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51)
7. 형만 믿어라, 휴고야
“나도 조건이 있어.”
한참을 고민하던 미마는 결심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엉. 뭔데.”
“나도 동아리 가입시켜 줘.”
“갑자기? 너 가산점 같은 거 신경 안 쓰잖아.”
“선배들이 너무 귀찮게 해.”
“아. 그러냐.”
나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학년 수석에 무소속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많이 들어온 모양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아무것도 안 하고 동아리 가입해서 가점만 받고 보금자리를 지키겠다… 오케이, 받고 나도 조건 하나 더.”
“…….”
“원래 계약은 기브 앤 테이크인 거 알지?”
“윽.”
“방학 때 농사지을 재료 하나 구하러 갈 거거든? 그때 한 번만 동행해 주라.”
“…그건 싫은데.”
“어어? 그럼 처음부터 없던 일로 하시든가요. 인간적으로 뭔 도움이 돼야 할 거 아니냐? 이 양심 털 난 날다람쥐야.”
“…….”
미마는 이 상황이 상당히 마뜩잖은 듯 코를 움찔거렸으나, 결국 별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내가 구해야 할 재료 중에는 제법 위험한 지역을 방문해야 하는 종류도 있었다.
사실상 전력이라곤 나와 루트비히뿐인 동아리의 전력이 올라가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날다람쥐 아니야.”
“누가 봐도 날다람쥔데 뭐가 아니야. 그럼 뭔데. 방울쥐냐?”
“하늘다람쥐야.”
“……? 똑같은 거 아냐?”
“같은 숲과 나무 종족이지만, 혈통이 달라. 날다람쥐는 못생겼어.”
“아아. 그러셔. 그럼 맞네. 날다람쥐.”
나는 갑자기 코를 향해 날아오는 주먹에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와 씨, PTSD 생길 뻔.
“날다람쥐는 눈도 작아. 쥐 알통만 해.”
“쥐 알통이라니 그가 네가 써도 되는 표현인 거 맞아?”
“하늘다람쥐는 털도 덜 날려.”
“그래서 뭘 어필하고 싶은 건데.”
“하늘다람쥐는 반려 수인으로 최적이야.”
“……??”
이 녀석, 지금 자기가 관상용 애완 수인으로서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나는 좀처럼 해석하기 힘든 캐릭터에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 * *
목요일.
사관학교 개강 후 첫 번째 주가 끝나간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주인공과 그 동료들의 가파른 성장과 여러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난립하는 시기다.
특별히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없다. 2막을 준비하기 위해서 주인공과 동료들의 성장세 정도만 체크하고, 더 강해질 수 있도록 사정없이 굴리는 데 충실하면 된다.
가끔 감초처럼 등장하는 로맨스 파트들은 로벨리아 쪽만 제외하곤 적당히 플래그를 뽑아 줄 작정이었고, 그 대신 모자란 친밀도 작업은 내가 좀 더 나서서 보탤 생각이었다.
휴고와 미마의 대련은 내 계획대로 진행됐다.
…사실, 계획보다는 다소 거칠게 진행됐다.
미마는 나랑 엮여서 꼬인 일상을 화풀이하듯 휴고를 두들겨 팼다.
어찌나 매섭게 박살 냈는지, 동료들이 ‘너 미마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라고 진심으로 물어볼 정도였다고.
휴고는 자존감에 내상을 좀 입은 것 같지만, 나는 네 녀석이 약해빠진 탓이라며 마음을 다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다행히 녀석은 불굴의 주인공답게 점심시간, 더 결연해진 모습으로 실내훈련장에 나와 빡세게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 날 안심시켰다.
한결 안심한 채 오늘의 오후 수업인 「무기술」 강의에 들어온 나는, 교수라기엔 좀 더 전투적이고 도발적인 복장의 동양인 창술사에게 시선을 던졌다.
“안녕하세요! 「무기술」 강의를 맡은 세연입니다! 아마도 제 강의를 선택해 주신 분들은 대부분 저처럼 주 무장을 창으로 선택한 분들이겠죠?”
대륙을 넘어온 창술사 세연(?然).
