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71)
11. 지하 미궁, 기묘한 모험
“진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맞지?”
걱정스러운 듯 재차 묻는 러셀의 질문에도 리지는 그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곤히 잠든 러셀의 모습이 좀 신기하긴 했다. 어쩌면 몽유병이라는 걸 처음 봐서 그랬는지도.
그래서… 그냥 한번, 이마도 찔러 보고, 볼살도 이렇게 저렇게 만져 본 게 다였다.
분명 멋대로 침입한 러셀에게 100%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차마 솔직하게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응. 멋대로 들어온 러셀 잘못이야.’
하고 스스로 되뇔 뿐이다.
러셀은 안도와 의구심을 동시에 품은 표정으로 옅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듯 리지를 향해 물었다.
“참, 너희 동아리 행사 준비는 주로 2학년들이 하지?”
“응응. 우리는 아마 끝나고 청소? 같은 걸 하면 된대.”
“그럼 나랑 잠깐 일탈 좀 안 할래?”
러셀은 리지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꺼내 떡밥으로 던졌다.
“일탈?! 무슨 일탈?”
“축제 시작하면, 나랑 사관학교 밖에 어디 좀 다녀오자.”
“어디? 잠깐만, 둘이?”
“응. 둘이.”
“단둘이?”
“어, 그렇지?”
“데이트 신청?”
“이겠냐? 사고 치러 가자는 거야.”
리지는 부러 실망한 듯 과장되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척하다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를? 무슨 사고 치러 갈 건데?”
“티렐 왕성에 숨겨진 비밀장소를 털러 갈 거야.”
문장 그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리지는 잠시 고개를 모로 기울이더니 홱 반대쪽으로 갸웃했다.
“전혀 이해가 안 되는걸…?”
“티렐 왕성 지하 깊숙한 곳에 머라고라가 숨겨져 있다는 정보를 샀어. 그래서 기숙사 인원 점검이 느슨해지는 축제 기간을 틈타 다녀오자는 거야.”
“잠깐만. 그럼 네 말은… 나랑 티렐 왕성에 갖다 오자는 거야?”
“그렇지.”
“단둘이?”
“그렇다니까.”
그제야 ‘사고’의 전말을 정확하게 파악한 리지는 어쩐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티렐 왕성까지는 쉴 틈 없이 움직여도 왕복 사흘은 걸린다.
밖으로 나가자길래 그저 그림로어 안에 있는 어딘가를 다녀오자는 시시콜콜한 일정일 줄 알았다.
아무리 막무가내에 뒤가 없는 무대포 성격의 러셀이라고는 해도, 설마 설마 사관학교를 며칠씩 비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러셀과, 단둘이, 며칠에 걸쳐 외박을 떠난다.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깔끔하게 정리된 문장을 되새기니, 그제야 그와 단둘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긴장감이 바짝 올라오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겠네……. 근데 그건 좀 위험하지 않나….”
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다 큰 남녀가 며칠 밤을 단둘이 보낸다는 게.
그래도 되는 걸까?
막상 저지르자니 조금 큰 사고 같은데….
아빠가 알면 러셀은 효수되겠는걸….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러셀의 설명이 덧붙었다.
“그렇긴 하지. 아무래도 왕성 근처다 보니 아예 위험하지 않다고 보긴 힘들어. 누군가 널 알아볼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뭐, 네 [인비져블] 마법이 있으니 그리 위험하지는 않을 거야.”
“……?”
러셀의 부연 설명에 리지는 볼을 긁적였다. 그러자 눈치 빠른 러셀이 되묻는다.
“위험하다는 게 그거 아니야? 다른 위험성이 있나?”
“아니! 그거 맞아!”
리지는 황급히 그의 말에 동의하고는 뒤늦게 밀려들어 온 수치심에 고개를 푹 수그렸다.
‘뭔가 잘못됐어….’
분명 자신은 고고한 백작 영애인데, 어째서 이 소년 앞에만 서면 어리바리한 천치가 되는지 모를 일이다.
인정할 건 인정한다.
러셀은 흥미로운 동기다.
