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228
던전 안의 살림꾼 외전 14화
“어때, 사람들 다 왔어? 다들 제자리에 앉았어? 부족한 건 없지? 그나저나 어떻게 해! 오빠 말대로 청심환 먹어 둘걸. 지금이라도 사 와서 먹으면 늦으려나? 너무 떨려. 가다가 넘어지면 어쩌지? 결혼 서약서 읽을 때 목소리 뒤집어지면 또 어쩌고? 아악, 너무 긴장돼!”
희나는 희원을 붙잡고 손을 덜덜 떨었다. 참고로 희원은 신부의 하나뿐인 혈육 역할을 하느라 미치도록 바빴다.
“야! 어제까지 벌벌 떨던 진현이도 멀쩡하게 서 있더라! 네가 이러면 어떡해? 걸을 수는 있겠어?”
희원은 걱정스럽다는 듯 희나의 안색을 살폈다. 화사한 화장 덕에 긴장으로 창백해진 낯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 다리도 달달 떨려. 드레스가 길어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웃긴 꼴 보여 줄 뻔했어.”
희나는 후하후하 심호흡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해도 해도 너무 떨리잖아! 역시 결혼은 두 번 못 할 짓이구나. 이번 한 번으로 끝내야겠어.’
반쯤 넋이 나가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
희원이 희나를 일으켜 세우며 손등을 톡톡 쳤다.
“정신 차려, 이희나! 한 번뿐인 결혼식에 얼빠진 채로 입장할 수는 없잖아!”
“그, 그렇지. 한 번뿐이니까! 잘해야지!”
희나는 고개를 휘휘 털어 냈다. 잡생각과 긴장을 애써 떨구어 냈다.
하늘은 푸르렀고, 풀밭은 이를 데 없이 싱그러웠다.
너울이 딸랑, 딸랑, 귀여운 종을 흔들며 곧 식이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하객들은 하나둘 테이블에 착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 신부가 함께 나타났다. 사회를 맡은 우민아가 신나게 소리쳤다.
“오늘의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손님들의 태반이 고위급 각성자라 그런 걸까? 박수 소리가 엄청났다.
희나는 마른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강진현이 체중을 받쳐 주지 않았더라면 휘청거리다 자빠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희나 씨, 더 기대도 좋습니다.”
강진현이 희나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어제까지 파래진 얼굴로 벌벌 떨던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희나는 이 사람과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덜덜 떠는 신부에게 ‘떨지 말라’가 아니라 ‘더 기대도 좋다’며 어깨를 내주는 남자라니. 그의 사려 깊음이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었다.
“……고마워요.”
“당연한 일입니다.”
속닥이는 예비부부의 모습에 사회를 보던 우민아가 농담을 날렸다.
“이 커플이 사이좋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요, 오늘도 둘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보이네요.”
다들 공감하는 듯 와르르 웃으며 환호했다.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풀어졌고, 희나의 긴장도 한결 나아졌다.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긴 덕이다.
‘모두 아는 사람이야. 친한 사람들이고.’
여기서 희나가 실수를 한다 한들, 흠잡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우우, 우우!”
……물론 장난스럽게 야유하고 있는 악마는 예외였다. 이대로 삐끗하면 죽을 때까지 놀려 먹겠지.
너울이를 보자, 식장에 보이지 않는 두 존재가 떠올랐다.
‘오색이와 바둑이는 잘 보고 있을까?’
희나가 식장을 던전 안에 잡은 건 비단 유행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혼식에 오색이와 바둑이를 초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색이와 바둑이가 내 결혼식에 없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희나와 강진현은 상의 끝에 던전 안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소중한 두 친구가 식을 관람할 수 있도록 부러 ‘홈 스위트 홈’ 안전지대 근처로 식장을 잡았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오색이와 바둑이 또한 저 어디에선가 희나와 강진현의 결혼식을 보고 있을 테다.
‘바둑이가 흥분한 오색이를 잘 잡아 주겠지?’
희나는 속으로 키득거리며 전날 펑펑 눈물 흘리던 오색이를 떠올렸다.
집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눈물을 흘리던지…….
‘벽지에 습기가 어릴 정도로 울 줄이야.’
하마터면 결혼식 전날에 곰팡이 퇴치제를 뿌리는 중노동을 할 뻔했다.
하여간, 정도 많고 탈도 많은 주택 관리자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 보니, 어느새 단상에 다다라 있었다.
주례는 없었고, 대신 혼인 서약을 함께 읽었다. 무슨 일이 있건 함께하고, 서로를 위해 줄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사랑과 애정이 넘치는 평범한 결혼식 풍경이었다.
……강진현이 갑자기 손 위에 마석을 꺼내 들기 전까지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위 내용을 지킬 것임을 다시 한번 맹세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웅, 고등급의 마석이 밝게 빛나곤 흩어져 사라졌다.
“어……?”
그 광경에 희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강진현이 마석에 대고 결혼 서약을 했다.
‘결혼 서약을…… 마석에…….’
상황을 판단한 희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진현 씨!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맹세했습니다.”
“그냥 맹세가 아니잖아요. 마석에 대고 결혼 서약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여기 있습니다.”
“그, 그렇게 되어 버렸긴 한데…… 과하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이니, 마석에 대고 맹세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워낙 천연덕스럽게 대답해서 순간적으로 ‘그런가?’ 하고 납득해 버릴 뻔했다.
“아하……! 가 아니라! 그렇게 중요한 약속이면, 나도 같이 해야죠. 이건 진현 씨 혼자 계약에 묶인 거잖아요!”
