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yena of Capitalism RAW novel - Chapter (214)
자본주의의 하이에나-214화(214/215)
214화 에필로그-2
나의 고등학교 생활은 화려했다.
아버지의 조언대로 남에겐 냉정하게, 아군에겐 끊임없는 호의를.
천하 그룹 차남이란 사실을 숨겨야 하냐는 내 질문에 아버지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다.
재벌 집 아들이란 타이틀을 걸고 집안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하는 게 아닌 이상 그것 역시 내가 가진 매력이자 힘이라며 오히려 적극 이용하라고 조언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재벌 집 아들로서 가장 큰 무기인 재력을 적극적으로 휘두르며 고등학교를 평정해 나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무엇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니?”
“학연? 지연? 혈연?”
내 말에 아버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큰 요소가 무엇이냐고 묻는 거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검지와 엄지를 맞대어 동그랗게 만들며 말했다.
“돈?”
아버지는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답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돈으로 이루어져 있지. 사장이 직원에게 애사심을 가지라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없다. 직원은 사장에게 월급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하고 사장은 그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뿐. 만약 직원이 더 열심히 일하기를 원하면 더 많은 돈을 주면서 말해야 하지. 하지만 단순히 돈을 더 주기만 해서는 안 돼.”
아버지는 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들에게 비전을 보여 줘라. 니가 나를 위해 고생을 하면 나는 결코 그걸 잊지 않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 줘야 해. 그런 관계 형성을 위해서 절대 돈을 아끼면 안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인간과 인간은 돈으로 엮여 있지. 그런 상황에 니가 상대방과의 관계 형성을 위한 돈을 아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니?”
내가 고개를 젓자 아버지는 자상한 미소를 지으시며 말했다.
“상대방 또한 너에게 주는 신뢰와 믿음을 아끼기 시작한단다.”
“아하!”
그렇구나.
상대가 나에게 해 주는 만큼 보상을 아끼지 말되 더욱 나은 미래가 있음을 제시해서 단순히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으로 유지시켜야 한다는 말이군.
“그런 관계가 지속되는 한 그 사람은 결코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에게 더 많은 신뢰를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하지. 너와 친하면 친해질수록 많은 보상이 나온다는 걸 알았으니. 단…….”
아버지는 조금 잔인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배신자는 절대 그냥 둬선 안 된다. 아군에겐 끝없는 호의를, 적에겐 끝없는 악의를. 그게 내가 지금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알겠니?”
“알겠어요! 완전 이해했어요!”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지호는 잘할 거다.”
* *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성인이 되기 무섭게 나를 데리고 중국으로 오셨다.
그리곤 보여 주셨다.
“…아버지, 이게 뭐예요?”
나는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외관.
나 혼자서 쓰던 방보다도 작은 공간에 화장실과 부엌이 달려 있었고 나머지 공간은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기가 앞으로 니가 살 집이다.”
나는 경악하며 외쳤다.
“집이요? 여기가 제집이라고요?”
“너는 평생을 호화롭게 살아왔지. 위에 선 자로서의 교육은 충분히 했다. 이젠 밑바닥을 경험할 차례다.”
밑바닥?
아무리 그래도 여긴 아니잖아!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지만 아버지! 저 대학도 가야 하고… 어…….”
“대학교 안 가도 된다. 좋지? 그 싫어하는 공부 안 해도 돼서.”
아버지의 잔인한 선포에 나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당장이라도 쥐새끼가 튀어나올 비주얼인데!”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허름하고 낡은 방도 감사해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이 천지에 널려 있다. 그런 사람들을 부리려면 너도 그들의 심리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해. 그들의 처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 그들과 너 사이엔 괴리감이 생기게 된다. 그 괴리감이 결국 그 관계를 망치게 만들 거고. 그동안 호화롭게 살았잖니?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아버지는 나에게 핸드폰을 하나 건네며 말했다.
“자. 이제부터 니가 사용할 폰이다. 니 엄마랑 형, 그리고 니가 연락할 만한 사람들은 전부 전화번호를 바꿨으니 연락할 방법이 없을 거다. 방세는 두 달 치만 선납해 놨으니 나머지는 니가 어떻게든 구해서 살아 봐.”
나는 절망감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아니, 이럴 거면 미리 각오를 다질 시간이라도 주던지요.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지호야. 원래 최악은 너에게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아. 이것도 다 너한테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다.”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셨죠. 인간과 인간은 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래. 그랬지.”
“지금 아버지가 저에게 돈줄을 끊는다는 건 저와의 연결 고리를 끊는 걸로 받아들여도 되나요?”
내 말에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남남일 때 얘기고. 너랑 나는 더 끈끈한 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괜찮아. 내 아들이면 잘 해낼 거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좋아요. 그럼 하다못해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라도 알려줘요.”
내 말에 아버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건 너 하기 나름이지. 원래 사형수도 사형 날짜가 정해진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더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법이거든.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에서 떨어야 하니까.”
* * *
“씨발! 씨발!”
나는 벽돌을 나르며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토해냈다.
고졸로서 매일 친구들과 쌈박질이나 하던 내가 한국도 아닌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뻔했다.
혹시 내가 일 안 하고 굶다가 방에서 쫓겨나면 아버지가 못 이기는 척 다시 집으로 데려가진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내 경험상 아버지는 한다면 무조건 하는 사람.
바닥에 쓰러져 쫄쫄 굶고 있으면 와서 설탕물로 입만 축여 생명 유지만 겨우 시켜 줄 사람이다.
아무튼 아버지에 대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어두고 일용직 노동자로 산 지 이제 석 달.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거야!”
재벌 집 차남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온 내가 일용직이라니!
