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89)
12. 별빛의 보금자리
어둠이 짙게 깔렸다.
해안에 인접한 도시답게 종종 해무가 덮여 밤안개에 한 치 앞의 시야도 제대로 분간하기 힘든 밤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다.
라이카는 짙게 내려앉은 어둠을 바라보다, 날씨마저 작전을 돕는다고 생각하며 계산했던 성공 확률을 82%까지 끌어 올렸다.
우우웅.
세 기의 기체가 저음 비행으로 사관학교 상공에 진입했다.
‘맘껏 퍼부어도 돼?’
‘다시 말하지만, 가급적 사상자를 내면 안 돼.’
‘힝. 하지만 논논은 날뛰고 싶은걸.’
‘카논.’
‘…알겠어, 대장.’
‘안전하게 돌아와. 절대로 지정 고도 밑으로 내려가지 말고.’
‘응!’
라이카는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카논을 불안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저 아이에게 단독임무를 줄 때면 늘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것 같은 불안함이 들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멋지게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프리마관 입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창가를 통해 내부 경계를 확인하며 신호를 기다렸다.
‘경비가 삼엄하네.’
‘저희를 의식한 게 아닐까요.’
‘그냥 대비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학사 차원에서 우리가 올 거라 확신했다면 더 철저하게 준비했을 테니까.’
어제저녁 사전탐사를 왔을 때보다 더 많은 수의 메이드들이 순찰을 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협상해 보지도 못하고 실패할 거였다면, 차라리 어제 결단을 내렸으면 성공 확률이 더 올라갔을 텐데.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후회는 늘 늦는 법이었다.
짧은 기다림이 지나자 동남쪽 하늘에서 번쩍, 하고 섬광이 터져 나왔다.
폭격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
-아하하하하!
멀리서까지 들리는 경쾌한 웃음소리와 동시에 카논의 권능 [풀 파이어]가 발현된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밝아지고 밤안개마저 걷혀 버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의 폭발이었다.
펑! 퍼버벙―!
떨어진 폭탄들이 교수동 건물들 사이사이에 낙하해 섬화를 뿜어냈다.
몇 번을 봐도 감탄할 만한 위력이다. 부대의 최종병기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가급적 사상자를 내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지만, 아마 저 정도 화력이라면 부상자는 피할 수 없을 거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구나….’
라이카는 고개를 홱홱 저었다.
‘지금은 오직 임무만 생각하자.’
카논을 믿어야 한다. 그녀라면 절묘한 명령 입력으로 정확히 인적이 없는 곳을 골라 타격할 수 있다.
아닌 밤중의 날벼락에 학사 부지에 혼란이 번져 나갔다.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튀어나온 교수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경비 인원들.
여기저기서 프리마관 창문이 열리고 빼꼼히 머리를 내미는 메이드들과 생도들이 보였다.
라이카는 그 순간 출력을 높여 정문을 부수고 들어갔다.
삐―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음이 왕왕하게 울려 퍼진다.
곧바로 ‘생도 여러분들은 개인실을 벗어나지 마시고 안전하게 대기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실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생도들만큼은 안전하게 보호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상당히 빠르고 정확한 대처였다.
이미 누군가의 습격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후우…….”
라이카는 멀리서부터 달음박질 소리가 모여드는 걸 진동으로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장 먼저 그녀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사전 입력된 정보에 ‘메이드장’이라 저장된 인간이었다.
그녀는 비장한 얼굴로 당장에라도 라이카를 향해 달려들 듯 전투태세를 취했다.
“순순히 투항하십시오.”
“……빗자루?”
라이카는 투항하라는 메이드장의 말보다도 그녀의 무장에 더 관심을 보였다.
한눈에 봐도 제법 숙련된 전사였는데, 독특하게 생긴 모양의 빗자루를 양손으로 그러쥐고 있던 것이었다.
‘재미있는 무장을 사용하네’라는 생각도 잠시, 빗자루 끝에서 날카로운 소울이 뻗어져 나왔다.
라이카는 부드럽게 고개를 틀어 공격을 피해냈지만, 비행 파츠 한쪽에 기스가 생겨났다.
“……정말 특이하네.”
라이카는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권능을 발현했다.
[타격 명령]저 정도 실력이라면, 공격을 받아도 죽지는 않으리라.
