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yena of Capitalism RAW novel - Chapter (215)
자본주의의 하이에나-215화 (완결)(215/215)
215화 에필로그-3
“오늘도 고생해요.”
“응. 밍밍도 수고해.”
밍밍을 식당에 바래다주고 일터로 향하며 나는 콧노래를 불렀다.
“흥흥흥~ 오늘도 열심히 일해 볼까?”
밍밍과 연애를 시작하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밍밍 역시 부모와는 연을 끊고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었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덕에 아버지가 정말 나를 완전히 버렸다는 확신을 가졌다.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동거를 시작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어? 그냥 아버지한테 나는 버린 자식이었던 거야.”
벌써 이곳에 정착한 지 5년째.
밍밍과 함께 살자 나의 삶은 급속도로 안정화됐다.
생활비와 월세가 절약되고 나를 반기는 사람이 집에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나의 삶이 더욱 활기차졌다.
돈도 제법 모이기 시작했고 말이다.
“조금만 더 모으면 이사 갈 수 있겠다.”
재벌 집 아들에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나를 버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밍밍의 존재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아버지도 무일푼으로 천하 그룹을 만들어 낸 성공 신화의 주인공 아닌가.
나도 할 수 있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나를 버린 아버지를 후회하게 만들겠다.
나는 양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성공하고 말겠다!”
* * *
“식사해요.”
둘이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비좁은 방이었지만 그 안은 온기로 가득했다.
“와, 맛있겠다.”
“에이, 별거 아니에요.”
무슨 열렬한 사랑을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밍밍은 알면 알수록 진국이었다.
수준급인 요리 솜씨에 화 한 번 낸 적이 없을 만큼의 상냥함은 가면 갈수록 밍밍에게 빠져들도록 만들었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얼른 먹자.”
“네.”
나는 밥을 먹으면서 힐끔힐끔 밍밍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호강시켜 줄게.’
별다른 능력도 없는 나에게 이렇게 헌신적인 밍밍을 생각하면 성공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져만 갔다.
‘사업을 해 볼까.’
계속 일용직만을 전전하면 내가 꿈꾸는 성공을 이뤄 낼 수 없다.
‘밍밍 요리 솜씨가 좋으니까 식당을 한번 해 볼까?’
내가 홀을 담당하고 밍밍이 주방을 맡으면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자 밍밍이 말했다.
“뭐 해요? 밥 안 먹고?”
“아, 미안. 우리 미래를 좀 고민하다가.”
내 말에 밍밍이 화들짝 놀라고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런 말을 무슨 면전에서 해요. 민망하게.”
밍밍의 말에 나 또한 화들짝 놀랐다.
“아, 그게 그… 어.”
밍밍이 내 말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인 듯했지만 그렇다고 부정하기도 뭐한 느낌.
그렇게 요상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일단 밥부터 먹자고.”
“그래요.”
나는 과연 밍밍과 결혼을 할까?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많은 질문이 오갔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그 행복엔 밍밍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고마워.”
내 뜬금없는 말에 밍밍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가요?”
“그냥 다. 에이, 그냥 해 본 소리니까 신경 쓰지 마.”
내 말에 밍밍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싱겁기는.”
그렇게 분위기 좋은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며 말했다.
“누구세… 컥!”
문을 열자마자 날아온 발길질.
고통에 눈앞이 새하얘진 나는 배를 부둥켜 잡으며 주저앉았다.
“꺄악! 지호 씨!”
밍밍이 놀라 나를 부축하자 나를 발로 찬 남자 뒤에서 누군가가 빈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여, 밍밍. 여기 있었어? 오랜만.”
놀란 밍밍은 그 남자를 바라보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처, 천 사장님.”
천 사장이란 남자가 밍밍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돈을 빌렸으면 갚을 생각을 해야지. 도망을 가? 평생 도망 다닐 수 있을 줄 알았어?”
돈을 빌렸다니?
나는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미, 밍밍. 저게 무슨 소리야.”
밍밍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 여기 오기 전에 생활비가 부족해서 돈을 조금 빌린 적이 있어요.”
밍밍의 말에 천 사장이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조금이라니. 이거 섭섭하게. 여기 차용증 안 보여? 오늘까지 이자를 다 더하면… 오, 10만 위안이 조금 넘네.”
천 사장의 말에 나는 경악을 하며 말했다.
“시, 십만 위안?”
