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마왕과의 전투가 끝난 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마법사와 엘프들이 땅을 뒤집고 갈아엎으며, 마기로 오염된 땅을 최대한 정화했다.
오크 주술사들은 수많은 전사자를 수습하고 위령제를 지내며 떠난 이들의 넋을 달랬다.
전투는 끝났지만, 그 여파는 후유증이 되어 아직 그들에게 남아 있었다.
부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제들은 치료소를 바쁘게 뛰어다녔다.
악마의 군대가 진군하며 날뛴 마수들, 무너진 도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넘쳐났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달랐다.
전투에 참여한 이들을 기리기 위한 연회가 열렸다.
요새의 공터에서 펼쳐진 연회에는 수많은 음식이 깔렸고, 몇십 통에 달하는 술들이 늘어섰다.
기사나 용병, 병사. 누구랄 것 없이 만찬을 즐겼고, 술을 마시며 활짝 웃었다.
“으음?! 이 스튜는 뭐야? 고기가 하나도 없는데, 천상의 맛이잖아? 이, 이거 누가 만든 거야?”
“응? 그거라면······ 아! 지미라고, 세이비어 결사단의 요리사가 만든 거일걸?”
“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맛이야······. 이, 입단할까?”
“······너, 용병 은퇴한다고 안 했었냐?”
누군가는 만찬을 즐기며 휴식을 즐겼고.
“달려든 마수에게 칼이 부러졌죠. 아, 이대로면 죽겠구나─ 싶은 그때! 기사님이 나타나셨죠!”
“하하하! 이 친구 말 재미있게 하는군. 혹시 자네······ 내 밑에서 일해볼 생각 없나?”
누군가는 새로운 만남을 얻기도 했다.
“크헝헝! 조지, 이 친구야! 고향 가서 마누라 호강시켜준다며! 끄으으윽.”
누군가는 술을 들이켜며 떠나간 이를 추억하기도 했다.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단연코 가장 뜨거운 감자라 한다면······.
“······제이드 백작이지.”
“······제이드님이지.”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이야기했다.
악마의 군대를 뚫고서, 마계의 군주를 쓰러트린 자.
새롭게 탄생한 마왕을 대적한 자.
끝내 마왕을 쓰러트리고 대륙을 구원한 자.
그들에게 있어 제이드는 영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제이드 경은 어디 가신 거지?”
“그러게? 오늘 하루, 어디에도 안 보이던데?”
그런데 제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제이드 어디 갔어?”
이네스의 주홍빛 눈썹이 구겨졌다.
동시에 이네스가 드레스의 치맛단을 구겼다.
연회라고 해서 기껏 드레스를 준비해서 입고 나온 이네스였다.
어색하면서도 답답한 걸 참고서 제이드를 보러왔건만······.
연회 어디에도 제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요새 내부의 집무실이나 방에도 없었다.
“야, 너희들. 제이드 어디 갔는지 알아?”
이네스는 연회 한가운데에서 이야기하는 단원들과 카일 일행을 향해 물었다.
“응? 제이드? 제이드라면 아마······.”
그렇게 말하더니 일제히 성벽 바깥을 바라보았다.
* * *
“지금쯤 연회 시작했으려나?”
나는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락. 사락.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곳곳의 수풀이 발에 흔들렸다.
나는 현재, 거인의 대수림에 와 있었다.
“너도 거기 있었으면 맛있는 거 많이 먹었을 텐데. 괜찮겠어?”
내 옆을 호위하듯 지키는 칼라마르의 목을 긁으며 물었다.
크릉!
녀석은 이게 더 좋다는 듯 뜨거운 콧김을 내쉬며 얼굴을 흔들었다.
“네가 좋다면야 뭐······.”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안으로 나아갔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퀘스트 ‘종막’을 클리어했습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 거인의 대수림으로 와주십시오.]시스템을 통해 내게 지시를 내렸던 존재들.
그들이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 순간 주변의 수풀이 넓어지더니 익숙한 공간이 드러났다.
거울 같은 은빛 호수와 넓은 공터.
과거, 숲의 요정을 만났을 때 그 장소였다.
그리고 그 자리엔 그때처럼 나무뿌리로 만든 의자에 숲의 요정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나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검은 별의 아이야, 드디어 왔구나.”
