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50)
7. 형만 믿어라, 휴고야
“뭐냐, 넌…?”
말 그대로였다.
‘날다람쥐 미마’.
사관학교 21기 수석이자 살벌한 무장으로 서펜섬의 마수들을 쓸어 담았던 인간 병기 미마가 학신목 안에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곤히 잠들었다.
“야. 미마.”
나는 적당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 깨웠다.
그러나 반응하지 않는다.
어쩐지 신기한 모습이다.
그녀는 바람 잘 드는 나무 위에서 자는 걸 좋아하지만, 사실상 잔다기보다는 휴식에 가깝다.
미마가 진짜 잠드는 곳은 주로 어둡고 좁은 곳이었으니까.
오죽하면 개인실에서도 한쪽에 개집 비스름한 걸 만들어 놓고 거기서 자는 게 그녀의 특징이겠나.
그렇다 보니 가끔 보이는 그녀의 잠든 모습은 대부분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의 미마는 정말로 잠들어 있었다. 누가 불러도 깨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잠든 모습은 처음 본다.
신기한 장면이었다.
살굿빛에 가까운 분홍빛 머리칼은 부스스하게 내려와 있고 몸을 웅크린 채 풍성한 털로 감싸고 있다. 마치 눈을 가리듯 내리덮은 귀까지.
진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면 한 마리의 설치류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흐음…….”
미마는 화려한 데뷔치곤 작품의 중반부가 넘어야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인물이다 보니, 초반부 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었다.
그냥 정신 빠진 모습으로도 수석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NPC 같은 느낌이랄까.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적당히 시간을 죽이고 있을 거라 묘사한 기억은 나는데, 그 ‘모처럼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내 영약 농장일 줄은 몰랐다.
“어쩐다.”
기껏 전세를 얻었는데, 불법 점거자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단 얘기는 해 줘야겠다.
굳이 잠자는 초식 맹수의 코털을 건드리고 싶진 않았기에, 나는 학신목 그늘에 누워 팔베개했다.
약간의 물 냄새를 담은 바람이 시원하다.
확실히 한숨 때리기에 명당인 건 틀림없다.
* * *
미마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스름한 달빛이 물가를 비추고 있었다.
으드득.
찌뿌둥한 몸을 꿈틀거리며 옹이구멍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고는 기둥을 타고 쪼르르 내려오려는데.
“……?”
그녀의 새 보금자리 아래에 웬 소년 하나가 잠들어 있다.
“???”
미마는 육식 수인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불청객한테서 멀찍이 떨어져 지면에 착지했다.
러셀 애시그린. 그 아이다.
미마가 고개를 기울였다.
얘는 대체 왜 여기서 자고 있는 걸까.
‘들고양이.’
그가 잠든 모습은 정말 한 마리의 들고양이 같다.
어쩌면 저렇게 편안하게 늘어지게 자고 있는지.
기이하기 짝이 없다.
미마가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꼬리로 러셀을 툭툭 건드렸다.
딱히 불편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곳은 모처럼 정말정말정말 마음에 든 보금자리다.
절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장소.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만약 거절한다면 강제력을 동원할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미마의 몸이 석고상처럼 굳어졌다.
소년이 ‘개춥네.’ 라고 중얼거리며 그녀의 꼬리를 붙잡더니 홱 끌어당긴 것이었다.
“……!!”
마치 인형을 끌어안고 잠든 아이처럼 제 풍성한 꼬리를 꽉 끌어안는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미마는 펄쩍 뛰어오른 뒤, 주먹으로 러셀의 코를 전력으로 후려쳤다.
“아 씨바!”
소년은 입이 걸다.
“뭐냐, 갑자기 눈앞이 번쩍거렸는데?”
소문도 안 좋고 행실도 불량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제에 본인을 희생하는 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싫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신경이 쓰였고, 그래서 불편했다.
여기까지 저를 따라온 이유는 모르겠으나, 쫓아낼 셈이었다.