한국 돈으로 1,600만 원에 이르는 돈.
내 놀란 표정에 밍밍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 겨우 300위안 빌렸을 뿐이라고요. 바로 갚으려 했고요. 그런데 천 사장님이 자꾸 자리를 피하셔서 돈을 못 돌려주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자가 붙었다며…….”
전형적인 고리대금업자의 수법.
여기로 오기 전에 빌렸다면 밍밍이 겨우 20살 때 일이다.
처음 사회로 진출했을 순진한 사람을 꼬셔 빚더미에 앉게 만들다니.
“어이, 내가 자리를 피했다니. 그냥 볼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것뿐이라고. 아무튼 10만 위안 갚아야지?”
천 사장의 말에 밍밍이 울먹이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큰돈은 없어요. 제가, 제가 어떻게든 1,000위안은 만들어서 드릴게요. 제발 부탁드려요.”
밍밍의 말에 천 사장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하, 1,000위안? 2년을 찾아다녔는데 겨우 1,000위안에 퉁치라고?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돈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천 사장이 거칠게 밍밍을 잡아채려 하자 겨우 정신이 든 내가 막아서며 말했다.
“잠깐!”
내 말에 천 사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넌 뭐야?”
일어나서 자세히 보니 천 사장은 60은 족히 넘었을 노인이었다.
“이거 고리대금 아닙니까? 공안에 신고하면… 큭.”
천 사장 옆에 있는 남자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발길질을 날렸다.
평소 성격 같으면 바로 반격했겠지만 천 사장 뒤로 3명의 남자가 더 보였고 나는 밍밍까지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신고? 신고오? 너희 같은 거렁뱅이의 신고를 공안이 거들떠나 볼 거 같아? 거지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큭.”
중국 공안은 언제나 돈 있는 사람의 편.
돈이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뼈저리게 아픈 것이던가.
“얼른 끌고 와!”
천 사장의 말에 남자들이 밍밍을 양쪽에서 구속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밍밍의 처량한 눈빛.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잠깐!”
내 말에 천 사장이 말했다.
“또 뭐?”
“돈. 드리겠습니다.”
내 말에 천 사장이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니까짓 게 10만 위안을 주겠다고?”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장담하건데 일주일 안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밍밍을 놔주십시오.”
“웃기는 소리. 그거 도망치는 놈들 단골 멘트잖아?”
천 사장이 들은 척도 하지 않자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는!”
보란 듯이 성공해 보겠다는 자존심에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아버지와 어머니.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지키고 말 상황이 아니었다.
“천하 그룹 회장입니다.”
“뭐?”
“전 천하 그룹 회장의 차남입니다.”
내 말에 천 사장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
“니가 천하 그룹 박 회장 아들이라고.”
“예. 그러니까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내 말에 모두들 침묵에 빠져들었지만, 이윽고 조금씩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킥킥.”
“큭큭.”
“푸하하하하하.”
한참을 웃어 젖힌 천 사장이 말했다.
“니까짓 게 천하 그룹 차남이다? 이 새끼야, 그럼 나는 빌게이츠 아빠다. 거지새끼가 궁지에 몰리니 미친 소리를 지껄이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입니다.”
“지랄하지 마세요. 예? 그리고 자꾸 박솔 얘기하지 말아 줄래? 나는 말이지.”
천 사장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박솔 얘기만 들으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사람이야.”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아버지께 부탁해서… 컥!”
천 사장이 험악한 얼굴로 나를 걷어차고 말했다.
“내가 박솔 얘기하지 말랬지. 오호, 그러고 보니.”
천 사장이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천 사장의 말에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지탱하며 말했다.
“아들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믿어 주십시오.”
하지만 천 사장은 오히려 양팔을 걷어 올리며 말했다.
“잘됐다. 박솔 닮은 놈이면 때리는 맛도 좋겠지.”
천 사장이 나에게 주먹을 날리며 말했다.
“박솔 그 개새끼 때문에 내가 고생한 걸 생각하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아!”
한참이나 나에게 주먹질을 하던 천 사장이 거친 숨을 내몰아 쉬며 말했다.
“헉헉헉, 나이를 먹으니 옛날 같지 않네. 너 운 좋은 줄 알아. 내가 많이 유해져서 이 정도로 넘어가는 줄 알아.”
그리곤 남자들에게 말했다.
“뭐 해? 어서 끌고 가.”
