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Genius Spearman RAW novel - Chapter (122)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25화(125/150)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125)
황폐한 땅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피로 물든 땅은 여전히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집과 가게는 엉망으로 박살이 나 있었다.
화르륵!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검은 연기가 먹구름처럼 하늘에 번졌고, 죽은 시체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 있는 한 남자.
데미안은 보급용으로 주어진 평범한 갑옷과 창을 쥔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이 꿈인가.’
한동안은 꾸지 않았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광경을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맹세코, 단 한 번도.
매일같이 이때를 떠올리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지 않겠다 이를 악물며 말이다.
하지만 그때.
쑤아아악!
갑자기 전방에서 밀려오는 어둠이 순식간에 데미안을 집어삼켰다.
그 어둠 속에 갇힌 데미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앞을 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핏빛으로 형상화되는 얼굴.
흐릿했지만, 그 얼굴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네놈.”
데미안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 녀석에게 죽은 부하들의 수가 몇 명이며, 자신 또한 죽음을 맞았다.
그때의 기억.
결코 잊을 수 없는 수치와 절망이 가득한 기억에 데미안이 창을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죽인다…… 네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이겠다!”
악에 받친 외침과 함께 데미안의 눈이 붉게 변했다.
분노로 인해 흰자위의 핏줄이 터졌고, 붉게 변한 데미안의 모습은 흡사 악귀와도 같았다. 게다가.
푸아악!
그때와는 달리 자유롭게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데미안.
그의 창으로 검붉은 증오의 빛이 일렁이며 녀석을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그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쑤아아악!
그의 검을 따라 흩어지는 검은 악령들이 데미안의 몸을 물어뜯으며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거친 비명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데미안은 곧장 바닥을 구르다 일어나 주변을 경계했다.
“허억…… 허억…… 허억…….”
땀은 비 오듯 흘러내렸고, 가슴을 헐떡이며 거친 숨을 토하고 있었다.
‘……여긴.’
조금 전의 어둠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집안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이곳은…….
“무슨 꿈을 꿨기에 이리 소란인가?”
찻잔을 들고 방으로 들어온 남자의 모습에 데미안이 시선을 돌렸다.
금발의 머리카락.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빛.
하이넬이었다.
“……악몽을 꾼 듯합니다.”
“그래 보이는구먼. 시원한 물 한잔하겠나?”
“감사합니다.”
하이넬이 한 손에 쥐고 있던 물 잔을 데미안에게 내밀었다.
이윽고 물을 마신 데미안이 작게 호흡을 고르며 하이넬을 보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표정.
하이넬이 피식 웃었다.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보고 싶은 건가?”
“……예.”
하이넬과의 대련.
분명 자신의 공격은 완벽했다.
어지간한…… 아니, 상급의 검술을 지니고 있던 기사들조차 자신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하이넬은 자신의 공격을 단번에 막아 냈다.
아니,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분명 보였는데.’
그가 내지르는 검의 방향, 각도.
어디를 노리는지까지 완전히 파악을 했었지만.
‘피하지 못했어.’
보였지만 몸이 반응하지 못한 것이다.
방어할 틈도 없이 말이다.
하이넬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복잡한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네.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 상태에선 굉장히 대단한 일이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데미안의 물음에 하이넬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뭐랄까.
자신이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졌던 이가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왕국에서, 아니 대륙 전체에서 찾아보아도 이 나이에 이 정도 경지에 오른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타고난 재능이란 이런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데미안을 보는 하이넬의 눈빛엔 굉장히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하이넬이 말했다.
“자네는 오러 마스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나?”
“예.”
데미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러 마스터를 많이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삶, 자신과 자신의 부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와 눈앞에 있는 하이넬 이렇게 총 두 명을 겪어 본 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러 마스터는 일반 기사들과는 다른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데미안의 대답에 하이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다르네. 같을 수는 없지.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오러라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것 자체가 다르지 않습니까.”
데미안은 하이넬이 뿜어냈던 오러를 떠올렸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
경외심마저 드는 그 힘 앞에선 자신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이넬이 고개를 저었다.
“오러 마스터의 능력은 단순히 오러라는 강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네.”
그는 설명이 조금 어렵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까.”
“……?”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기에, 이렇게 고민하는 것일까.
하이넬은 무언가 상당히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보통의 사람이 있네. 훈련을 받은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의 무력 수준을 이쯤으로 두지.”
그는 손바닥을 펴서 허공에 댔다. 그리고 그보다 높은 곳에 손바닥을 펴 더니.
“그리고 여긴 일반적으로 훈련을 거친 무장들이 있는 수준이라고 하지.”
일반인과 무장과의 격차를 생각한다면, 손바닥 사이의 간격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자네에게 묻지. 일반인과 무장의 차이점을 말한다면, 단순히 무장이 검술을 배웠다는 그 차이일까?”
