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ro in the military academy suit RAW novel - Chapter (94)
13. 학기말 평가
학사 부지의 대부분은 공지(共地)다.
특히 해안을 따라 넓고 야트막하게 펼쳐진 둔덕 인근은 생도 대부분이 접할 일 없는 다양한 공공장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학기마다 「살수학」 실기 시험장으로 사용되는 부지도 마찬가지다.
분명 익숙한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은 시험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두 줄의 붉은 천으로 영역이 표시된 시험장 입구에는 39명의 수강생이 어수선하게 모여 있었다.
아무리 「살수학」이 비인기 전공이라 해도 상당히 적은 수였다.
전공 관련 강의가 하나뿐인 걸 감안하면 더더욱.
교수만 9명에 달하는 「무기술」 검 부문 강의와 비교해 보니 더없이 초라한 구성이다.
‘애초에 도적 클래스 지망생은 전체 생도의 1%도 안 되긴 하지만.’
매해 수강생이 없어 클래스가 열리지도 못하는 마법부의 흑마법 강의와 비슷한 취급이다.
세간의 평가와는 별개로 내게는 제법 만족스러운 강의이긴 했다. 쉽게 접하기 힘들고 실전에서 유용한 잔기술들을 많이 가르쳐 주었으니.
“실기시험을 시작하기에 앞서 규정과 평가 기준을 설명하겠습니다.”
인원 파악을 끝낸 교수가 설명을 시작했다.
“시험 방식은 단순합니다. 시험장 내에 몸을 숨기고 은신하여 있다가, 목표물이 접근하면 기습하여 왼쪽 허벅지나 오른쪽 팔뚝에 찬 완장을 베어낸 뒤 도주하여 이곳에 도착하면 됩니다.”
「살수학」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험 방식이었다.
교수의 눈짓을 받은 고학년 생도 조교들이 수강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준비 시간은 1시간입니다. 여러분께 지급된 지도 아래에 목표물의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으니 숙지 바랍니다.”
유인물의 위쪽에는 시험장의 평면도가, 아래쪽에는 조교 5명의 프로필이 간단하게 적혀 있었다.
이름, 인상착의, 1학년 입학 당시 성적 그리고 주요 사용 권능 1개.
주어진 정보는 그게 끝이었다.
“시험에 앞서 여러분에게 강의 내용을 반복 설명하겠습니다. 암살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무 완수, 그리고 생존입니다. 평가 기준은 평소 수강 시 설명했던 일류, 이류, 삼류 암살자의 기준을 따릅니다.”
내 머릿속에 교수가 역설했던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암살 대상을 사살하고 목표 지점까지 무사히 탈출하면 일류다.
암살 대상을 사살했지만, 퇴각하지 못하고 사망하면 이류다.
암살 시도도 못 해 보거나 암살 시도에 실패해서 죽거나 붙잡히면 삼류다.
암살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생존이다.
그것이 이 강의에서 학기 내내 역설한 수칙이었다.
수강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가 기준은 일류, 이류 암살자들은 임무 수행이 빠를수록, 삼류 암살자들은 오래 살아남을수록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목표물과 내 역량을 정확하게 비교 분석하여 살아남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 점수 배분 기준은 만점부터 줄 세워 내려가는 상대평가라는 점을 참고해, 각자 맞는 전략을 수립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교수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마치 겁을 주듯 뒷말을 이었다.
“지난 강의에서 일류 암살자는 한 명, 이류 암살자는 두 명뿐. 나머진 모두 삼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직 삼류 암살자인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없다면 꼭꼭 숨도록 하세요.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꽤나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준 뒤, 교수는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시침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전 준비 시간은 1시간 드리겠습니다. 시험장 밖으로 벗어나면 0점입니다.”
모든 설명을 끝낸 교수가 시험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받겠다고 덧붙였다.
몇몇 수강생이 시답잖은 질문을 하는 사이, 나는 [간파의 눈]을 켜 조교들과 수강생들의 면면을 살폈다.
영웅으로서는 몰라도 암살자로서 재능 있는 생도들은 몇몇 보인다.
그들도 나와 같이 1, 2등을 노리려 하겠지.