남자들이 밍밍을 끌고 가려 하자 나도 더 이상 맞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이 새끼들아, 내가 한국의 박지호다!”
* * *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아무리 고등학교 때 한 싸움 했다지만 성인 남성 여럿을 이기는 건 역시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나는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왜! 왜!”
돈이 없다고.
힘이 부족하다고.
왜 이런 비참한 일을 당해야 하는가.
밍밍이 끌려가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이렇게 누워만 있어야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젠장!”
뭐라도 해야 한다.
이대로 밍밍이 끌려가면 무슨 꼴을 당할지 누가 아는가.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나.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아버지! 제발! 내 말을 듣고 있으면 나와 줘요!”
아버지가 파견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 숨어 있다고 믿었던 건 딱 3년 차로 끝.
하지만 그 작은 가능성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아버지한테 전해 줘! 뭐든지 하겠다고! 제발 도와달라고!”
나는 억울함과 비참함에 눈물까지 흘리며 외쳤다.
“힘. 아버지의 힘이 필요하다고! 제발 시간이 없어! 제발 아버지에게 살려달라고 전해 줘! 이대로 지나가면 나 절대 가만히 안 둔다고! 제발!”
하지만 내가 쓰러져 있던 복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래. 내가 헛된 기대를 한 거지.
나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어떻게든 구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때.
“억울하니?”
뒤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의 음성.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뒤를 바라보았다.
“아, 아버지?”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참하니?”
“어, 어떻게 여기에.”
아버지가 내 주변에 배치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회사 일에 바쁜 아버지가 이런 공교한 타이밍에 나타나다니.
“서, 설마 아버지가.”
아버지는 나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럴 리가. 평생 세상을 속여 왔지만, 아들까지 속일 생각은 없다. 나는 정말 물이 흐르는 대로 너를 내버려 뒀을 뿐이야. 밍밍도. 천 사장도 모두.”
아버지의 말에 나는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럼 빨리 도와줘요! 이대로 가면 밍밍이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내 말에도 아버지는 느긋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가 필요하니.”
“힘! 돈! 뭐든지 좋아요! 제발…….”
“그걸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예! 그러니까… 빨리…….”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게 바로 간절함이다.”
“예?”
“원하는 바를 위해 무엇이든. 설령 그게 범죄일지라도 저지르게 만드는 간절함. 너에게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바로 그거지.”
아버지가 뭐라 하든 나는 상관없었다.
“부족하건 뭐건 알겠으니 빨리 구해 달라고요!”
“너는 그 간절함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밍밍을 구해 주면 너는 나를 위해서 뭘 해 줄 수 있니?”
이 와중에도 거래 타령인가.
“뭐든지 하겠다니까요! 형 밑에서 기어 다니라고 해도 할 테니까 제발요!”
“구해 주면… 밍밍과 헤어지라고 해도?”
아버지의 말에 나는 흠칫 놀라며 말했다.
“예? 지금 뭐라고…….”
“밍밍을 구해 주면 헤어지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해도?”
밍밍은 아버지에게 구원을 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밍밍과의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왜? 왜 그래야 하는 거죠?”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자리는 그런 간절함을 기본 토대로 한다. 그래서 너를 코너까지 밀어붙여 느끼도록 만들었지. 이제 너는 그 자리로 갈 준비가 다 됐다. 하지만 밍밍은 아니야.”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밍밍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아버지가 뭘 안다고요! 밍밍은 그동안 나를 지탱해 준 사람이에요! 아버지가 아니라고요!”
“그럼 안 구해 줘도 된다는 거니?”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선택해라. 밍밍을 구할지 안 구할지.”
나는 아버지의 말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아버지.”
“오냐.”
나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아버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자리라는 거… 제가 올라가면 아버지 뒤통수 깔 만큼 힘은 있나요?”
내 말에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
“좋아요. 구해 주세요. 대신 나는 그 자리에 확실히 오른 뒤 아버지를 후려치고 밍밍을 다시 데려올 거예요. 상관없죠?”
“너가 그만큼 힘을 키웠다면 그건 너 자유지. 좋아, 구해 주마.”
그리곤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기자 복도에 숨어 있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가서 밍밍을 구해 와.”
아버지의 말에 남자들이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급히 남자들의 뒤를 따르며 외쳤다.
“두고 봐요! 내가 반드시 자리를 차지한 다음에 복수할 거니까! 밍밍도 데려오고!”
