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85)
12. 별빛의 보금자리
미마는 기계장치 어딘가 단단히 고장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분명 신체 기능엔 이상이 없음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몸의 절반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뒤 가장 불편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기억을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화라는 이름의 기능은 때때로 잊고 싶은 기억을 모두 끄집어내 기분을 지하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어차피 과거를 모두 지워야 했다면,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삶을 잊은 생을 강요받을 거라면.
차라리 추억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텐데.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종종 별빛이 지평선을 향해 낙하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혹 뭐가 그리 그리운지.
그 모습이 서둘러 둥지를 향하는 새들 같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면…
제겐 더 이상 보금자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다시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핏물 품은 고단한 언덕 위, 눈물 삼키는 소리가 끊임없던.
그러니까 발단은 한 초대받지 않은 여행객이 마을에 발을 디딘 일이었다.
***
에우레카 대륙.
대륙 서남부에는 흔치 않게 인적이 드문, 바움이라는 이름의 숲지가 있었다.
대륙에선 세 개의 강국이 패권을 다투고 있다.
북부에는 용과 설원의 도시가.
서부에는 기계와 과학의 도시가.
동부에는 마법과 기사의 도시가 발달한 대륙.
그사이에 낀 조그마한 수인족 부락 따위는 아마 대륙을 호령하던 강자들에겐 가십거리조차 되지 못했을 거였다.
분명 그랬다.
한 천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 이름은 미마.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수인화 능력을 갖추고, 돌이 갓 지났을 때 소울을 감각했으며, 눈 감고도 나는 새를 떨어트린 어린 신궁.
재야에 숨어 있던 원석을 처음 발견한 것은 바람결에 흘러들어온 한 여행자였다.
나가 부족에게 둘러싸여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여행자를 단신으로 구해낸 일을 계기로 미마의 존재는 대륙에 드러났다.
그녀의 소문은 대륙 전역에 퍼져 나갔으며,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 대륙의 권력자들에겐 참으로 탐이 나는 인재였다.
이 조막만 한 부족에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섭외 사절을 보내 올 만큼.
정말이지 온 대륙이 인재를 갈망하는 시대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얼굴에 금칠해도 나는 바움을 떠날 생각이 없다니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나, 미마 양. 물론 숲과 나무 일족이 얼마나 고향을 사랑하는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네만, 그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오죽하면 이 늙은이가 강 건너, 산 넘어 이런 외진 숲지까지 찾아왔을까.”
“누가 찾아오라고 칼 들고 협박했어? 아무튼, 나는 레펀도스고 폴리티아고 윈텐베르크고 나발이고 인간들 사이에 끼고 싶은 생각도 없고. 지난번에 말했던 보석이나 금 같은 것도 관심 없어.”
“분명 만족할 만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거라네. 겪어 보지 않으면 좋을지 아닐지 어찌 확신하겠는가.”
“흥, 몇 번을 찾아오든 따라갈 생각 없으니까 다신 찾아오지 마셔. 조심히 돌아가고 가는 길에 이빨 달린 도마뱀들 조심해. 여기서 죽으면 장례 치러 줄 사람도 없잖아? 그럼 안녕~”
미마는 꼬리와 귀를 팔랑팔랑 흔들며 히죽 웃었다.
비록 귀찮기는 했으나, 사절단 아저씨들이 선물이랍시고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문명의 이기들은 가끔 새로운 흥미거리를 가져다주었다.
딱 그뿐이긴 했지만.
수풀 우거진 청림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넘나든다.
젖을 뗀 직후부터 가족의 품을 떠나는 하늘다람쥐 일족은 고독을 미덕으로 삼는 수인들이었다.
영역이 겹치지 않게 각자의 취향에 맞는 나무를 골라 보금자리를 만들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서로에게 관여하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그들이 한데 모이는 일은 탄생, 결혼, 장례 그리고 전쟁 때뿐이었다.
외로움은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다.
방해받지 않고 자연 속에 스며들어 하릴없이 지낼 수 있다는 건 그들에겐 축복이었으니까.