그나마 이 막장 라이프에 위안 삼을 만한 건 어머니 덕에 중국어는 제법 할 줄 알아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정도?
나는 벽돌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번 달 방세도 어떻게든 되겠네.”
최악이라 생각했던 방이지만 어찌 됐든 지금 나에게 있는 유일한 안식처.
나는 주머니에서 남은 돈을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밥은 어떡하지? 쌀밖에 안 남았는데.”
아버지에 의해 중국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후 나는 많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식비는 직접 만들어 먹어야 절약된다는 사실.
관리비가 은근히 비싸다는 사실 등등등.
나는 잠시 고민하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밥에 물이나 말아서 먹어야겠다.”
그렇게 궁상스런 생각을 하는데 멀리서 작업반장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이! 한국 놈! 일 안 하고 뭐 해?”
“예, 예. 갑니다. 가!”
* * *
“박 씨, 요즘 인기 좋던데?”
일용직을 전전하다 친해진 천호가 내 가슴을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식당에서 일하는 밍밍이 말이야. 박 씨 보는 눈초리가 예사롭지가 않아.”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밍밍?”
“그래. 얼굴도 제법 귀엽지 않아? 잘해 봐, 한번.”
“됐수다. 관심 없어. 나 먹고살기도 바빠죽겠는데 연애는 무슨.”
“에이, 아직 젊은 사람이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게 말이나 돼? 박 씨가 올해 몇 살이더라?”
“…24살.”
4년이다.
이 외딴곳에 던져진 채 가족들과 연락도 못 한 지 벌써 4년.
아니! 아버지라는 작자가 아들을 이렇게 내팽개쳐 놔도 되는 거야?!
부모로서 할 도리는 지키라고!
이쯤 되니 아버지가 말했던 그 썩을 놈의 ‘자리’라는 존재 자체가 의심스럽다.
혹시 그룹 후계 분쟁을 막기 위해 날 이곳에 버린 거 아닐까?
일부러 나를 막 나가게 해서 형만 밀어주려고?
자식에게 고난을 줘도 정도껏 줘야지 이건 너무하잖아!
어머니가 운영하는 회사로 찾아가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아버지 바라기다.
아버지가 하는 말은 전부 진리이고 정답이라 생각하며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찾아가면 반겨야 주시겠지만, 아버지가 ‘다시 돌려보내’ 한마디만 해도 어머니는 미안해하며 나를 다시 이곳으로 내쫓으실 거다.
“캬, 딱 좋네. 밍밍이 올해로 21살인가?”
“관심 없다니까.”
“쑥스러워하기는.”
정말 관심 없다.
“…정말 관심 없다니까. 나 돈 모아야 돼.”
이제 아버지가 찾아올 거라는 헛된 희망은 버렸다.
나는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
언젠가는 찾아올 거란 희망에 처음 2년은 방세와 식비만 충족되면 만족했었지만 3년을 지나 4년이 넘은 지금은 진지하게 스스로의 미래를 걱정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이쯤 되면 자존심이 있지, 아버지 어머니에게 구걸하고 싶지 않다.
보란 듯이 혼자 잘살아서 나중에 큰소리를 치고 싶다.
봐라. 나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결국 이렇게 해내고 말았다, 라고.
“돈이야 둘이 모으면 더 빨리 모이지 않을까?”
응?
“그렇잖아. 밍밍이랑 잘돼서 둘이 같이 살면 월세도 반으로 절약되고, 둘 다 돈 버니 모으는 속도도 빠를 거고.”
천호의 말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둘이 모으면 더 빨리 모인다라.”
“그러니까 다들 결혼하려고 하지. 생활이 더 안정된다니까? 식비도 원래 대량 구매할수록 싼 거 몰라?”
천호의 말에 급격히 관심이 생긴 나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제법 귀여웠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오뚝한 코에 쌍꺼풀까지.
전국구까지는 모르겠지만 동네에서는 충분히 미인으로 꼽을 만했다.
“한번 말이나 걸어 볼까…….”
내 말에 천호가 내 등짝을 때리며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 * *
식당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그냥 갈까…….”
방세에 혹해서 이게 뭐 하는 짓이람.
물론 덕분에 밍밍에 대해서 관심이 좀 생기긴 했지만, 그 동기가 너무 처참했다.
“으휴, 이게 뭐 하는 짓거리야. 그냥 가자.”
그리고 뒤돌아서 가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진호 씨 아니세요?”
멈칫하고 뒤를 돌아보니 밍밍이었다.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어. 안녕?”
그동안은 살기 바빠 관심을 줘 본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더 귀엽다.
뒤로 묶은 긴 머리와 동그랗고 커다란 눈.
“아직까지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 하세요?”
밍밍의 말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아니, 다른 건 아니고.”
고백하러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대화나 좀 하려던 건데 막상 말을 하려니까 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요즘 잘 지내?”
“예?”
밍밍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호호, 저희 아까 점심에도 만났잖아요.”
젠장, 단어 선정에 실패했다.
“아니. 그냥 뭐… 안부 인사한 거야.”
“저는 잘 지내죠. 진호 씨는요?”
“나도 잘 지내지.”
그리고 이어지는 어색한 침묵.
밍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다른 일 없으시면 저는 먼저 집에 가 볼게요.”
밍밍은 나에게 다소곳이 인사하곤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남자 새끼가 되어 갖고 이게 뭐 하는 거야!’
뭔 대단할 말을 하러 온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버벅거려!
나 박지호야! 박지호!
“밍밍!”
내 외침에 밍밍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늘 수고했어. 그냥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그 말 하고 싶었어!”
내 말에 밍밍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친하게 지내자고요?”
“그래! 자주 얼굴 보는 사이인데 친해지면 좋잖아!”
내 말에 잠시 조용히 있던 밍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