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59)
9. 인간의 편에 선다는 것.
심각한 상처를 입은 휴고는 곧바로 시설동 의무실로 옮겨졌다.
크라우의 회복약과 주디의 권능으로 응급처치는 마쳤지만, 카텐카의 공격이 워낙 치명적이었던 터라 후유증을 염려한 탓이다.
‘강한 소울 에너지에 의한 상처는 후유증을 남긴다.’
나는 새삼 그 사실을 되새겼다.
치유 권능으로도 잘려 사라진 부위에 새 사지가 돋아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절단된 부위만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다면, 처음부터 잘리지 않았던 것처럼 회복시킬 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일반적으로 절단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소울에 의한 절단면은 회복되더라도 후유증이 남는다. 에너지의 발화로 인해 절단면이 타들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위험한 힘이란 말이지.’
그런 힘을 고작 사관생도에게 휘둘렀으니, 마신군에 대한 카텐카의 악감정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 * *
휴고가 깨어난 것은 이틀 뒤의 일이었다.
마족의 등장.
사관학교 전체가 놀라 나자빠질 대사건이었으나, 의외로 학사 측은 잠잠했다.
총장과 여왕, 현직 계승자인 크라우 사이에 모종의 거래와 합의가 오갔다는 것만 예상할 수 있었다.
“다들… 미안해.”
“죄송합니다.”
병문안 차 다시 찾아간 우리에게 휴고와 로벨리아가 고개를 숙였다.
나는 리지와 파를 힐끔 바라봤다.
리지는 별문제 없다는 듯 빙긋빙긋 웃고 있었고 파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중이었다.
“주디와 루트비히는 오지 않았구나….”
휴고는 항상 붙어 다니던 동기 중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낙담했다.
마신군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가장 큰 두 사람이다. 그들은 아직 휴고와 로벨리아를 용서하지 못했다.
“주디는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이야.”
“그렇겠지….”
파의 말에 휴고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그럴 거야. 정말 미안해.”
“물론 주디가 화난 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이긴 해. 단지 진실을 숨겼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뭐랄까. 신뢰받지 못했다는 거? 너희가 어떤 사정이 있든, 어떤 비밀을 갖고 있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설명했다면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
“비록 오래된 인연은 아니지만, 서로 등을 맡기고 사선을 넘었잖아. 그래서 그 정도뿐인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도, 주디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만한 변명이 없었다.
뭐라도 되는대로 아무 핑계나 주워섬기고 싶지만, 그도 마땅치 않다.
당장 모면하기 위한 말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길 뿐이다.
“미안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모든 걸… 털어놓을게.”
휴고의 입에서 진실이 흘러나왔다.
담담하지만, 조금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의 진실.
앞으로 다가올 대륙의 운명.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
모든 설명을 들은 동기들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복잡해졌다.
“그러니까… 그, 네 말에 따르면… 20년 전부터 여신의 힘이 끝에 다다랐고, 원래 이 세계를 지키고 있던 성약의 계승자가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다는 소리야? 그래서 여신이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너에게 성약의 일부를 넘겨주었고?”
리지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휴고의 말을 정리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
“으응? 아니, 난 괜찮아!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재밌는 일에 휘말린 기분인걸.”
휴고가 이번엔 나를 바라봤다. 한 명 한 명에게 모두 사과를 전할 마음인 듯했다.
“러셀, 미안해.”
“나도 괜찮아.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너는 그랬지. 혹시 어떻게 알았어?”
나는 내 눈동자를 가리켰다.
“내 진실의 눈동자 앞에서는 누구도 거짓을 숨길 수 없지.”
“그게 뭐야아. 진짜 오글거려.”
“조용히 해. 호기심 많은 사고뭉치.”
나와 리지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이번엔 휴고가 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정도의 무게감을 짊어지고 있었다면야, 솔직히 이해를 못 하는 게 속 좁은 일이지.”
“정말 미안해.”
“지금이라도 말해 줘서 고맙다. 그래서 말인데, 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거지?”
파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보는 이마저 기분 좋아지게 하는 시원시원한 웃음이다.
“응. 당연하지! 주디랑 루트비히에게도 미안하다고 전해 줄래?”
“일단 몸 추스르고 직접 사과해. 내가 상황은 대충 설명해 놓을 테니까.”
“고마워. 파.”
휴고는 연신 사과했고 로벨리아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 * *
다음 날, 휴고는 컨디션을 되찾고 퇴원했다.
그는 퇴원하자마자 주디와 루트비히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고 우리는 1층 카페테리아로 모이게 됐다.
주디는 여전히 마뜩잖다는 표정이었으나, 처음 충격 받았던 그 날에 비하면 그래도 제법 풀어져 있었다.
아마도 파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루트비히는?”
“안 온대. ‘애초에 저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요.’라던가.”
“화났구나….”
“삐졌지. 너무 걱정하진 마. 착한 녀석이니까.”
하지만 루트비히는 휴고가 ‘성약’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군말 없이 협조할 거다.
그게 그들, ‘마지막 밤의 일족’이 가진 숙명이니까.
원래라면 내가 설명했어야 했는데… 저주 때문에 퍼질러 자느라 루트비히에게 전해 준다는 걸 깜빡했다.
아무튼 지금 부리는 어리광은 잠깐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겨도 된다.
‘쟤도 괜찮아 보이고.’
주디는 아직도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을 삐쭉이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천성이 선한 녀석이다.
주디와 로벨리아의 사이가 다시 회복되는 덴 사건 하나면 충분했다.
