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55)
8. 농부들이 농작물을 숨김
어째서인지 러셀이 자신들에게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둘이서만 속닥거리는 건 특별반 동기들은 몰라도, 친구들에게는 확실히 이상하게 보일지 모른다.
‘……기분 탓이겠지.’
휴고는 제 생각을 부정했다.
그에게 자신이 예지자라는 사실은 고백했지만, 로벨리아의 정체는 알 리지 않았다.
학사에서도 최고의 원로에 해당하는 인물이 몸소 비밀을 관리하는 중이고, ‘위장의 목걸이’라는 유물 효과로 외형적인 특징은 모두 가린 상태다.
휴고는 그저 기분 탓일 거라고 되뇌며 부주의했던 스스로를 자책할 뿐이었다.
“아무튼, 내 눈에 걸리기만 해 봐라. 내가 직접 제 발로 학사에서 걸어 나가게 만들어 줄 거니까.”
“퇴학 정도로 되겠어? 즉결 참수해야지.”
“나 참, 학사 측도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빨리 싹 색출해서 마족 놈을 처형했어야지.”
악의의 농도는 점점 짙어졌다.
로벨리아의 몸이 떨리고 있다.
휴고는 진정하라는 듯 가만히 그녀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여신의 축복이 가득한 이 땅에 마족이 돌아다니다니… 쯧, 재수 없게.’
‘죄송합니다.’
‘얌전해 보여도, 분명 속으로 딴생각을 품고 있을 거야. 마족이란 사악한 생명이니까.’
‘죄송, 죄송해요…….’
‘저 마족. 분명 언젠가 이제라를 배신하고 마신의 편에 설걸? 두고 봐.’
‘아니에요. 제발, 제발 나를 믿어 줘…….’
과거의 망령이 로벨리아의 머릿속을 왕왕 울려 댔다.
되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보다 못한 외침만 가득하던 그때.
사마리아인을 향한 돌멩이처럼, 개구리를 죽이는 어린아이들처럼, 악의 없이 자신을 죽이던 그 언어의 비수들.
‘부디 인간의 마음을 잃지 마라.’
누군가가 손 내밀기 전까지 그녀는 ‘나 같은 건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나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로벨리아는 정말 예쁘고 착한 사람이야.’
‘껄껄. 말년에 너희처럼 사랑스러운 손주 손녀를 얻게 된 게, 이 늙은이의 마지막 축복 아니겠니?’
‘네 잘못이 아니야.’
그렇게 손을 내밀어 주던 사람이 지금 곁에 있다.
여전히 한결같은 모습으로, 목소리로, 온기로 그녀를 지탱한다.
“괜찮… 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는데도.
티를 내는 것이 오히려 휴고 님을 곤란에 빠트리는 일일 테도.
쾅!!
그때였다.
“마족 펀치!”
제자리로 돌아가 엎드리려던 러셀이 벌떡 일어나 낄낄거리던 생도의 정강이를 걷어찬 것이었다.
“또 뭐야, 이 미친놈아!”
“러셀, 너 이 새끼 진짜 적당히 안 할래?”
그러나 러셀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이번엔 다른 생도의 이마에 머리를 부딪쳤다.
“마족 펀치!”
“으아아악!”
“펀치도 아니잖아! 개새끼야!”
“이 새끼 진짜 마족 아니야?”
그러자 러셀이 눈을 희번덕하게 빛냈다.
“내가 마족이라고? 그렇다면 증거 인멸을 위해 너희를 살인멸구 해야겠네.”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무슨 증거 인멸을……!”
“걱정하지 마, 아무도 못 보고 있으니까. 마족 펀치!”
러셀의 말대로 특별반 장학생들은 모두 그들의 행각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저 망나니의 행각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사 표명이었다.
‘아무리 싫어도 그렇지, 러셀한테 마족이라니. 진짜 맞을 짓 했지….’
그의 부모가 모두 마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러셀이 딱히 숨길 것도 없다는 듯 말하고 다녔기 때문.
