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92)
13. 학기말 평가
학사 안팎으로 시끄러웠던 소동들은 모두 일단락되었다.
교수진과 경비대가 대규모로 투입된 달베르크 산맥의 게이트 브레이킹이 사망자 없이 진압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 부원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후문도.
괜히 메인 에피소드가 아니니 누군가 한 명 골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치열했겠으나, 내 생각보다 주인공 일행의 성장세가 훌륭했던 모양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정사보다 성장세가 두드러지긴 했다.
추측건대 초반부 휴고를 괴롭히는 데나스나 호메르 등등의 악역들이 잠잠해져 쓸데없는 데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아무튼 휴고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큰 그림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부상이 완전히 회복된 뒤 총장실로 불려왔다.
참고인 조사라는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무단으로 사관학교 부지를 이탈한 처벌을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농사 동아리에서 납품한 허브 차의 맛이 일품이라네. 덕분에 심심한 학사 생활에서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하는 중이지.”
나를 총장실로 불러온 장본인인 오리건 샤론 총장은 한참이나 동아리에서 재배한 허브의 칭찬을 늘어놓더니, 대뜸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이번 일은 참 유감이네. 설마하니 그들이 이렇게 파격적인 행보를 보일 줄은 몰랐거든. 다행히 다이크 로필런 교수가 뭔가 낌새를 눈치채고 대비하여 피해가 크긴 않았지만… 하마터면 아찔한 일을 겪을 뻔했지 뭔가. 달베르크 산맥에 생도들이 휘말린 건도 그렇고… 올해 1학년들은 여러모로 심상찮은 사건에 휘말리는 일이 잦구먼그래.”
“그러게 말이에요.”
“러셀 생도의 활약은 잘 들었네. 원래대로라면 학사 부지 이탈의 처벌을 진행해야 맞지만… 내 직권으로 상과 벌을 갈음하고자 하네.”
“감사합니다.”
외적으로부터 생도를 구한 상과 그것을 위해 잠시 무단 외출한 벌이 어떻게 퉁쳐지냐고 물어볼 만도 했지만, 나는 굳이 첨언하지 않았다.
규칙은 일견 널널해 보이지만, 정해진 선을 넘어선 순간 자로 잰 듯 가차 없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배려해 준 셈이었다.
“그와 별개로 동아리에서 재배한 품목들은 학사에서 후한 값에 모두 매입하도록 하지.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라네.”
하지만 총장은 내 생각보다 더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개인적인 결정’이라는 명목으로 동아리에 특별 혜택을 제안했다.
명백히 이번 일의 보답이었다.
내 새삼스러운 눈빛에 총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씩 웃더니 다시금 찻잔으로 얼굴을 향한다.
“혹시 궁금한 게 있는가?”
“그 자동인형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마 폴리티아로 송환되겠지. 여왕께서 워낙 자애로우신 분이라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지만, 들리는 내용에 따르면 일부 무기 제작에 관한 연구 자료, 배상금 30억 골드 정도를 지불하면 무사 석방할 거라고 들었지. 참, 미마 생도에게 설치된 추적 기능과 강제 통제 기능들을 삭제하는 것도 요구 조건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협상안이다. 적은 출혈은 아니겠지만, 주요 전력인 자동인형 기체를 통째로 타국에 넘기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판단하겠지.
중요한 건 마지막 말이다.
지혜로운 왕실의 대명사답게 그들은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미마를 잊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 속에 잠재된 위협을 없애는 것까지 요구 조건에 포함한 거다.
미마에게 진정한 자유가 도래하는 것이었다.
이만하면 고생고생한 보람이 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내게 감사할 필요는 없다네.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할 처지지. 어쨌든 자네와 자네의 부원들은 잘 기억해 두겠네.”
아니,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두 번의 인생 경험상 높은 직책의 인물이 기억하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자고로 삶은 보일 듯 말 듯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러셀 군. 한 가지만 묻지.”
“네.”
“다이크 로필런 교수가 그러더군. 이 상황을 미리 예견하고 경고한 생도가 있었다고.”
