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Genius Spearman RAW novel - Chapter (106)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09화(109/150)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09)
“……여기까지인가.”
피로 얼룩진 전장이었다.
연합군 측에서만 오천 명 이상이 죽어 나갔다.
피아렌은 피가 떨어지는 검을 잡은 채 본대를 보았다.
막고자 한다면 충분히 스라간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1만의 병력을 버리면서까지 이 스라간을 차지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미 가치가 떨어진 장소다.’
게다가 1만은 그저 스라간을 점령하기 위해 남겨 놓은 잔여 병력이지 않은가.
그나마 피아렌이 임무를 띠고 남아 있었기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지만.
“스페니언 왕국의 왕족조차 남아 있지 않은 땅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지.”
이미 멸망해 버린 왕국이다.
괜스레 아군의 피해를 방조할 필요는 없었다.
“우린 물러나도록 하지. 후방으로 이동해서 마일로와 합류한다.”
지금쯤이면 마일로도 그 귀찮은 녀석들을 전부 처리했을 터.
“로베르타에게 알려라. 병력을 후퇴하라고.”
“예.”
피아렌의 말에 옆에 있던 기사가 허리에 걸고 있던 나팔을 꺼냈다.
뿌우우우우우우!
나팔을 불자 피아렌이 말 머리를 돌렸다.
할 일을 다 끝냈으니, 이제는 본국으로 귀환을 할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부대의 후방으로 이동한 피아렌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전멸이라고?”
마일로가 이끌던 자신의 기사단이 전멸했다는 소식.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피아렌은 순간 말문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어…… 어디지?”
“……안내하겠습니다.”
소식을 전한 병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스라간 옆쪽의 언덕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그곳에는 제국의 병사들이 죽은 로즈나이트 기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 모습에 피아렌이 허탈한 표정으로 죽은 부하들을 보았다.
처참한 검상.
죽은 그 순간의 감정이 느껴지는 녀석들의 모습에 피아렌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
목이 떨어진 시체.
익숙한 갑옷을 입고 있는 몸뚱이.
한눈에 그가 마일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즈나이트 부단장의 머리만 수급으로 가지고 간 것이다.
부르르.
꽉 쥔 주먹이 절로 떨렸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며.
콰득!
꽉 깨문 입술에서 그리고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빌어……먹을…… 빌어먹……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를 참지 못한 피아렌의 고함이 언덕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의 분노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마치 폭주하듯 주변으로 일렁였고.
“큭!”
“크악!”
일반 병사들은 피아렌이 뿜어내는 기세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흐트러진 피아렌의 모습이 있었던가.
아니, 그런 걸 떠나서 그가 내뿜는 기세에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피, 피아렌 님!”
그때 로즈나이트 기사단의 기사가 피아렌을 불렀다.
그 외침에 피아렌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베르너.”
“하명하십시오, 단장님.”
베르너라 불린 기사의 말에 피아렌이 말했다.
“찾아라, 그 녀석들이 누군지 반드시 찾아서 내게 보고하도록 해라.”
이 빚은 반드시 갚을 것이다.
세상 끝까지 쫓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내 것을 건드렸다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지.”
싸늘하게 가라앉은 피아렌의 목소리에 베르너는 그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 * *
벌떡!
“뭐라고?!”
“그, 그게…….”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키아렌이다.
어지간한 일에는 말을 더듬지 않는 에드먼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지금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일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카이온…… 부대가 로즈나이트 기사단의 부단장과 더불어 50명에 달하는 기사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하.”
키아렌이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순간 잘못 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앞뒤가 맞지 않으니까.
하지만 에드먼이 거짓 보고를 할 이유도,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어서 키아렌이 에드먼을 보며 물었다.
“카이온 부대의 피해는?”
“정확하게 전달받진 못했습니다만, 사망자가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대략 십여 명 정도인 것 같습니다.”
“십여 명이라…….”
죽은 이에겐 미안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사실상 거의 피해가 없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키아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해라.”
“……발페이트로 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그럼 안 갈 거야?”
키아렌의 말에 에드먼이 고개를 저었다.
“가야죠. 이런 큰 공을 세웠는데, 가서 칭찬도 해 주고 위로도 해 주셔야지요.”
“위로는 무슨.”
군인의 공은 포상으로 보답한다.
어설픈 위로 따위는 필요 없다.
“군단장 직속으로 바로 포상을 내릴 테니, 가는 동안 걸맞은 것을 생각해 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저 단순히 수고했다 따위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에드먼도 알고 있었다.
이번 일.
‘……정말 대단하군.’
보통 일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에드먼이었지만, 이번 일만큼은 카이온 부대를 재평가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키아렌은 에드먼을 비롯한 수행원들과 함께 발페이트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화르르륵!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며 카이온 부대원들은 모두 침묵했다.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몇몇 부대원은 바닥에 주저앉아 벌어진 상처를 천으로 누르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함께 싸운…… 전우였던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작별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꽃을 바라보던 데미안이 각 잡힌 제식으로 몸을 돌려 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부대애애애애애! 차렷!”