만점은 전체 1등, 한 명뿐이라는 조건은 전공선택 과목치곤 까다롭지만… 일단은 할 만하다는 판단이 든다.
역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느껴진다. 유일한 특별반 장학생을 최대의 경쟁자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수업에서만큼은 특별 대우를 받거나 교수에게 주목받아 본 적 없는 것 같은데도 매번 이런 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장학생 체면이 있지, 저런 놈들한테 질쏘냐.’
1등을 양보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나는 다른 수강생들의 질문이 얼추 끝날 때를 맞춰 손을 들었다.
“만약 암살에 실패해서 정면 승부로 상대를 제압하면 어떻게 됩니까?”
일견 교만해 보이기까지 한 질문.
하지만 꼭 해야만 했던 질문이다.
“상관없습니다. 결국, 도적이란 클래스는 무엇보다 목표 지향적인 클래스니까. 단검 시카가 현재 대륙에서 유일하게 암살 조직이라는 현판을 내걸고도 멀쩡할 수 있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살수학을 사용하지 않고도 목표를 이룰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고학년이긴 하지만, 암습에 실패하면 권능과 소울을 활용해 힘으로 찍어 눌러도 된다는 소리였다.
「살수학」 실기평가는 무기술이나 체술과 달리 권능과 소울 사용을 막지 않는다.
딱히 막지 않는다는 건 마음껏 사용하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도적 클래스 지망생들은 암살, 추적, 수색, 은신, 기습 등등의 재능이나 권능을 지녔으니까.
대표적으로 내 [그림자 걷기]가 그렇다.
지금은 그저 어둠 속에서 은밀함과 민첩성을 키워 주는 정도라지만, 대성을 이룬 순간 그림자와 그림자를 쏘다니며 순식간에 상대방의 뒤를 잡을 수 있는 암살에 최적화된 권능이 된다.
견적 내기를 끝낸 뒤 다시 손을 들었다.
이번엔 필요한 질문이라기보다는 도발이다.
“목표물의 팔다리를 잘라도 임무를 완수할 걸로 인정됩니까?”
“…….”
미친 사람을 보듯 경악하는 생도들. 이번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조교들마저 인상을 구긴다.
미친놈인가?
진짜 존나 선 넘네.
지가 장학생이면 다야?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퍼졌다. 순식간에 악의 넘치는 조롱이 등 뒤를 향한다.
‘더 흥분해라. 꼬꼬마들.’
흥분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마비된 이성은 실수를 낳는다.
특히나 그 광역 도발을 시전한 자가 견제와 선망의 대상인 장학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도적 클래스를 희망하는 한 앞으로 지겹도록 만날 놈들.
나는 이 클래스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앞서 나갈 생각이었다.
‘엑스트라가 힘을 숨김’이나 ‘힘을 숨긴 찐따’를 할 마음은 없다.
겸손은 미덕이 아니다.
사관학교는 오로지 성적 만능주의.
학기마다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영약과 권능석을 퍼주는, 그야말로 벌어진 차이를 직접 손가락을 쑤셔 넣어 더 벌려 주는 능력 만능주의의 세계다 이 말이다.
내 도발의 의도를 깨달은 단 한 사람만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동조할 뿐이었다.
“상관없습니다. 부상을 대비해 실력 있는 정령사가 대기 중이니. 다만.”
교수는 턱짓으로 한쪽에 대기 중인 실기시험 지원 인력을 가리켰다.
“잘린 팔다리는 직접 들고 오세요.”
구시렁거리던 수강생들의 주둥이를 단번에 닫게 만드는 한마디였다.
역시 암살자들을 길러내는 교수다운 배포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수강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시험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암살자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수칙. 첫째는 지형을 아는 것. 둘째는 상대를 파악하는 것.”
나는 조급하지 않게 널따란 시험장을 꼼꼼히 살폈다.
수풀, 나무, 바위, 늪지, 개울, 모래언덕, 쓰레기더미까지.
시험장은 한눈에 봐도 인공적으로 은신처들을 곳곳에 만들어 놓은 흔적이 역력했다.
붉은 천이 처진 범위도 넓어서 마음먹고 숨으면 몇 날 며칠이고 은신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공간들.
‘너무 맛있어 보이는 곳투성이네.’
