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Genius Spearman RAW novel - Chapter (21)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21화(21/150)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21)
좌우로 나무가 빽빽하게 채워진 길.
시야를 막고 있는 안개.
살짝 경사진 오르막길을 계속해서 가다 보니 어느덧 에르칼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작하여 장애물과 더불어 에르칼의 수비대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에르칼이야?”
마차에서 내린 카일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을 안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을 제외한 일반 영지민들의 모습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데미안 역시 주변을 살폈다.
“……몬스터 때문인가?”
생기가 없다는 말이 딱 이럴 것이다.
드문드문 사람이 보이긴 했지만, 다들 움츠리며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에르칼의 사람들은 대부분 브론세리안 숲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 간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위험한 곳이기 때문인지 약초의 품질과 양은 상당했다.
‘아만초의 경우는 왕국 전체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니까.’
아만초는 특이하게 독성을 지니고 있는 약초다.
그냥 먹는다면 고열과 설사를 일으키지만, 제조만 잘한다면 효과가 좋은 진통제의 재료가 된다.
게다가 그 외, 상당히 많은 것들이 브론세리안 숲에서 나온다.
때문에 왕국 역시 브론세리안 숲을 버릴 수가 없었다.
“부대로 가자.”
“그래.”
주변을 가볍게 둘러본 데미안은 네오칼리츠 부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에르칼의 수비대와 달리 네오칼리츠 부대의 기지는 도시 안쪽에 위치했다.
저벅저벅.
그렇게 네오칼리츠 부대 앞에 도착했을 때.
“……엥?”
카일이 의아한 표정으로 부대를 보았다.
“여기 사람 사는 곳 맞아?”
부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한 대 치면 무너지겠는데?”
금이 간 벽면.
입구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대 안쪽으론 걸어 다니는 녀석 하나 없이 조용했고, 묘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 가득했다.
뭔가 들어가기도 애매한 상황.
하지만 그때였다.
“……?”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희미한 혈향.
익숙한 냄새에 데미안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온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서서히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벅, 저벅, 저벅.
피가 잔뜩 묻은 병장기를 어깨에 걸친 군인들.
부상을 입은 몇 명은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왔고.
“…….”
운명을 다한 채 들것에 실려 오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어깨에 박혀 있는 피 묻은 인장.
두 개의 검이 교차된 그림 아래 NEO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글자 옆으로 천사의 날개가 감싸듯 아래를 향해 뻗어 있었다.
네오칼리츠 부대였다.
꿀꺽.
참혹한 광경에 카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옆에 있던 데미안은 그저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
모두가 살기가 빠지지 않은 눈빛.
아무렇지 않은 듯 걷고 있었지만, 무기를 쥔 손은 가늘게 떨렸다.
한 걸음씩 내딛는 다리는 무겁게 질척거렸다.
데미안은 누구보다도 저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의 자신이 저런 모습을 했었으니까.
곧 그들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자.
“……푸아!”
카일이 크게 숨을 토했다.
미칠 듯한 긴장감과 압박감에 숨을 참고 있었던 것이었다.
“다들 표정이 왜 이래? 무슨…… 귀신 같은데?”
“익숙해져야 할 거야. 여긴 그런 곳이니까.”
평화의 시대.
그중 몇 안 되는 치열한 전장이다.
저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생존이며 발악이다.
문득, 예전에 부하들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뭐라고 생각해?
―명령을 수행하는 거?
―글쎄요, 적을 잘 때려잡는 거 아니겠습니까? 시발, 내가 죽어도! 으이? 한 스무 명 죽이고 가는 거지!
시끌시끌하게 외치던 부하들의 대답.
데미안은 죽어도 스무 명은 죽이고 간다는 대답을 한 부하의 뒤통수를 때렸다.
―악! 왜 저만 때려요!
―네 대답이 최악이었으니까.
다들 생각이 다를 순 있다.
다만 데미안이 생각하는 정답은 하나였다.
―죽지 않는 것이다.
죽지 마라.
결코 너희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 돌아가라.
데미안은 언제나 ‘죽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아무리 공을 세운다고 한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니까.
‘……그래도 다들 죽었지만.’
죽지 않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죽지 않기 위해 전술을 수행한다.