‘슬슬 올 때가 됐는데.’
나는 입을 삐쭉거리는 주디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녀에게 변명하는 휴고, 로벨리아를 일별한 뒤 프리마관 입구를 계속 힐끔거렸다.
지금쯤이면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할 시점이다.
‘왔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누군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 선배인 2학년 엘에이다.
그녀가 로벨리아의 앞에 서자 휴고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선배?”
“로벨리아. 잠깐 동아리실로 가자. 다즐링이 불러.”
“회장님이요?”
휴고와 로벨리아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고 눈 맞췄다.
“어떡하죠…?”
“아마 네 처우 때문에 회장 선배님이 부른 것 같아. 가 보는 게 좋겠어. 선배님, 같이 가도 될까요?”
엘에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이미 예상했다는 듯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가지. 한 명이 변호하는 것보다는 여러 명이 변호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테니까.”
“하극상이야? 히히, 재밌겠다.”
파와 리지도 따라 일어섰다.
“주디, 같이 가자.”
“나는 됐어. 굳이 선배들한테 미움 사고 싶지 않아.”
“그러냐.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주디는 샐쭉한 표정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카페테리아에 나랑 주디만 남았다. 주디는 무언가 안절부절못하는 듯하다가,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젓고는 내게 물었다.
“러셀, 증상은 좀 어때?”
“그날 이후 특별한 건 없어.”
“이런저런 논문도 찾아보고는 있는데 딱히 도움 될 만한 건 없네.”
“그러냐. 신경 써 줘서 고맙다.”
빤한 시선을 보내는 주디.
어울리지 않게 왜 이러냐는 눈빛이다.
“그보다 따라가 봐야 하는 거 아냐?”
“돼, 됐어. 내가 왜.”
“저렇게만 보내니까 너무 대책 없는 멤버 같거든. 로벨리아를 괴롭히면 휴고는 또 앞뒤 안 보고 달려들 거고, 파는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휴고랑 같이 싸우겠지. 리지는 동아리실에 마력 폭탄이라도 한 방 날리지 않을까 모르겠다. 네가 가 주는 게 낫지 않냐?”
“그건… 그건, 안 되지. 응. 곤란한 일이 벌어지면 안 돼. 어쩔 수 없는걸…… 내가 가서 감시해야겠다.”
그리고 일어서서 헐레벌떡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갈 거였으면서 변명은.
나는 모든 게 정사대로 진행되는 걸 확인한 뒤 몸을 일으켰다.
‘슬슬 나도 사태를 지켜보러 가 볼까.’
* * *
“3학년 선배들이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 회장 다즐링은 자신을 찾아온 선배들을 의외라는 듯 바라봤다.
친하진 않지만, 안면이 있는 이들이다.
3학년 특별반 장학생들이자 동아리 ‘이교도 연구회’에 소속된 생도들.
이단 심문관을 꿈꾸는 생도들인 만큼, 학교 내 마족이라고 알려진 로벨리아를 처단하는 데 협조하라는 이유로 방문한 것이었다.
그러나 방문한 것은 ‘이교도 연구회’뿐만이 아니었다.
‘저 두 사람은 웬일이지.’
그들을 방문한 사람들 뒤에는 레몬과 기스라는 이름의 선배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다즐링은 시선이 자꾸만 레몬에게 향하는 걸 참으려 애썼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레몬은 유명인사였다.
과거 학교 축제 때 최고의 미인 생도를 뽑는 ‘미스 그림로어’에 뽑혔을 정도로 유려한 외모를 지닌 선배.
F반으로 입학하여 3학년인 지금은 특별반 장학생까지 올라온, 3학년의 사랑받는 유명인사였다.
‘진짜 무서울 정도로 예쁜 사람이네… 분위기도 묘하고.’
다즐링은 부적절한 상념을 치워 버리며 ‘이교도 연구회’ 회장에게 물었다.
“그 아이를 어쩔 셈이죠?”
“마신군은 처단한다. 그게 대원칙이 아니던가.”
“학사에서 눈감아 준 생도를 사적 제재하겠다는 말씀이세요? 논란이 생길 텐데요.”
“뒷감당은 우리가 한다. 너는 협조만 하면 돼. 너희 동아리의 부회장도 이미 협조를 약속했다.”
에뜨랑제를 언급하자 다즐링은 고민했다.
확실히 회장으로서, 마족이라 밝혀진 생도를 품고 가는 건 너무 불안했다. 게다가 사적 제제라는 그녀답지 않은 선택까지 할 정도로 마신군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찬 에뜨랑제다.
그녀를 생각하면 더더욱 마족과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원한다면.
어떠한 매정한 선택도 감수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제가 뭘 도우면 되죠?”
“그 마족을 이곳으로 불러줘라. 그리고 혹시나 마족에게 홀린 1학년들이 있다면 적당히 제압해서 붙잡아두도록. 의식을 치를 때 목격자가 있어선 안 돼.”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학사의 판단은 잘못됐다. 그건 이제라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 일이 더 큰 비극으로 번지기 전에 반드시 여기서 막아야 해.”
다즐링에게 던져진 임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학년 몇 명쯤 사고 치지 못하게 붙잡아두는 것쯤이야,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건 동정심이다.
‘마족에게 동정심이라니. 가당치도 않네.’
제 주저함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고민은 강제적으로 멈추었다.
“알겠습니다. 엘에이.”
다즐링은 엘에이를 프리마관으로 보냈다.
하지만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걸까.
불현듯 떠오른 로벨리아의 미소 가득한 얼굴에 그가 휙휙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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