하지만 딱 숨기 좋은 곳들은 역설적으로 이곳에 숨었다고 의심받기도 쉽다. 특히나 인공적으로 만든 엄폐물들은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
시험장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눈여겨본 괜찮은 은신처는 서너 군데 정도였다.
‘일단 방향부터 정해야 해.’
숨을 것이냐, 암살할 것이냐.
숨을 거라면 가장 은밀한 곳을 골라야 하고, 암살할 거라면 가장 기습하기 좋은 곳을 골라야 한다.
목표물은 전투력 500대의 선배 생도들. 가시적인 전력은 약간 열세긴 하지만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전력 차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석대로라면 정보지의 힌트를 보고 가장 사냥하기 적합한 타겟을 설정한 뒤 기다리는 게 맞지만, 조교 중 누구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시간.
다섯 명의 조교가 모두 내가 숨은 은신처 근처를 지나가리란 보장이 없다.
‘무조건 첫 번째로 접근한 타겟을 잡고 집결지로 퇴각한다.’
만점에서 -1점도 용납할 수 없다.
나는 평평한 초원형 지대 위, 고목 한 그루만 솟아있는 의미심장한 지형에서 바닥에 발을 몇 번 굴려본 뒤 지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 * *
“1시간 되었습니다. 조교들은 시험을 시작하세요.”
교수의 지시가 떨어지자 5명의 조교가 시험장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수석 조교 그라파는 1시간 전, 집결지에서 건방을 떨던 신입생을 떠올렸다.
“목표물의 팔다리를 잘라도 인정됩니까?”
자신감이 사관생도의 미덕이라지만, 저건 단단히 선을 넘었다.
조교들은 명백히 그들의 선배.
적합한 대접과 예우를 보임이 마땅하다.
적어도 그가 1학년일 때는 그랬다.
시험을 보조해 준 선배들에게 시작 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시험이 끝난 뒤 직각으로 허리를 접으며 수고했다고 시험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게 신입생의 자세란 거다.
‘네놈은 내가 잡아 준다.’
그는 생도 기간 내내 도적 클래스에서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다.
비록 장학생을 해 본 적도 없고 실전 전선에서 이탈해 교육기관에 몸담기로 결정했지만, 나름대로 교수의 눈에 들어서 졸업 후 차기 조교수로 낙점된 상태.
시건방진 신입생을 참교육해 주기엔 자신만 한 적임자가 없다고 판단하는 그라파였다.
‘시험장 초입에 은신한 생도는 없겠지.’
안정성만 생각하면 가급적 시험장 깊숙한 곳에 숨어드는 게 정석이다. 5명의 조교가 동시에 출발하는 초입은 그만큼 은신이 발각될 확률도 올라가니까.
시험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조금씩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애들 쓰고 있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몇몇 생도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7월의 한낮이다.
가만히 있어도 몸에서 열기가 뿜어지고 땀이 주르륵 흐르며 호흡이 가빠져 오는 날씨다.
호흡을 죽이고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하는 은신술도 한 시간이면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라파는 곧바로 생도들을 타격하지는 않았다.
조교에게도 시험의 수칙이 있었으니까.
기본도 안 된 수강생들부터 탈락시킨다.
우선 전반적인 수강생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은신술이 미흡한 수강생을 순서대로 탈락시킨다.
어디까지나 시험이자 평가다.
살수학 전공과목의 조교로서 공정한 평가를 할 의무가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건방진 수강생이 먼저 조교를 사냥하려 들 경우.
스스스스….
사사사삭!
“어딜!”
그라파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수강생을 향해 품속에 있던 단검을 날렸다.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품 넉넉한 소매에서 날아간 단검은 코앞에서 기습하려던 수강생의 어깨를 꿰뚫었다.
일격에 치명상이다.
겁 없이 덤볐던 수강생은 곧바로 선혈을 내뿜으며 비명을 쏟아냈다.
‘만만히 보일 줄 알았다니까.’
그의 입학 당시 성적은 F반.
주력 권능은 [장거리 사격 보정].
그라파는 사수에서 도적으로 클래스를 옮긴 케이스다.
즉, 단편적인 정보만 믿고 덤벼드는 생도들을 솎아내기 위한 이번 시험의 함정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