죽지 않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
데미안은 부대 안으로 들어간 네오칼리츠 부대의 뒷모습을 보았다.
데미안이 카일에게 말했다.
“우리도 가자.”
“지, 지금?!”
분위기가 너무 X같은데.
이미 부대 안으로 걸어가고 있는 데미안을 보며 카일은 뒷말을 삼키며 서둘러 녀석을 따라갔다.
* * *
“씨발, X같은 수비대 새끼들!”
쾅!
쓰고 있던 헬멧을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선임이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다.
같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에 잘못된 부분이 있었다.
“분명 오르크가 한 개 부대 규모라고 했습니다.”
“씨발, 한 개 부대는 개씨발!”
오르크는 오크와 비슷하지만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을 받는 몬스터다.
그리고 한 개 부대는 대략 스무 명 정도를 일컫는다. 하지만…….
“오르크만 서른 명이 넘었어. 거기에 오르크 마법사까지 있었다고!”
마법사가 하나 추가되면 오르크 부대 하나가 추가되는 전력이다.
사실상 오르크 두 개 반 전력.
정찰은 전적으로 에르칼 수비대의 몫이기 때문에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이 나가는 거 아니라, 매번 대충대충.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그 정찰한 새끼들 모가지 따고 온다!”
화가 풀리지 않았다.
“두꺼비 그 새끼는 지금 팔이 떨어지기 직전입니다. 제때 치료 안 하면 그냥 바로 강제 전역이에요.”
전역.
시발, 좋지.
하지만 네오칼리츠 부대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다.
대부분이 중징계를 받는 대신 네오칼리츠 부대로 온 이들이다.
자의로는 전역이 불가능했다.
평생 감옥에서 썩거나,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뒹구는 일밖에.
그나마 아주 실낱같은 희망이라면 네오칼리츠 부대는 봉급이 엄청나다.
일반 군인들의 몇 배나 될 정도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는 이들이 제법 많았기에 감옥보다는 이 지옥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두꺼비라 불린 녀석처럼 팔이 병신이 되어 강제 전역을 하게 된다면…….
“전역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어요.”
“시발, 그냥 버려지는 거지.”
때문에 어떻게든 녀석을 구해야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음은 내가 될 수 있으니까.
“……일단 의원부터 부르고 아델란트에 있는 신전으로 사람을 보내. 긴급으로 신관을 보내 달라고.”
“대장, 그 종교쟁이 새끼들 비용이 얼만지 압니까?”
신관이 온다면 확실히 두꺼비의 팔을 치료할 수 있다.
다만 워낙 치명상이라 최소 중급 신관 이상이 필요했다.
치료 한 번 받는데, 수십 골드가 그냥 날아간다.
특히 긴급이라 한다면 일 년 봉급을 상납해야 할 정도였다.
그에 대장이라 불린 이가 관물대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짤랑.
“20골드다, 보태라.”
“예? 이 돈은 대장 어머님 수술 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돈 아닙니까?”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바로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더군.”
담담하게 말하지만 거짓말인 것을 모두가 안다.
집안의 포크 숫자까지 다 꿸 정도로 가까운 그들이다.
그에 다른 녀석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라이, 씨발. 나도 보탠다.”
“나도. 얼마 되진 않지만.”
2골드, 3골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버는 족족 유흥비로 탕진하던 놈들이 어디서 저런 돈을 모아 놨는지.
그때, 구석에 있던 막내 녀석이 슬금슬금 다가오며 은화 몇 개를 내밀었다.
“저, 저도…….”
“막내는 그걸로 군화나 바꿔. 보니까 밑창이 다 달았던데.”
“그래, 보급해 주는 쓰레기 말고 좋은 걸로 바꿔. 그게 네 목숨줄이니까.”
부대원들이 말렸지만, 막내는 쥐고 있던 돈을 돈이 모인 곳에 내려놓았다.
“저 때문에 찰슨 상병이 다친 겁니다. 보탤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두꺼비 이름이 찰슨 상병인 것 같다.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선임이 막내의 목을 감아 챘다.
“기특한 새끼.”
“그러고 보니 막내 나이가 몇이지?”
“열여덟입니다.”
