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90)
12. 별빛의 보금자리
‘괴물…….’
프리마관 메이드장 앤 메이는 끊어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앤의 주변에는 프리마관을 지키기 위해 침입자에게 달려든 메이드들이 여기저기 부상을 당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 소란을 듣고 용감하게 뛰쳐나온 몇몇 생도들까지도 전투에 휘말렸다.
앤 또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정체불명의 침입자에겐 역부족이었다.
저건 숫제 괴물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인 것도 모자라 공격과 은신을 반복해 유의미한 타격이 불가능했다.
피부를 이루는 강철 합판은 소울조차 먹히지 않고, 여섯 개의 날개에서 사출되는 광선은 아머드 슈트마저 꿰뚫는다.
침입자의 주변을 호위하며 녹색 반짝임을 흩뿌리는 위성 로봇들은 가루에 닿는 순간 상태이상 ‘수면’을 발생시켰다.
최소한 현직 영웅들, 교수들이 와야 감당할 수 있는 상대.
때가 좋지 않았다.
하필 외부에 나가 있는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가 카오스게이트 브레이킹에 휘말렸다는 소식을 듣고 대부분의 교수진과 경비 인원이 급하게 파견된 상황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1학년 교수진들도 교수동 쪽에서 발발한 정체불명의 폭격에 휘말려 이쪽을 지원할 수 없는 듯했다.
아니. 모든 것은 변명일 뿐이다.
애초부터 프리마관은 그녀에게 배당된 구역이다.
그 어떤 핑계를 대도 침입자를 막지 못하고 쓰러진 건 치죄 받아야 마땅한 대죄.
‘면목이 없습니다. 총장님….’
앤 메이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소울탄을 바라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 * *
“후우…….”
브리누스는 반파된 기숙사 내부를 바라보며 심호흡했다.
하마터면 머나먼 타지에서 파괴되는 최후를 겪을 뻔했다.
[기체 손상률 90%]완벽하게 함정에 빠지고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손상률이 90%가 된 순간 긴급 방어 장치가 발동되며 출력 최대치 발동했다.
그 결과 에너지 과부하 상태가 되었지만, 보유 에너지 대부분을 사출한 방어 시스템에 기습했던 사관생도 셋은 낙엽처럼 스러졌다.
아찔했던 상황이었다. 자가 복구와 긴급 가동 외 기능 대부분이 상실된됐을 정도로.
[잔여 에너지로 자가 복구 및 긴급 가동을 실행합니다.]누더기가 된 부품들이 조금씩 수리되고 회복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복구해야 할 것은 통신과 비행 기능.
임시로 기능을 복구하는 사이 그녀는 처박힌 생도들을 일별했다.
분명, 이 세 사람은 차후 폴리티아의 커다란 위협이 될 자질이 충분했다. 확실하게 제거하는 것이 옳다.
동시에 이렇게 전도유망한 인재들의 숨통을 직접 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는 너희가 불필요한 살생을 하길 원치 않아.’
하필 지금 대장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브리누스는 손을 떨어트렸다. 긴급정지 상태인 미마만 어깨에 둘러멘 채 반쯤 부서진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목표물 확보 완료. 퇴각하십시오.]복구된 통신 기능으로 라이카와 카논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후, 그녀는 캄캄한 하늘 속으로 스며들었다.
브리누스가 떠난 자리.
바로 위층 기숙사에서 숨어 대기하고 있던 아카샤, 코리, 어셔스가 침입자가 사라진 걸 확인하자마자 황급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그들은 앞서 러셀에게 지시받은 대로 미션을 수행하자마자 기숙사로 숨어들어 와 위층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세 사람의 부상은 심각했다.
“러셀! 루트비히! 에뜨랑제 선배!”
아카샤가 러셀을 치료하는 사이 코리와 어셔스는 두 사람을 각각 등에 업었다.
‘만약 우리가 패배하더라도 브리누스는 우리를 죽이진 않을 거야. 너희는 위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적이 사라지면 내려와. 아카샤는 모든 마력 털어서 나부터 치료하고 두 사람은 루트비히랑 에뜨랑제 선배를 곧바로 의무동으로 이송해. 전투 중엔 절대 끼어들지 마. 너희가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셋 다 죽을지도 모르니까.’
“제길, 제길…….”
