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73)
11. 지하 미궁, 기묘한 모험
금시초문인 정보였다.
나는 황급히 [간파의 눈]을 켜 아이테르의 상태를 파악했다.
[아이테르 탈리]전투 능력치 : 189
[칭호]① 이제라의 왕자
② 왕궁의 사고뭉치
[권능]정령의 부름(A)(전용):★★☆☆☆
정령의 속삭임(B)(전용):★★☆☆
수호(C):★☆☆
‘사관생도 1학년 평균에 근접한 능력치네.’
[정령의 속삭임(B):★★☆☆]계약한 정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정령의 힘을 일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계약한 정령:①하급 물의 정령 ②하급 바람의 정령
스킬들을 하나하나 훑어본 뒤에야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깨달았다.
그는 정령의 힘으로 리지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었다.
“아하하…. 러셀. 걸려 버린 것 같은데? 왕자님을 뵙습니다. 로즈 뎁 백작가의 장녀, 리지 로즈 뎁 인사드립니다.”
“왕자님을 뵙습니다. 러셀 애시그린입니다.”
나는 리지를 따라 허리를 숙이고 왕자에게 예를 올렸다.
머릿속으로는 상황 해결을 위한 대안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앗! 그렇게 예의를 차리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지금 왕자가 아니거든요!”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왕자님…?”
“가출했답니다!! 지금은 청소나 물건 배달 같은 소소한 의뢰를 받으며 어찌어찌 얼렁뚱땅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헤헷.”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리지도 나와 마찬가지로 당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쩔쩔매는 중이었다.
나는 어쩌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아이테르에게 슬쩍 미끼를 던져 보았다.
“그럼 왕자님. 그 가출했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셔야겠군요. 왕자님께서 어찌 그런 일을 하고 계셨는지, 저희에게 어떠한 용무로 찾아오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왕자님의 커다란 뜻을 저희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저 모른 척 지나갈 테니 안심하세요.”
돌려 돌려 말하긴 했지만, ‘너 우리가 왕실에 보고라도 하면 큰일 나는 거 알지? 조용히 서로 갈 길 가자.’라는 뜻이다.
이 정도 완곡하게 협박 아닌 협박을 했으니, 유약한 성정의 아이테르라면 금방 꼬리를 말 게 분명―
“리지 님? 리지 님은 지금 사관생도 아니에요? 그것도 1학년.”
한데…….
“마마마맞죠…?”
“1, 2학년 사관생도는 방학 때만 나올 수 있다고 아는데… 흐으으음.”
“아… 아하하하…?”
“가출한 사람. 탈출한 사람.”
아이테르는 자신과 리지를 한 번씩 가리킨 다음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가리켰다.
“러셀 님은 이번에 빌트레드 님의 후견을 받았다는 그분이군요! 그럼 이쪽도 1학년!”
나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진하고 무구하게 빌드업된 캐릭터라 생각해 조금 얕보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는 이 왕국의 정당하고도 유일한 왕위 계승자.
상황의 본질을 파악해 내는 한 방이 있는, 영민한 군주의 씨앗이라는 걸 간과했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제가 건방졌습니다. 왕자님.”
“헤헤. 지금은 왕자가 아니라니까요!”
“송구스럽지만, 외진 곳이라곤 하나 왕도입니다. 누군가 목격할 수도 있으니 용건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미궁에 들어갈 거죠?”
“안 됩니다. 왕자님.”
“……네?!”
내 칼 같은 거절에 아이테르가 화들짝 놀랐다.
사실 녀석의 의도쯤은 내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미궁에 같이 가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위험합니다.”
“그, 그치만….”
“왕자님을 그런 위험한 곳에 끌고 갔다는 사실이 발각되기라도 하면, 저희는 교수형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극형에 처하진 않을 거다.
이 착한 녀석은 누군가가 그런 상황이 되는 걸 두고 볼 만큼 매정하지 못하다.
우리가 부탁을 무시한 채 떠나더라도 원망하거나 해를 끼칠 만큼 영악하지도 않다.
아이테르는 모친인 여왕을 뛰어넘을 정도로 선하디선한, 성군의 씨앗 그 자체였으니까.
