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81)
12. 별빛의 보금자리
“너희들이 영웅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카오스 게이트다. 카오스 게이트는 시공의 틈새라고도 불리며, 공간의 균열에 생기는 문이다. 내부에서는 대량의 소울이 방출되며, 대륙의 어느 한 지점과 다른 한 지점을 연결하는 차원 간 통로지.”
「마신군 분석 총론」 교수는 특무대 팬텀에서 발간한 ‘카오스 게이트 분석 리포트’를 쭉 읽어갔다.
「마신군 분석 총론」 강의에서 카오스 게이트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건, 이제 메인스트림 2막의 시작이 머지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마신의 힘이 대양에 미지의 재해를 일으키고 있는 이상, 대륙과 대륙을 오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카오스 게이트뿐이다. 카오스 게이트는 양방향이라 실제로 도착 지점이 확인된 게이트는 이동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하지.”
교수는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카오스 게이트에서 생겨나는 원인불명의 마물을 우리는 언노운(Unknown)이라 명명했다. 언노운들은 아직 생태, 약점, 행동 양식 등이 5%도 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소울’을 활용한 공격 외에는 그 어떤 타격도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는 흑판 위에 몇몇 언노운들의 초상들을 붙였다.
“게이트 안의 언노운들을 모두 처리하면 게이트는 평균적으로 3일에서 5일 사이에 자연 소멸한다. 반대로 게이트를 오래 방치하게 되면 내부의 언노운들이 통로 바깥으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는데, 이를 게이트 브레이킹이라고 부른다. 현역 영웅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의뢰 중 하나가 이때 풀린 마물들을 제거하는 일이다.”
교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설명을 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힘을 갖추기 전에 게이트를 마주했다면, 곧바로 경비대에 신고한 후 최대한 발생 지점에서 멀어져라. 인근에 있다가 휘말리면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그리고 조언하건대, 절대로 함부로 그 안으로 발을 디디지 마라. 0.02%의 확률이긴 하지만, 게이트가 붕괴하여 수많은 출구가 생기게 된다면… 아예 다른 행성으로 날아가거나, 시간선을 이탈하여 과거나 미래에 떨어질 수도 있다.”
‘일행 중 시공의 힘을 다루는 자가 없다면 너희는 그곳에서 영영 갇혀서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이어진 말에, 학생들의 얼굴에 미미한 공포심이 깃들었다.
* * *
6월이 시작되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때때로 호우가 쏟아지는 기후는 식물이 자라기에 최적화된 날씨였다.
농사 동아리의 경작 결과도 풍년이었다.
크게 울타리를 두른 농장 안쪽으로는 동아리 부원들이 1년은 족히 먹고도 남을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 치솟은 채였다.
서정적인 풍경이다.
코리와 어셔스는 귀족의 정원을 다듬는 정원사처럼 작업 복장을 차려입고 동아리실 주변의 작물들을 돌보고 있다.
그들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2중으로 결계가 처진 높게 솟은 구획 안에 세 그루의 스티그마 나무가 자라는 중이었다.
처음 묘목을 구해 왔을 땐 무릎 높이였던 나무들이 어느덧 사람 키만 한 높이로 자라났다.
1학년이 지나기 전에 어쩌면 완숙한 스티그마 잎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얼핏 보면 농장은 비밀스레 스티그마를 재배하기 위한 공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눈속임이다.
농장에 처진 결계가 스티그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게끔 유도하는 가짜 비밀.
농장의 진짜 비밀은 동아리실 안쪽에 있었다.
동아리실 안쪽 지하실로 향하는 통로를 쭉 따라가다 보면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지하 배양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는, 완전히 밀폐된 머라고라 배양실이 자리했다.
“사, 살려 줘요…….”
아카샤가 초주검에 가까운 몰골로 러셀을 향해 호소했다.
러셀의 표정은 굳건했다.
냉정함을 넘어 광기가 흐르는 듯한 눈빛이다.
“마치 내가 너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로 들리네?”