특유의 넘치는 자신감이나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에너지도 그렇고, 동기들 사이에서 보여 주는 알 듯 말 듯 한 지배력도 분명 흥미 요소다.
쉽게 관심이 생기고 금방 흥미가 식는 성격상 질릴 법도 한데, 끊임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신기했다.
유난히 스스럼없는 태도 때문일까.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가 제안하는 ‘일탈’이라는 것이 확실히 그녀의 정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재미있는 행위일 것이라는 사실.
“그래도 갈게. 재밌을 것 같아.”
“정말? 고맙다. 확실히 재밌을 거라고 약속할게.”
“약속 꼭 지켜야 해!”
“여부가 있겠습니까.”
“준비할 게 많겠다…!”
“아냐. 너는 그냥 몸만 오면 돼.”
“……?”
불온 도서 속 귀족 영식이 재력으로 레이디를 꾈 때나 쓸 법한 문장에, 리지는 다시 한번 호흡이 곤란해지는 걸 느꼈다.
뭔가 묘한 어감을 주는 대사에 명치 부근이 간지러운 게, 아무래도 그의 말대로 심부전 증상이 조금 있는 모양이다.
“러셀은 말을 좀 오해하게 하는 버릇이 있구나?”
“내가?”
“응. 유죄 인간 같으니!”
“며칠 전부터 정말 억울한 일 천지네. 변호사 선임해 줘라, 진짜.”
억울하다는 듯 인상을 팍팍 쓰는 러셀을 보며 리지는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라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그보다 러셀. 무도회 파트너는 나랑 해 줄 거지?”
“또 그 얘기냐…. 다들 왜 이런 애들 장난 같은 거에 집착하는 거야? 그냥 아무나 붙잡고 하면 되잖아.”
무신경한 러셀의 말에 리지는 그의 입술을 꼬집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진짜 웃겨, 정말. 우리라고 너한테 막 빠져서, 허우적거리느라 그러는 줄 알아?”
“당연히 아니겠지. 징그러운 소리 하면 꿀밤이다?”
“파는 주디랑 할 거야. 휴고는 로벨리아랑 할 거구. 루트비히는… 나랑 서면 키 차이가 이만큼 나. 엄마랑 아이 같을걸? 다른 선택지가 없다, 이 말씀이야.”
리지가 그녀의 가슴께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거 루트비히한테 너무 실례인 말 아니냐…….”
“앗 그런가? 미안 루트비히……. 아무튼, 적어도 낯설거나 불편한 사람은 싫다구. 내 손을 잡고 춤을 추면서 어떤 음흉한 생각을 할지 모르는 아무개와 파트너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해 줬으면 해!”
“…그렇기도 하네. 이해했다.”
“그럼 약속하는 거다?”
“으으음….”
러셀은 곤란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사실 누구와 하든 큰 상관은 없다만… 어쨌든 누군가 마음 상할 일,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상황은 피하고 싶긴 했다.
“약속하지 않으면, 나랑 같이 안 갈 거냐?”
“아니? 당연히 가야지. 그렇게 재밌는 이벤트를 놓칠쏘냐!”
“그래? 그럼 약속은 안 해야지.”
“뭐어? 너무해!”
남아일언 중천금.
옛말에,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랬다.
이어진 러셀의 말에 리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콱 꼬집었다.
* * *
축제 전날.
우리는 행사의 막이 오르기 하루 전날 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축제 시작 이틀 전부터 학사 전체가 어수선해졌고, 기숙사 인원 점검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나는 동료들에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 리지와 함께 학사 부지 뒷산을 넘었다.
“대충 3m 정도 경계 마법이 걸려 있어. 나는 날 수 있지만, 어떡하게?”
“이 정도는 쉽지. 내가 점프할 테니 투사체 날리는 마법 써 줘.”
“엄청 세게 날려도 돼?”
“미안하지만 고작 1학년 마법부 차석의 공격으론 내게 기스도 낼 수 없을걸.”
“와, 진짜 얄미워.”
리지는 입을 삐쭉이며 캐스팅을 시작했고 나는 타이밍을 맞춰 허공으로 도약했다.
뒤이어 그녀가 날린 마력 투사체가 대기를 가르며 날아온다.