그렇다고 진짜 쌩하니 안면 몰수해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일국의 왕자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
친분을 만들지는 못할망정 미운털이 박힐 순 없었다.
그런 만큼 왕자와의 친분을 쌓을 좋은 이벤트이긴 했으나, 미궁에 함께 가는 건 너무 위험부담이 컸다.
거물도 정도껏이여야지.
내 고민이 깊어질 즈음, 아이테르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고 역설했다.
“하지만 저도 깊이 고민하고 선택한 거라구요! 꼭 미궁 탐사에 성공해서 저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줄 거예요.”
“그래도 안 됩니다. 왕자님.”
“자꾸 이러면… 이러면… 저도 특단의 조치를 하는 수밖에!”
“……?”
“미행할 거예요! 몰래 따라갈 거랍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왜?
나는 버럭 외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내리눌러야 했다.
왕자를 모시고 왕실 지하 미궁에 들어가는 기묘하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무작정 따라오겠다 하면 현재로서는 정말이지 방법이 없다. 특히 아이테르가 [정령의 속삭임]을 익혔다면 말이다.
꼬리를 달고 다니다 더 큰 위험에 직면할 뿐일 거다.
나는 상황을 똑바로 바라보고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게 정말로 리스크만 큰 일일까?
왕성 지하 미궁은 정말 그 정도로 위험한가?
머리가 아파져 올 정도로 고민하던 나는 결국 생각을 고쳐먹었다.
벗어날 수 없는 위기라면, 차라리 기회로 만드는 편이 났다.
내린 답은 ‘위험하지 않다.’였다.
“좋습니다. 왕자님.”
내 깔끔한 허락에 리지의 눈동자가 터질 듯이 커졌다.
개구리 마물 같네.
난 리지의 눈동자를 닮은 마물을 떠올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승인할게요!”
“들어보시지도 않았잖습니까. 그렇게 얼렁뚱땅 구시지 말고요.”
“아아앗…!”
“제 조건은 총 셋입니다. 첫째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왕자님이 져 주셔야 합니다. 설령 저희가 발각되었을 때, 아카데미에서 무단이탈한 것도 모두 왕자님의 명을 받들고 나온 거로 변호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으음….”
“두 번째로. 미궁에서 획득한 물건에 대한 소유권은 저희에게 있습니다. 당연히 미궁에서 얻은 모든 것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 주셔야 합니다.”
“좋아요!”
“마지막으로 소원 하나씩만 들어 주십쇼. 나중에 필요할 때 쓰겠습니다.”
“으으. 러셀 님은 너무 까다로워요.”
“그만큼 리스크를 지는 거니까요.”
“알겠어요!!”
“약속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이제라 왕자의 자리를 걸고 약속할게요!”
“애초에 그 자리 별로 욕심내지도 않으시잖아요….”
“어떻게 알았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 나라의 명운이 진심으로 걱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럼 함께 갑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왕자님.”
“우와아아! 열심히 할게요!!”
그렇게 거래는 타결되었다.
신나서 방방 뛰는 아이테르와 그런 녀석을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리지.
‘어쩌려고 그래?!’
나는 경악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리지를 안심시키는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린 뒤, 눈을 반짝이는 아이테르에게 당부했다.
“왕자님께서도 아시겠지만, 미궁 탐사는 꽤 위험합니다. 왕자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는 꼭 제 지휘에 따라 주셔야 합니다.”
“명심할게요!”
아이테르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심히 믿음직스럽지 못했지만, 어쨌든 엎질러진 물이자 벌어진 사건이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안전하게 왕자를 보필한 뒤, 권력자에게 튼튼한 줄을 대 놓으리라.
“저희가 갈 미궁은 왕궁 지하에 숨겨진 비밀 통로입니다.”
“네?! 왕궁 지하에 미궁이 있다구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몰래 왕궁 내성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티렐은 크게 세 개의 구역으로 나뉘었다.
여왕과 왕족, 왕국 대신들이 기거하는 왕궁.
기사단 시설이나 수감 시설 등 각종 왕국 통치 시설들이 위치한 내성.