눈동자가 희번덕거린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아마 아카샤는 네 번쯤 죽었다가 환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으아아아… 자고 싶어… 쉬고 싶어….”
“루트비히. 각성제.”
“…….”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트비히는 진저리를 치며 들고 있던 하급 스티그마 추출물을 건넸다.
각성제를 건네받은 러셀은 친히 아카샤의 입에 그걸 털어 넣었다.
아카샤의 눈빛이 절망으로 물든다.
루트비히를 향해 도움의 눈빛을 보내 보지만, 소년은 애써 외면했다.
소년이 보기엔 이건 일종의 복수였다.
광인을 함정에 빠트려 축제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에 대한 통렬한 복수.
러셀은 주모자인 아카샤를 징치하기로 마음먹은 듯 보였다.
복수의 화살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은 건 천만다행인 일이었으니, 그로서도 딱히 도울 방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저 러셀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이다. 비록 아카샤의 계획에 신나서 동참하긴 했어도, 주도한 사람이 모든 책임을 지는 건 합리적이었다.
“손 느려진다. 더 빨리하지 못할까.”
“제발!! 벌써 39시간 47분째라고요! 귀한 주말을 날리는 건 둘째치고 사람이 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쉬기도 하고 해야 할 것 아니에요!”
루트비히가 옆에서 ‘정확히 말하면 38시간이에요.’라고 덧붙이자, 아카샤가 그를 힐난하듯 노려봤다.
원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랬다.
“밥은 주잖아. 쉬는 건 3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 보내 주고. 잠은 뒤지면 평생 자. 지금부터 자고 싶어?”
“으아아아… 제가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다는 거야? 이건 우리의 약속일 뿐인데.”
“…….”
약속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그건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축제 때의 일은 미안하다고? 미안할 것 없어. 정당한 값을 치르면 되니까.’
‘저, 정당한 값이요?’
‘첫째. 나와 백 번 대련한다. 둘째. 좀 무리해서라도 머라고라 배양 작업을 진행한다. 양자택일이야.’
‘무리라면 얼마나….’
‘난이도로 따지면 둘 다 비슷할걸?’
러셀의 등 뒤에서 반짝이는 창날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서늘해진 아카샤는 2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이다.
아카샤는 금요일 오후 수업이 끝난 직후부터 일요일이 다 된 지금까지 한숨도 못 자고 [고속 생장] 권능을 꽃 핀 머라고라에게 뿌리는 중이었다.
마력이 떨어지면 스티그마 추출물까지 입에 털어 넣어 가면서 말이다.
참고로 축제가 끝난 날부터 지금까지 매주 주말마다 이 짓은 계속되는 중이었다.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대련 첫판 시작하든가.”
“졸렬해…….”
러셀이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새하얀 사백안을 드러낸다.
다시금 등장한 맑은 눈의 광인에 아카샤는 눈물을 머금고 권능을 발현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어둡고 밀폐된 공간 가운데 머라고라를 심어 넣고, 충분히 수분을 공급한 뒤 그 주변에 정령초들을 둘러 심었다.
그런 다음 [고속 생장] 권능을 공간 전체에 뿌려 대라니.
이런 식으로 머라고라를 배양할 수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애초에 식물이란 모름지기, 태양빛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거다.
적어도 아카샤의 상식으로는 그러했다.
“졸지 마.”
다시는 이 미친 자를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여신이시여, 존재하신다면 제발 이 악마 좀 데려가 주세요…….
“구석구석 잘 뿌려라.”
현실은 냉엄했다.
* * *
아카샤는 40시간을 채 채우지 못하고 쓰러졌다.
나약한 녀석 같으니.
나는 ‘이대로면 오히려 효율이 떨어지겠는데요.’라는 루트비히의 의견을 수용해 그녀에게 3시간이라는 단잠을 선물하기로 했다.
1분의 오차도 없이 깨우러 갈 거다.
그사이 잠깐 농장 밖으로 나오자 6월인데도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 동네는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석 연료를 쓰는 것도 아닌데 웬 때아닌 폭염인지 모르겠다.
지구온난화가 이렇게 위험하다.
