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시간이 흘렀다.
마계의 침략을 저지하고, 마왕을 제거하고, 악의 굴레를 끊어낸 날로부터 3년이 지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륙의 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패권국이었던 제국은 쇠락했다.
제국이란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악마의 침공에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기에 결국 힘을 잃었다.
갈 곳 잃은 난민이 들끓었고, 혼란이 찾아왔다.
그 혼란을 정리한 건 새로운 세력이었다.
오르투스 연합.
특정 권력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권력이 아닌, 대륙의 국가 전반과 각 종족의 수장들이 협정하며 만들어진─ 어쩌면 대륙 역사상 최초의 국제연합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총 세 가지.
첫째, 마계의 침공으로 황폐해진 대륙을 복구하는 것.
둘째, 대륙에 숨어든 악마와 마수, 흑마법사를 척결하는 것.
마지막으로, 마계의 정화 작업이었다.
많은 국가가 연합에 참여하고 또 그들을 원조했다.
그 덕분에 대륙을 뒤덮었던 혼란의 불길은 빠르게 사그라들었고,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사막의 샌드 윈드스는 인간과 오크들이 공존하는 새로운 국가로 인정받았다.
생명의 숲속 엘프들은 숲을 개방하며 손님을 받아들였다.
제국은 힘을 잃었지만, 안정을 되찾았다.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곳, 도시 에스트콕의 아침도 그러했다.
마누스 왕국 동부, 델토로 백작의 영지.
수탉의 울음이 새로운 하루를 알리며,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도시 곳곳의 사람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고, 고요했던 아침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찾았다.
“자자! 골라 보세요! 여기 질 좋은 사과가 있습니다! 하나 드셔보십쇼!”
“왈투스 사막에 가보실 분은 이 옷을 사보십쇼! 더위는 그냥 막아줄 겁니다! 오크들이 직접 만든 가죽도 있어요!”
“거기 인간! 내가 만든 도끼를 사지 않겠나? 단돈 5실버면 넘겨주겠다.”
거리 곳곳에서는 인간과 오크들이 물건을 팔았고, 무역상들이 물건을 골랐다.
과거, 조용하고 한적했던 도시는 이곳은 이제 마누스 왕국을 대표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마누스 왕국과 사막의 샌드윈드스의 접경지. 그리고 사막을 건너가면 헬리오스 제국과 생명의 숲이 이어진다. 교역의 중심지로서, 동시에 오르투스 연합의 본거지로서 성장한 것이다.
델토로 백작은 영지의 유례없는 성장에 기뻐할 시간도 없이 바쁜 업무에 시달렸다.
도시에 찾아온 관광객들은 하나 같이 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과거, 마왕의 군대와 맞서 싸웠다던 전설적인 집단, 세이비어 결사단.
지금은 해체되어 사라진 이들 중 한 사내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두리번거리던 관광객이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일행에게 물었다.
“지미의 솥뚜껑이 이 도시에 있다고?”
“그래, 여기라니까? 기대되지 않아? 대륙에서 가장 위대한 식당이라고 소문났잖아.”
과거, 대륙을 구했던 세이비어 결사단.
그 일원이었던 지미가 차린 레스토랑이 바로 ‘지미의 솥뚜껑’이었다.
그 뛰어난 손맛과 음식의 퀄리티는 과거, 황제의 요리사였던 게럴드 램지조차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고 한다.
어찌 기대되지 않겠는가?
“어서 빨리 가자고! 거기 스튜가 장난 아니게 맛있다고 들었단 말야.”
관광객은 일행들을 재촉하며 길거리를 뚫고 지나갔다.
도시의 광장에 들어서자 수많은 인파가 바글거리는 게 보였다.
곳곳엔 노점들과 구경꾼들로 들어서 있는 게 축제라도 열렸나 싶었다.
관광객은 과일을 파는 노점의 상인에게 물었다.
“저기 뭐 하나만 물읍시다. 혹시 축제라도 열린 겁니까?”
“응? 자네 정말 모르는 건가? 내일이 마왕을 격퇴한 지 3주년이지 않나!? 그 기념으로 작년부터 축제를 열고 있지. 이름하여 영웅의 날이라네!”
“그, 그랬나요? 하하, 잘 몰랐네요.”
“크흐흐. 재미있게 즐기라고. 이번 축제는 역대급이 될 거라고 영주께서 직접 말할 정도였으니까.”
클클 웃는 상인을 보며 관광객은 타이밍을 잘 맞춰왔다고 생각했다.
“응······? 저, 저건 뭡니까?”