코리는 자괴감에 분통을 터트렸다.
러셀이 자신들을 전투에서 배제한 건 그들이 약하기 때문일 거다.
혹여라도 이 싸움에 말려들었다간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기에.
스스로의 나약함에 환멸이 났다.
친구들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싸우는 와중에, 할 수 있는 게 부상자를 옮기는 것뿐이라니.
‘언젠간… 반드시….’
당당히 친구들의 옆에 서고 싶다고.
코리는 피가 흐르도록 입술을 깨물며 다짐했다.
“후. 아직도 안 출발하고 뭐 하냐.”
아카샤의 치료 권능에 정신을 차린 러셀이 코리와 어셔스를 타박했다.
“으, 응. 갈게.”
“그래. 잘 부탁한다.”
러셀은 툭툭 털고 일어났다.
분명 심각해 보이는 몸 상태인데도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상체를 일으켜 아카샤가 편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서둘러. 아카샤.”
“저, 저도 빨리 하고 싶다구요…!”
“늦어서 미마 뺏기면 너 때문이야. 열등생.”
“아잇 진짜!!”
아카샤는 분통을 터트렸다.
* * *
“많이 다쳤네. 두 사람 모두.”
라이카는 90% 이상 파괴된 브리누스, 그와 엇비슷하게 부상당한 카논을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봤다.
두 기체는 비행하는 모습도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상태였다.
“치료해 줄까?”
“네 도움 따윈 필요 없거든? 연식도 얼마 안 됐으면서 까불고 있어.”
브리누스의 말에 카논이 버럭했다.
대충 ‘너도 많이 다쳤으니까 괜찮아. 난 신경 쓰지 마.’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카논의 화법은 원래 이런 식이었다.
“나 실수 안 했어, 대장. 교수 중에 비행이 가능한 사람들이 있었어. 제법 상대하기 까다로웠구 그래서 조금 부서졌지만 괜찮아.”
“그랬구나. 고생 많았네.”
카논이 변명하듯 덧붙인 말에 라이카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를 치하했다.
아마 미션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나무랄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사관학교 교수들이면 상당히 강했을 텐데. 잘해 줬구나. 카논.”
“헤헤. 그래도 모처럼 힘 조절 안 하구 화려하게 맘껏 퍼부어서 정말정말 신났어!”
“얼마 전에도 한바탕했으면서.”
“시끄러워.”
딴죽을 거는 브리누스를 향해 카논이 하악질하듯 대꾸했다. 그러고는 잔뜩 부서진 기체를 흘겨본다.
“그나저나 너는 몰래 들어가서 미마만 데려오면 되는 쉬운 임무였는데 왜 그렇게 박살 난 거야?”
“…….”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잖아. 시간도 오래 잡아먹었어. 덕분에 논논이 부서질 뻔했다구.”
브리누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곁눈질로 라이카를 바라보니 그녀도 상황이 궁금한 듯 자신을 향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매복이 있었습니다.”
“매복?”
“네. 대장. 미마의 동기로 보이는 사관생도 세 명이 미리 기숙사 안에 잠입한 상태였어요. 전투가 있었고 그래서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브리누스의 상황 공유에 카논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자, 잠깐만. 지금 너… 설마 교수도 아니고 고작 생도 세 명한테 이렇게 당했다고 말하는 거야?”
“…….”
브리누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일개 사관생도가 아니었다.
세 번에 나눠서 기습을 할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된 설계였다.
그런 것들은 모두 변명이고 핑계일 뿐이다.
사실은 임무 수행 과정이 늦어졌고 그로 인해 모두의 위험을 자초했다는 것뿐.
“죄송합니다.”
“아니야. 브리누스가 어려움을 겪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아무래도 우리가 사관학교를 너무 얕보긴 했던 모양이야.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 해결됐으니까 다들 잘했어.”
“역시 브리누스는 못 미덥다니까~”
브리누스는 깐죽거리는 카논이 조금 얄미웠지만, 어쨌든 본인의 실책으로 입은 부상이 눈에 훤했기에 아무 말 없이 넘어갔다.
세 사람은 고효율 비행 모드로 천천히 카오스 게이트가 있는 위치로 날아갔다.
다소 소요가 발생하긴 했어도 이만하면 무사히 임무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카오스 게이트 입구를 지키는 세 교수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오래 기다리게 하는군.”