“아닙니다.”
데미안이 말했다.
이 질문은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단순히 검술뿐만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성장한 근력이나 순발력 그리고 경험에서 오는 차이. 기본적으로 수준의 차이가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설명일세. 그 말이 가장 적절한 것 같군. ‘수준’의 차이.”
하이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말을 이었다.
“오러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와 일반 무장의 사이에도 그 ‘수준’의 차이가 있네. 정확하게는…… 격이라는 말을 해도 좋지 않을까 싶군.”
“……격이요?”
데미안의 물음에 하이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이 무장의 공격에 반응조차 할 수 없는 것처럼, 일반적인 무장들 역시 오러 마스터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란 쉽지가 않네. 대등한 싸움을 하기 위해선 오러를 빼고, 그 격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라네.”
“…….”
어려운 말이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 얼핏 이해가 되기도 했다.
데미안이 뭔가 조금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자, 하이넬은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 가지고 온 차를 마셨다.
몸을 따스하게 해 주는 온기와 콧속으로 스며드는 은은한 향이 머리를 맑게 해 주는 느낌이었다.
“…….”
하이넬은 데미안을 보았다.
말없이, 그저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기다리며 말이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그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하이넬의 모습에 그를 오랫동안 모셔 왔던 빌립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분이신데…….’
그런 분께서 이렇게나 타인의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줄이야.
어느덧 빌립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런 하이넬의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으니까.
그동안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자제하며 홀로 왕국을 지켜 오신 분이시다.
바로크 왕국 내에선 행보 자체가 화제가 되었고, 존재 자체가 주목받는 삶이었다.
그러다 보니 움직임 하나하나가 정치적인 부분으로 항상 엮일 수밖에 없었다.
하이넬이 누군가를 만나면, 무슨 작당을 하고 있다. 어느 쪽 편에 들어갔다.
이런 이야기들이 숱하게 흘러나왔으니까.
그랬기에 자연스레 하이넬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새로운…… 왕국의 유망주가 될 수 있는 자인가.’
여태껏 고민이 많았던 눈빛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후우, 어렵네요.”
데미안이 작게 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에 하이넬은 데미안을 보며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네. 솔직히 자네 나이에 이 정도 성취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
그러고는 하이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날 만나고자 하는 볼일을 끝난 건가?”
“……그럴 리가요. 염치없지만 도움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 당장 오러를 다루는 건 불가능하네. 오러를 다루기 위해선 그만큼의 격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니까.”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길을 알려 주십시오.”
데미안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제 뭔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격……이라.’
데미안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새로운 삶에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바로크 왕국의 제1 오러 마스터, 하이넬 프레문트.
평화의 시대.
멍청한 왕국은 이런 수호신을 두고 정치 싸움에 끌어들이며 의미 없는 소모전만을 하고 있었다.
그런 멍청이들에게 휘말려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을 뿐, 냉정하게 실력으로만 본다면…….
‘제국의 그 어떤 오러 마스터들과도 밀리지 않는 강함을 지니고 있다.’
하이넬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때문에 이 천금 같은 만남을 어떻게든 이어 가고 싶었다.
물론 그가 응해 줘야 가능하겠지만…….
그리고.
“좋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네.”
“……예?”
“그냥 공짜로 알려 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이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머금어졌다.
마치 장난기 많은 아이의 그것처럼.
데미안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하이넬을 보았다.
설마 돈을 요구하지는 않을 테고.
“조건이…… 무엇입니까?”
“흐흐, 간단하네.”
하이넬의 조건.
그의 조건을 듣고 데미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 * *
키아렌은 리온하르크에게 온 서신을 보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이넬 공작님께서 데미안에게 초대장을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에드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드먼도 상당히 놀랐었다.
하이넬 공작이라면 어지간한 인사가 아닌 이상 만나는 것이 상당히 힘들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제 상사가 된 어린 소년이 하이넬을 만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하이넬이 데미안을 만난 것도 놀라운데, 서신의 중간 이후에 적힌 내용은 키아렌은 또다시 놀라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에드먼이 물었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습니까?”
“하이넬 공작님이 데미안과 무슨 내기를 했다는데, 그 내기가 끝나기 전에는 부대로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하는군.”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에드먼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의 정점에 있는 그분께서 고작 15살짜리 소년과 내기라니.
내기의 내용도 궁금했지만, 내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에드먼의 물음에 키아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한 달.
카이온 부대의 결집이 어느 정도 완성된다면 바로 그들을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지.”
좀처럼 알 수 없는 그의 의중에 키아렌은 그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것밖에 안 되는가?”
“흐아아압!”
죽일 듯한 기세로 데미안은 하이넬을 향해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