“그건 제가 해야 할 말 아닙니까? 그때, 말없이 사라져서 얼마나 당황했는데.”
“그때는 마왕의 봉인을 안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단다. 수많은 차원을 이동하며 만들어 낸 결실이었으니까, 조금도 실수해서는 안 됐거든.”
내 말에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입꼬리를 구기며 말했다.
“그리고······ 그때는 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으니까. 몸이 다 낫기를 기다렸단다.”
“그럴 거면연회 날이라도 겹치질 말던가.”
나는 투덜거리듯 말하며, 숲의 요정이 만들어 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그러면······ 이제 알려줄 때가 된 것 같은데요?”
“당신들의 정체. 그리고 이 시스템은 뭔지.”
그리고······
“······나는 왜 이 세계에 떨어졌는지.”
지난 전투에서 망령왕이 말했었다.
마왕을 막기 위해 몇 번의 차원을 거듭했다고.
“이 정도로 움직여 줬다면, 그 정도 정보는 알아도 되지 않아요?”
내 말에 숲의 요정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렇구나.]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역시······ 시스템은 요정들과 관련이 있던 건가.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숲의 요정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짓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래. 먼저 그게 좋겠구나.”
그리곤 내게 말했다.
“우리는 한때 이 땅에 존재했던 고대의 종족이 만들어 낸 인공 종족이란다.”
“인공 종족?”
“그래, 특수한 정령에 가깝다고 보면 되겠구나.”
“······당신들을 만들어 낸 존재들이 있다고?”
나는 요정의 설명에 깜짝 놀랐다.
눈앞의 요정은 시스템을 이용하고 영계를 다루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들을 창조한 고등한 종족이 있다니······.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럼, 왜 그들은 우리를 방관한 거지?
도울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들은 누구지? 아니, 어디에 있지?”
내 물음에 요정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저었다.
“알아봤자 소용없단다. 이미 그들은 멸망했으니까.”
나는 그 말에 흠칫 놀랐다.
“멸망······ 했다고?”
“그래.”
요정은 잠시 우수에 찬 표정을 짓고는 천천히 입을 뗐다.
“그들은 바로 악마들이란다.”
“······뭐?”
나는 그 말에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악마가 갑자기 왜······?”
“찬란한 문명을 피워냈던 그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어느 날 차원을 넘어온 사악한 힘을 마주하고 말았지.”
“마기.”
“그래, 그들은 마기에 오염되어 변이되었단다. 뛰어난 지능은 사라지고, 살육과 피만을 탐하는 괴물이 되었지.”
“그게 바로 악마라는 건가······?”
요정이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이 너희가 잘 아는 악마들이란다. 라웨굴도 그중 하나였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왜, 그들은 막지 못했지?”
“그들은 막으려고 했단다. 악마로 오염되기 전에 말이야. 너도 보았을 텐데? 가장 찬란한 별, 흑암성 말이야.”
그녀의 말에 나는 머릿속 기억을 떠올렸다.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
그 어느 지점을 찢고 나타난, 끈적하고도 새카만 이질적인 기운.
그걸 아주 새하얀 별이 흡수하고는 흑암성이 되지 않았던가.
“기억은 합니다만······. 그 뒤로 흑암성이 산산 조각나서 대륙에 떨어진 거였죠?”
“잘 기억하는구나.”
요정은 내 말에 맞장구를 치듯 고갤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막지 못한 마기는 그들을 악마로 만들어버렸지. 악마들 사이에선 마왕이 탄생했고. 마왕은 그 세계를, 차원을 멸망시켜버렸단다.”
하나하나가 충격적인 말들 뿐이었기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점이 들었다.
‘멸망? 차원이 멸망했다고? 그러면 지금은?’
내가 고갤 들자 기다렸다는 듯 요정이 고갤 끄덕였다.
“네 짐작이 맞단다. 차원을 멸망시킨 마왕은 다른 차원을 뚫고 넘어가려 했지. 침공을 말이야.”
그 순간, 요정의 말이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외우주에 찢긴 균열.
이내 넘어오는 마기.
그리고 또다시 멸망하는 세상.
그 모든 게, 반복되어 온 건가?
“······그렇다면 마왕은? 왜 마왕은 넘어오지 않은 거지?”