그녀의 파츠들이 흰 빛을 뿜었다.
* * *
이번 작전의 핵심, 브리누스는 저음 비행으로 천천히 미마의 신호가 잡히는 개인실 창문으로 접근했다.
여기저기서 창문을 열고 카논의 폭격을 구경하는 생도들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시선을 끌지 않고 미마의 숙소 앞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기체의 빛을 모두 소등하고 스텔스 기능을 최대화한 채 밤안개 속을 천천히 비행한 덕분이었다.
그녀는 진입 전 마지막으로 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히 확인한 후 창문에 손을 올렸다.
열려 있다.
‘해체할 필요는 없겠네.’
창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기숙사 개인실의 실내 전경이 디스플레이에 그려진다.
호화로운 침실이었다.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누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브리누스의 시선이 침대 위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는 미마에게로 향했다.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웅크려 있는 거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회수될 거라는 걸 짐작한 듯했다.
‘일이 쉬워지겠어.’
브리누스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침대로 다가가 이불에 손을 뻗었다.
“암살형 미마. 당신을 회수하겠습니다.”
쐐액―!
그 순간 이불을 뚫고 칼날이 쇄도했다. 그녀는 곧바로 손을 들어 공격을 막아내려 했으나, 이미 검이 손바닥 파츠를 관통한 뒤였다.
“……당신은?”
브리누스의 동공이 확장했다. 이불 안에 들어가 있던 건 미마가 아니었다. 청보랏빛의 단발머리를 질끈 묶은 검사, 에뜨랑제였다.
‘하지만 분명 위치 정보는―’
디스플레이에 떠오르는 정보를 다시 확인한 브리누스는 순간 숨을 삼켰다.
미마의 정확한 위치는 침대 위가 아니라 침대 아래였다. 함정이다.
“하앗!”
[중급 왕궁 비전 검술]에뜨랑제는 브리누스가 한눈판 틈을 놓치지 않고 권능을 발현했다.
적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몰아친다.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대 위력의 검성식이었다.
[난개(爛開)]무질서의 검꽃이 피어오른다.
브리누스는 검로를 따라 플라즈마 보호막을 휙휙 움직이며 정신없이 몰아치는 검격을 흘려내고 뒷걸음질 쳤다.
예기를 품고 수십 갈래로 짓쳐 들어오는 공격은 경보음이 계속 발생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생도들의 수준이….’
고작해야 성인식을 치르기 전의 소년병이라 했다.
아무리 지원형 기체라지만, 폴리티아의 정규 군인을 이렇게 몰아칠 정도라고?
플라즈마 실드가 칼날을 크게 튕겨내자 에뜨랑제는 회전력 그대로 발을 크게 회전시키더니 브리누스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번쩍거리는 발 부위 무장이 순식간에 접근한다.
‘이건…….’
리타니아 대륙의 영웅들이 마신군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했다는 아머드 파츠.
파츠의 도움을 받은 에뜨랑제의 휘둘러 차기가 마침내 플라즈마 방어막을 한 겹 뚫어냈다.
그린 듯이 깔끔한 가격이었다.
브리누스는 한 걸음 더 뒷걸음질 쳤다.
놀랄 만한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 위 천장과 발밑 바닥에 그림자가 지더니 순간적으로 마력의 흐름이 느껴지고, 펑!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기체를 짓눌렀다.
두 번째 기습이었다.
[충격이 감지되었습니다. 기체 손상률 15%] [지원 모드에서 백병전 모드로 변경합니다.]“후우…….”
“칫. 엄청나게 튼튼하네요.”
옷장 속에서 튀어나온 마도사는 고작해야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꼬마 생도였다.
단발의 검사도 그렇고, 이 꼬마 마도사도 그렇고.
이렇게 어린데도 이만한 성취라니….
어째서 폴리티아의 관리자가 ‘인간의 잠재력’을 수중에 넣고 싶어 하는지 이해될 만한 상황이다.
“끼어들었다가 다칠 수 있습니다. 물러서십시오.”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미마는 우리의 동료거든요.”
어쩔 수 없나.
브리누스는 옅게 호흡했다.
대장과 카논이 모두 위험을 감수하고 관계자들의 시선을 끌어 주고 있다.