그러다 문득 광장 한 가운데의 커다란 기계를 보았다.
곳곳에 푸른 마석과 실린더가 박힌 기계였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문과 같았다.
심지어 도시의 성문보다도 입구가 커다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응? 저거? 저건 나도 잘 모르겠네. 무슨 워프인지 게이트인지, 대륙 다른 곳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으로 올 수 있다던데?”
“다른 곳이랑 연결된다고요? 그게 어떻게 돼요?”
“나야 모르지! 푸른 마탑이랑 드워프? 뭐시긴가 만든 거라더군. 내일 시연식이 있을 예정이라더군.”
관광객이 노점상과 이야기하는 그때.
그 정체불명의 기계, 워프 게이트의 설치를 끝낸 마리온이 구슬땀을 닦았다.
“다 됐다!”
“거, 애송이. 손이 너무 느리다.”
“에이. 뭘 느려요. 영감님도 방금 끝나는 거 봤는데.”
“크흠! 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 옆에 팔짱을 끼고 있던 헤파이토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었다.
“에잉, 쯧! 버르장머리 없는 놈! 이래서 내가 인간 놈은 함부로 제자로 안 받는데! 다그너! 다그너 놈은 어디 있어!?”
“다그너 스승님은 지금 마석 가지러 갔을걸요?”
“끄응. 미리 좀 할 것이지. 젊은 것들이란.”
마왕과 악마들이 사라진 지금, 결사단 세계관측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그로써 다시 대장장이로 복귀한 헤파이토는 마리온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연구한 마법 공학을 바탕으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고대 드워프들의 기술을 복구하고 재현하는 게 목표였고, 또 많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마석만으로 비공정을 만들었고, 여러 아티팩트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역대급이 되리라고 그는 자부하고 있었다.
“워프 게이트. 이것만 있다면 대륙은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게다.”
푸른 마탑과 협업하며 만들어낸 마법 공학의 결정체.
내일이면 그 결실을 두 눈으로 볼 시간이었다.
“게이트의 설치는 끝났나요?”
애정 어린 눈으로 레버를 쓰다듬는 그때.
마리온과 헤파이토를 향해 푸른 로브의 소녀가 다가왔다.
도로시였다.
“도로시! 워프 게이트의 마석 반응은 어때?”
“문제없어. 아마 대륙 안에서는 쉽게 연결될 거야.”
“휴우, 다행이다. 그러면 네 마탑주 승급도 문제가 없겠구나?”
지난 3년간 도로시는 수많은 연구와 실적으로 푸른 마탑 내에서도 차기 마탑주 후보에 올랐다.
마탑을 이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는 비판이 많았으나, 그녀의 마법적 재능과 통찰만큼은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워프 게이트가 정식으로 출범한 뒤에는 마탑주 확정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었다.
그런데 마리온의 말에 도로시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표정이 안 좋은데 괜찮아?”
“마탑주에 오르면 할 일이 너무 많아지더라고······ 가뜩이나 연구로 바쁜데······.”
어째서 스승인 듀크마가 은퇴하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는지, 이해해버린 도로시였다.
하아.
한숨을 쉰 도로시가 마리온과 헤파이토에게 말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약속 시간도 다 됐어.”
도로시는 두 사람을 데리고 음식점으로 향했다.
“다, 다그너 스승님은?”
“알아서 올 거야. 미리 얘기해놨어.”
광장 바로 근처에 자리한 레스토랑.
지미의 솥뚜껑이었다.
“여기는 볼 때마다 신기하네.”
집 다섯 채는 합친 듯한 규모에 도로시가 혀를 내둘렀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예약한 손님만으로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일주일 전에 예약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오열하는 관광객이 보였다.
도로시는 그걸 보며 중얼거렸다.
“여기가 그렇게 인기 있었나?”
“당연하지! 지미가 만든 음식은 말도 안 되게 맛있잖아?”
“음······ 요즘은 끼니만 대충 때우는 식이라서.”
식당에는 손님들이 스테이크와 스튜를 즐기고 있었다.
그중 몇몇 사람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그 모습은 사실, 다소 기이할 따름이었다.
“지미가 음식이 무슨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우리도 처음 먹었을 때 엄청 감동했잖아? 그때는 심지어 전장에서 부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이었는데.”
도로시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마리온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셋은 줄을 서지 않고, 곧장 VIP 테이블로 향했다.
VIP테이블에는 먼저 온 선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와 있었네요?”
“크하하. 차기 마탑주 아니야? 이거 영광이구만!”
앉아 있던 오크가 손을 흔들며 껄껄 웃었다.
