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75)
11. 지하 미궁, 기묘한 모험
“15m 앞에 마물이야. 3마리쯤?”
리지의 설명에 나는 들고 있던 랜턴을 아이테르에게 넘겨주었다.
전진 속도를 늦추고 언제든지 내지를 수 있게 창대를 단단히 고정한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해골 병사들의 형상이 드러나자마자 곧바로 창을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굳은 몸을 풀듯 가볍고 산뜻한 창격이었다. [그림자 걷기] 효과까지 더해져 언뜻 보면 놓칠 수도 있는 부지불식간의 움직임.
마물들은 철갑을 입는 등 무장 구색을 갖추었으나, 녹슨 무구는 패기가 실린 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쌍익의 날에 닿는 순간 마물들이 파스스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뒤이어 [먹잇감 등록] 스택이 오르며 이제는 익숙해진 단내가 코를 찌르고 들어왔다.
“우와아, 정말 놀라운 움직임이에요!”
한 번의 움직임에 마물을 모두 쓸어 넘기는 모습을 본 아이테르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분명 제 수준이면 사관생도 1학년들과 견줄 수 있다고 그랬는데… 역시 찰스 경은 저를 너무 과보호한다니까요….”
“1학년 생도 사이에서도 편차는 크게 납니다. 저희는 어쨌든 저희는 장학생 신분이고요.”
“우와. 학칙 어기는 걸 서슴지 않는 장학생! 멋있어요!”
해맑게 뼈를 때리는 팩트에 나는 실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 전투를 기점으로 해골 병사들이 심심찮게 출몰하기 시작했고 좁은 통로였던 미궁은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넓은 홀처럼 변했다.
생각보다 길긴 했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갈림길이 나오진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 두 번에서 세 번 정도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될 거다.
나는 벽과 천장, 바닥을 꼼꼼하게 확인하며 이동했다.
이왕이면 슬슬 머라고라가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다소 지루해진 미궁 탐사에 리지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물었다.
“해골들밖에 없는데… 정말 이곳에 영물이 있는 게 맞을까?”
본격적으로 미궁을 탐색한 지 3시간 정도 흘렀으나, 마주친 것은 몇 마리의 해골 병사들뿐.
의문이 생길 법도 했다.
나는 [개발자 노트]를 켜 보고, 변경된 설정값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대답했다.
“있어. 반드시. 의심하지 말지어다.”
“너무 확신하는 것 같아서 걱정되려고 해. 아무래도 러셀, 사기당한 것 같은데….”
“…야야 말조심해. 말이 씨가 되니까.”
내 경고에 리지가 양손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저는 너무 재밌고 흥미진진해요! 제 인생에서 이렇게 현실감 넘치는 모험은 없었거든요!”
“죄송합니다만, 왕자님. 현실감 넘치는 게 아니라 현실이 맞습니다. 실제로도 위험할 수 있으니 긴장을 풀지는 말아 주세요.”
“절대로 긴장하고 있답니다!”
해맑은 표정으로 장난을 주거니받거니 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긴장감 없는 녀석들 같으니….
아무래도 나라도 긴장을 바짝 하고 있어야겠다.
그렇게 어느덧 미궁 진입 5시간째.
두 번의 갈림길을 지나 반 정도 왔다고 생각되는 지점.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돌 장식 위에 랜턴을 올려 둔 채 돌아섰다.
“잠시 쉬었다가 가겠습니다. 혹시 시장하십니까?”
“네? 네. 조금요….”
“그럼 배를 채우고 움직이죠. 다리는 아프지 않으십니까?”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저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말고, 모험의 동료로서 생각해 주세요!”
아이테르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고는 갑자기 권능을 발동시켰다.
[정령의 부름]인근에서 소울의 움직임이 감지되며, 반짝거리는 푸른 불꽃이 등장하더니 나와 리지의 몸을 휘감고서 사라졌다.
긴장한 통에 쌓였던 피로가 확 사라지는 감각이 들었다.
“정령사셨군요.”
이미 [간파의 눈]으로 알고는 있었으나, 나는 모른 척 놀란 표정을 지어 주었다.
리지도 과장되게 놀라는 척하며 아이테르를 칭찬했다.
“와아, 대단해요! 왕자님이 힘을 숨김!”
“헤헤. 저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다구요!”
“멋져요, 왕자님!!”
“정말요?!”
“정말로요!!”
