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mmortal Genius Spearman RAW novel - Chapter (8)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8화(8/150)
죽지 않는 천재 창잡이 (8)
핏빛으로 물든 대지.
혈향이 가득한 전장엔 부상자들과 더불어 살아남은 병사들이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그중 데미안의 부대도 있었는데, 워낙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난 이후로 다들 진이 전부 빠진 모양이었다.
“……대장, 저기 구호 물품이 오는 것 같습니다.”
“으으…… 누가 물 좀 받아 와 줘. 아까부터 목말라 뒤지겠어.”
부하들의 말에 데미안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함께 보이는 문양.
푸른색과 붉은색이 뒤엉킨 천사의 날개를 형상한 문양은 대륙 제일 상단, 위르크 상단의 문양이었다.
그 모습에 데미안의 부하가 말했다.
“와…… 위르크 상단이라니. 저놈들이 지금 대륙에서 제일 돈이 많은 상단 아닙니까?”
“시발, 부럽다. 누구는 전쟁터에서 뭐 빠지게 뒹구는데…… 누구는 밀 팔고 칼 팔아서 돈을 긁어모으네, 모아.”
불만이 있는 듯한 누군가의 말에 데미안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밀과 칼이 없으면 우리가 죽는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알지요, 그냥 배가 아파서 그랬습니다.”
그 말에 데미안이 피식 웃었다.
다들 전투로 인해 힘들고 지친 마음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물며 저렇게 세상 좋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녀석들이 한편으로는 고까울 수도 있겠지.
“그래도 저렇게 자선 사업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위르크 상단의 직원들은 병사들에게 물과 빵을 나누어 주며 위로를 독려했다.
이런 전쟁터까지 나와서 저러기는 쉽지 않을 텐데.
데미안 역시 그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대, 대장! 저기 위르크 상단 행수요!”
“……행수?”
데미안의 시선이 부하가 말한 곳으로 향했다.
아무리 자선 사업에 진심이라 하더라도 행수가 직접 이런 전쟁터에 오기는 쉽지 않을 텐데.
“와…… 자선 활동에 직접 참여도 한다고 얘기는 들었었는데, 진짜일 줄은 몰랐습니다.”
부하들은 위르크 상단 행수라는 말에 모두 시선을 그곳으로 돌렸다.
데미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이 위르크 상단의 행수, 위르크.’
대륙에서 가장 큰 상단의 행수라고 하기엔 제법 가녀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체격이었다.
전쟁터에 어울리지 않는 흰색 로브.
그 안으로 보이는 금발의 웨이브 진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사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그런데 생긴 건 영…… 재수 없게 생겼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사내새끼가 왜 저렇게 예쁘게 생겼답니까? 어후, 재수 없어.”
“시발, 더러운 외모 지상주의.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가 다 죽는 거 아닙니까?”
한 부하의 말에 옆에 있던 녀석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그 말이 맞긴 하는데, 저 사람 아니더라도 넌 그냥 죽을 것 같은 상판대기잖아.”
“뭐야!”
“으하하하하하하!”
순식간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자 데미안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멀쩡한 놈들은 가서 저 사람들이나 도와줘. 좋은 일 하는 데 우리도 도우면 좋잖아.”
“예예, 알겠습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예전의 기억들.
“…….”
……왜 그때 본 위르크 상단의 행수 얼굴이 이 사람과 겹쳐 보이는 것일까.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과 함께 데미안은 상단 안으로 들어온 여인을 바라보았다.
“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데미안의 시선에 상단 안으로 들어온 여인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손님이 오셨네요,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데미안에게 인사하는 여인.
그에 데미안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 아이가 제 여식은 디엘입니다. 인사드리거라, 디엘. 우리 자선 사업에 투자하고 싶다고 온 데미안 님이시다.”
“아, 안녕하세요. 자선 사업에 투자하러 오셨다고요?”
그들은 데미안의 나이 따윈 고려하지 않은 듯 밝은 표정으로 데미안을 대했다.
그 반응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예, 맞습니다.”
데미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상당히 혼란스러웠지만, 우선은 대화를 계속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행수 이름이 위르크에…… 딸이라고……?’
하지만 딸이라고 하기엔 그때 본 위르크와 너무나 닮은 모습이었다.
순간 데미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면?’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이도 얼추 맞는 것 같았다.
앞에 있는 디엘은 아무리 많아 봐야 스무 살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자선 사업이라는 얘기에 이렇게 눈을 반짝일 정도라면…….
‘나중에 상단을 물려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자선 사업을 이어 나갈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지금까지 보았던 상단들과 비교했을 때 그 어떤 곳보다 가능성이 높은 곳.
데미안은 맞은편에 앉은 디엘을 보았다.
‘볼수록 비슷하네.’
그에 대한 인상이 워낙 강했던 터라,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라고 한다면, 이 모습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서…….’
힐끗.
데미안이 옆에 앉은 위르크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대신 이 여인이 위르크라는 이름으로 상단을 이어 나갈까.
왜 상단 이름은 하멜에서 위르크로 바뀌었을까.
‘무슨 사정이 있었던 건가?’
그 이유까지는 알 수 없는 데미안이다.
데미안은 그저 디엘이 건넨 자선 사업 관련 팸플릿을 보았다.
쓸데없는 내용 없이 목적과 진행 중인 사업의 내용 그리고 향후 진행할 계획이 짧게 쓰여 있었다.
