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omemaker of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59
던전 안의 살림꾼 59화
휴대전화를 켜 보니 오빠에게서 메시지가 몇 통 와 있었다. 희나는 희원의 연락에 피식 웃었다.
‘벽만 있으면 문 열어서 집 들어갈 수 있는데, 데리러 간다니. 오빠도 참.’
희나의 스킬을 잠시 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기를 걱정해 주는 식구들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더 걱정하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다.’
희나는 문을 열 만한 적당한 공간을 찾아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실내는 적막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한 기시감이 들기도 했다.
“뭐지?”
이전에 S급 헌터의 집에 와 봤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공간이 익숙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새집이랑 구조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중얼거리며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갔다. 베란다에 벗어 놓은 신발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란다 통창 앞에서 신발을 집어 드는 동시에 창밖을 힐끔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어?”
희나는 손에 든 신발을 내팽개치며 베란다 창문에 바짝 달라붙었다. 그리고 두 눈을 싹싹 비볐다.
“내가 술에 취했나?”
베란다 바깥의 풍경이 아주 익숙했다.
“왜 우리 집이랑 보이는 풍경이 똑같은 것 같지?”
그랬다. 희나의 아파트에서 보이는 전경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희나는 자기 집 밖에 무엇이 있는지쯤은 잘 알고 있었다.
아파트가 몇 채 더 있었고, 아파트 단지 안에는 마트도 있었다. 나름 번화가였으므로 큰길이 뚫려 있었고, 커다란 건물도 이곳저곳에 솟아 있었다. 거기다…….
“……청룡 길드 건물이 보이네.”
거기다 청룡 길드 건물이 보이는 각도가, 딱 희나네 집터와 같았다. 애당초 일자리와 가장 가까워서 택한 집 아니던가?
희나는 ‘홈 스위트 홈’을 열어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강진현 집의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상황을 좀 파악하고 싶었다.
쿵, 문을 닫자 혹시나 하던 의심은 확신이 됐다. 두 현관문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계단. 익숙했다. 여긴 정말 희나네 아파트가 맞았다.
고개를 휙 돌려 방금 닫힌 문의 호수를 확인했다.
“……1212호.”
희나네 집인 1211호의 옆집이었다.
그와 동시에 오늘 낮에 경비원으로부터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나도 여기서 일하면서 1212호 입주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여기 입주한 지는 오래된 것 같은데, 거참 귀신 같은 사람이야. 주기적으로 살림해 주는 사람이 오가는 걸 봐서 실거주는 하는 것 같거든. 뭐, 공사 같은 것도 자잘하게 많이 하고.’
‘아마 힘들 거예요. 일전에 무슨 동의서 얻으려고 동대표도 몇 번 찾아가 봤는데,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더라고, 원.’
‘1211호는 계속 공실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아가씨가 들어와서 정말로 다행이에요.’
“설마?”
설마, 희나에게 일부러 강진현 옆집을 준 것일까?
생각해 보니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희나는 강진현의 생활 전반을 책임질 텐데, 길드에서 강진현 근처의 집을 사 주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머리로 착착 이해해 가는 와중에도, 희나는 상황을 믿을 수 없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직접 1층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1층에 내려와 보니 확실했다. 익숙한 경비실에, 익숙한 주차장이 보였다. 정말로 희나네 집이었다.
희나는 다시 12층으로 올라와 1211호, 그러니까 자기 집으로 추정되는 현관문의 도어 록 번호를 띠띠 눌렀다.
띠로록.
도어 록에 초록색 불이 들어오면서 문 열림 표시가 떴다.
“허…….”
희나는 현관문이 닫히지 않아 삐, 삐, 삐, 소리가 울릴 때까지 한참 손잡이를 잡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했다.
‘홈 스위트 홈’ 문이 열리자마자 소파 위에 반쯤 드러누워 있던 희원이 몸을 일으켰다. 희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왔어? 좀 늦었네. 그나저나 오늘 바둑이가……”
희나는 희원의 말을 싹둑 잘랐다.
“오빠.”
“어? 왜?”
동생의 심각한 기세에 희원은 덩달아 심각해졌다.
“무슨 일 있어? 왜, 예전 집주인이 우리 전세금 도저히 못 주겠대?”
그는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아냐. 그건 아냐. 그 일은 잘 풀리고 있어.”
물론 희원이 꺼낸 말은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럼 대체 뭔데? 혹시 회사 잘렸어?”
희원은 두 번째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그것도 아니야.”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심각한 건데? 얘기를 빨리 해 주든가.”
“……그게.”
“그게?”
희나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우리 집 옆집에 강진현 헌터가 살고 있더라.”
“강진현 헌터가? 그 S급? 청룡 길드의?”
그 또한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응. 방금 강진현 헌터네 집 다녀왔는데, 우리 집 옆이더라.”
희나의 말에 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엉덩이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 같았다.
“뭐? 네가 그 남자 집에 왜 가?”
“어쩐지. 집 안 구조가 비슷하다 했어. 같은 아파트니까 당연히 비슷했던 거였어!”