“못한 거야. 마왕은 차원을 넘어가는 데 실패한 거란다.”
그녀는 잠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왕과 악마들의 근원인 ‘마기’라는 힘은 차원을 넘어가는 데 성공했지만, 그들의 육체는 버티지 못했어. 그들의 이지와 지식은 파편이 되어 간신히 넘어갔지.”
요정은 설명을 이어 나가며 손짓했다.
그러자 푸른 마력이 도화지처럼 펼쳐지더니 하나의 물체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게도 너무나 익숙한 그림이었다.
마왕, 마이어스가 다루던 악마의 서.
“······레메게톤.”
“그래. 이때부터 많은 차원이 멸망을 반복했단다. 고대 종족은 마기를 막는 데 항상 실패했고, 악마로 전락했지.”
그녀는 잠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낸 정신체. 차원이 멸망하면 다음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 그래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이것이 요정들의 정체였다.
수많은 시간 동안 수많은 차원을 넘어가며 멸망에 대비하는 이들.
“······당신은, 얼마나 많은 멸망을 겪은 거죠?”
“후후. 정말로 알고 싶니?”
“······모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숲의 요정이 묘한 미소를 짓자,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아득히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멸망을 피할 방법을 찾고, 강구해왔다는 거란다.”
내 모습에 피식 웃은 그녀는 설명을 정리했다.
“그렇게 멸망한 차원에서 일어난 정보와 영혼들을 계속해서 수집했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새로운 대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지. 악마의 탄생을 막을 수 없다면, 악마들을 없앨 초인을 만들기로.”
이어진 그녀의 설명에 나는 바로 이해했다.
초인.
그 뜻을 조금만 바꾼다면······
“······용사. 로군요.”
“그래. 흑암성의 힘을 조종할 수 있는 초인. 용사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었지.”
그다음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망령왕, 그리고 카일.
이 둘이야말로 그 힘을 다루기 완벽한 초인이었을 테니까.
다만 나는 여전히 찜찜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왜 제가 된 거죠?”
나는 저들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는 존재다.
그런데 갑자기 이곳으로 떨어졌다.
“그건 우리의 두 번째 계획도······ 초인을 육성하는 데에도 실패했기 때문이란다.”
내 물음에 요정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초인 역시 이 세계에 귀속된 존재. 마기를 온전히 이겨내는 건 불가능했단다. 초인들은 악마들과 싸울수록 영혼이 오염되었고, 끝내 미쳐버리거나 악마가 되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는 일종의 바이러스다.
세상을 집어삼키고 오염시키려는 바이러스.
수많은 차원을 반복해 집어삼키며, 이 차원을 오염시키는 데 특화되었겠지.
그건 카일도, 망령왕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이상, 바이러스가 오염시키기 쉬운 숙주일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아예 결정했단다. 이 세계에 귀속되지 않는, 완전히 다른 이계의 영혼을 데려오기로.”
나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히 외부에서 온 존재.
그렇기에 마기의 오염을 버틸 수 있는 존재.
일종의 백신.
“그런 거였나.”
나보고 세계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아서 특별한 거라고 했던 말들.
그제야 과거, 요정들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 별의 아이야. 네게는 정말 큰 빚을 졌단다. 너는 순환되었던 멸망의 고리를 끊어냈고, 차원을 구해냈어.”
내가 중얼거리고 있자, 숲의 요정은 고개를 숙이며 말해왔다.
“그리고 네게 이 세계에 속하지 않게 한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단다.”
“다른 이유라면······ 아, 보상.”
“그래. 그게 내가 너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란다.”
말을 마친 요정이 손짓하자 내 시야로 하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귀환하시겠습니까?]귀환.
나는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곤, 요정을 바라보았다.
“제 생각이 맞다면 이건······”
“그래. 너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단다.”
그 말에 나는 흠칫했다.
‘돌아갈 수 있다고?’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이 계속해서 떨렸다.
1회차 당시.
오래도록 꿈꿔왔던 소원.
다시 지구로.
평화로웠던 그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그 기회가 지금 바로 앞에 있었다.
“네가 선택할 수 있게 해줄게.”
요정이 나를 향해 물었다.
[귀환하시겠습니까?]나는 잠시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신중히 생각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