척!
데미안의 말에 부대원들이 두 발을 붙이며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고통으로 안면이 파르르 떨리는 부대원들도 있었지만, 그들 모두 입을 꾹 다문 채 고통을 참아 냈다.
“떠나간 전우들에게…… 경례!”
“왕국에 영광을!”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외침.
그에 데미안이 몸을 돌려 전우들의 시체를 태우고 있는 화장대 앞에 서며, 오른 주먹을 왼쪽 가슴에 댔다.
척.
함께 싸운 전우들을 위한 마지막 인사.
죽은 이들을 한 명 한 명 떠올린 데미안은 이윽고 주먹을 내리며 부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비장한 표정.
슬픔을 애써 감추기 위해 더욱 날카로운 기세를 풍기고 있는 듯했다.
이어서 데미안이 부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기억해라.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이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이름이 대륙 전체에 널리 퍼질 수 있었음을.
“하지만 슬픔을 오래 가지고 가지 말도록.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되, 그들의 죽음이 계속해서 값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쳐부숴야 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쩌렁쩌렁한 외침.
그 소리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싸움에서 로즈나이트 기사단을 격퇴하며 카이온 부대는 그야말로 명실상부 최강의 독립 부대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당연히…….
‘녀석도 이를 갈고 있겠지.’
부하들의 절반을 잃어버린 슬픔.
오러 마스터라는 그의 위명이 훼손된 것에 대해서도.
분명 자신들을 찾을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녀석과 다시 맞붙을 날을 기약하며…….
‘우리도 준비해야지.’
그리고 나도.
이번 싸움에서 제법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죽은 동료들을 위한 넋을 기릴 뿐이었다.
카이온 부대원들은 밤새 타오르는 불꽃의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죽은 동료들과의 작별 인사를 마쳤다.
* * *
“끄윽…… 으윽……!”
“으악…… 뒤지겠다.”
응급 처치는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전우들의 화장을 끝낸 카이온 부대원들은 모두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자리에 누워 있었다.
의무병들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그들을 보았다.
“미친…… 이런 부상인데 부대원들의 화장식을 했다고……?”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이런 부상을…….”
“대체 어떤 싸움을 한 거야?”
솔직히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의무병은 옆에 서 있던 데미안을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역사에 남을 만한 일?”
데미안의 말에 의무병이 표정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데미안은 이내 자신이 가지고 온 약초를 꺼내며 의무병에게 말했다.
“이것까지 사용해도 되니까, 약초는 아끼지 말고…… 빨리 낫게 해 줘. 흉 지지 않게.”
“……노력은 해 보겠습니다만 흉터는 무조건 생길 것 같습니다.”
검에 관통당했는데 어떻게 흉터가 없겠는가.
데미안은 그저 의무병들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어느덧 다가온 리온하르크를 보며 데미안이 그를 따라갔다.
“로즈나이트 기사단과 전면전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건가?”
“……단장이 빠지고 반으로 갈린 그 타이밍이 녀석들을 상대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무모했네. 부대원들이 일반 병사들보다는 훨씬 강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기사단과 맞붙기엔 부족해.”
사실 리온하르크도 알고 있었다.
카이온 부대원들 한 명 한 명이 보통의 하급 기사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상대는 로즈나이트 기사단이었네. 제국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의 기사들인데…….”
“……죄송합니다.”
“그래도…… 대단하군. 그들의 절반을 전멸시켰으니 제국에도 제대로 된 한 방을 날린 것과 다름이 없네.”
이번 전쟁에서 상당히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
그렇지만 전력적인 부분을 따지고 본다면, 제국이 훨씬 크게 손해를 봤다고 해도 무방했다.
“죽은 부대원들은 잘 준비해서 보내 주도록 하게나.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서신을 보낼 테니.”
“그…… 가족들에게는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너무 먼 곳은 사람을 보내야 하겠지만…… 제가 직접 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함께 훈련을 받던 동료의 죽음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왕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것이 군인이며 전장이지 않은가.
리온하르크의 침통한 표정을 보며 데미안은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때.
“……부대장님.”
“상처는 어때?”
“저는 심하지 않습니다. 다른 녀석들이 심각하죠.”
데미안의 몸에도 꽤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쌓인 상태였다. 그러나 데미안은 겉으로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그 모습에 디아날이 침묵했고, 그런 디아날을 보며 데미안이 말했다.
“괜찮으면 같이 나갈 수 있겠어?”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하지만 질문을 하던 디아날은 순간적으로 데미안의 눈빛에 담긴 감정을 읽었다.
그에 디아날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함께 가겠습니다.”
데미안과 디아날은 죽은 동료들의 유품을 하나씩 챙기며 그들의 가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