마을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부족들의 보금자리를 사랑했다.
별빛 쏟아지는 언덕도,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산새들의 지저귐도, 고즈넉한 풍경 속 풀벌레들의 울음도.
어느덧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세 나라는 여전히 사절을 한 번씩 보내 미마의 성장세를 확인하고 섭외를 시도했으며, 가끔 영역을 넘어오는 도마뱀들을 혼쭐내기도 하고, 간간이 흘러들어오는 방문자들에게 세상 소식을 듣기도 하는 그런 유유한 일상.
미마의 궁술 솜씨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이었고 이제 바움 인근에서 숲과 나무 일족을 건드리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마에 대한 소문을 퍼트렸던, 미마에겐 처음 맞았던 방문객인 여행자가 바움 숲지로 들어섰다.
꽤나 오랜만의 재회였다.
여행자는 처음 기억하던 것과 달리 온몸엔 상처가 가득했고 눈 밑이 퀭하니 죽어 있었으며, 전신에서는 기기묘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붉은 돌이 박힌 검을 들고 있었는데, 미마는 그 돌과 마주한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한다.
“미마!!”
남자는 마치 정신이 파괴된 사람처럼 보였다.
이지를 잃고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오로지 파괴만을 반복하는 괴물.
검격 한 번에 숲이 갈라졌다.
날짐승들이 파드득 날아가고 들짐승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숲의 수호자를 자청하던 일족의 전사들이 파괴자를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
“나도 싸울 거라고!”
미마는 일족 노인들에게 붙들려 의해 질질 끌려갔다.
부족 전사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무재였으나, 정식 전사로 인정받는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대부분의 인족들이 으레 그렇듯.
위기 속에서 일족은 노인, 임산부, 그리고 아이들을 가장 먼저 대피시켰다.
“네가 가야 어느 나라를 가든 일족들을 받아 줄 거다.”
“미마야. 네가 아니면 누가 아이들을 이끌겠니. 제발 이렇게 부탁한다.”
“너는 일족의 희망이란다.”
“부디 살아남아 다오.”
방어선이 무너짐에 따라 피난을 인솔하던 부족민들이 하나둘 전선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중엔 미마의 친모, 친부도 있었다.
사방에 피가 튀고 일족들의 살점이 대기 중에 흐드러지던 그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일족의 장로들이 내렸던 판단은 이성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결과는 참담했다.
미증유의 힘 앞에서 수인 전사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장애물이 없어진 광인은 학살을 이어 갔고 전투를 배우지 못한 부족 성인들이 초개처럼 사라졌다.
“제발… 아이들이 도망갈 시간이라도…….”
양 팔다리가 으스러진 수인 하나가 꼬리로 여행자의 발목을 붙들었으나 힘없이 끊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부족 전체가 어떻게든 살리려 했던, 대피시키려 했던 피난 행렬을 따라잡은 여행자의 검격이 날아드는 것이었다.
콰과과과광!
“미마, 안 돼!”
그 순간 미마가 신형을 박찼다.
그러고는 아껴 두었던 힘을, 그리고 이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듯 순식간에 소울을 끌어 올려 활시위를 당기고 검격을 향해 방출했다.
연어가 강물을 거스르듯, 미마가 쏘아낸 소울이 검격을 반으로 갈라냈다.
단 한 번의 공격에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도망가요. 빨리.”
“안, 돼. 미마야… 안 된다.”
“빨리!”
그녀는 언성을 높였다.
이자가 여기까지 왔다는 건, 방어선이 모두 뚫렸다는 뜻.
이제 일족 중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내가 막아야 한다.
“당신을 구했던 걸 후회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내가 만약 그때 알량한 도움을 베풀지 않았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시간을 벌어야 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 어쩐지 발걸음이 자꾸 이쪽으로 향한다 싶더라니… 깜빡하고 있었군. 미리 기억했다면 좀 더 편안하게 보내 줄 것을 그랬나. 미안하다. 기억력이 나쁜 편이라.”