“희나야? 너 혼자 간 거 아니지? 그 누구냐, 우 헌터랑도 같이 간 거지?”
“우리 아파트가 보안이 좋긴 한데, S급 헌터까지 살 정도로 보안이 좋은 아파트인 줄은 몰랐어. 어쩐지 집값이 엄청나더라!”
“동생? 대답 좀 할래? 과년한 처녀가 시커먼 남자 집에 갈 일이 뭐가 있다고? 그것도 술 마시고!”
“으, 바로 옆집이라니. 어쩌지?”
남매는 허공에 대고 각자 할 말을 했다.
「소통의 부재. 현대 사회 고질병.」
느릿느릿 기어 나온 오색이가 안테나를 휘휘 휘둘렀다. 마치 혀라도 차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오색이를 뒤따라 나온 바둑이는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양 꽃봉오리를 갸웃거리며 거실을 빙글빙글 뛰어다녔다.
상황이 진정된 건 거실을 뛰어다니던 바둑이가 대자로 뻗은 후였다.
희원은 한숨과 함께 바둑이를 잡아 들어 전용 화분 위에 올려놓아 주었다. 그러자 바둑이는 화분 흙에 뿌리를 박고 턱을 괬다.
“아무튼. 희나야. 앉아서 얘기하자.”
바둑이 화분을 품에 안은 희원이 식탁 의자에 걸터앉았다.
바둑이의 정신없는 꼴을 보고 역으로 정신이 좀 든 희나도 오색이를 무릎에 올리고 의자를 빼 앉았다.
「#우리함께소통해요☆」
오색이는 깨알같이 남매 사이의 적절한 소통을 종용했다. 매번 생각하지만 정말 별걸 다 아는 달팽이였다.
“누가 먼저 말할까?”
남매는 서로 순서를 정했다.
“오빠가 먼저 물어봐.”
희나도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였지만, 궁금한 것이 엄청나게 많아 보이는 오빠에게 순서를 먼저 양보했다.
그렇지 않으면 희원이 초조하다 못해 말라 죽어 버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강진현 헌터 집에는 누구랑 같이 갔어?”
“나만 갔어.”
“너, 너만 갔다고……?”
희원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눈동자도 파르르 떨린 것 같았다.
“같이 밥 먹겠다던 우 헌터는 어디 가고, 왜 너만……? 아니, 거기서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니지?”
“아.”
그제야 희나는 오빠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희원은 혹여나 남녀 사이의 ‘무슨 일’이 있었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권력에 의한 성적 갈취랄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희나는 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오빠. 오빠가 걱정하는 일 하나도 없었어. 진현 씨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뭐? 언제 강진현 헌터가 진현 씨로 바뀌었냐?”
막상 희원은 다른 부분에서 꽂힌 것 같았지만.
“아니, 오빠. 진정 좀 해 봐. 호칭은 던전에서 이미 텄어. 그런 거 아냐. 애당초 그럴 사이도 아니고.”
희나가 생각하기에 그와 자신 사이에 ‘그런’ 일이 생기려면 한 다섯 번쯤은 죽었다 다시 태어나야 했다.
희나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강진현과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이건 개랑 새가 결혼하는 거랑 비슷한 거였다.
무엇보다 희나는 S급 헌터의 세상에 얽히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이미 얽히긴 했으나 이 이상 평범함을 잃는 건 사양이었다.
‘오빠랑 오색이랑 바둑이랑 오순도순 살 거야.’
희나는 식탁 앞에 둘러앉은 식구들을 보며 다시금 다짐했다.
“야, 사람 앞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강진현 헌터, 인성은 좋아 보이긴 하는데 나는 반대야. 너무 유명하기도 하고 S급 헌터잖아. 하는 일이 위험해.”
희원은 헛물을 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돈 남 말을 했다. 자기가 D급 농사꾼의 신분으로 헌터 일을 했던 건 벌써 까먹은 듯했다.
“진짜 아니야.”
손을 내저으며 극구 부인하자, 희원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아무 일 없었다니까……. 일단 알았어.”
오랜 경험을 통해 더 추궁해 봐야 받을 건 희나의 눈 째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 아무리 남매라고 해도 사생활은 사생활이었다. 동생이 아무 일 없었다는데 더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그럼 너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강진현 헌터가 옆집에 산다는 거?”
오빠의 물음에 희나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근심이 깊어졌다.
“응. 그게 문제야. 어떻게 하지?”
“뭐가 문제야? 그냥 이웃사촌 됐을 뿐이잖아. ……설마 그놈이 너한테 흑심 있어서 그런 거라든지?”
희나는 헛소리를 가뿐히 무시했다. 대신 걱정을 우다다 이야기했다.
“S급 헌터가 옆집에 사는 거잖아. 오늘 봤는데, 귀가 좋아서 닫힌 방 안에서 하는 대화까지 엿들을 수 있더라. 그리고 우린 새 아파트가 아니라, 이 집에서 살 거잖아. 진현 씨가 옆집에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는 걸 눈치채면 어떻게 하지?”
던전 안의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