저거도 완전 정치인이 다 되어 버렸네. 줄 대는 솜씨가 코리 못지않다.
나는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은 두 사람의 높은 텐션을 따라가지 못해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눌렀다.
어쨌든 권능 숙련도가 생각보다 좋은 건 희소식이다.
어려운 난이도의 미궁은 아니었지만, 제 몫을 하는 정령사가 있다면 더욱 든든한 것도 사실.
3성 구울과 마주하더라도 큰 문제 없이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절반 정도는 온 것 같은데, 머라고라는커녕 잡초 뿌리도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보스 룸까지는 가야 원하는 걸 얻을 모양이다.
‘웬만하면 구울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보스라고 해 봐야 고작 3성급.
하피 메이지나 드라고나 워커 수준의 마물이다.
훈련병 수준으로도 감당했던 마물이니 그때보다 월등히 성장한 지금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하지만… 문제는 구울의 공격 종류가 ‘정신계’라는 것.
정신계 마물은 가급적 정령사를 대동하고 싸우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아이테르를 결국 이 파티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한 데도 그 이유가 한몫했다. 혹시 모를 정신계 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
“식사들 하시고, 잠깐 휴식 취하고 다시 움직입시다.”
나는 준비해 온 간편식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아이테르는 초코바 모양의 간식을 입에 넣고는 황홀하다는 듯 우물거렸다.
“꼭꼭 씹어 드세요, 왕자님.”
“저는 어린애가 아니래도요!”
누나와 막냇동생 케미를 여실히 보여주던 리지는 초코바를 삭제하듯 먹어 치우고는 더 달라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옜다.”
“헤, 감사합니다.”
리지가 왕, 하고 크게 한입 베어 물고는 눈웃음을 사르르 흘렸다.
저게 저렇게 맛있나.
내 표정을 읽을 리지가 입을 오물거리며 물어왔다.
“러셀은 단 거 안 좋아하지?”
“썩 즐기진 않지.”
정확히는 단 걸 안 먹는다기보다는 단내를 싫어한다.
시도 때도 없이 풍겨 대는 단내의 향연 속에서 살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된다.
“하나 더 줘.”
“단 거 많이 먹으면 살찐다.”
“…….”
내 말에 리지가 내밀고 있던 양손을 슬그머니 내리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 * *
미궁 진입 6시간째.
“러셀, 이 앞에…. 마력이 엄청 많이 느껴지네.”
우리는 드디어 첫 번째 난코스에 봉착했다.
“응. 나한테도 느껴지네.”
감지 마법을 쓸 수 없는 내게도 느껴질 정도로 강한 귀기가 앞쪽의 공동에서 풍겨 나오는 중이었다.
“최소 50마리는 넘겠는걸?”
“해골 병사만 그 정도고, 아마 유령 파수꾼도 잔뜩 있을 거야.”
“으… 유령…….”
“전투 준비하자. 퇴령의 부적에서 멀어지면 곧바로 유령의 표적이 되니 포지션 절대로 지켜. 왕자님께서도 가위눌리긴 싫으시죠?”
“다, 당연하죠…! 딱 달라붙어 있을게요!”
“혹시라도 검이나 손톱 등에 긁히면 바로 치유 권능 써 주세요.”
“알겠습니다!”
수는 제법 많아도 위협적인 전력은 아니다.
녹슨 검에 스치기라도 해서 감염에 노출되는 상황 정도만 조심하면 되는데, 아이테르 덕분에 그런 작은 위험마저 소거한 상태.
“온다.”
공동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수많은 해골이 일제히 삐거덕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한다.
백색 가득한 해골들의 돌격은 두렵다기보다는 괴이쩍은 광경이었다.
쐐액―!
나는 가볍고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수가 많으니 무엇보다 속전속결이 중요했다.
빠각! 창격이 휘둘러지자 패기에 닿은 뼛조각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사이 리지가 멀찌감치 몰려 있는 해골 병사들 사이사이로 마력 폭탄을 떨어트렸다.
리듬감 있게 폭탄이 펑펑 터질 때마다 해골 파편들이 폭죽처럼 허공에서 흩날렸다.
흡사 영화 킹스맨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흥 넘치는 광경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리지는 모든 마법을 권능 형태가 아닌 수동 수식 캐스팅으로 사용한다.
그런데도 마력 폭탄을 사용하는 데 사이사이 전후 딜레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마도사들은 권능을 발동시킬 때도 등록된 수식을 캐스팅해야 하는데, 권능 발동보다 빠른 마법 시동이라는 게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러셀 님! 유령들이 다가와요…!”