샌드윈드스의 내무장관, 헥토르였다.
그 외에도 푸른 잉어 상단의 솔튼과 로버트. 마누스 왕실 기사단장에 새로 취임한 미하일 등등 고위 인사들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부 각국의 중책들이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모인 건 내일 있을 행사 때문이기도 했으나, 국제 정세 관해서 논의할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 논의된 주제는 ‘워프게이트’였다.
이는 대륙 전반의 경제와 정치를 아우르는 중대한 의제였다.
각 나라와 지역을 연결하는 게이트가 상용화될 경우 물류에 쓰이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아끼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테니 말이다.
“게이트의 비용은 한 번에 얼마 정도로 잡을 겁니까?”
“일단은 한 사람당 5골드면 어떨 것 같나?”
“음······.”
“아! 이건 어떤가? 부자들에겐 정기 이용권을 팔고 지미의 솥뚜껑 식사권을 제공하는 거지.”
“그거 나쁘지 않군. 이 레스토랑에 오지 못해 안달 난 부자들이 꽤 많거든.”
이처럼 워프 게이트의 상용화에 앞서서 필요한 이야기부터.
“최근, 페르딤에 혁명이 일어났더군요.”
“아, 들었네. 마왕과 연관이 있던 자들이 남아 있었다던가?”
“루퍼스 전하께서도 신경 쓰고 계십니다. 저쪽에서 화해의 입장을 보이곤 있다만 양 국민의 앙금은 여전해서 걱정이고요.”
“그러고 보니 최근 카일이 연통을 보내왔네. 제국에 숨어 있던 마이어스의 잔당을 찾아냈다더군. 그중엔 역적 글레바도 있다는 모양이네.”
“······흐음. 그 이야기 더 자세히 들려주겠나?”
대륙에서 일어나는 온갖 정세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그들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될 때까지 이어진 이야기의 끝은 하나로 귀결되었다.
“벌서 내일이 3년째로군.”
“그러게 말이야. 너무 정신 없이 살아서 시간이 이렇게 흐른 줄도 몰랐어.”
“오랜만에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겠어.”
그날, 이 세상을 구한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 * *
다음날.
마침내 마왕 격퇴 3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시작되었다.
해가 뜬 직후 도시는 격정에 물들었다.
길거리에선 온갖 흥겨운 음악이 연주되었고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오크, 엘프, 드워프 등 수많은 종족이 오갔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웃으며 축제와 공연을 즐겼다.
벌써 취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하늘 곳곳에는 마법 공학으로 만든 소형 비공정들이 떠다녔다.
몇 년 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풍경들.
모두가 이색적인 풍경에 감탄하고 있는 그때.
“이봐! 이제 시작할 시간이야!”
“어서 가자고!”
“······아니 무슨 사람들이 저렇게 많아?”
드디어 중앙 광장에서 워프게이트 시연식이 시작되었다.
마법공학의 결정체인 거대한 원형의 게이트를 앞에두고, 거대한 무대가 마련되었다.
무대에 선 마리온은 능숙하게 앞으로 나서며, 소리 증폭 마법이 걸린 수정구를 입에다가 가져다 대었다.
“여러분! 저희 헤파이토 연구소의 새로운 야심작! 워프 게이트가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 영광이군요!”
“대체 워프 게이트가 뭡니까?”
관중에서 한 사내가 큰 소리로 물었다.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할 수 있도록, 바람잡이로 심어둔 사내였다.
마리온은 능숙하게 그 말을 캐치해 시연식을 진행했다.
“하하, 워프 게이트는 간단합니다. 이 기계를 통해, 포탈을 만들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기계죠. 아주 멀리 떨어진, 말을 타고 몇 달은 가야 할 곳도 가능합니다.”
“그게 가능한 건가요!?”
“네! 가능하니 저희가 이렇게 서게 되었죠. 여러분.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아침은 마누스에서, 점심은 샌드윈드스에서. 저녁은 헬리오스 제국에서 먹는 삶을요!”
마리온의 말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 그러면 지미의 솥뚜껑 분점들을 매일 갈 수도 있단 거잖아? 지점마다 메뉴가 다르다던데!”
“저, 정말로 저런 게 가능한 거야?”
“가능하니까 하는 거 아니겠어?”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웅성거렸다.
그게 말이 되냐느니, 믿기지 않는다느니, 벌써 토론이 벌어지며 소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어진 마리온의 말에 모두가 깜짝 놀라서 다시 집중할 수밖에 없었으니······.
“여러분. 오늘은 마왕에게서 승리한 지 3주년입니다. 영광스러운 날이죠. 그래서 저희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바로─ 이 워프 게이트를 통해 영웅들을 만날 겁니다!”