“그런데 투자 금액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 이걸 여쭤보는 이유는 많이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아니라 금액에 따라 저희가 어디에 사용할지 다르기에 여쭤보는 거였습니다.”
정중한 말투.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본인의 목적을 명확하게 얘기한다.
데미안은 디엘의 질문에 잠깐 고민했다.
‘우선은…….’
확증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100% 확정이라고 얘기할 순 없다.
게다가 이곳이 위르크 상단이 맞다 하더라도, 혹시라도 다른 행보를 이어 갈 수도 있으니까…….
“우선은 300골드를 먼저 하고 싶습니다.”
“사, 삼백 골드요?!”
디엘의 눈이 부릅떠졌다.
앳된 소년이 찾아와서 투자 얘기를 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투자자는 투자자.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자선 사업의 투자라는 좋은 마음을 가지고 온 이를 무시할 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런데 300골드라니.
현재 자신들의 자선 사업 총규모의 1년 이상의 예산이다.
“저, 정말이십니까? 너무 큰 금액인데…….”
“예, 우선은 300골드고…… 이후 진행되는 방향에 따라 더 할 생각입니다.”
“…….”
당장 300골드만 하더라도 엄청난 금액인데, 추가적인 투자까지.
그에 행수인 위르크의 눈빛이 진지하게 가라앉았다.
위르크가 물었다.
“한데 기부가 아닌 투자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이 돈을 투자하면서 원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하멜 상단의 지분을 일부 가지고 싶습니다. 물론 운영에 관여하거나 그런 것은 일절 없이 하멜 상단의 수익 일부분을 투자금의 보상으로 돌려받고 싶다는 뜻입니다.”
“흐음…… 이 부분은 고려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희 상단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아직까지 지분에 대한 명확한 부분은 없습니다.”
데미안을 보는 위르크의 시선이 달라졌다.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아무리 많이 봐도 10대 중반인데…….’
어떻게 이런 돈과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위르크는 굳은 표정으로 데미안에게 물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돈의 출처를 여쭤볼 수 있을까요?”
만에 하나…… 정말 백만의 하나라도 그 돈이 범죄 혹은 검은돈과 연관이 있다면 결코 받아서는 안 되는 돈이다.
위르크의 물음에 데미안은 입가에 작은 호선을 그렸다.
“혹시 좋지 못한 돈일까 염려되시는 거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출처는…….”
데미안은 미리 준비해 둔 보험 증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제가 상속받은 보험금입니다. 여기 보시면 보험사 이름도 있고, 제국 은행의 도장도 찍혀 있습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이로써 의문은 충분히 해소되었을 터.
위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분과 관련된 내용은 자체 회의를 거친 이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투자금에 대해선 그때 다시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시죠.”
우선은 하멜 상단과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지분은 훗날을 위한 작은 장치일 뿐, 얼마를 받든 큰 상관은 없다.
‘설마…… 이런 작은 상단이었을 줄이야.’
어느 정도 확신을 한 데미안은 상단 내부를 슬쩍 보았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잘 정리된 내부와 동시에 벽에는 월간 계획표가 알아보기 쉽게 적혀 있었다.
다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있지만…….
‘그것까지 지금 알아낼 방법은 없겠지.’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
“그럼 저희가 어디로 연락을 드리면 되겠습니까?”
“아, 그건…….”
이어지는 데미안의 말에 위르크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 * *
한바탕 폭풍이 몰아쳤던 것 같았다.
디엘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간 위르크는 자리에 앉으며 아까 있었던 만남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후후.”
“왜 그러세요?”
위르크의 웃음에 디엘이 물었다.
위르크가 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놀랍지 않으냐. 고작 열세 살밖에 되지 않는 소년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릴 찾아왔을 줄이야.”
수도에서 자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단은 자신들 말고도 여럿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도 궁금했지만…….
‘그 눈빛…… 결코 평범한 소년은 아니었다.’
하물며 투자 금액이며 지분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인이라니, 허허허허허.”
게다가 왕국을 지키기 위해 군의 시험까지 통과한 아주 유망한 소년이지 않은가.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만한 곳이 없는 완벽한 소년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다섯 살만 더 많았어도 딱이었을 텐데.”
“……예?”
위르크의 중얼거림에 디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물음에 위르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혹시 연상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빠!”
디엘의 외침에 위르크는 그저 껄껄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 * *
“의외의 소득이라고 해야 하나…….”
하멜 상단을 나와 숙소로 돌아온 데미안은 있었던 일들을 정리했다.
생각지 못한 디엘의 정체(?)에 대해 많이 놀라긴 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여자 혼자서 상단을 꾸려 나가기엔 힘든 세상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찾아낸 것이 어디인가.
‘그래도 하나는 해결했다.’
이어지는 하멜 상단과의 일은 그쪽에서 연락이 올 테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후, 이제 준비해야지.”
입소한다면 최소 한 달 정도는 안에 틀어박혀 훈련만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합격자들 중 일부분이 버티지 못하고 퇴소를 결정한다는 말도 있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고.”
그저 지금은 이 훈련 기간에 좋은 성적을 내서 ‘그곳’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거기에 가면…… 그 자식을 볼 수 있으려나?’
데미안이 3훈련소로 온 이유.
그 부대로 가기 위해선 3훈련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자신의 선임이었자, 친구이자, 가장 믿을 수 있었던 부하였던 녀석이 있는 곳.
데미안은 예전에 그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저 입가에 작은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라이언이글 상점이라고 했었지?”
아펠이 말한 군용 전문 상점으로 필요 물품을 사러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