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70)
10. 왜들 이러세요?
“머릿결이 많이 상하셨습니다.”
프리마관의 메이드장 앤 메이는 에뜨랑제의 푸른빛 단발머리를 매만지며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메이드장이라는 직책이 어디 가서 궁해질 자리는 아니었으나, 생도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듯한 말은 늘 조심스러웠다.
“상념을 털어내고 싶은 생도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뭐든지 너무 과하면 몸을 축내기 마련입니다.”
메이드장이 직접 생도 한 명의 머리 손질까지 보아주는 것은, 사실 유난스럽다 평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도 에뜨랑제가 부친상을 당한 후 매일같이 방문해 머리 손질을 핑곗거리 삼아 그녀를 챙겼다.
평판이야 어찌 됐든, 프리마관의 생도를 보살피는 것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기에.
부친을 상실한 뒤 한동안 위태로운 행보를 보인 에뜨랑제였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다.
“저기, 메이드장님. 미인대회라는 거 말인데요. 일반적으로는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이들이 나오는 거겠지요?”
그러니 모처럼 나온 그 나이대다운 질문에 앤 메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 것은 당연했다.
“곧 축제 기간이군요. 생도님께서도 축제 행사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몰랐습니다.”
“그… 어쩌다 보니 제가 나가게 되어서요. 아, 본의는 아닙니다. 절대!”
원인 모를 강렬한 부정에 앤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희미하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소녀는 소녀다워야 보기에 마뜩했다.
앤은 어려운 상황 속 용기 있는 결심을 한 그녀를 응원하기로 했다.
역시 기분 전환이 필요한 모양이려니, 생각하며.
“생도님께서는 충분히 자격이 있으십니다.”
“으으….”
하지만 에뜨랑제의 속내는 복잡했다.
오늘 저녁, 농사 동아리에서 들었던 러셀의 말 때문이다.
‘에뜨랑제 선배가 좋겠어. 아무래도 2학년 인맥을 같이 동원하기 좋으니까. 1학년들은 최대한 우리가 동원하고, 선배는 선배 인맥을 중심으로 2학년들을 동원하면 좀 더 확률이 높겠지.’
그렇게 에뜨랑제가 미스 그림로어 출전자로 낙점된 것이었다.
1, 2학년을 모두 동원하기에 좋은 위치라는 부연 설명이 덧붙여졌지만, 그녀로서는 이름이 불리울 때 심장이 땅에 덜컥 달라붙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경한 감정이었다.
“혹시 술을 한잔하셨나요? 얼굴이 발갛습니다.”
“……네?”
“축제 기간 외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속상하시다고 한들 너무 과음하지는 마십시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에뜨랑제는 서둘러 손부채질을 하며 올라간 얼굴 피부를 내리려 애썼다.
아무튼 후배님도 후배님이다.
왜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해서…….
‘에뜨랑제 선배가 좋겠어.’
‘에뜨랑제 선배가 좋겠어.’
‘에뜨랑제 선배가 좋겠어.’
“악!”
“……?”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그 대사에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른 에뜨랑제와 그런 그녀를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앤 메이.
둘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에뜨랑제는 너무 창피해서.
앤 메이는 수상쩍기 그지없는 그녀가 걱정되어서.
“미안해요. 호들갑 떨어서….”
“아닙니다. 요 며칠 많이 밝아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불효녀 같죠?”
“무슨 그런 말씀을.”
이렇게 들떠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패륜아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부친이 종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아무렇지 않게 생활하냐고.
하지만 그녀도 나름대로 힘든 시기를 보내 온 것은 맞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다. 그러다 결국 이성을 잃고 학사가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을 일으켰다.
끝내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겨내는 데 다시 꼬박 사흘이 걸렸다.
아직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기억이 때때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기분을 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다.
뼈가 깎이는 듯한 고통을 주었던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흐려지고 아문다.
쓰러졌던 이도 다시금 일어서 삶을 향해 걸어나기 마련이다.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채 쓰러지기도 전에 바라봐야 할 곳을 명확히 가리킨 이에 대한 감정이 더 깊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특히나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좋은 사춘기 소녀, 사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성이라곤 부친과 스승 외에 접해 본 역사가 없는 에뜨랑제에게 러셀이 저지른 강렬한 스킨십은 너무나도 치명적인 것이었다.
