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Genius Spearman RAW novel - Chapter (1)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화(1/150)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
황폐한 땅이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땅은 피로 얼룩져 있었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있던 집과 가게는 모두 부서져 그 쓰임새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길 곳곳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시체.
그리고 그 끝의 협곡 아래, 영광 따윈 없는 죽음의 땅 중심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특별해 보일 것 없는 갑옷.
눌러쓴 투구 안으론 피가 흘러나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나 쓸 것만 같은 창날은 이가 다 빠져 있었고, 곧 부러질 것처럼 흔들거렸다.
“쿨럭!”
데미안은 결국 피를 토하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세를 막아 내긴 했지만…….
‘……시발, 처음부터 무모한 작전이라고 말했는데.’
작전은 성공했다.
적들의 진격을 막은 것뿐만 아니라 이천 명이 넘는 적의 부대를 전멸시켰으니까 말이다.
고작 백 명밖에 되지 않는 부대로 말이다. 하지만…….
“…….”
데미안은 죽은 자신들의 부대원들을 보았다.
자신을 제외하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죽은 것이다.
으득!
꽉 깨문 입술로 피가 흘러내린다.
부하들이긴 했지만 데미안에게 있어선 처음으로 가족과도 같은 녀석들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너희를 전부 지켰을 텐데.”
데미안은 이미 시체가 되어 버린 부대원들을 보았다.
몇몇 놈들은 눈조차 감지 못한 채 죽어 있는 모습에 데미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녀석들의 눈을 감겨 주었다.
털썩.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은 데미안.
어느덧 그가 있던 곳 주변으로 피가 고일 만큼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젠장.”
데미안도 알고 있다.
자신 역시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다만 죽을 때가 되어 그런가?
후회스러운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스물다섯에 처음 군대에 발을 붙인 데미안은 그야말로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단 1년 만에 오십인장이 되었고, 2년 차에 백인장이 되었다.
징벌 부대 출신이었기에 승진이 막힌 것일 뿐, 3년 차에선 어지간한 기사들은 데리고 놀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창술을 지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씨발.”
데미안은 자신의 아랫배에 새겨진 흉측한 흉터를 떠올렸다.
뒷골목 시절 칼을 잘못 맞은 바람에 아랫배에 있는 마력홀이 깨져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몸뚱이였다는 것이다.
물론 스물다섯이라는 늦은 나이도 한몫했고.
“하아…….”
돌아보니 후회만 가득했던 삶이었다.
눈물이 날 만큼 후회를 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짓거리일 뿐이다.
그저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렇게 후회만 남는다고 하는지 알 것만 같은 기분이다.
“젠장.”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진짜 이 녀석들과 함께 전장을 지배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이 녀석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쓸어 버리며 무쌍을 찍는 그런 상상을.
하지만 이제는 그저…….
스르륵.
이윽고 데미안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며 그의 손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바로크 왕국의 징벌 부대 소속 백인장 데미안.
고작 30세의 나이에 그는 이름 없는 전장에서 눈을 감았다.
* * *
“흐악!”
경기를 일으키는 듯한 신음과도 같은 비명과 함께 데미안이 눈을 떴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데미안에게 말했다.
“흐흐, 데미안. 이런 중요한 순간에 잠이 들면 어떻게 하니. 어서 여기에 사인해야지.”
“……퍼커 삼촌?”
그저 자리에 앉아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흐르는 땀.
뒤룩뒤룩 찐 볼살은 웃을 때마다 흔들렸고, 털이 수북한 손은 맞잡은 채 아부하듯 데미안을 향해 비비고 있었다.
이 음흉한 미소, 목소리. 그리고 입을 열 때마다 나는 역겨운 냄새.
어떻게 십수 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이렇게 생생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데미안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어?”
이게 무슨 상황이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나, 난 방금 분명히…….”
이천여 명의 적들을 죽이고, 쓰러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어째서 가장 증오스러운 얼굴이 눈앞에 있는 건가.
게다가 이 얼굴.
꿈에서라도 나타나면 직접 두들겨 패 주고 싶었는데…….