내가 밖으로 나오는 걸 본 미마가 곧바로 꼬리를 휙휙 흔들며 말했다.
“저기, 대련할래?”
“다음에. 아직 일 덜 끝났어.”
그녀의 발밑에는 에뜨랑제 선배가 탈진한 채 쓰러져 있다.
“선배, 들어가서 자. 입 돌아가.”
휴고가 철인 3종 경기 우승 상품으로 얻어 온 [클로킹 슈팅]을 얻은 미마는 새로 얻은 권능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 나머지 자제하지 못하고 폭주해 버렸다.
덕분에 한동안 나와 에뜨랑제는 그녀의 대련 상대로 고생고생해야 했다.
통탄스럽게도, [클로킹 슈팅]을 얻은 이후 미마와의 상대 전적은 26전 전패였다.
도저히 보이지 않는 데서 날아오는 강력한 집중을 막아낼 도리가 없었으니까.
축제의 전리품들은 내 주도하에 딱 맞는 사용자에게 나누어졌다.
[칼날 폭풍]은 쾌검을 사용하는 파에게. [헥스]는 한 방기 외에 보조 기술이 부족한 로벨리아에게. [바람의 축복] 뛰어난 정령사인 주디에게. [클로킹 슈팅]은 뛰어난 사수인 미마에게 각각 배부됐다.모두가 인정할 만한 분배였기에 별다른 반발은 없었다.
애초에 남이 잘되는 걸 배 아파하거나 탐낼 만큼 못되지도 않았고.
땅! 땅!
농장 한쪽에 마련된 창고에서 어셔스의 망치질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열심이네.”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전신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무구 제작 실습 중인 어셔스를 격려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셔스는 무구 제작에 재능을 보였다.
강의에서 톱을 달릴 만큼 뛰어난 모습을 보였다고 하니, 어쩌면 대장장이로서 사관학교를 무사히 졸업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소식을 들은 코리는 혼자 뒤떨어졌다며 한참이나 시무룩해 했지만.
지금도 어셔스의 옆에서 무구 제작 실습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녀석은 선천적으로 힘이 부족해 대장장이는 무리였다.
나는 내 손에 들린 권능석 하나를 만지작거렸다.
미마에게 받은 [소울 연공법]이다. 그녀가 훈련소 우수 생도로 선정되며 받았던 것.
‘받기만 할 순 없어. 어차피 이건 나한테 필요 없으니까. 줄게.’
[클로킹 슈팅]을 받은 미마가 그 보답이라며 내게 건넨주었지만, 사실 내게도 필요 없기는 매한가지였다.미마의 의도는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줘라’겠지.
내 친구들 중 소울을 개화하지 못한 건 어셔스와 코리가 유일하다.
어셔스가 다른 재능을 발견한 이상, 코리에게 이걸 준다면 그들도 무사히 퇴학 걱정 없이 사관학교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이걸 코리에게 주는 게 맞는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전투 요원으로서 코리의 재능은 절망적이었다.
친밀도 작업을 하지 않은 생도 중에 재능은 뛰어나나 소울 개화가 늦은 이들도 존재한다.
그들 중 하나에게 이걸 건네며 동료로 영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매사에 성실하고 내게 늘 우호적이었던 훈련소 생활관 동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지고야 마는 것이었다.
“코리.”
“응? 아, 러셀.”
“이거. 미마한테 받은 건데, 네가 써라.”
나는 결국 코리에게 [소울 연공법]을 건넸다.
이걸로 녀석은 막힌 벽을 한 단계나마 뛰어넘게 될 것이다.
이건 투자이자, 동시에 ‘내 사람’을 챙기는 일이었다.
비록 매사 틱틱거리고 험하게 굴기는 해도.
휴고 일행보다도 더 진득한 신뢰 관계로 맺어진 이들만큼은 챙기고 싶은, 그런 사적인 마음.
코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울지는 마라, 진짜 징그러우니까.”
“나, 열심히 할게. 러셀.”
“낙제나 당하지 마.”
“응…!”
이 유약해 빠진 상인 녀석 같으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