영웅들.
그들이 누군가?
마왕의 군대와 싸우며 전설적인 위업을 달성한 이들이지 않은가.
그런 영웅들을 이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고?
흥분한 관중들에 광장의 공기가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자, 더 기다릴 것도 없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리온은 곧장 몸을 돌려 워프 게이트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헤파이토, 다그너와 함께 기계를 조작했다.
철컥! 철컥!
위이이이잉!
레버가 내려가자, 게이트가 큰 굉음을 내며 관중들의 소리마저 뒤덮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직! 파지직!
기계 한가운데에서 푸른 마력광이 소용돌이치더니 커다란 포탈이 되었다.
포탈은 그대로 반대편을 비추기 시작했다.
“오──”
“저기는 마누스 왕성이잖아?”
“진짜로 되는 거야?”
첫 번째 차례에 포탈이 비춘 것은 마누스 왕성과 헬리오스 제국, 그리고 샌드윈드스였다.
각각 국왕 루퍼스와 카웰 황태자사막의 지도자 라니스가 걸어 나왔다.
와아아아아─!
“국왕전하께서 축하하러 와주셨다!”
“마계 원정대 제독 카웰님이시다!”
“사막의 군주 라니스님도 있어!”
관중들이 환호하며 소리쳤다.
처음부터 등장한 이들이 삼국의 왕이라니?
다음에 누가 나오더라도 놀랍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우려는 곧장 깨졌다.
다음으로 포탈이 비춘 건 다름 아닌, 생명의 숲.
엘프들의 고향이었으니까.
“생명의 숲에 워프 게이트를 설치했다고?! 진짜 미쳤다!”
“자, 잠깐! 지금 나오는 저 사람은!!!”
관중들은 포탈 안에서 걸어 나오는 이들을 보며 화들짝 놀랐다.
“카일이다! 검성 카일!”
“투왕 바바크다!”
“인디에고!? 야 이 새끼야! 훔쳐 간 내 보석 내놔!”
극소수의 관중들이 날뛰는 일이 발생했지만, 마왕전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영웅들을 목도한 관중의 함성에 그대로 파묻혔다.
포탈에서 걸어 나오는 영웅들이 늘어날수록 모두가 열광했다.
“전쟁의 성녀다!”
“이네스님!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성녀 이네스! 제발 저와 결혼해 주세요!”
주신교단을 이끌고 대륙 전역에서 구호활동을 하며 ‘성녀’라고 불리는 이네스.
그녀가 걸어 나왔을 땐, 많은 남성이 가슴을 움켜쥐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성녀라는, 원치 않은 호칭으로 환호받는 이네스의 표정은 미세하게 구겨지기도 했다.
하여간 완전히 고조된 관중들의 온 집중이 게이트로 쏠려있는 그때.
마리온이 관중들을 향해 소리쳤다.
“대망의 마지막! 마계의 원정대가 도착할 때입니다!”
마계 원정대라고!?
그들이 누구인가.
마계라는, 악마의 땅으로 나아가서 오염된 땅을 정화하고 식민지를 개척한 이들.
동시에 미지 속에 고대 유물들을 찾아 나서는, 현시대 최고의 영웅들 아닌가?
“마계 원정대라고!? 지금 마계에 있는 거 아니었어!?”
“정말 그들도 여기에 오는 거야!?”
벌써 7번째 원정을 떠난 이들.
여전히 세상의 최전선에서 남아 있는 악에 맞서는 이들.
그들을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안 그래도 과열되었던 광장의 공기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모두의 집중이 쏠렸고, 식당에 있던 이들도 우당탕 뛰어나왔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자─!”
마리온이 득의양양하게 레버를 내렸다.
그리고.
키이이이이잉. 푸쉬이이익─!
원형으로 빙빙 돌던 마력이 사라지더니, 게이트가 작동을 멈췄다.
“어, 어라?”
당황한 마리온이 레버를 이리저리 조작했고, 관중들은 어리둥절했다.
“뭐야? 문제가 생긴 건가?”
“무슨 일이지?”
웅성거리는 관중들 사이로, 한 소녀가 한숨을 쉬며 걸어 나왔다.
그리곤 마리온과 헤파이토를 찌릿 노려보았다.
“내가 ‘대륙’ 내에서만 연결이 된다고 하지 않았어?”
“아, 아니 그게······ 우리 쪽 수치로는 가능할 것 같은데······.”
마리온과 헤파이토가 말을 흐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자, 도로시는 다시금 눈총을 보내곤 시연장 한 가운데에 섰다.