“스토커?”
“뭐? 딱밤 맞을래?”
곧바로 러셀이 도끼눈을 뜨고 으르릉거렸다.
미마는 양팔을 들어 올려 판피를 열고 [건 체인지 모듈]을 꺼냈다.
“야야.”
그러자 곧바로 눈앞의 소년이 항복 선언을 한다.
“스토커라니, 그런 흉악한 표현을. 그게 아니고 그냥 말 전해 주려고 기다리다가 잠든 거야.”
“무슨 말?”
“아오. 몸 으슬으슬하다. 여기가 마음에 들었나 봐?”
미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꺼낼 말을 고민한 뒤 덧붙였다.
“미안하지만, 찾아오지 마. 여긴 내 영역이야.”
“허어?”
“너랑은 굳이 척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여긴 양보 못 해. 방해받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
소년은 어쩐지 히죽거리고 있었다.
마치 계략을 꾸미던 연구원들 같은 모습이다.
어쩐지 후유증이 도지는 듯해 미마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나가 줘.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밀이야.”
여전히 히죽거리기만 하는 소년.
미마는 고개를 저으며 꼬리를 세웠다. 아무래도 영역 쟁탈전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녀가 전의를 불태우려는 순간, 웬 종이 한 장이 그녀의 눈앞에 들이밀어 졌다.
“……?”
“미안한 건 나야. 왜냐면 여긴 이제부터 우리 동아리의 구역이거든.”
그가 내민 종이에는 색칠된 지도와 학사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건물이 우리 동아리 건물이고. 안타깝게도 이 나무도 구역 안에 포함되어 있단 말이지.”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연해지는 기분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외부인 출입 금지야. 미마, 나가 줘야겠어. 그대로 되돌려 줄까? 여긴 양보 못 해. 방해받고 싶지도 않고.”
제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며, 종이를 살랑거리며 러셀은 낄낄 웃었다.
“방 빼세요. 미마 생도.”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보금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거기 불법 입주민분? 이사 기간은 언제까지 드려요?”
그 모습이 너무나 얄미워서 꼬리와 귀가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 * *
바람이 분다.
완연한 봄바람이었다.
냇가 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날다람쥐의 꼬리털도 하늘거리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좀처럼 감정 변화를 드러내지 않는 안드로이드 수인이 부들거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보기 드문 명관이었다.
“……어?”
그때 내 코에서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피였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콧잔등이 욱신욱신하는 게, 마치 코뼈를 한 대 맞은 듯한 증상이다.
“설마 너 나 때렸냐?”
내가 고개를 위로 치켜들며 묻자, 미마는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뒤 이를 악물고 시선을 피하는 게, 영락없는 범인의 모습이다.
“와 이제는 하다 하다 땅 주인한테 폭력까지 쓰네? 퇴거에 더해서 합의금까지 받아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
“그건.”
“그건 뭐?”
미마가 억울한 듯 울컥했다가 대답을 못 하고 눈을 피했다.
그거 봐라.
아무리 영역 침범한 사람이라고 해도 다짜고짜 폭력부터 쓰는 게 어, 말이 되냐.
미마는 그것 또한 할 말이 없었는지 그저 말을 돌릴 뿐이었다.
“네 땅 아니잖아.”
“우리 동아리 땅이고, 내가 회장이니 내가 땅 주인이나 다름없지. 불만 있으면 학생회에 이야기하라고.”
미마는 분한 듯 입을 오물거렸다.
뭔가 따지고 싶은 모습인데, 사실 명분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의외로 그녀는 학칙을 준수하게 지키는 성격이었다.
학년 수석이라는 명예를 가졌으나, 딱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거나 경제적인 지원이 뒷받침되는 건 아니라서 장학생 신분을 지켜야 하는 건 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갈게.”
미마는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다 결국 꼬리를 내리고 뒤돌아섰다.
