루스를 통틀어 마족이라 한다. 호문쿨루스는 제작자의 의지를 따르기 때문에 마족이면서도 인간의 편에 선 존재도 종종 있지.”
교수는 로벨리아를 슬쩍 바라보곤 설명을 이었다.
“원래는 인간이었으나 인류를 배신하고 마신의 편에 선 자들은 마인이라 부른다. 그 외의 모든 마신군은 이지가 있는 적은 마수, 이지가 없는 마법생물은 마물이라 부른다. 거기, 잠든 생도를 깨우도록.”
나는 나를 깨우는 손짓에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 노인네, 정말 보통이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강의가 시작하자마자 졸릴 수가 있지…?
“러셀 애시그린. 감점 1점이다. 조교. 기록하도록. 계속 설명하지. 마신군은 그 강함에 따라 1성급부터 6성급으로 나뉜다. 여기까지는 사관생도 수준으로도 상대할 수 있는 적들이다. 그리고 그 위의 등급으로는 순서대로 토벌급, 군단장급, 군주급이 있다. 참고로 토벌급 이상의 마신군을 척살하려면 반드시 영웅이 포함된 토벌대를 구성하여야 한다.”
깬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이 강의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난적이 될 거라는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