* * *
박솔은 부하들과 함께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밍밍을 데려오겠다는 그 다짐. 그것 또한 간절함이지. 그 간절함이 너를 더욱 성장시킬 거다.”
사실 박솔은 굳이 아들에게서 밍밍을 떨어뜨려 놓을 생각이 없었다.
박솔에게 와이프란 믿을 수 있는 파트너라면 아들에게 밍밍은 기댈 수 있는 따스함이다.
다만 아들로 하여금 더욱 적극적이록 만들기 위해 이용할 뿐.
“절망적인 간절함을 모른다면 결코 내 자리를 물려받을 수 없지. 그 간절함을 이용해 만든 조직이니까. 그나저나.”
박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천페이. 고리대금을 하고 있었나.”
한때 자신과 중고부품 관련해 싸웠던 천페이가 갑자기 등장해 박솔도 조금 놀랐었다.
규모만 작을 뿐 그때와 하는 일은 비슷하단 생각을 하며 박솔이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잘됐네. 과거의 악연을 정리해야지. 감히 내 아들을 때려?”
* * *
“지, 지호 씨.”
밍밍은 갑자기 건장한 남자 수십 명을 끌고 와 자신을 구해 낸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 사람들은 뭐예요?”
내가 끌고 온 아버지의 부하들은 천 사장과 그 부하들을 말 그대로 쥐 잡듯이 패고 있었다.
나를 때렸던 천 사장은 바닥을 굴러다니며 외쳤다.
“악! 악! 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다시 밍밍에게 시선을 옮기고 말했다.
“잘 들어.”
“예?”
“나는 당분간 밍밍 앞에서 사라질 거야.”
내 말에 밍밍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거래 조건이었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딱 1년! 1년만 기다려 줘. 내가 어떻게든 찾으러 올게.”
“아, 아니. 지금 무슨 말이에요?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봐요!”
“지금은 말해 줄 수 없어. 아니, 사실 나도 모른다고 보는 게 맞겠지.”
나는 밍밍을 껴안으며 말했다.
“나를 믿고 1년만 기다려 줘. 다른 건 필요 없어. 기다려 준다는 약속 하나만 해 줘.”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무작정 기다려 달라고요?”
“나도 내가 염치없는 거 알아. 그냥… 지금은 그냥 이런 말밖에 못 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 몰라? 나 박지호야!”
내 품 안에서 조용히 있던 밍밍이 말했다.
“기다리면 되는 거죠?”
나는 화색을 띤 얼굴로 말했다.
“정말이지? 기다려 주는 거지?”
“…알겠어요. 기다려 줄게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러는 사이 천 사장 일당을 정리한 남자들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가시죠. 기다리십니다.”
나는 남자를 한 번 노려본 뒤 밍밍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날 믿어! 1년! 1년 안에 돌아올게!”
밍밍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믿어 볼게요.”
* * *
“진짜 소개팅 안 할 거야?”
같이 식당 일을 하는 언니의 말에 밍밍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남자친구 있다니까요.”
밍밍의 말에 언니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 1년 넘게 연락 한번 없는 남자친구? 그게 남자친구니?”
“…….”
박지호에게 약속한 지 벌써 1년하고도 3달이 넘었다.
“저는 믿어요. 지호 씨는 한다면 하는 남자예요.”
언니는 답답하다는 듯 연신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아이고, 이 멍청하도록 착한 것아. 남자는 떠나면 다 똑같아요. 그러지 말고 해 보라니까? 만나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이 남자 아버지가 시내에서 큰 식당을 운영한다고 하더라고.”
언니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 했지만 밍밍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짜 괜찮아요. 언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늦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그때 식당 사장의 딸 위명이 밍밍을 비웃으며 말했다.
“호호, 밍밍 씨는 그 노가다꾼이 왜 그렇게 맘에 든 거예요? 아주 열녀 나셨네.”
위명의 말에 밍밍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직업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중요하고말고요~ 나 봐요.”
위명이 명품으로 치장한 스스로를 뽐내며 말했다.
“남편 잘 만나서 호강하잖아요?”
위명의 남편은 건설업을 하는 사업가로 제법 잘나가고 있었다.
“…….”
밍밍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위명은 신이 나서 말했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그 노가다 남자친구 다시 돌아오면 저한테 말하세요. 남편한테 써 주라고 할 테니까. 근데 진짜 대단하다. 남자친구 돌아오면 둘이 좁은 방에서 지지고 볶을 텐데 그러고 살고 싶을까?”