“마치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오락가락하네요.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안 될 리가요. 검성께서도 생도님이 반듯하게 일어서 살아가시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실 겁니다. 이왕이면 연애도 좀 하시고.”
“무, 무슨 소리를…!”
“왜 그렇게 격한 반응을…? 설마 벌써 마음에 품고 계신 분이 있는 겁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데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난스러운 앤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같은 곳에서 함께 지낸 지 일 년쯤 지나면 안드로이드 로봇 같은 메이드장도 친근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에뜨랑제처럼 3학기 내내 프리마관을 쓰고 있는 만년 장학생이라면.
앤은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랐다.
잘 이겨내기를.
잘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마침내 한 사람의 영웅으로서 빛나는 재능을 꽃피우기를.
“혹 후보가 있다면 꼭 제게 데려와서 검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에뜨랑제 생도님은 완전히 숙맥 아닙니까.”
“앤!!”
* * *
프리마관 지하의 실내 단련실.
휴고와 파는 매일같이 이곳을 방문하는 대표적인 단골손님이었다.
대략 두 시간 정도 각자의 체력 훈련과 근력 훈련을 마치고 나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실전 대련이 루틴처럼 이어졌다.
휴고의 권능에 지면이 부서지며 검격이 날아가고, 파가 발검하는 순간 그의 장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검풍이 인다.
두 권능이 일으킨 파장은 허공에서 맞부딪혀 힘 싸움하는 거대 동물처럼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그러다 결국 허공에서 파스스 사라진다.
뒤이어 소울을 개화한 공격과 방어가 맞닥친다.
패기와 투지의 격돌.
교수들 평가하길, 패기와 투지 각 영역에서 가장 뛰어난 생도라는 평가를 받은 두 사람이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고함이 양쪽에서 터져 나오고 베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힘 싸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구구구구―!
여기저기서 돌 파편이 튕겨 나갔다.
두 사람이 실전 대련을 할 때면 여지없이 단련실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덕분에 프리마관 실내 단련실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자동으로 복구되는 고위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다면 아마 실내 단련실은 금세 유명무실해졌을 거였다.
파는 결국 휴고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들의 승부는 그런 식이었다.
막느냐, 뚫리느냐.
상대 전적은 거의 엇비슷했으나, 최근 들어서 휴고의 승리 횟수가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중이었다.
“졌다, 졌어. 갈수록 단단해지는구나. 자괴감이 좀 드네.”
파는 전신에서 땀을 뚝뚝 흘리며 한탄했다.
“내가 널 제압한 것도 아닌데, 뭘. 이기고 지고가 어딨어.”
“굳이 애써 위로해 줄 필요는 없다. 약한 것은 단련해서 이겨내면 되니까.”
“약하다니! 절대 아니야. 난 제대로 싸워서 널 이길 자신이 없는걸.”
휴고가 손사래를 치며 완강하게 부인했지만, 파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마음 약한 녀석.
어차피 이 녀석과는 엎치락뒤치락하며 성장해 왔다.
이번에는 휴고가 앞질러 갔지만, 다시 따라잡으면 그만이었다.
“그 무지막지한 대련은 이제 끝난 건가요?”
“어? 루트비히?”
두 사람이 너저분해진 단련실에 드러누워 체력을 회복하고 있을 때, 귀에 익은 미성이 들려왔다.
“훈련장에선 처음 보네. 무슨 일이야?”
“러셀 님의 이야기를 전하러 왔어요.”
“러셀이? 걘 어디 가고?”
“…동아리실에서 복귀하다가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개인실에 던져 버렸습니다.”
“…하하. 걔도 진짜 큰일이네.”
“파 님께서는 미인대회 남성부에 나갈 준비를 하라네요.”
루트비히는 전령 역할을 하게 된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구시렁거렸으나, 어쨌든 부탁받은 내용은 충실하게 전달했다.
그 말을 들은 파가 얼굴을 갸웃댔다.
