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28
“그렇죠.”
“이 무슨…….”
거참. 맨살로 칼 튕기는 게 마법으로 사람 죽이는 것보다 친근감을 느낀다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쪽이 더 비상식적인데?
“사람들은 그렇게 느낀답니다.”
단언하는 시리스의 말에 레펜하르트는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역시 사람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계속 들 뿐이었다.
☆ ☆ ☆
‘그래서 내심 반신반의하면서 설쳐 보긴 했는데…….’
성문 밑까지 다가간 레펜하르트가 성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반응이 다르단 말이지.’
전생에서 그는, 온갖 방호 마법으로 몸을 감싸고 성벽으로 날아가 8서클 파괴 주문 아케인 블래스터로 성벽을 부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홀로 성을 상대하는 그 모습에 적은 물론, 휘하의 아군들조차 공포에 질리곤 했다.
지금과 하는 짓 자체는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오러로 똑같은 짓을 하니 적들은 그렇다 치고 아군의 반응이 대단히 호의적인 것이다. 자신을 응원하는 아군의 눈빛에 경외와 존경은 보일지언정, 공포와 기피의 빛은 그리 보이지 않았다.
‘뭐, 결과적으로 좋으니까 됐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레펜하르트가 성문을 퉁퉁 두들겼다. 확실히 왕성을 지키는 대문다웠다. 높이만 해도 10미터에 달하고 두께 역시 엄청나 공성추를 들이대도 부수려면 한참은 걸릴 것이다.
“자, 그럼!”
히죽 웃으며 레펜하르트가 무릎을 굽히고 주먹을 뒤로 뺐다. 그리고 외침을 터트리며 길게 뻗었다.
“캘러미티 혼!”
황금빛 오러가 한 점으로 응축하며 네 개의 파문을 낳는다. 파문이 연달아 주먹 끝으로 보이며 거대한 빛의 뿔이 되어 성문을 강타했다.
콰아아앙!
성문은 물론이고 성문에 연결된 성곽과 그 위의 보루며 보초병, 크게 지어놓은 건물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왕성 전체가 뒤흔들리는 그 위업 앞에 유벨 왕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돌격하라! 반역자를 물리쳐라!”
“와아아아아!”
5
유벨 왕자군은 물밀듯이 왕성으로 진군해 갔다. 선두에 여섯, 아니 이제는 일곱 명의 오러 유저를 내세운 그들은 순식간에 왕성 수비군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카르사스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패배했음이 분명한 전쟁임에도 카르사스에게 충성을 다하는 기사들은 생명을 던져 가며 저 절망적인 파괴의 빛무리에 몸을 던졌다.
“우리의 충성을 증명하라!”
“기사답게 죽겠노라!”
“카르사스 님, 만세!”
카르사스의 기사들이 목숨을 도외시한 채 용맹하게 달려 나왔다. 왕성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기사다운 충성심으로 공포를 마비시킨 채 기사들은 용맹하게 싸워 댔다. 심지어는 오러 유저에게도 거리낌 없이 달려들었다.
“나의 왕이여! 부디 뜻을 이루소서!”
다이어울프를 탄 칼켄을 향해 창을 찔러 가며 기사 하나가 고함을 지른다. 물론 용기가 아무리 뛰어나 봐야 절대적 역량 앞에선 소용없다. 녹색 섬광이 번득이고 곧바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피분수를 쏟아 낸다.
“크아아악!”
비명과 아우성이 왕성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고풍스럽게 장식된 테라스 위로 선혈의 폭포가 흘러내리고 아름답게 꽃핀 화원 위로 인간의 살점이 색상을 더한다. 선두에서 달리던 레펜하르트가 고함을 질렀다.
“이미 승패는 결정되었다! 무익한 저항을 거두고 생명을 보전하라!”
어떻게든 쌍방의 피해를 줄이고 싶어 소리친 것이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한 기사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 말이었다. 기사들이 시뻘겋게 변한 눈으로 레펜하르트를 향해 돌진했다.
“진정한 왕을 위하여!”
“이곳에서 명예롭게 죽겠다!”
두 기사가 말을 몰며 레펜하르트에게 창을 찔러 온다. 말이 달리는 기세와 창을 찌르는 힘이 합세에 강력한 위력을 낳는다. 레펜하르트가 혀를 차며 마주 몸을 날렸다.
“어리석은 자들!”
두 개의 창이 레펜하르트의 몸을 찔렀다. 물론 오러조차 깃들지 않은 창이, 오러로 방어하는 그의 몸에 상처를 줄 수 있을 리 없다. 창대가 부러지며 그 반동으로 기사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레펜하르트가 두 손을 뻗어 그대로 말목을 하나씩 붙잡았다. 그리고 기합을 터트리며 몸을 회전시켰다.
“하아압!”
말이 하늘을 날았다.
말 목을 붙잡고 그대로 던져 버린 것이다. 허공으로 떠오르며 말들이 그 초롱초롱한 눈을 껌뻑였다.
