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93)
13. 학기말 평가
아카샤의 손에는 「마신군 분석 총론」 교재가 들려 있었다.
당장 아카샤는 B클래스의 상위권 생도. 필기시험만 제대로 쳐도 장학생을 노려볼 수 있는 위치인지라, 시험 기간이 가까워지자 저렇게 틈나는 대로 공부에 열중하곤 했다.
덕분에 지금 동아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이 늦은 그녀였다.
“세 사람, 뭐 하는 건데요?”
당최 이유를 알 수 없이 엉거주춤 서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며 아카샤는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
그러나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마법 지팡이를 바라보며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러셀과 마치 사탕으로 아이를 꾀어내 유괴하려는 표정의 리지, 아끼던 장난감을 빼앗기기 직전의 얼굴을 한 미마.
마지막으로 나서지도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에뜨랑제를 발견하고는 모든 정황과 상황을 단번에 파악해 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리지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미마의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에뜨랑제.
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난 무슨 싸움에 끼려고 했던 거지.’
과거 무도회 파트너를 정하기 위해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던 건 애들 장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흡사 초원을 방불케 하는 고양이, 아니 암사자들의 먹잇감 쟁탈전.
대귀족의 금지옥엽.
검성의 후계자.
1학년 전체 수석인 불세출의 천재 수인.
쟁탈전 주역의 면면을 살펴보니 이러했다.
정말 단순하게 나열하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앞이 아찔해지는 멤버들이다.
그에 반해 자신은 잘 쳐줘도 머라고라 농장의 영양제 1이다.
현실을 자각하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한 발짝 물러서게 되는 것이었다.
‘하하. 포기하자.’
애초에 그럴듯하고 삐까뻔쩍한 트로피용 남자친구를 얻으려 도전해 보기엔 목숨이 아까워지는 라인업이었다.
아카샤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보던 교재로 눈길을 돌렸다.
‘난 안 볼란다…….’
비단 묘한 기류를 눈치챈 것은 아카샤만이 아니었다.
농사 동아리 부원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다.
누군가 콕 짚어 선언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자 어느 정도 눈치챈 지점들이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 기묘한 대치를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던 그때, 돌풍의 중심에 있던 러셀이 미마의 양어깨에 손을 올리고선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뭐야. 너도 태워 달라고? 내가 먼저잖아, 이 날다람쥐야. 어디서 새치기야.”
그러고는 여기서 줄 서서 기다리라며 그녀를 뒤로 옮긴 뒤, 나뭇가지로 바닥에 선을 긋는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다분했으나, 지켜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기함할 만한 행동이었다.
* * *
“그래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 뭐야. 데나스가 합류한 게 정말 다행이었어. 아직 덜 친해지긴 했지만 뭐랄까 그 아이, 좋은 친구 같아.”
“그랬구만.”
리지는 신이 난 어린아이처럼 탐사 때 있었던 일을 보고하듯 조잘거렸다. 덕분에 2막 에피소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여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리지가 새로 뽑은 애마의 성능은 「테슬라 모델X」를 방불케 하는 승차감을 자랑했다.
가속, 감속, 승차감, 심지어 핸들링 감각까지 완벽했다. 분명 하차감도 끝내줄 거다.
‘개 부럽다.’
지구인 진세진일 때도 그럴듯한 자차 한번 가져 보지 못했던 러셀이었기에, 멋 폭발하는 마법 지팡이는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이거 마도사가 아니어도 조종 가능한 거야?”
“응? 에이,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마도사 중에서도 마력 감응도가 엄청엄청 뛰어난 천재 마도사만 시승할 수 있는 그런 아티팩트인걸?”
“그러냐…….”
러셀이 아쉬움이 뚝뚝 흘러내리는 얼굴로 대답했다.
“선배들을 제치고 내가 이걸 받아온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말씀이야!”
내 차 마련의 꿈은 이세계에서도 이룰 수가 없다…….
“그래도 타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만 해. 러셀은 특별히 아무 때나 태워 줄게!”
“그런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아무튼 고맙다.”