데미안은 자신도 모르게 앞에 있던 퍼커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어?”
“으악!”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찰진 느낌과 함께 고막을 강타하는 비명.
퍼커가 바닥에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여, 여보!”
“괜찮으십니까? 아, 아니 자네. 지금 무슨 짓인가?”
데미안의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것은 데미안이었다.
‘이…… 느낌…….’
꿈이 아니다.
이제야 뭔가 주변의 환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퍼커 삼촌의 집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곳에서 살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남자.
부모님의 생명 보험을 담당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름까진 기억나지 않지만.
스윽.
데미안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서류를 보았다.
대략 십여 장 정도로 꽤나 복잡한 내용이 적혀 있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부모님의 생명 보험금을 퍼커 삼촌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이다.
‘이때는…… 그냥 퍼커 삼촌이 잠깐 맡아 주는 줄만 알았었지.’
바보 같았다. 아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
열세 살이라곤 하나 아무런 경험조차 없는 풋내기였으니까 말이다.
1년 넘게 자신을 친자식처럼 돌봐 준 퍼커 삼촌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데미안도 그를 삼촌이 아닌 부모처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서류에 사인을 하는 그 순간 데미안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보험금을 받은 퍼커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고, 데미안은 쫓겨난 이후 방황을 하다 결국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하하…… 하…… 하…….”
이게 꿈인지 아닌지 머릿속이 복잡하다.
갑자기 지난 거지 같았던 삶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덥석.
서류를 움켜쥔 데미안은 볼 것도 없다는 듯 그대로 서류를 반으로 찢었다.
찌이이이이이익!
“데, 데미안!”
“이게 무슨 짓이냐, 데미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퍼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데미안에게 소리쳤다.
데미안은 신경도 쓰지 않고 앞에 있는 보험 담당자를 보았다.
“이름이 뭡니까?”
“음?”
“당신 이름.”
“……빌슨이네.”
새파란 아이의 말에 빌슨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시를 하기엔 어쨌든 보험 수령 고객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보다도 그의 눈빛이 열세 살 아이의 눈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깊고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도 있는가?’
사인을 앞두고 한 15초 정도 졸았을까?
그저 잠깐 눈을 감고 멍하니 있다 생각했는데, 다시 눈을 떴을 때 데미안은 달라졌다.
그냥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데미안이 빌슨에게 말했다.
“보험금은 오로지 내 명의로 된 제국 은행으로 받겠다. 특약 사항으로 반드시 기재해 둬. 나의 증표, 사인, 서류 따위 없이 데미안 본인이 가지 않을 시 수령은 불가능하다고 말이야.”
“데, 데미안! 그게 무슨 소리더냐!”
“데미안, 넌 아직 어리니까 이 숙모와 삼촌이 맡아 준다고 말했잖니.”
갑자기 변해 버린 데미안의 행동에 퍼커와 숙모가 다급하게 얘기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빌슨이 가방에서 새로운 서류를 꺼냈다.
“특약 사항은 곧바로 추가가 가능합니다.”
그러고는 서류에 데미안이 말한 특약 사항을 슥슥 쓰기 시작하더니, 이내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이곳에 사인만 하시면 데미안 님의 이름으로 된 제국 은행으로 보험금이 지급됩니다. 이후 편한 시간에 가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고 수령하시면 됩니다.”
“좋군.”
“그럼 본인 확인 절차를 위해 실례하겠습니다.”
빌슨은 바늘을 꺼내 데미안의 손가락 끝을 찔러 피 몇 방울을 마법 시약이 든 병에 담았다.
마법 시약과 피가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후에 이것으로 제국 은행에서도 데미안의 본인 확인이 진행되는 것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자 빌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아, 아니 잠깐! 이봐요, 잠깐만요!”
뒤늦게 퍼커가 빌슨을 잡았지만 빌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에 빌슨이 떠난 곳을 멍하니 보고 있던 퍼커가 몸을 홱 돌려 데미안을 보았다.
순식간에 계획이 모두 어그러지자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이다.