그러니 의심스러운 사람이라며 러셀을 바라본 행동은, 러셀 입장에서는 눈을 뽑아도 정당방위인 셈이다.
녀석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동기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으아아악! 그만해, 그만하라고!”
“마족 펀치!”
“시발!! 진짜!!”
* * *
“정말,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갈 순 없는 거니?”
점심시간. 프리마관 학생 식당에서 주디가 진지하게 물었다.
“내가 뭘.”
“진짜. 네가 애들 두들겨 패 놓을 때마다 뒷수습은 내 몫이잖아. 상처 치료해 주고 핏자국 닦고 하는 게 얼마나 찝찝하고 번거로운 일인지 아냐구.”
“그럼 하지 말든가. 누가 뒷수습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그리고 걔들이 뭐가 이쁘다고 치료를 해 줘?”
“너 진짜! 그러다가 벌점 당하니까 그렇지!”
“안 당해. 걱정하지 마.”
“걱정은 내가 무슨 걱정을 했다고! 진짜 친구가 아니라 웬수야, 너는….”
보다 못한 파가 주디를 말렸다.
“하하. 그만해, 주디. 솔직히 걔들이 선을 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잖아. 러셀이 아무 때나 그러는 것도 아니고. 쟤도 명백히 버튼이 눌리는 지점이라는 게 있는 거고.”
파의 말에 주디가 입을 오물거리다 이내 꾹 다물었다.
확실히 그 생도들은 선을 좀 세게 넘었다.
마족이라니.
만약 자신에게 그런 거짓 선동을 했다면 분명 참기 어려웠을 거다.
“그런데… 진짜 사실일까? 그 소문 말이야.”
주디가 던진 화두에 로벨리아와 휴고가 보일 듯 말 듯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이어진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던지는 비난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다.
정확히는, 대수롭지 않은 척 굴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을 나눈 친구들이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을 수 있을까?
표정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어려울 거다.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사례로 무너져 내린 적이 있는 그들이다.
“나는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주디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아무리 같은 생도라지만… 쉽게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아.”
“주디.”
파는 나긋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떠올리지 말라는 만류다.
20년 전 전쟁에서, 주디의 고향인 던 블라이아 엘프들은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
그때 오염된 대지 때문에 아직도 동족 중 질병을 갖고 태어나는 엘프들이 많았고, 가족이 죽거나 행방불명된 이들이 즐비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좀처럼 대화에 끼지 않는 루트비히가 침묵을 깨고 그녀의 말을 거들었다.
마신군에게 일족을 잃은 건 러셀이나 주디뿐만이 아니었다.
루트비히의 일족은 지난 전쟁에서 마신을 봉인하기 위해 그를 제외한 모든 일족이 목숨을 던졌다.
주디는 다른 일족들이라도 살아남았지만, 그는 오로지 혼자뿐.
홀로 마신군에 대한 복수심, 일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20년이란 시간을 곱씹으며 버텨온 이다.
마신군에 대한 분노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러셀은 마인에게 부모를 잃었다.
파는 고향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됐다.
미마는 신체 대부분을 잃고 안드로이드 신세가 됐다.
리지를 제외한 모든 동기가 마족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씩 품고 있었다.
“그그그, 우, 우리 다른 이야기 할까?”
리지가 황급히 화제를 바꾸어 보려고 애썼으나,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저마다 속으로 이곳에 온 이유, 목적을 더 강하게 담금질할 뿐이다.
다시금 침묵.
식기 소리만 울리던 식당의 침묵을 깬 것은 러셀이었다.
“야.”
러셀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주디를 불렀다.
“……?”
“아무한테나 화풀이하지 마라.”
“뭐라구?”
“사관학교에 다닌다는 그 호문클루스. 마신군인지 아닌지도 정확히 모르잖아.”
“그게 무슨 소리니, 너? 호문클루스는 마족의 한 종류야. 강의 때 졸았니?”