러셀의 아쉬움이 큰 만큼 리지의 만족도도 큰 모양인지, 그녀는 한껏 기분 좋은 듯 목소리 톤이 높아진 상태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농장 위 상공을 휙휙 비행하던 리지가 몇 번을 머뭇거리더니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있잖아, 러셀. 혹시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바짝 붙어서 꽉 잡는 게 좋겠어.”
“괜찮아. 떨어지면 뭐 낙법 쓰면 되지.”
“…….”
“왜 갑자기 고도를 높이는 건데?”
“그, 야. 경치가 좋으니까…….”
“대기권 밖으로 나가겠는데?”
어쩐지 갑자기 꽉 붙잡으라고 하더니 고속 드리프트를 선보이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러셀은 순식간에 아찔해진 비행 높이에 별수 없이 지팡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떼고 리지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실례.”
“으아어어어?”
그러자 갑자기 마법 지팡이가 고장이라도 난 듯 정신없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데. 네가 잡으라며?”
“그그그랬지……. 죄송합니다….”
“운전 좀 살살 해. 멀미 난다.”
“미안… 잠깐 집중력이 흐트러져서…….”
리지의 사과와 함께 정신없이 흔들리던 마법 지팡이가 곧 평온을 되찾았다.
승차감 좋다는 말은 취소다.
“비행이란 거… 나쁘지 않구나….”
“평소엔 맨몸으로도 잘 날아다녔잖아. 뭘 새삼스럽게.”
“미마랑은 무슨 일이 있었어?!”
갑자기 말을 돌리는 리지의 질문에 러셀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끄덕이며 대답했다.
“뭐, 제법 많은 일이 있었지.”
그녀가 탐사를 다녀오는 동안 있었던 일을, 너무 자세하지는 않으나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설명해 주었다.
미마의 성격에 제 입으로 설명해 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아예 함구하기엔 탐사 동아리 동기들도 알아야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확실히 같은 동아리 부원이다 보니까 이런저런 일을 많이 겪게 되나 보다. 그렇지?”
“뭐, 그렇기도 하지.”
간략한 설명을 들은 리지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러셀을 불렀다.
“있잖아.”
“안 돼.”
이 타이밍에 어떤 말을 꺼낼지 너무 명백했기에, 러셀은 칼같이 잘라냈다.
탐사 동아리는 아직 굴러야 할 사건이 많다.
“확 떨어트려 버릴까.”
“참아 줘라. 이건 진짜 최소 중상이거든?”
“…있잖아, 러셀. 넌 눈치가 없어?”
가운데 욕만 빠졌지, 대놓고 넌씨눈이냐 라고 물어보는 리지의 질문에 러셀의 말문이 막혔다.
리지는 더 자세하게 덧붙이지는 않았다. 그건 차마 넘지 못하는 선의, 귀족 영애의 자존심이었다.
“지금 이런 질문은 좀 이른 감이 있기는 해. 그건 나두 알아.”
“갑자기 뭔 말을 하려고.”
“그래도 궁금하니까 물어볼래. 혹시 러셀은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
리지가 무슨 의도로 질문을 던졌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이건 조금 오버하는 거다.
애초에 이맘때의 애들은 원래 다 그렇다.
누가 누굴 좋아한다더라, 누가 누구랑 사귄다더라.
한창때의 소년 소녀가 모여 있으니 그런 분홍분홍한 남녀상열지사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나, 러셀의 겉모습은 이래도 어쨌든 속 알맹이는 군필 육군 예비역 아저씨다.
정신 연령 차이도 제법 느껴지는 꼬꼬마들에게 그런 감정을 품는 건 생리적으로 무리였다.
게다가 도의적으로도 조금 불편하다. 애초에 휴고한테 성장에 집중하라고 채찍질을 한 마당에 누군가와 연애질을 한다?
그건 내로남불을 넘어 인성 논란이 재점화될 수도 있는 아전인수인 거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눈앞의 생존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 다른 데 한눈팔 여유 따윈 없다는 거다.
“삼촌 따라다니는 조카들 같은 애들한테 뭔 관심.”
생각해 보니 진짜 그렇긴 하다.
낯가리는 조카.
‘같이 놀아줘’, ‘사고 쳐 줘’ 하는 조카.