“…….”
시레니아 해안의 해수림 속. 총장실에서 봤던 두 명의 교수와 추가로 또 한 명의 여교수가 그들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거봐요. 기다리기를 잘했죠? 거짓말을 할 아이들은 아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그렇지만… 납치범들이 우리보다 늦게 도착할 수가 있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납치되기 전에 미리 이곳으로 보낸 것 같군. 시건방진 1학년들 같으니.”
1학년 교수 다이크와 크릭, 알렉사는 카논의 폭격이 시작되자마자 각자의 연구실에 뛰어온 생도들의 전갈을 받았다.
1학년들은 ‘미마가 납치되었다’라며 카오스게이트의 정확한 위치를 그들에게 알렸다.
당장 건물 밖의 침입자와도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이것저것 재고 확인하기에는 너무 긴급한 상황.
세 사람은 각자의 판단으로 일단 몸을 날렸고, 이곳에서 만난 것이었다.
“이렇게 모여서 전투하는 건 졸업 후 처음이네요. 조금 설레기도 해요.”
알렉사는 쌍검을 쥐고 기세를 끌어 올리며 후후 웃었다.
세 사람은 사관학교 동기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동료였고 좋은 경쟁자였다.
비록 졸업 후에는 각각 성검기사단, 장미사도회, 군부로 소속이 나뉘어 흩어졌지만.
교수로 겸임 되어 다시 모일 때까지만 해도 이젠 어색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장에 서니 어쩐지 생도 때의 기억이 떠올라 설레는 기분이 든다.
여섯 명의 묘한 대치는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래서, 덮쳐?”
“잠시.”
크릭과 알렉사는 다이크에게 판단을 맡기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이 세 명의 조합에서 주로 리더 역할을 맡았던 그는 이대로 전투를 해도 괜찮을지 가늠하는 중이었다.
전투에서 이길 자신은 있다. 다만 인질로 잡혀 있는 생도를 안전하게 구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복구하기 위해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는 자동인형들과, 섣부르게 전투를 벌였다가 소속 생도가 다치는 걸 염려한 교수들 간의 미묘한 대치가 이어졌다.
“미마를 돌려주고 순순히 투항하면 목숨은 부지하게 해 주지.”
다이크는 기갑 슈트를 전신에 착용하며 마지막으로 권고했다. 거부한다면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다.
그사이 탐지 기능으로 적을 파악한 뒤 빠르게 전투 승리 확률을 점쳐 보던 라이카는 절망적인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거의 전투 불능 상태… 정상 컨디션이었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야. 승리 확률은… 7% 정도인가?’
어딘가 몸을 숨기고 기체 손상을 수리한 다음 움직였다면 상황이 달랐을 텐데.
카오스게이트 소멸 시간이 임박해 서두른 게 패착이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임무가 아니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라이카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달리 수가 없네.’
계산한 바에 따르면, 그녀가 힘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을 때 세 교수를 상대로도 잠깐의 틈을 벌 수 있다.
그 사이 미마와 두 부하를 게이트로 보낸다.
자신은 높은 확률로 게이트를 넘지 못하고 이곳에 철골을 묻게 되겠지만, 누군가는 해야 한다.
부하들을 희생시킬 순 없었다.
빠르게 판단을 완료한 라이카가 두 사람에게 통신 메시지를 날렸다.
라이카는 두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곧바로 계획을 실행했다.
순간이동 하듯 세 교수를 향해 접근한 뒤 자신의 전용 폭격 장치인 ‘글로 윙즈’를 모두 전개했다.
[전탄 일제사격] [소울 에너지 출력 90%] [Warnning! 에너지 과부하 상태입니다.]어차피 기회는 한 번뿐.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임무를 완수할 뿐이다.
세 교수를 향해 쏟아지는 폭격을 본 카논과 브리누스가 동시에 게이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방해자들을 지나칠 잠깐의 틈.
그 틈을 파고들어 마침내 게이트의 목전에 다다랐을 때.
쐐액―!
어디선가 날아온 두 자루의 창이 브리누스와 카논의 몸체를 꿰뚫었다.
“하아, 시발. 늦는 줄 알았네.”
그 뒤, 걸쭉하게 욕설을 내뱉은 러셀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폴리티아군 자동인형 브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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