모두 힘을 합쳐 축제 행사 상품을 얻어내야 한다는 사실을 듣기는 했으나, 미인대회라니?
“내가 나가면 가능성이 있나?”
“전 모르죠. 그럼 전달했으니 가 보겠습니다.”
루트비히는 할 말만 전하고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둘만 남은 단련실.
파는 진지하게 질문했다.
“이거 괜찮은 건가? 꽤 중요한 권능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응. 넌 할 수 있을 거야.”
휴고는 버릇처럼 긍정적으로 반응한 뒤 친구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미인대회라….
엘프들의 모습을 워낙 많이 본지라 크게 감흥이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러셀이 추진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나가는 거야 상관없다만, 주디한테 한소리 듣겠는데.”
“주디가 왜?”
“그런 데 나가서 웃음거리 될 생각 하지 말라고 했거든.”
“아하하. 걔답네.”
“그나저나 뭘 준비해야 하는 거지. 근육 벌크업이라도 해야 할까?”
파가 휴고에게 물었지만, 그도 딱히 도움 되는 답변을 하진 못했다.
* * *
러셀은 환하게 켜진 개인실의 조명을 느끼며 눈을 떴다.
분명 농장에서 출발해 몸뚱이로 졸음운전을 한 것까진 기억나는데, 어느 순간 눈 떠 보니 침대였다.
아마도 길거리에서 잠들어 루트비히에게 옮겨진 모양이다.
‘진짜 갈수록 개 같아지네.’
러셀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 순간,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시선이었다.
러셀이 홱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맡을 돌아보았다.
“……?”
“……?”
러셀의 눈앞, 그러니까 러셀이 방금 일어난 그 자리 바로 옆에 리지가 앉아 있었다.
가운데에 곰돌이 모양이 그려진 얇은 수면 가운만 입은 채로.
핑킹가위로 자른 듯 삐쭉삐쭉해진 입 모양과 커다래진 눈동자가 그녀의 당황을 방증했다.
“너, 왜 남의 침실에 있냐?”
황당해하는 러셀의 물음에 도리어 당황한 리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해 어버버하다 경악하는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온 거거든! 여긴 내 침실이야!”
그러고는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생각했는지 손을 입 근처로 가져다 대며 목소리를 낮췄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잠들기 전, 마지막 일과로서 마력 순환 훈련을 하던 리지의 감각에 문 앞에 서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몇십 분이 지나도 그대로 서 있는 인기척에 혹시 암살자인가 싶어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문을 벌컥 열고 마력 폭탄을 터트리려 했으나.
눈앞에 서 있는 건 러셀이었다.
그것도 눈을 감고 잠든 채인 러셀.
그 후 그는 리지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들어와 그녀의 침대 위에 드러누운 것이었다.
리지의 설명을 모두 들은 러셀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냐…. 면목 없다….”
이건 변명의 여지 없는 대죄였다.
리지가 자신을 성추행범, 가택 침입범으로 신고해도 도저히 변명이 떠오르지 않는.
“…아니야. 상황을 모르는 것두 아니구. 그런데 그 저주라는 거… 많이 심해졌어?”
러셀은 태평양처럼 넓은 그녀의 마음씨를 속으로만 찬양하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귀족 영애님의 아량은 하해와 같다…!
“아냐. 그냥 잠이 많아진 것뿐인데. 가끔 이렇게 돌아다니기도 하네. 그래도 조심해. 함부로 문 열어 주지 말고. 내가 잠결에 뭔가 해코지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밖에서 대충 누워 자게 놔둬도 돼.”
“……으응.”
내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록도록 눈동자를 굴리는 리지를 향해 되물었다.
“왜? 뭔 일 있었어? 혹시 나 뭐 실수했냐?”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의식을 빼앗겼다는 건 레몬이 다시 날 움직여 뭔가 작당을 꾸미고 있다는 건데, 혹시라도 리지가 말려들면 큰일이었다.
“아니!”
그러나 리지는 단호하게 소리치고는.
“…그래?”
“응! 절대! 아무 일도 없었다…!”
흡사 유명 만화 원피스 속 캐릭터 조로에 빙의라도 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