히잉?
히이잉?
“으아아악!”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공에서 낙마했다.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은 무시하고, 레펜하르트가 잽싸게 몸을 놀려 떨어지는 말들을 받아 냈다.
“으차! 죄도 없는 말들, 굳이 죽일 필요 없지.”
말로 태어난 주제에 사람 품에 안겨 보기는 처음일 것이다. 준마가 버둥대며 난동을 부리자 레펜하르트는 얌전히 말을 놓아주었다. 황당해하며 준마들이 여기저기 도망치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왠지 말 울음소리에 비난이 섞여 있는 기분이다. 레펜하르트는 피식 웃으며 다른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 용맹하게 달려들던 그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으으, 저 괴물…….”
“어떻게 저런 힘을 보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목숨을 도외시한다곤 해도, 말째로 던져 버리는 저 무식한 괴력 앞에서는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나가떨어진 기사들을 보니 실로 서글픈 몰골이었다. 다들 머리부터 처박혀 엉덩이 죽 빼고 엎드려 있는데, 평소 명예를 중시하는 기사 입장에서는 정말 기피하고 싶은 자세였다.
“젠장! 저렇게 당하고 싶진 않아!”
이왕 싸우다 죽을 거면 멋지게, 기사답게 죽고 싶다. 기사들이 하나둘 도망치기 시작했다. 피식 웃으며 레펜하르트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모두 항복하라!”
유벨 왕자군은 빠른 속도로 왕성 이곳저것을 점거했다. 카르사스 군도 용감히 맞서 싸웠지만 전력 차가 너무도 컸다. 결국 수비군들이 하나 둘 항복의 표시로 무기를 버렸다. 이종족 오러 유저들이 왕성을 제압하는 동안 유벨 왕자는 카르사스 공자를 찾아 궁내를 질주했다. 드워프 처녀 피니아와 레펜하르트, 그리고 몇몇 귀족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들은 거대한 홀에 도착했다. 찬란한 오후의 햇살이 창문 사이로 내리쬐는 그 홀 중앙에는 한 남자가 중무장을 한 채 홀로 서 있었다.
유벨 왕자가 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카르사스!”
카르사스도 유벨을 마주 보며 힘없는 미소를 떠올렸다.
“오랜만이군, 유벨.”
왕위를 바라는 두 사내가, 왕위를 결정짓는 신성한 홀에서 서로 만났다.
☆ ☆ ☆
즉위식을 행하는 신성한 홀, 브라스티나.
순백의 그 거대한 대리석 건물 한가운데서 카르사스는 홀로 고고하게 서 있었다. 유벨이 레펜하르트며 시리스, 러스며 수많은 수하들을 대동한 것과는 실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새하얀 망토를 걸친 채 카르사스는 무심한 눈으로 좌중을 오시했다.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결코 좌절하지도, 절망하지도 않은 채 의연히 유벨 일행을 맞이하는 그 모습에는 실로 왕다운 기개가 있었다.
레펜하르트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왠지 낯익은 광경이었다.
‘나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심연의 홀에서 최후를 대비했을 때의 자신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미래지만, 그때의 그 절망과 좌절은 여전히 현실처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이제 반대편에 서서 저런 표정을 짓는 이를 보고 있자니 실로 미묘한 기분이다.
유벨 왕자가 주위를 살펴보더니 의아해하며 물었다.
“다른 이들은 어디 있나, 카르사스?”
카르사스가 태연스레 대답했다.
“가문을 멸망시킬 수는 없지. 아버님과 외조부님은 뒷길로 미리 피신하셨다.”
어쩐지 저항이 약하다 했더니, 이미 카르사스 측 귀족들 대부분은 북문을 통해 왕도 크로틴을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페오닌 백작이 코웃음을 쳤다.
“흥, 어차피 반역자의 낙인이 찍혔거늘! 이 왕국에 그들이 발 디딜 대지가 있을 것 같은가?”
지금 이 전쟁은 단순한 영지전이나 세력 암투 같은 것이 아니다. 왕위를 건 전쟁, 패한 자는 반역자가 되어 3대가 멸족하게 된다. 특히나 페르난도 공작가와 브로젠 후작가는 카르사스를 지지하는 양대 거대 귀족가, 그들이 맞이할 운명은 멸망뿐이다. 이 크로방스 왕국에서 저들은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
카르사스가 힘없이 웃었다.
“그렇겠지. 그래서 두 분 모두 가솔들을 이끌고 차탄 공국으로 향하셨다. 예전의 권세는 모두 잃겠지만 가문은 보전할 수 있겠지. 그것으로 족하다.”
페오닌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차탄 공국으로 도망쳤나.”
황금을 최고의 가치로 치는 차탄 공국은 예로부터 거액의 돈만 내면 어떤 망명자건 넙죽넙죽 받아 주곤 했다. 그리고 일단 받아들인 이는 타국에서 어떤 압박을 가해도 보호해 주었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테이칸 왕국의 전설적인 변태 오러 유저, 란타스 경이다. 수백의 어린아이를 간살하고 도주한 추악한 강간살인마조차도 돈만 된다면 받아 주는 곳이 바로 차탄 공국인 것이다.