타이밍에 맞춰 투지를 전개해 투사체를 막아내자, 그 반탄력으로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나는 여봐란듯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경계선 밖에 착지했다.
“더 정진하도록. 리지 생도.”
“…….”
[부유] 마법으로 리지까지 안전하게 탈출에 성공하고, 우리는 곧바로 왕성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내달렸다.나는 리지가 뒤처지지 않도록 적당히 속도를 조절했다.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빨라지는 [그림자 걷기] 덕분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사실 혼자 이동하는 게 시간 절약하기에는 더 좋았지만, 리지를 콕 집어 데려가는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왕성 지하 깊숙한 곳에 펼쳐진 미궁.
내가 설정한 머라고라 획득처는 대륙 곳곳에 많았지만, ‘꽃이 핀’ 머라고라는 오로지 미궁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대륙의 미궁은 총 다섯 군데.
티렐 왕성 지하.
파르스 대미궁.
닉시드의 성소.
말리쿠스의 의식.
왕도 아즈마칼리스.
그중에서 주인공 일행이 들어가게 될 곳은, ‘파르스 대미궁’과 ‘닉시드의 성소’ 두 군데다.
즉, 왕성 지하는 내가 날름 집어 먹어도 주인공 일행의 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하필 위치가 왕성 지하라는 것.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견적을 내 봤지만, 파수병에게 들키지 않고 지하 미궁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리지의 [인비져블] 마법을 좀 이용하려고 그녀를 합류시킨 것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긴 했다.
저주의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칫 전투 중에 의식을 잃었을 때 아무래도 혼자서는 위험하다고 판단, 일신의 안위를 보장하기에 여러모로 적합한 리지가 낙점된 것이다.
“너무 힘들면 얘기해.”
“괜찮아! 마력 떨어지면 쉬면 되니까.”
리지는 요령껏 [부유] 마법을 쓴 채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아니, 잠깐만.
“[부유]가 아니네?”
“응. [비행]인데?”
“진짜 재능충 같으니….”
[부유]는 [비행]과 달라서 이동속도가 이렇게 빠르지 않다.나는 혀를 내둘렀다. 마법부는 전투부와는 달라서 술식을 얻고, 그 술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권능 없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권능 없이 생 술식으로만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정말이지 천재의 영역이라, 웬만해서는 평생 두세 종의 마법을 익히는 데 그치는 게 일반적이다.
근데 이 재능충 마법사는, [비행]이라는 고등급의 마법을 입학 두 달 반 만에 해치워 버린 것이었다.
“혹시 또 새로 익힌 마법이 있어?”
“[마력 화살]이랑 [무력화], [실드]랑… 그리고 [클린]도.”
“미쳐 버렸네… 이러다가 졸업 전에 현존하는 모든 마법 다 배우는 거 아니냐….”
“헤헤.”
“근데 [클린]은 뭐야? 비전투계열 마법이네?”
“귀족 레이디는 언제 어디서든 청결함을 유지해야 하는 법이거든!”
“그러냐…….”
그렇게 얘기하며 잔뜩 콧대를 세운 리지를 보니, 차마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두 시간쯤 전진하자 리지가 마력 탈진을 호소했다.
마수의 숲 초입.
딱 적당한 지점에서 멈춘 나는 야영을 준비했다. 깊은 동굴은 아니었지만, 용 머리처럼 경사진 구릉이 있어 적당히 눈을 붙이기에 좋았다.
반대쪽에서 올 때 했던 것처럼 능숙하게 불을 피우고 준비한 음식을 데운다.
건초를 쌓고 그 위에 모포를 덮어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었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마신군 침입 경보기 설치도 잊지 않았다.
능숙하게 동시다발적으로 야영 준비를 끝낸 나를 바라보며 리지가 입을 헤 벌렸다.
“이게 진짜 쓸 데가 있었구나….”
“훈련소에서 배우기 전부터 익히 쓰고 다녔던 기술들이지. 먼저 눈 좀 붙일게. 2시간 뒤에 깨워 줘.”
“보통 여자애에게 먼저 자라고 양보하지 않아?”
“나도 그러고 싶다. 망할 저주…….”
나는 애써 참고 있던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