하지만 되돌아온 답변에 그녀는 물음을 후회했다.
“왜―!!”
절규 섞인 비명이 쏟아졌다.
여행자의 얼굴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저 검 손잡이에 끼워진 붉은 돌처럼, 요사스런 붉은 기운을 온몸으로 내보낼 뿐.
“일종의 훈련이랄까.”
“…뭐라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새로 얻은 힘을 확인할 곳이 필요했을 뿐. 악감정은 없다. 수인이여.”
“죽여 버릴 거야아아아―!!”
미마가 쏘아 보낸 소울 화살이 수십 갈래로 뻗어져 나갔다.
마치 맹수를 노리는 그물처럼 허공에서 흩어졌던 화살들은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사내를 향해 내리꽂혔다.
먼지구름이 올라오고, 사내는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즐겁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 뒤로 이어진 건, 전투를 빙자한 잔혹하고도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
“……플랑 님. 이건 좀… 상태가 심각한데요.”
“설마 이 사람이…….”
숨을 꼴딱거리며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수인족을 보며 플랑이 푸른 머리칼을 매만졌다.
숲과 나무 일족의 폴리티아 이주를 위해 외교부 장관인 그녀가 직접 행차하려던 차.
국경 인근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보고를 듣고 황급히 방향을 틀어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는데….
“어쩐다… 일이 꼬여 버렸네요.”
섭외 대상이었던 자가 예상치 못했던 사고를 당해 버렸다.
아마도 흉수는 최근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혈겁을 일으킨다는 의문의 방랑자.
“어떡할까요?”
“일단 데려가도록 할까요.”
“하지만 플랑 님. 이 상태로는 별 의미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만… 살기도 힘들어 보이고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소문처럼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기엔….”
부관은 말을 하다 말고 난도질된 수인의 몸 상태를 일별했다.
사지가 분쇄되고 살갗이 갈라져 뼈와 내장이 훤히 보이는 상황이다.
무슨 요술을 부려 놓았는지 자동인형도 아닌 인간이 이런 상태로도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제가 받은 명령은 숲과 나무 일족 미마를 데려오란 것뿐이었어요. 일단 이런 상태라도 숨이 붙어 있으니 임무를 완수하는 게 순서겠죠.”
플랑이 반 시체나 다름없는 수인을 챙겨 가려는 건 단순히 임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강인한 생명력과 다 죽어가는 가운데서도 그릇에 다 담기지 못해 흘러넘치는 소울.
비록 거의 다 부서지고 고장 났지만. 그 와중에도 여실히 느껴지는 소프트웨어 잠재력이다.
플랑은 자신을 따라 파견된 지원형 안드로이드를 향해 요청했다.
“브리누스. 응급처치를 부탁해요.”
“이 정도의 부상은 제 능력으로도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꼭 살려서 데려가고 싶어요. 어쩌면 저희의 ‘새 프로젝트’에 딱 맞는 자원이 되어 줄지도 모르니까.”
“…노력해 보겠습니다.”
브리누스는 의료 기능이 탑재된 파츠를 정면으로 돌린 후 기계로 소울 에너지를 전이시켰다.
[수리 대상 생체 반응 확인.] [다중 검사를 통한 보편적 치료를 시행합니다.] [치료 대상의 생체 반응 신호가 미약합니다.] [출혈이 심각합니다.] [맥박, 호흡이 불안정합니다.] [응급 처치 모드로 변경합니다.] [생존률 3.5% 미만. 실패 시 대상은 사망합니다.]브리누스는 플랑의 눈을 힐끔 바라봤다. 그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행하라는 의미였다.
어차피 이대로 방치해 두면 생존율은 0%.
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마땅한 판단이다.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경이로움마저 느껴지는 생명력에 안드로이드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신체 대부분이 소실된 미마는 인간으로서 생명 유지가 불가능했고, 폴리티아 신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제품으로서 최초의 반 인간 반 안드로이드의 개체로 거듭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미마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폴리티아 외교장관 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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