무기술 전공 교수 중 유일하게 창을 다루는 교수였기에 선택했을 뿐, 다른 정보는 없었다.
“소속은 방패기사단이에요. 여러분은 권능, 소울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무기술만으로 전투를 치르는 법을 배우게 될 거랍니다.”
무기술 강의실은 작은 규모의 체육관 형태였다. 수련동에는 공용 단련실과 강당 외에도 크고 작은 체육관들이 지어져 있는데, 그중 하나였다.
세연은 무기술 강의실 내에 권능과 소울을 사용하지 못하는 방해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고 덧붙인 후 애병인 ‘파사의 창’을 들어 보였다.
“무장은 여러분의 목숨과 다름없어요. 그러니, 제 수업에서는 절대로 주 무기를 손에서 놓지 마셔야 해요. 일단 한 분씩 무기를 확인해 볼까요? 설마 전쟁터에 나오는데 무기를 들고 오지 않은 생도는 없겠죠?”
역시나 교수는 가장 먼저 무장을 점검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내 손에 쥔 무기를 등 뒤로 감췄다.
부끄럼을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솔직히 창피하긴 했다.
왜냐면 손에 들린 무기가 다름 아닌 죽창이었으니까.
망할 아빠 친구는 결국 「무기술」 수업 전까지 창을 배달하지 못했다.
무기가 하루 이틀 만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강의 전까지는 전해 주기를 바랐다.
결과적으로 준비는 안 됐고, 나는 학사 부지를 뒤져 가장 튼튼해 보이는 대나무를 잘라 창 중의 왕, 죽창을 만들었다.
“흐음. 생도의 무기는 체격과 비교해 너무 긴 느낌이 있네요. 체급에 맞지 않는 무기는 오히려 본인의 자질을 떨어트릴 수도 있어요.”
“좀 더 짧은 무기로 준비하겠습니다.”
하지만 막상 번쩍이는 무기들을 들고 와 전문가에게 상담받는 경쟁자들을 보자, 뭔가 밥도 제때 못 먹는 결식아동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은 숨길 수가 없다.
“…….”
아니나 다를까. 어느덧 차례가 되어 내 앞에 선 교수는 들고 있는 무기를 확인하고선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죠?”
“죄송합니다. 무기 제작이 늦어져서 제때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납작 엎드렸다.
이미 「마신군 분석 총론」에서 감점을 한 번 받았다. 전공 수업만큼은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죽창 하나로도 웬만한 생도 정도는 싹 다 제압할 수 있습니다. 믿어 주십쇼.”
그래서 선택한 해결책은 바로 광역 도발이었다.
교수의 얼굴에 당황이, 생도들의 얼굴에 불쾌함이 떠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기술 수업이 실전 위주로 진행된다는 건 알고 있죠? 과한 자신감은 때론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진심입니다.”
“좋아요. 그 말을 증명한다면 준비성이 부족했던 부분은 그냥 넘어가 주도록 할게요. 제 수업의 유일한 장학생에게 첫날부터 감점을 주고 싶지는 않으니까. 혹시 이 특별반 장학생에게 무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줄 생도가 있을까요? 승리한다면 최종 점수에서 가점 1점을 주겠어요.”
그 순간 악귀들의 눈동자에 독기가 풀풀 풍겼다.
경쟁자에게 감점을 주고 자신은 승점을 얻을 절호의 기회. 한가락 한다고 보이는, 특히 A클래스와 B클래스로 보이는 생도들이 여기저기서 번쩍 손을 들었다.
“거기.”
“네. 교수님. A클래스 체이서입니다.”
세연 교수는 이 수업에서 가장 강한 기운을 풍기는 생도를 지목했다.
기운뿐만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내가 없었다면 이 수업에서 탑 자리를 지켰을 등장인물이니까.
“실전처럼 진행할게요. 두 생도 모두 아머드 메일을 착용하세요.”
체이서는 한눈에 봐도 이름난 대장장이가 준비해 주었을 것 같은 명기(名器)를 들고 있었다.
종류는 장창. 한껏 예리함을 뽐내는 게 잘못 부딪히면 내 죽창은 그대로 잘려 나갈 것 같은 느낌이다.