“희나 씨의 의사를 묻지 않고 마석에 맹세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물어봤으면 나도 당연히 하겠다고 했을 거예요! 마석 하나 더 꺼내요, 나도 하게!”
희나의 요구에 강진현이 입매를 한일자로 다물었다.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왜 그래요?”
“그럼 희나 씨는 마석의 맹세가 있어야 혼인 서약을 지킬 생각인 겁니까?”
“당연히 아니죠. 마석이 있건 없건 지킬 거예요.”
“그럼 굳이 마석에 대고 맹세할 필요가 없지요.”
묘하게 그럴싸하게 들리는 궤변이었다. 희나는 깜빡 넘어갈 뻔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렇죠. 굳이 마석이 필요하지는 않……은데 진현 씨는 했잖아요!”
“저는 그저 제 의지를 보여 드리고 싶어서…….”
“나도 내 의지를 보여 줄래요!”
“하지만 위험합니다. 이런 계약은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진현 씨는 했잖아요!”
“저는 좀 다르죠.”
신랑 신부는 한참을 투닥거렸다.
하객들은 그 장면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우민아 또한 그중 하나였으나, 오늘의 임무가 있었으므로 예비부부의 첫 부부 싸움(?)을 만류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절절한 건 좋은데 앞에 다른 사람들도 있거든요? 이제 식 진행해야죠.”
“헉! 맞다.”
희나는 얼굴을 붉혔고, 강진현은 뻔뻔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소한 문제는 식 끝나고 해결하는 걸로, 오케이?”
“오, 오케이.”
식이 다시 계속됐다.
성혼 선언문은 특별히 희나의 오빠인 희원이 읽었다.
하지만 이 또한 평탄히 지나가진 않았다.
“어흑, 끄흐…… 이, 결혼, 흐으으, 이 결혼이, 아이고, 우리 희나가 이렇게 컸다니……. 어머니, 아버지! 어흐흑!”
아까까진 멀쩡했던 희원이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저기, 신부 오빠 희원 씨? 두 사람 부부 좀 되게 해 줍시다!”
우민아가 희원을 몇 번을 다독이고 나서야 희원은 짧은 성혼 선언문을 겨우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이 커플은 결혼도 참 요란하게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민아의 익살에 하객들이 요란하게 웃었다. 유쾌한 분위기에 전염되었는지, 희나도 어느새 긴장을 잊고 빙그레 웃음 짓게 되었다.
둘은 우민아의 장난스러운 진행을 따라 케이크도 자르고, 짧은 입맞춤을 나누었다.
식은 어느새 마지막에 다다랐다.
“이제 부부가 된 이희나 양과 강진현 군이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들의 앞날에 사랑과 행복만이 가득하길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혼 행진곡이 들려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마주 잡았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딛자, 환호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세찬 돌개바람이 훅, 하고 일었다. 이마를 간지럽히는 앞머리에 눈을 감았다 뜨니,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들판 온 가득 피어 있던 꽃들이 하늘로 떠올라 마치 춤을 추듯 하늘하늘 낙하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이런 일을 벌일 만한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너울을 흘낏 바라보니 씨익 웃으며 벙긋거렸다.
‘그간 먹여 준 밥값은 해야지, 그치?’
말썽꾸러기 악마의 보은은 제법 로맨틱했다.
희나는 화우(花雨) 속을 걸었다. 온 세상에 자신과 강진현뿐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강진현과 눈을 마주했다. 그 또한 다정한 눈빛으로 희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루 말할 데 없이 아름다운 마무리였고, 시작이었다.
번외. 그 달팽이의 선물
막 결혼식 피로연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온 길이었다.
집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장미꽃 향기가 훅 퍼졌다. 희나와 강진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다…… 뭐지?”
“장미로 만들어진 길이 있는데요?”
“진현 씨가 한 거예요?”
“아닙니다. 저는 이런 이벤트, 계획한 적 없습니다.”
초짜 부부는 어리둥절한 채 장미 꽃길을 따라 걸었다.
“와. 누가 이렇게 꾸민 거지? 우리 집 같지 않아요.”
희나는 두리번거리며 집 안을 구경했다. 온갖 꽃과 리본, 레이스로 장식한 집은 마치 세련된 부티크 호텔처럼 보였다.
꽃길의 끝에는 부부 침실이 있었다.
문을 열자, 새하얀 침대보 위에 붉은 장미 꽃잎이 흐드러져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연출이었다.
“어머…….”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강진현이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손바닥만 한 꽃잎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오색이가 힘을 썼나 보군요.”
꽃잎에는 짧은 축하말이 새겨져 있었다.
신혼은 한 번뿐이니 마음껏 염병…… 아니, 행복을 만끽하라는 내용이었다.
“고마워라. 오색이가 능력을 발휘하려면 엄청 감정적으로 변해야 하는데……. 진심이 느껴지네요.”
감동이 몰려왔다. 강진현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대자 몸이 가뿐히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꽃잎 가득한 침대 위였다.
“어? 진현 씨?”
어리둥절하여 눈알을 굴렸다. 어느새 침대로 기어올라 온 강진현이 희나의 뺨에 쪽 입 맞췄다.
“선물을 받았으니 성의를 보여야겠군요.”
숨결이 목 줄기를 간지럽혔다.
“진현 씨가 남의 성의를 그렇게 신경 쓰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요!”
“오늘, 지금부터 그러기로 결정했습니다.”
희나는 깔깔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당겼다.
달콤한 신혼 첫날이었다.
외전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