순식간에 해골 병사들을 정리한 우리의 주변에 유령 파수꾼들이 몰려들었다.
미리 준비한 퇴령의 부적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하지만, 아쉽다는 듯 주변을 빙글빙글 배회하며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눈동자만 보이는 흐릿한 형상체 수십 개가 주변을 돌면서 군침을 삼키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으스스하네요……”
“마법으로 쫓아내 볼까?”
“놔둬. 마력만 낭비하니까.”
유령체 마물은 신성 마법으로 상대해야 한다.
물리력은 아예 먹히질 않고, 마법으로 공격하더라도 금세 회복해 버리고 만다.
“신경 쓰지 말고 지나간다. 쳐다보지 마. 계속 스트레스받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으응.”
나는 앞장서서 걸었고, 리지와 아이테르는 후다닥 내 뒤를 쫓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자꾸만 뒤쪽을 향했다.
* * *
미궁 진입 8시간째.
세 사람은 미궁 탐사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특히나 유령 파수꾼이 달라붙기 시작한 후부터 2시간 동안은 지난 6시간보다 훨씬 더 괴롭고 지난한 시간이었다.
무섭고 공포스러워서가 아니라, 기가 빨리고 진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유령들이 끊임없이 끽끽거리며 내는 으스스한 소리. 오싹하리만큼 스산한 눈빛들. 그리고 점점 차가워지는 공기. 계속 소름이 돋아 있는 닭 피부 같은 팔다리.
만약 꿈이었다면 악몽이라고 생각될 만큼 심력을 갉아먹는 환경이었다.
‘생각을 잘못했어.’
러셀은 뒤늦은 후회를 삼켰다.
유령 파수꾼의 공격으로부터 안전만 확보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놈들이 퇴령의 부적을 가진 일행을 끝까지 추격할 거라는 사실, 그게 차질을 줄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가져오리라는 사실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저놈들은 우리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못해. 그저 멀리서 꽥꽥댈 수밖에 없는 미물들이지. 그러니까, 앞만 보고 걸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러셀은 두 사람을 격려하듯 부드럽게 또박또박 읊조렸다.
그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니 어딘지 마음의 안심이 되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음습한 분위기 자체는 어쩔 수 없었는지, 리지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더 러셀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차라리 마수가 낫지… 유령은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가…?’
리지가 러셀을 힐끔 바라봤다.
그는 이 상황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묵묵히 앞만 보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비록 장시간의 탐사로 다소 피로해 보이긴 했어도 그뿐. 그 굳센 정신력과 기개만큼은 남자답다… 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에 과장스럽지만 씩씩하게 걸었다.
“찾았다.”
그때 러셀이 장난감을 발견한 소년 같은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가 랜턴 빛으로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꽃을 피운, 미궁 벽 사이에 발육한 머라고라 하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건… 머라고라?”
“맞습니다. 이게 이번 미궁 탐사의 주된 목적, 머라고라입니다.”
머라고라.
사람의 모양을 한 뿌리식물로, 흔히 달여 먹으면 권능의 성급을 올려 주는 효능을 가진 대표적인 영물이다.
“이걸 귀에 꽂아 주세요.”
러셀은 리지와 아이테르에게 삽입형 귀마개를 건넸다. 그러고는 등짐에서 머리통만 한 직육면체의 유리관을 꺼내 들었다.
“머라고라는 위협을 느끼면 괴성을 내지릅니다. 자칫하면 고막이 파열되거나 심하면 충격으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귀 잘 막고 계셔야 합니다.”
두 사람에게 주의사항을 알린 러셀이 귀를 단단히 봉합하고는 유리관의 입구를 열었다.
‘빠르고 정확하게.’
머라고라 채집 때 가장 위험한 건 다름 아닌 뽑는 사람이다.
객체에 따라 뽑을 때 반응은 천차만별.
공격해 오기도, 도망가기도, 울음을 터트리며 사람을 미혹하기도 하니까.
효능만 아니었으면 영물이 아니라 흉물이라고 불렸을 거다.
러셀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머라고라의 외피에 닿기도 전, 뿌리식물의 눈이 번쩍 뜨이고 입이 쩍 벌어지더니 괴성이 터져 나왔다.
끼에에에에엑―――!!
몸이 휘청일 정도로 강렬한 음파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