“시작하세요!”
시작 신호와 함께 체이서가 곧장 지면을 박차고 창끝을 찔러 왔다.
나는 녀석이 디딤발을 밟는 걸 본 순간 그에 맞춰 뒤쪽으로 몸을 날리며 거리를 유지했다.
‘권능 효과를 받지 못하니까. 시간을 끈다고 유리해질 건 없어.’
[사냥의 시간]이나 [포획의 눈] 같은 전투 보조 권능의 효과가 없다.최근 개화시킨 소울 에너지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
말 그대로 육체와 무기. 두 가지만으로 승부를 내는 전투였다.
날카롭게 찔러 들어온 창날이 곧바로 회전한다.
나는 고개를 틀어 찌르기를 피한 뒤 곧바로 몸을 숙여 휘두르기까지 피해냈다.
당장은 피하는 게 최우선이다. 그리고 정 피하기 어려울 때만 쳐낸다.
“장난하냐? 언제까지 피해 다니기만 할 거야?”
내 거리 유지하기가 한참 동안 이어지자 체이서는 도발하듯 이죽거렸지만, 나는 차분하게 창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죽창은 내구성이 약하다. 괜히 창과 챙챙 부딪히며 싸우다 잘리기라도 하면 그나마 이길 기회도 사라진다.
“이익…!”
경합이 진행될수록 체이서의 얼굴이 점점 흙빛으로 변했다.
긴 리치와 무기의 내구성으로 분명 우위를 점하고는 있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한 표정.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창을 내지르는 손길은 정교함을 잃어 간다.
분명 탄탄한 기본기다.
창을 찌르는 동작엔 군더더기가 없고, 힘을 싣기 위한 디딤발과 자세도 훌륭하다.
하지만 느리다.
내가 두 달 동안 하루에 수만 번씩 창을 휘두르며 느낀 것은, 창질에서만큼은 속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마치 에픽세븐 실레나랑 똑같다.
창은 단순하다. 길이가 긴 대신 그만큼 장비가 그리는 궤도가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속도가 중요하다.
“느린 놈은.”
제 호흡을 잃어버린 체이서가 우악스럽게 찔러 드는 창끝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내가 거리를 좁히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황급히 창을 안쪽으로 휘두르며 파고드는 날 제압하려 했지만, 두 발짝 안은 내 거리였다.
경합 내내 쥐고만 있던 죽창을 양손으로 꽉 쥔 채 전력으로 찔러 넣었다.
예기만큼은 여느 창 못지않은 내 죽창이 체이서의 턱을 찔렀다.
유효타다.
곧바로 착용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머드 메일이 빛을 발하며 부서진다.
“창술사를 때려치우는 게 낫지.”
쉽다 쉬워.
나는 끝이 무뎌진 죽창을 단검으로 다듬으며 다시 한번 광역 도발을 시전했다.
“다음이요.”
생도들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덴 단 네 글자로 충분했다.
* * *
교수 세연은 아머드 메일 세 개를 부숴 먹고 나서야 결국 내 죽창의 무서움을 인정했다.
어떻게든 감점을 안 받겠다는 발악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수업 내에서 수준을 인정받은 셈이다.
격투기 한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내가 권능과 소울의 보정 없이 무기술로만 인정받았다.
빙의 후 했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은 느낌이다.
“러셀 님. 러셀 님의 이름으로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설마….”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카터로부터 무기를 전달받았다.
하루만 더 일찍 보냈으면 저 난리를 안 쳤을 텐데!
나는 방방 뛰며 갖은 지랄을 했지만, 천에 싸인 내 신무기를 보자마자 응어리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영롱한 자태…….”
「무기의 이름은 월광쌍익(Moon Light duble wing spear)이다.
-카터」
카터가 남긴 메모를 본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야, 이 구닥다리 네이밍 센스는.
이 무기에는 오늘 나의 체면을 지켜 주고 장렬히 산화한 녀석을 기리는 이름을 붙여 줄 거다.
밤부 스피어. 줄여서 밤부스.
통칭, 죽창 mk·2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