위명의 놀림에도 밍밍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밍밍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위명은 흥미를 잃었고 그렇게 식당이 조용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식당 문을 박차고 건장한 남자 십여 명이 각목을 들고 들어왔다.
“사장 나오라, 그래!”
남자의 말에 주방에서 사장이 놀란 표정으로 나오며 말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잔말은 됐고.”
남자가 계약서를 들이밀며 말했다.
“이 식당 나한테 팔아.”
“예?”
사장의 대답에 남자가 각목으로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내가 이 식당 팔라고 하잖아!”
사장이 덜덜 떨며 말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다짜고짜 팔라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거, 진짜 말 많네. 그래서 안 팔 거야? 앙?”
위명은 자신의 아버지가 위기에 처하자 대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 남편이 누군 줄 알아!?”
“이년은 또 뭐야? 니 남편이 누군데?”
“이한 건설 사장 이한이다!”
위명이 자랑스럽게 외쳤지만 남자는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 이 사장? 여기가 이 사장 처가였나? 그래서 뭐.”
남자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자 당황한 위명이 말했다.
“내, 내 남편이 이한…….”
“그래서 어쩌라고. 이 사장 우리한테 보호받는 사람인데 조만간 건실한 대화를 나눠야겠네.”
남자의 말에 위명이 공포에 휩싸였고 남자는 뒤에 있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부숴라!”
“예!”
부하들이 각목으로 식당을 박살 내는 걸 구경하던 남자는 구석에 있던 밍밍을 발견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가가 말했다.
“여, 아가씨. 이쁜데?”
밍밍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이야, 무서워하니까 더 이쁜데? 맘에 들어. 나랑 같이 살까?”
남자가 밍밍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며 말했다.
“따라와!”
“놔요!”
밍밍은 거칠게 반항했지만, 남자의 힘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식당 밖까지 끌려 나왔다.
“히히히히, 나랑 좋은 시간 보내자고.”
밍밍은 남자의 말에 절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제발… 저 남자친구 있어요.”
“앙? 그게 어쩌라고.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고 해!”
바로 그 순간.
멀리서 똑같이 생긴 검은색 세단 수십 대가 도로를 꽉 채우고 식당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뭐지, 높으신 분 행차신가?”
아무리 동네에서 힘 좀 쓴다지만 저 행렬은 수준이 달랐다.
남자는 여전히 밍밍의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조용히 있어. 지나갈 때까지.”
“제발… 제발 놔 주세요.”
“이 씨발 년이 진짜. 죽어 봐야 정신 차릴래?”
그렇게 남자는 조용히 차량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검은 세단들이 모두 동시에 식당 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
그리고 내리기 시작하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
그 숫자는 물경 100이 넘었다.
그 위압적인 모습에 남자가 당황해하는 사이 차량 행렬 가장 중간에 있던 세단의 운전사가 조심스럽게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린 남자는 고급스런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채 남자와 밍밍에게 다가왔다.
위압적인 분위기에 당황해하던 남자는 보스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구신지.”
그 말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누구긴. 불만 있으면 찾아오라며. 니가 잡고 있는 그 여자 남자친구다.”
“지호 씨!”
남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이년 남자친구?”
“이년? 이년? 야.”
남자에게 다가간 박지호가 이를 갈며 말했다.
“야. 너 뒈질래? 어디서 이년 저년이야.”
“아, 아니 그게.”
“손 안 놔?”
엉겁결에 남자는 밍밍의 손을 놓았고 박지호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웬만하면 최대한 멋있게 나타나려 했는데 워낙 급해서 말이지. 미안.”
“…왜 이렇게 늦었어요?”
“그게 말이야. 아, 그 전에.”
박지호는 박수를 두 번 치며 말했다.
“조져.”
박지호의 말에 함께 온 부하들은 남자와 그의 부하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난장판 사이에서 박지호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미안해. 진작에 끝나긴 했는데 마무리를 좀 하느라 늦었어.”
“…긴급 상황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사실 도청을 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미안해, 약속을 못 지켜서.”
밍밍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됐어요. 그래서… 잘 해결됐어요?”
밍밍의 말에 박지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돌아온 거예요?”
박지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응! 완전히! 나 돌아왔어.”
밍밍 또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요.”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