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6)
3. 비루한 필력 속 고고한 꽃송이
‘대장군께서 약속하신 추천장과 훈련소 관리부에 보내는 친필이다. 훈련소로 안내할 생도 한 명이 도착할 예정이니 잠시 대기하도록.’
빌트레드가 휙휙 갈겨 쓴 추천장이 손에 들렸다.
‘그나마 다행이네.’
어쩌면 내년이 되어야 사관학교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했는데.
나는 들뜬 마음으로 스킬 창을 열었다.
이 세계에서는 스킬을 여신이 권속에게 남긴 조각이라고 여겨 ‘권능’이라고 부른다.
워낙 입에 스킬이라는 단어가 붙어 훨씬 익숙하긴 하지만.
‘괜한 오해를 안 사려면 적응하긴 해야겠네.’
지금부터라도 권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붙여 놔야겠다.
[권능]애시그린 일족 비기(S)(전용) : ★☆☆☆☆☆
사냥의 시간(A) : ★☆☆☆☆
먹잇감 등록(B) : ★☆☆☆
개발자 노트(F)(전용)
아무리 읽어 봐도 사기다, 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스킬을 황홀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봐 준 뒤 천천히 마음을 되새김질했다.
목표는 간단하다.
스스로 망친 세계의 멸망을 막는 것.
나는 설정집의 마지막 장을 떠올렸다.
1. 신수 병기를 운용할 수 있는 인재 8명을 섭외해 엔드 스펙까지 끌어올릴 것.
2. 마신을 상대해야 하는 주인공에게 S급 권능인 [정화의 불길]을 익히게 하고 권능 레벨을 최고치까지 성장시킬 것.
3.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부닥쳐 오는 하드코어 고구마 에피소드들에서 살아남을 것.
4.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오더로 대마신 전투를 풀어나갈 것.
‘제기랄.’
복기하고 나니 어째 더 암담하게 느껴지는 기분이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깨라고 만들어 놓은 설정이 아니다. 그저 나름대로는 끝맺음을 제대로 해 놓고 싶었기에 달아 둔 몇 줄짜리 주석.
이것 또한 설정집에서만 존재하는 세계의 공략법.
그뿐이다.
‘8명이라….’
일단 공략 오더를 짜야 하는 내가 빠질 수 없으니, 섭외해야 하는 영웅 수는 주인공을 포함하여 7명.
마침 주인공 세대 재능충들의 머릿수와 같다.
머릿속에 팬픽 속 등장인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인물의 잠재력, 고유 스킬, 그리고 성향과 세부적인 성격까지.
그냥 잠재력 순으로 줄 세우기 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행으로 막을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다.
최종전을 위한 파츠를 완벽하게 육성한 뒤, 한 치의 의심도 오차도 없이 딱딱 손발을 맞춰 놔야 했다.
그러려면 영웅들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기본.
이미 기반이 닦여 접근하기 어려운 외부 영웅들을 포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대로 사관학교 내에서는 주인공 딱 한 명만 감아도 다른 굴비들이 줄줄이 엮여 올 것이다.
그때였다.
문밖에서 간결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나무 문이 옛 소리를 내며 열리고 한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
러셀, 그러니까 지금 내가 들어온 몸의 원주인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였다.
문이 열리고 약 3초의 시간 후.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문지방을 넘은 소녀는 몇 발자국 걸어 들어온 뒤 오른손을 명치께에 얹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군인의 인사법.
편한 듯하지만, 어딘가 절제된 예의가 흐르는 몸동작이었다.
나이대에 어울리지 않는 기품, 고고함을 뽐내는 화려한 의복과 무장을 걸친 소녀의 외관이 창문을 타고 넘어온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눈앞의 소녀는 마치 계곡의 호숫물 같다.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이 그저 반짝거리며 흐르기만 하는 물방울들.
“에뜨랑제 델 위오입니다. 반가워요.”
《여왕 디에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