“호문클루스는 마인과 달리 흑마법 실험으로 강제로 마족이 된 인간이다. 자의가 아닌 제작자의 의지로 마신을 따른다고. 너야말로 강의 제대로 안 듣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호문클루스는 대부분 가해자면서 동시에 피해자야. 그리고 사용자의 의지에서 벗어난 녀석들은 인간을 도와 마신과 싸우기도 하고.”
“역대 호문클루스 병사들이 인간을 얼마나 죽였는지는 기억하구? 착한 마족도 있다, 뭐 그런 거야?”
“그러니까!”
갑작스러운 러셀의 외침에 주디가 화들짝 놀랐다.
그녀가 떨어트린 식기가 바닥에 닿기 전, 파가 낚아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는 러셀에게 희미한 실눈으로 시선을 보낸다.
적당히 하라는 경고의 눈빛이다.
“엄한 데다 화풀이하지 말라고. 우리의 적은 마신의 의지를 따르는 존재들. 그뿐이야. 피아 구분을 명확히 해. 그래야 정확하게 칼날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그 견고한 의지에 주디는 물론 침묵하던 미마마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마족이든 마물이든 마수든 인간의 편에 서서 마신 개새끼와 싸운다면 아군이다.”
그것은 마치 결사의 선언마저 같아서 생도들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로벨리아는 어쩐지 그 결의가 자신을 위로하는 것만 같아서, 식기를 향해 고개를 떨어트렸다.
* * *
“「기갑병기의 이해」 과목을 맡은 다이크 로필런이다. 이 강의는 짧다. 그리고 시간도 불규칙하지.”
입학 3주 차 수요일.
오전 교양필수 과목이 「기갑병기의 이해」로 변경되었다.
종종 전달사항을 위해 특별반 교실에 들르던 다이크가 강단에 오른 모습은 장학생들에겐 제법 낯설었다.
“그 이유는 사실 1학년 1학기인 너희에게는 하등 불필요한 수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이크가 들고 들어온 교보재, 그러니까 아머드 파츠들을 보며 눈동자를 빛냈다.
솔직히 이 강의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제대로 된’ 아머드 파츠를 구경하고 착용해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지. 아머드 파츠는 헬멧, 아머, 건틀릿, 부츠로 나뉜다. 그리고 그 4개의 파츠를 모두 모은 뒤 여러 재료와 함께 대장장이 장인의 손을 거치면 아머드 슈트 완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다이크가 단상 위에 놓인 파츠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기본적으로 파츠는 착용한 신체 부위를 보호하는 것이 첫 번째 효과, 그리고 파츠마다 고유의 능력으로 전투를 보조하는 게 두 번째 효과다. 슈트는 당연히 그 모든 효과를 하나로 아우르지. 자, 그럼 아머드 파츠를 얻는 법은 무엇일까.”
다이크는 질문에 답변할 새도 없이 말을 이었다.
“파츠 제작에 필요한 것은 총 세 가지다. 하나는 토벌 재료. 그리고 하늘석. 마지막으로 소울 에너지를 개화한 사용자. 흔히 토벌급 마수라 불리는 와이번, 벤시, 골렘 등등을 잡아 나온 부산물에 하늘석의 에너지원, 그리고 사용자의 소울을 각인해서 제작하는 것이 아머드 파츠다. 당연히 자신이 사용할 무구에 들어갈 재료는 스스로 수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 말은 즉, 토벌급 마수 원정대에 직접 참가해서 재료를 배분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말의 진의를 깨달은 생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은 검증되지 않은 자, 자격 없는 자가 힘을 갖는 것을 염려한 원로원의 정책이다. 아머드 파츠와 슈트를 제작하는 대장장이들은 모두 왕국 소속이고, 하늘석과 기갑 부속 재료들을 개인 거래하는 것은 엄히 금하고 있으니 조심하도록.”
중요한 설명은 다 마쳤다는 듯 다이크가 좌중을 홱 둘러보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아직 소울 에너지를 감각, 유동하지 못한 생도들은 일어서서 강의실 밖으로 나가라. 너희에겐 이 강의를 들을 자격이 없다.”
청천벽력 같은 축객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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