덕분에 대륙의 수많은 지식인들로부터 무수한 도덕적 지탄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차탄 공국은 꿋꿋하게 저 정책을 고수했다. 한번 망명자를 받을 때마다 차탄 공국이 얻는 수익은 어지간한 소국의 일 년 치 예산에 가깝다. 그리고 어느 나라건 정치적 암투가 없는 국가는 없다. 차탄 공국에게 있어 망명자란 소중한 잠재 고객인 것이다.
한 번이라도 망명자를 버리게 되면 미래의 수익을 놓치게 되니, 아무리 크로방스 왕국에서 난리를 쳐 봐야 저들을 내놓지 않을 것이 뻔했다.
“음,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니 크게 놀랄 것도 없지.”
잠깐 당황했지만 유벨은 이내 침착한 표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당신은 왜 함께 가지 않았지, 카르사스?”
“왜일 것 같나, 유벨 왕자?”
카르사스가 살짝 비웃음을 띄우며 유벨을 바라보았다. 유벨이 눈을 껌벅이더니 대답했다.
“그렇군. 그 둘이라면 모를까, 당신까지 차탄 공국으로 가 버리면 국가 간의 전쟁이 벌어지겠지.”
페르난도 공작과 브로젠 후작 정도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 이미 모든 세력도 명분도 잃은 이들이다. 그냥 차탄 공국에 항의 서한을 보내고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차탄 공국에서도 저들을 이용해 크로방스 왕국에 뭔가를 벌일 명분이 없다.
하지만 카르사스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유벨과 동급의 왕위 계승 서열을 지니고 있다. 전쟁에 패했다 해서 그의 혈통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카르사스가 차탄 공국으로 망명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뻔히 짐작할 수 있었다.
크로방스 왕국이 차탄 공국보다 국력이 강하다면 망명 자체를 거부하겠지. 하지만 지금 크로방스 왕국은 오랜 내전과 대흉년으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태. 카르사스라는 명분을 얻은 차탄 공국이 쳐들어온다면 막아 낼 힘 따윈 전혀 없다.
크로방스 왕국은 차탄 공국의 속국이 되고, 카르사스는 꼭두각시 국왕이 되어 손발 다 잘린 처지가 될 것이다. 그럼 남는 것은 타국의 수탈에 신음하는 가련한 백성들뿐.
유벨이 혀를 찼다.
“……꼭두각시 왕이 되느니 이곳에서 죽을 작정이었군.”
카르사스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왕국의 백성을 더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적이지만 절로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마음가짐이다.
카르사스가 조금 놀란 눈으로 유벨을 바라보았다.
“듣던 것과 달리 제법 생각이 깊군, 유벨 왕자.”
난봉꾼이라 들었는데 바로 여기까지 생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유벨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끝내 주지.”
카르사스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오만한 눈으로 외쳤다.
“자, 누가 내 목을 벨 텐가?”
유벨 왕자 측 기사들이 일제히 눈을 빛냈다. 카르사스의 목을 베는 것은 이 전쟁에서 가장 큰 전공이다. 더구나 카르사스는 이름 높은 기사, 그와 일대일 대결을 벌여 승리하면 실로 명예와 부가 보장된다. 나름 무예에 자신 있는 기사들이 자신을 호명하길 기대하며 유벨 왕자를 바라보았다.
그때 유벨이 검을 든 채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나의 사촌 형제여.”
그리고 자세를 취하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반역자라 하나 그대 역시 왕의 핏줄을 지닌 이, 그 목숨은 내가 직접 거두겠다.”
☆ ☆ ☆
유벨 휘하의 귀족이며 기사들이 일제히 당황한 표정으로 유벨을 바라보았다. 다들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저 ‘유벨’이, 저 ‘카르사스’와 직접 칼을 마주하겠다는 건가? 허구한 날 드워프 처녀나 끼고 살았던 주제에 무수한 전투를 겪어 온 기사 중의 기사와 싸우겠다고? 아니, 그보다 유벨 왕자가 칼을 쓸 줄이나 알기는 하나?
페오닌 백작이 자신의 외손자를 향해 놀라 소리쳤다.
“유, 유벨 왕자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레펜하르트도 허겁지겁 유벨에게 다가갔다.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작정이었지만 이렇게 되니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며 레펜하르트가 작게 속삭였다.
“위험합니다. 여기서 유벨 왕자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지 않습니까? 무릇 진정한 왕은 위험에 가까이 하지 않는 법입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 내용은 전혀 달랐다.
너 미쳤냐? 지금 몇 번 승승장구하더니 그게 다 네 덕인 줄 아냐? 주제 파악 못 하는 것도 유분수지!
그때 유벨이 씨익 웃으며 작게 대꾸했다.
“나도 알고 있소.”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