“너 이 개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후…… 다행이야.”
퍼커의 욕설에 데미안이 빙긋 미소 지었다.
퍼커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뭐라고?”
“난 혹시라도 그냥 넘어가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했는데 말이야.”
“이 새끼,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하지만 데미안은 옆으로 걸음을 옮기더니 벽에 기대어 있던 대걸레의 자루를 뽑아 들었다.
“고맙다, 내 기억처럼 계속 개새끼여서.”
덥석.
열세 살이긴 했지만, 데미안은 또래들보다 제법 발육이 좋은 편이었다.
키도 성인들 못지않았고, 잘 먹고 자란 탓에 체격도 제법 괜찮았다.
게다가 무엇보다 뒷골목과 전장에서 사람 패는 일만 십 년 넘게 한 데미안이다.
하물며 저렇게 살만 뒤룩뒤룩 찐 돼지 정도야…….
“조금 아플 거야. 내가 쌓인 게 많거든.”
“뭐?”
그날, 퍼커의 집 안에서 돼지 잡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 *
당연한 말이겠지만 데미안은 퍼커의 집에서 나왔다.
물론 나오면서 집에 있는 물건 몇 개를 가지고 온 탓에 며칠 동안 생활에는 걱정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에 다른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보험금 관련 일은 확실하게 끝내고 가야지.’
퍼커가 뒤에서 또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니까 말이다.
“…….”
그나마 외진 곳으로 이동해서 숙소를 잡은 데미안은 방안에 틀어박힌 채 지금의 상황을 정리했다.
“후우…….”
하지만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 보아도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과거라니…… 그것도 17년 전으로…….”
데미안은 아직 솜털이 송송한 자신의 손을 보았다.
굳은살이 가득했던 원래의 투박한 손과는 달리 하얀 피부가 뽀송뽀송한 아기 손이었다.
게다가…….
스윽.
데미안은 자신의 상의를 걷어 배 쪽을 보았다.
아랫배에 흉측한 흉터가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이다.
“……마력홀도 멀쩡하다.”
이 말은 즉…….
‘나도 이제…… 마력을 익힐 수 있어.’
순간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물밀려 오듯 데미안을 덮쳤다.
당연한 일이다.
아랫배 쪽에 위치한 마력홀은 마력 수련을 하는 무장들에게 있어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니까.
과거의 삶, 데미안은 마력을 익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마력을 익히지 못했기에, 그 한계는 명확했다.
그러나 이제, 데미안에겐 한계 따윈 없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데미안은 몇 번이나 거울을 보며 볼을 꼬집었는지 모른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돌아왔다.’
자신의 삶이 뒤틀리기 전, 바로 그때로 말이다.
지난 삶에서의 데미안은 처절한 그 자체였다.
퍼커에게서 쫓겨난 후 어쩔 수 없이 뒷골목으로 숨어들어 데미안은 깡패들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자랐다.
부모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 열세 살 꼬마는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도 맛있는 먹잇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뒷골목을 전전하며 뒷골목 건달들의 똘마니 노릇을 하다가 간부가 저지른 범죄를 뒤집어쓴 채 감옥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빌어먹을 새끼.’
분명히 나오면 조직에 큰 자리를 준다고 했었지만, 그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범죄가 아니었다.
결국 데미안은 감옥에 들어갔다가 강제 징병 되어 전쟁터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끌려간 군대에서 데미안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창을 다루는 데미안의 재능이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고, 군대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엄청난 속도로 습득한 것이다.
결국 실력을 인정받고 백인장까지 될 수 있었다.
‘뭐, 결국 뒈졌지만.’
하지만 30년의 삶 중에서 군대에 있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았다.
―자넨 정말 아쉽구만. 10년…… 아니, 5년만 더 빨리 시작했었어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어째서 예전 자신을 가르쳤던 교관님의 말이 떠오른 걸까.
악마 교관이라 불리며 훈련병들을 가르쳤던 그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하지만 그때…….
“……?”
순간 데미안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이럴 줄 알고 외진 곳으로 도망친 거였는데…….
“불청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