나는 안색을 유지하려 애썼다.
이래서 교수진들을 끼워 넣기 싫었었는데….
의심받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학사 교수진의 머리통이 장식으로 달린 게 아니라면, 학사 안에서만 생활하는 생도의 입에서 나온 내밀한 정보를 의심해 볼 법하다.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나? 정보의 출처는 어디지?”
“그건…….”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끝을 흐리며 시간을 벌었다.
아직 레몬의 이름을 댈 순 없다. 그녀는 분명히 잡아뗄 것이고 그녀에게서 마인의 흔적 따윈 전혀 나오지 않을 거다. 당연히 내 쪽이 의심받게 된다. 마인의 흔적이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어쨌든 내겐 정황이 있으니까.
코리의 이름을 팔아 볼까 했지만, 그쪽도 곤란하다. 외부 상단이 생도와 접촉,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아피흐 상단이 타격을 입는다. 어쩌면 거래 중단 조처가 내려질 수도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영약 재료를 수급해야 하는 만큼 그쪽은 최우선 보호 대상이다.
‘휴고를 팔자.’
내 안위를 위해 친구를 파는 것은 좀 미안했지만, 이쪽은 그나마 알음알음 알려진 덜 위험한 정보였다.
애초에 휴고가 처리해야 할 일을 대신 처리한 셈이니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광기를 일발 장전했다. 위기 모면을 위한 연기이긴 해도, 아마 이 순간 이후 총장에게 나는 대단히 미친놈으로 각인될 것이었다.
“총장님께서는 인류의 편입니까?”
“…….”
사관학교 총장에게 너 마신의 끄나풀 아니냐고 돌려 물어보는 생도는 나뿐일 거다…….
“허허.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가?”
“예. 총장님께서 제게 여쭤보신 걸 대답하려면, 먼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하거든요.”
“혹시 자네, 아직 머리 쪽 부상이 낫지 않았다든가?”
“놀라우시겠지만 정상입니다.”
“하. 하하하!”
솔직히 총장 모욕죄로 사관학교에서 퇴소당해도 할 말 없다.
“일평생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군. 그래. 나는 인류의 편이라네.”
“증명할 수 있으십니까.”
“글쎄. 내가 지금까지 벤 마인의 모가지 수를 알려주거나 마신군의 수급을 모아 둔 장식장이라도 열어 주랴?”
“그런 걸 모으세요?”
“당연히 농담이라네. 그런 그로테스크한 취미 같은 건 없거든.”
“그러면 제 입장에서 총장님을 100% 신뢰할 증거는 없는 셈이네요.”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거창하게 밑밥을 까는 건가.”
“21기 중에 예지자가 있습니다.”
“…….”
“미래를 내다보는 권능을 보유한 능력자죠. 그림로어 습격 사건 때도. 이번의 추적자들 침입 사건도, 그리고 달베르크 산맥의 게이트 브레이킹 사건도 모두 예언한 친구입니다.”
총장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제 정보는 거기서 나왔습니다. 총장님께서 이미 알고 계시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제 입으로 누군지 밝힐 수는 없습니다. 마신군의 표적이 될 테니까요. 만약 모르신다면, 앞으로도 모른 척 부탁드립니다. 그 친구가 스스로를 지킬 힘을 기를 때까지.”
“허허.”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지하기 쉬우니까요.”
총장은 말없이 찻잔을 비울 뿐이었다.
아마도 설득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 * *
동활주 마지막 날.
농사꾼들은 농장에 모여들어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날다람쥐 미마가 화톳불가에 부원들과 함께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러셀이 미마의 옆에 자리잡으며 툭 던지듯 물었다.
“너. 웬일로 나와 있냐?”
“……날이 좋아서.”
“언제부터 그런 걸 따졌어?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아무튼 언제든 나무 구멍이 좋았다가 네 생활방식이잖아.”
“아하하. 그만해, 러셀. 이렇게 다 모여 있으니 좋잖아. 모처럼 미마가 마음을 열었는데.”