그리고 수도의 왕국민들이 살아가는 외성, 즉 왕도라 불리는 도시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중 내성이라 불리는 시설 지역이다.
왕성만큼 경비가 삼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치안이 촘촘해 자칫하면 무단 침입으로 잡혀가기에 십상인 지역이다.
부설하자면, 내성 무단 침입은 최소 지하 감옥 수감 1년 행이다.
물론 그 리스크는 아이테르 왕자가 감당해 줄 것이다.
“이제라 왕국의 왕자로서 왕성 지하에 그런 흉악한 장소가 있는 걸 좌시할 순 없어요! 저도 그럭저럭 최선을 다해서 미궁 청소에 힘을 보태겠어요! 역시 두 분을 만난 건 운명이라니까요!”
자신을 왕성에 넘길 작정이냐고 의심할 법도 한데, 우리의 순진하고 선량한 왕자님은 그저 주먹만 불끈 쥐어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게임 캐릭터를 뽑아다가 그대로 꺼내놓은 듯한 모습에는 적응이 좀 필요할 듯했다.
* * *
[인비져블]리지의 범위 투명화 마법이 발동됐다. 마법의 대상인 우리는 느낄 수 없었지만, 지금 리지의 주변은 마치 다른 차원처럼 격리된 상태였다.
일반 투명화 마법도 상당히 고난도의 마법에 속하는데, 범위 투명화 마법은 그야말로 천재의 영역이었다.
저렇게 권능 발동시키듯 뚝딱 해낼 수 없는 마법이란 건 확실했다.
“좀 더 가까이 붙어야 해.”
물론 시전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아, 세 사람이 딱 달라붙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나는 아이테르를 들어 어깨에 올려놓고 리지와 팔짱을 꼈다.
리지는 어딘가 불편한 듯 계속해서 팔을 꼼지락거렸다.
‘계획에 없던 스킨십인데….’
‘불만이면 범위를 좀 넓혀 봐. 나도 불편하니까.’
‘내가 언제 불만이랬어?!’
‘아무튼 너무 붙지 마라, 닿잖아.’
‘뭐가?’
‘아니, 암튼 좀 떨어져 봐.’
‘말 시키지 마! 집중력 흐트러지면 마법 풀린단 말야…….’
‘…미안하다.’
작은 목소리로 나와 리지가 투닥거리는 사이, 우리는 내성 관문에 도착했다.
관문 입구에는 네 명의 경비병이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다행히 몰래 지나갈 틈은 충분해 보였다.
관문 근처에서 마력을 읽어 보던 리지가 내게 속삭였다.
‘마법적인 장치는 없어.’
‘여긴 내성이니까. 왕성 입구만큼 경계가 삼엄하진 않을 거야.’
애초에 내가 빙의되기 전의 러셀도 뚫었던 정도의 경계다.
리지의 [인비저블] 마법이면 충분하다고 판단했고, 생각은 들어맞았다.
검문소를 통과한 우리는 곧바로 왕성의 상하수도와 연결된 지하 수로 입구를 찾았다.
아래쪽에서는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좁고 작고 어두운 수로의 입구.
수로 청소부들을 제외하면 드나들 일 없는 음습한 곳이었다.
이곳은 정확히 말하자면, 미궁의 출구였다.
‘옷이 더럽혀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속삭임에 아이테르는 일순 움찔하였으나,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하는 데 망가지는 건 감수해야죠! 이래 봬도 꽤 씩씩하답니다?’
과연 지독한 사고뭉치의 자질이다.
‘둘 다 입 좀 막아 보시겠습니까.’
‘……?’
‘실례합니다.’
나는 짤막하게 지시한 뒤, 곧바로 아이테르를 꽉 붙잡고 리지의 허리에 손을 두른 채 지하 수로로 폴짝 뛰어들었다.
걱정했던 단말마의 비명은 틀어막은 두 쌍의 손바닥이 해결해 주었다.
오물이 튈 각오까지 했는데, 다행히 착지한 곳은 바닥이었다.
“투명화 풀어도 돼.”
“다음부터는 그냥 내 발로 뛰어내릴래….”
“그러냐. 미안하다. 무시한 건 아니야.”
“유죄 인간…….”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