‘싸워 줘’, ‘복수해 줘’ 하는 조카.
…이거 무슨 육아물이냐?
“애늙은이 같아.”
리지는 안심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괜히 심술이 나 마법 지팡이를 흔들었다가 러셀이 더 꽉 껴안는 바람에 둘 다 떨어질 뻔했다.
* * *
7월.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의 초입이자, 사관생도들에겐 지옥이나 다름없는 시험의 달이다.
누군가에겐 딱히 뭘 배운 것 같지도 않은 시간임과 동시에 누군가에겐 재능을 꽃피우기에 충분한 시간.
그야말로 재능의 부익부 빈익빈이 도드라지는 계절.
이제 어느덧 생도들끼리 친해져 캠퍼스물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경쟁이 주는 열기는 치열했다.
훈련장은 실내, 실외 할 것 없이 늘 만석이었고 학사 도서관도 필기시험을 대비하기 생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학구열은 전염병과 같다.
지금까지는 굳이 티 나지 않게, 요란스럽지 않게 남들 몰래 스스로를 담금질하던 생도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슬슬 퇴학에 대한 압박감이 몰려오는 시기라, 겸손이 미덕이었던 분위기는 금세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변모했다.
특별반 장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라갈 곳은 까마득하게 멀고 내려갈 곳은 바로 발밑에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게 바로 특별반이다.
그들 중 누구도 특별반에서 퇴출당하는 1호 생도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연속되는 나날들이었다.
시험의 압박은 러셀에게도 있었다.
비록 전공필수 3과목을 모두 이수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필기 과목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가로막히고 만 것이었다.
“작가 개새끼…….”
러셀은 자아 성찰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으며 시동무기에 가까운 교재들의 책장을 넘겼다.
「기갑병기의 이해」
「권능의 이해」
「마신군 분석 총론」
세 과목은 철저하게 필기시험 중심의 과목들이다.
기갑병기 파츠들의 부품 명칭이나(필기 노트에 ‘이 개 같은 나사 이름들’이라는 낙서가 선명하다.) 손질 순서, 재원이나 출력 수치 따위의 숫자를 달달 외어야 하는 과목.
대륙에 존재하는 수천, 수만 가지의 권능의 이름과 성능을 외워야 하는 과목.
그리고 끝도 보이지 않는 마신군 정보를 총망라한 과목까지.
아무리 팬픽의 작가라지만, 그가 설정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 전개에 필요한 부분에 한해서였다.
전체 시험 분량으로 따지면 고작해야 5% 남짓.
시험 범위도 악랄하여서 족보 같은 건 쓸모도 없고, 공부를 돕겠다며 같이 도서관에 들어와 놓고 엎드려 처자고 있는 천재 마법사도 별 도움 되지 않는다.
때아닌 벼락치기에 러셀은 탈모가 올 것만 같았다.
* * *
7월 1주 차 필기시험 주간.
러셀은 학년필수 3과목 총 300문항 중에서 21개를 틀렸다.
시험 난이도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기염을 토했다고 봐도 무방한 결과였다.
가채점을 마치고선 러셀이 소리 없는 포효를 내질렀다.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은 틀리지 않았다…!
7월 2주 차 실기시험 주간.
전공필수 과목들은 대부분 이수한 상태여서 시험을 쳐야 하는 과목은 「살수학」이 유일했다.
어쨌든 이것도 전투와 관련된 시험이니 크게 걱정되는 부분은 없다.
수련동의 대강당들에서는 포효와 환호성이 뒤섞여 터져 나오는 중이었다.
이미 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수료 마친 상황.
지금까지 강의에 남아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하위권은 확정인 셈이다.
조기 수료권을 받지 못한 패배자들끼리 남아 누가 누가 더 깔개인가를 시험하며 최약체를 가리는 X밥 싸움이 묘미인 게 실기시험이다.
러셀은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전부를 상대해도 이길 것 같은 수준의 생도들을 훑어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상대와 접전을 벌이는 코리를 발견하곤 묵념했다.
‘힘내라…….’
제발 [소울 연공법]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를…….
러셀은 진심 담긴 응원을 속으로 보낸 뒤 「살수학」 실기 시험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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