“그런 거냐?”
“딱히… 아니거든.”
츤츤거리면서도 굳이 자리를 옮기지 않는 걸 보면 아닌 게 아닌 모양이다.
녀석 나름의 감사 표시 방법일 거다.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 의미로 조금 거리를 가까이하는 것.
그게 숲과 나무 종족이 마음을 여는 방법이니까.
“아, 그리고 총장 면담했는데. 폴리티아와 협상 내용에 네 몸속 추적 장치랑 제어 장치 없애는 걸 요구 조건에 넣는다더라. 조금만 참으면 완전 자유의 몸이 되겠네. 축하한다?”
“……!”
“와, 축하해! 미마!”
동아리 부원들의 축하 세례가 이어졌다.
그 과격한 표현에 눈탱이가 그렁그렁해진 미마는 부끄러웠는지 꼬리를 말고는 쪼르르 학신목을 향해 도망치려 했다.
“러―셀!”
그런 미마가 걸음을 멈춘 것은, 익숙한 하이톤의 명랑쾌활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금색 찬란한 곱슬머리를 휘날리며 변덕쟁이 리지가 ‘날아오고’ 있었다.
허벅지 사이에 「해리포터」 영화에나 나올 법한 마법 지팡이를 끼고서.
“……?”
모두의 얼굴에 물음표가 찍혔지만, 러셀은 그게 이번 에피소드의 전리품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전리품들도 제대로 챙긴 모양이다.
“러――셀!”
리지는 씽씽 날아와 그의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지?”
그러고는 슬그머니 팔짱을 껴 왔다. 지분거리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데, 표정은 사뭇 자연스럽다.
이건 그녀 나름대로 노력의 산물이었다.
“누, 누나 탈것 뽑았는데, 드라이브 갈래?”
“오, 그거 2인승이야?”
“응!!”
“그건 못 참지. 내 어릴 적 꿈은 원래 익룡이었거든. 인간은 지배 파충류로 진화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되었지만.”
“뭔 소린진 모르겠지만, 간다는 거지?”
“가자고, 어서.”
리지가 러셀을 붙잡고 마법 지팡이에 태우려던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사이에 끼어든 작은 설치류 수인의 존재감을 느끼고선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
“왜?”
“…….”
“뭐… 할 말이라도?”
미마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똥 마려운 다람쥐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얘가 무슨 일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던 리지는 불현듯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이건… 뭐라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무튼 여자의 직감이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 구도는 예전에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와는 뭔가, 뭔가가 다르다.
그때 미마의 표정은 분명 간식을 빼앗긴 애완 다람쥐 같은 것이었는데, 이건 마치… 연적…을 보는 듯한…?
설마, 그 미마가?
리지로서는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성역과 유적 탐사’ 동아리가 달베르크 산맥에서 사정없이 뒹굴고 있을 때, 여기서도 러셀과 미마 사이에 뭔가 불안하고 불길하고 불편하고 일어나선 안 될, 되먹지 못한 무언가의 사건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백번 양보해서 거의 로봇이나 다름없어 만사 아무 관심도 없었던 미마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세상만사엔 선이란 게 있고 이치와 도리란 게 있다.
명실공히 러셀에게 관심을 표한 건 자신이 가장 먼저였다.
물론 연애 전선이라는 게 선착순을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여자들 사이에서는, 특히나 친구 관계에서는 명확히 ‘교통정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괜히 ‘친구의 애인은 친척이다.’라는 말이 나도는 게 아니란 뜻이다.
애초에 전제부터 틀려먹은 내용이었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친구가 관심 있는 남자에게는 꼬리를 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에겐 강호의 도리이자 불문율 같은 것이란 말이다…!
하지만 평범한 귀족 영애인 리지의 상식이, 저 독특한 수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맞을까…?
여주 구원 서사를 즐겨 보긴 했지만… 설마 ‘쟁탈해야 하는 쪽’이 될 줄은 몰랐는데….
리지는 땀을 뻘뻘 흘리는 미마를 원망스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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