“응? 저 소녀는?”
“도, 도로시다! 푸른 마탑의 차기 마탑주!”
“뭐?! 공간을 잇는 마법사, 도로시라고!?”
그녀를 몇몇 관중들이 알아보기 시작했을 때.
도로시가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그대로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쳤다.
콰르르르릉!
그러자 높은 하늘에서 워프 게이트보다 두 배는 큰 포탈이 열렸다.
모든 이들이 시선이 위로, 하늘로 올라갔다.
이윽고 그 안에서 비공정이, 그것도 수많은 비공정이 포탈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마계원정함대의 등장이었다.
“마, 마계 원정대다! 원정대가 왔어!”
“와아아아─!”
“알바트리온이다! 비공정 알바트리온이 있어!”
관중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비공정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함선.
알바트리온이었다.
그리고 함선이 정박하기도 전에 갑판 위에서 뛰어내린 사내가 있었으니.
쿵──
“으쌰─ 내가 왔다!”
거구의 사내가 도끼를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데릭이다! 인류의 방패 데릭! 투사 데릭이다!”
“형님! 사랑합니다!”
전 세이비어 결사단의 부단장.
무너진 성벽에서 수백 마리의 마수를 베어 죽인 전설.
데릭이었다.
그 뒤를 따라 로빈이 함선의 밧줄을 타고 나타났다.
“로빈이다! 키텔로 레인저의 수장!”
“세이비어 결사단의 진정한 부단장!”
“신궁 로빈!”
무엇이든 맞출 수 있는 백발백중의 신궁.
시대를 풍미하는 전설이자, 현재도 마계의 원정을 이끄는 자들.
그리고.
크롸라라라─!
함선 위에서 모든 것을 찢어발길 듯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칼라마르가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관중들은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커다란 신체와 검보라빛의 비늘.
그 자태는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보석이라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칼라마르다!”
“무, 무서워······.”
“아름답기만 한데?”
칼라마르가 펄쩍 뛰어내리곤, 데릭과 로빈 아래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칼마마르가 등장했다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가 이 자리에 있음을 뜻했다.
저벅. 저벅.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갑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의 사내.
찬란한 은빛의 갑주.
사내의 뒤에서 부유하는 검보라빛 보석.
그 사내의 이름은······
“제이드다!”
······제이드였다.
마왕 마이어스를 무찌른 사내.
세상 모든 악마의 적대자.
세상이 그를 부르길.
“용사 제이드다!”
“용사가 나왔다!”
“대륙의 구원자! 제이드!”
용사(勇士).
모든 이들을 이끄는 자, 제이드가 원정을 마치고 귀환했다.
“내가 너무 늦은 거 아니지?”
이네스의 곁에 선 제이드가 이네스의 손을 붙잡았다.
함성이 더욱 커졌다.
“이야, 역시 용사 나리께선 함성이 장난 아니네?”
“듣기론 우리 ‘성녀’님께서도 만만치 않던데?”
“뭐.”
“크흠. 아무것도 아니야.”
이네스의 눈썹이 솟는 걸 보며 제이드가 말을 흐렸다.
그런 제이드의 모습에 피식 웃은 이네스가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물었다.
“그런데 제이드. 원래 이틀 전에 오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이미 대륙으로 돌아온 건 꽤 된 걸로 아는데 어디서 뭘 하다가 온 거야?”
“아 그게, 사실 땅 하나를 보고 왔거든.”
“땅? 그건 왜?”
이네스가 제이드의 말에 갸웃거렸다.
“어디 산골짜기에 마을 하나 지을까, 생각 중이거든.”
“뭐? 갑자기 무슨 마을이야?”
“글쎄······.”
말을 흐린 제이드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한산하고 평범하지만, 이상스레 대단한 인간들이 잔뜩 모여 있는 마을.”
결국 그날.
제이드는 돌아가지 않았다.
이곳을 두고 떠나기엔 제이드에겐 너무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해졌으니까.
‘그리고─ 세 번째 삶을 살 기회니까.’
1회차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모든 게 두려웠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나는 누구일지.
2회차 때는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두려웠다.
이 세상이 어떻게 무너질지.
그걸 어떻게 막아야 할지.
그리고 모든 일을 끝냈으니, 시나리오에 없던 세상이 펼쳐졌다.
다시 한번,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다.
그야말로 미지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기대되었다.
이 앞날이 어떻게 끝날지.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이 세상에서, 세 번째 삶을.
무엇도 숨기지 않아도 될 삶을 시작할 순간이었다.
–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