“벌써 여기 온 지 1년이 훨씬 넘었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용하다.
돈을 걷은 선임이 씨익 웃었다.
“좋아, 허락하지. 그럼 전 곧장 아델란트에 사람부터 보내겠습니다.”
“전 필요한 약초가 있는지 좀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모두가 전우를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신병 들어왔습니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 *
“잊고 있었군.”
네오칼리츠 부대의 대장, 타르온은 지저분한 서류 더미에서 서류 한 장을 찾았다.
신병이 온다는 발령문.
전투로 인해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윽.
타르온이 데미안과 카일을 보았다.
키가 큰 녀석은 제법 힘이 탄탄해 보이는 것이 제법 쓸 만해 보였다.
옆에 있는 녀석은…….
“열세 살?”
서류에 나와 있는 인적 사항에 적힌 나이.
타르온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패었다.
막내의 나이가 열여덟 살이다.
그런데 그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녀석이 왔다고?
“자원…… 자원이라.”
신종 자살 방법인가?
요즘 어린놈들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때…….
“이 녀석, 훈련소에서 1등으로 졸업한 녀석입니다.”
앞에 앉아 있는 간부의 표정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의도를 알아챈 카일이 말했다.
타르온이 다시 데미안을 보았다.
“여긴 훈련소와는 다른 곳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알고 있는데 왔다? 후…… 그래, 뭐…… 뒤지고 싶다는 녀석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지.”
타르온이 문 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디아날!”
“옙!”
그 외침에 마치 밖에서 대기라도 하고 있듯, 한 사내가 달려왔다.
회색빛이 도는 머리카락.
짧게 자른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가 어울렸다.
서글서글하면서도 호감 있게 생긴 외모.
제법 탄탄해 보이는 근육이 얇은 내의 밖으로 드러났다.
“저 두 놈, 데리고 가서 자리 배정해 주고. 청소나 시켜.”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디아날이 데미안과 카일을 보며 말했다.
“따라와.”
밖으로 나가 막사로 들어간 디아날.
녀석은 자신이 있는 막사로 들어가 말했다.
“여긴 앞전의 계급 같은 건 필요 없이 무조건 온 순서대로 선임이다. 그리고 아까 본 분이 우리 부대의 대장님이다. 소대장이니, 중대장이니 이런 호칭은 잊어라. 그냥 대장과 부대장이 끝이다.”
친절하지 않은 말투였다.
디아날은 막사 구석의 관물대 몇 개를 가리켰다.
“저 중에 아무거나 사용하고 싶은 걸로 해. 어차피 얼마 못 쓸 테니까.”
“무슨 말이요?”
듣다못한 카일이 디아날에게 물었다.
뭔가 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지만, 처음 온 날부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일의 말에 디아날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내가 이곳의 온 순서대로 선임이라고 한 말 기억하나?”
“방금 말했지 않수.”
“내가 이 부대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그런데 막내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나?”
“그걸 내가 어찌…….”
카일의 말이 끝나기도 전.
퍽!
“끅!”
디아날이 군화를 신은 상태로 카일의 정강이를 후려 찼다.
아무리 무방비했다곤 하지만, 반사 신경 좋은 카일이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당했다.
카일이 눈을 부릅뜨며 디아날을 보았다.
그러고는 무어라 소리치려 했지만…….
“그 말은 내 뒤로 온 놈들 모두 다 죽었다는 뜻이다.”
디아날의 눈빛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움찔.
막내라곤 하나 이 지옥에서 1년 넘게 버텨 온 놈이다.
일반 군인들과 같을 순 없었다.
디아날의 눈빛에 압도당한 카일은 정강이의 통증도 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압박감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짐 풀고, 막사를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도록. 다음 설명은 그 후에 해 주겠다.”
디아날이 몸을 돌려 막사 밖으로 나갔다.
카일이 벙찐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뭐, 저런 개새끼가 다 있어?”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큭.”
하지만 디아날이 나가자 옆에 있던 데미안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모습에 카일이 물었다.
“뭐가 재미있어서 그렇게 웃는 거야?”
“아니, 그냥 여전한 것 같아서 말이야.”
데미안은 디아날이 나간 곳을 보며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