이대로 아이들에게 발목을 잡혀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플라즈마 에너지를 사출합니다.] [출력 20%]사출 파츠가 고도로 응집된 에너지를 두 생도들에게 쏟아냈다.
저것들이 몸에 닿은 순간, 에너지가 체내로 스며들어 생체기능을 파괴할 것이었다.
[달빛 강타] [흔들리지 않는 절개]하지만 브리누스가 사출한 에너지는 두 사람의 몸에 닿지 못했다.
루트비히에게 닿은 에너지는 그대로 흩어져 소멸했고, 에뜨랑제에게 닿은 에너지는 튕겨 나와 브리누스의 두 번째 보호막을 조각낸 것이었다.
“지금이에요, 루트비히!”
곧바로 공격해 들어오는 두 사람.
브리누스는 곧바로 플라즈마 실드를 하나 더 전개해 쏟아지는 공격을 막아냈다.
“허…….”
기체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이어졌다.
아이들의 목숨을 거두기 안타까워 출력을 조절하긴 했어도, 그들은 보란 듯이 피해 없이 공격을 흘려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어서는 위험하다.
당장에라도 누군가 소란을 듣고 난입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녀는 손속을 거두기로 결정했다.
설령 이 어리고 빛나는 재능들을 제 손으로 직접 꺼트리는 한이 있더라도 서둘러 이 전투를 끝낸다.
저 침대 프레임을 거둬내 미마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원격 제어 장치’로 미마의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다.
미마가 수중에 들어온다면 저항도 끝날 거다.
브리누스는 실드로 두 사람을 밀어내며 침대 가까이로 다시 걸어갔다.
두 사람은 절대 미마에게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사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마를 시야에서 가리고 두 번의 페이크 전략을 통한 기습.
비록 작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지만 훌륭하다.
“안 돼!”
플라즈마 실드에 막힌 에뜨랑제의 새된 비명을 뒤로하고 브리누스는 침대 프레임을 홱 집어 던졌다.
그 순간 그녀의 동공에 비친 것은, 날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창날이었다.
세 번째 기습.
앞선 두 번의 기습보다도 더 날카롭고 더 강한 위력의 공격이 브리누스의 철판을 뚫고 기체를 관통했다.
[Warning! Warning!] [치명적인 충격이 감지되었습니다. 기체 손상률 50%]파직. 파지직.
끊어진 파츠들 사이의 전선에서 전류가 튀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창을 그러쥔 소년을 바라봤다.
제 동료들이 궁지에 몰렸다. 에너지 사출 때는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 순간까지도 참아내 지금 단 한 순간을 위해 은신을 유지할 수 있는 거지?
고작해야 십 대 소년의 심계가 이럴 수 있는 건가.
혼란은 빈틈을 만들어냈고, 그 빈틈을 장학생들은 놓치지 않았다.
에뜨랑제의 검성식이 브리누스의 왼쪽 어깨를 가르고 들어왔다.
[Warning! Warning!] [치명적인 충격이 감지되었습니다. 기체 손상률 70%]그 위로 루트비히의 권능 [별빛 강타]가 충격을 때려 박았다.
[Warning! Warning!] [치명적인 충격이 감지되었습니다. 기체 손상률 85%]완전히 핀치에 몰린 상태에서 브리누스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그녀의 시선이 암살형 미마에게 날아가 꽂혔다.
[원격 제어 장치를 가동합니다.]기체가 완파되기 전 미마의 제어권을 가져와 이들을 떨어트리고 자가복구할 시간을 버는 것.
“미마! 지금!”
러셀이 창끝을 쥔 손에 힘을 꽉 불어넣으며 미마를 부르자, 미마가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누스의 머릿속에 비관적인 가정이 불현듯 떠오른다.
“설마―”
[긴급정지 기능 가동]미마의 전원이 완전히 꺼지고, 그녀의 동공이 점차 빛을 잃더니, 이내 사라졌다.
폴리티아의 자동인형들이 단 한 번, 한 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 해킹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긴급정지 기능이 발동된 것이었다.
‘자칫하면 파괴될지도….’
고작해야… 생도들에게 말이다.
그만큼 치밀하게 설계된 함정이다.
브리누스는 마치 덫에 걸린 사냥감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폴리티아군 자동인형 카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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