안절부절못하는 게 솔직히 귀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작은 설치류는 대부분 귀엽다.
햄스터도 그렇고, 다람쥐도 그렇고, 기니피그나, 친칠라가 그렇다.
그리고 보금자리를 빼앗긴 날다람쥐도 그렇다.
결국 더 짓궂게 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씨 넓은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동아리에 관상용 애완 수인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긴 하지.”
내 말에 미마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그러고는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근처에서 농사짓고 있어도 네가 괜찮다면 나무, 은신처로 쓰게 해 줄게. 우리도 할 일이 있으니까 비워 주진 못해. 우리가 뭘 하는지는 당연히 대외비고.”
“……!”
“동아리 인원이야 다섯뿐이고 안면 있는 조용한 애들이니까 신경 안 쓰이게 할 거야. 원한다면 나무에 대충 가림막이라도 쳐 줄게. 동아리 구역으로 지정되면 아무나 못 들어올 테고, 모르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어?”
확실히 나쁘지 않다는 표정이다.
미마가 왜 이 나무에 집착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나무에서 뿜어지는 상서로운 기운이 연관 있을 거다.
지켜본바 나무 주변에는 유난히 생기 있는 풀들도 많고, 새들도 많이 날아든다.
굳이 농사 동아리를 이렇게 먼 토지에 배정해 준 것도 다 학신목과 관련 있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대신 조건이 두 개 있음.”
미마는 일단 들어 보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의가 당연히 공짜가 아닐 거라는 태도는 훌륭하다.
“하나는 훈련소 때처럼 종종 대련 좀 해 주라.”
“간식은?”
“줄게.”
“좋아.”
시원시원한 대답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너 내일 「체술」 수업 있지? 마야 교수 거.”
“응.”
“휴고도 같이 듣거든. 근데 거기 교수가 꼭 첫 수업 때 특별반 장학생끼리 대련을 붙인단 말야?”
“응.”
“거기서 휴고 놈한테 본때를 좀 보여 줘. 절대 방심하지 말고 철저하게 부숴 버려. 한 대도 맞지 말고.”
내 말에 미마가 별 이상한 소릴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너희 친하지 않아?”
“친한 편이지.”
“그런데 왜?”
“그놈은 목표가 있어야 강해지는 타입이거든. 아예 정신을 바짝 차리는 계기가 좀 됐으면 하네.”
내 설명에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의 미마.
하지만 어려운 조건은 아닐 거다. 그녀는 딱히 타인의 사정을 이해하려 애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한 대도 안 맞고 초주검. 알겠어.”
“야, 초주검까지는 아니고.”
“빈사 상태.”
“아니…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죽이지만 마.”
아무렴 어떤가. 어쨌든 정사대로만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원래 미마와 휴고는 상당히 나중 에피소드에 본격적으로 엮이지만, 초기에 한 번 분량을 먹는 에피소드가 있다.
웹소설 아카데미물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노력파 주인공과 천재파 히로인의 수업 중 대련.
여기서 휴고는 [광폭화] 상태로 미마에게 불의의 일격을 날리고, 생전 패배란 걸 당해 보지 않았던 미마는 충격에 휩싸여 휴고를 신경 쓰게 되는 시발점이다.
사실 스펙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난다.
하지만 그 당시 무언가에 정신 팔려 방심했던 미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게 이 나무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미마가 방심하지 않고 제대로 대련에만 임한다면 휴고에게 당할 일도 없고 녀석을 신경 쓰게 되지도 않는다.
즉, 내 목표는 휴고가 다른 히로인들과 엮이는 사건들을 싹 다 사전에 차단하는 거다. 그래서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다시 말하지만, 나라 망하게 생겼는데 연애는 무슨 연애냐. 연애보다는 훈련이지.
솔직히 진 히로인은 로벨리아 하나면 충분하잖아?
이번에는 순애물로 가자. 휴고야.
형만 믿어라. 휴고야.
형이 너,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