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34
스테반이 불만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는 따로 돌아다니는 지금이 기회인데, 위치를 알 수가 없으니…….”
그때 테이블 반대편에서 청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자의 위치를 알고 싶은가요?”
다들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일제히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헉?’
‘이 여자 뭐야?’
‘크, 크다!’
말을 건 것은 거구의, 거의 2미터 가까운 신장의 여인이었다. 그런데도 눈부신 미녀라는 것이 놀랍다. 저런 미녀가 저런 체구를 지니고 있으니 그 부조리가 도리어 두렵게 느껴진다. 필레나가 위축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여인이 허리에 찬 검을 알아보고 테스론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세이어의 성기사시군요.”
여인이 정중하게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세이어 님을 섬기는 한 자루 검, 팰러딘 크리스틴입니다.”
레펜하르트와의 사랑 싸움(?)에서 패한 크리스틴은 눈물을 뿌리며 실란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는 실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계속 실란의 근처에 머물며 사랑을 되찾을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왕도 크로틴에서 전투를 벌일 때도, 레펜하르트 일행이 안타레스 백국으로 향했을 때도 그녀는 계속 몰래 그들의 뒤를 쫓았다.
안타레스 백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교역 도시 자루드, 크리스틴은 자루드에 머물며 레펜하르트에 대한 정보를 모았다. 약점을 찾아 어떻게든 실란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타오반 상회로부터 상황을 계속 받아 듣고, 백왕성에서 일하는 하녀도 매수하면서 그녀는 꽤나 상세하게 레펜하르트의 정보를 취득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 여관에서 계속 묵은 것은 여기가 타오반 상회와 접촉하기 제일 지리적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테스론 일행 역시 그 이유로 이 여관에 묵고 있었으니, 크리스틴이 이들을 만난 것이 딱히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크리스틴이 테스론 일행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아하니 권왕 레펜하르트를 적대하는 것 같더군요.”
그거야 테스론 일행은 애초에 그 태도를 숨기지 않았으니 옆에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테스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 바와 같소. 그런데 세이어의 팰러딘께서 방금 그자의 위치에 대해 언급하셨던데?”
크리스틴이 빙그레 웃었다.
“네, 저는 그자가 지금 어디로 향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매수한 하녀를 통해 얻은 정보였다. 어차피 레펜하르트는 자신의 행보를 딱히 숨기지 않았기에, 하인이나 하녀들도 현재 그가 세텔라드 산맥에 위치한 켈테란 이름의 던전으로 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자의 위치를 가르쳐 드리지요.”
크리스틴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건넸다. 테스론이 눈을 빛냈다.
“말투를 보아 그 대신…… 이란 말이 나올 차례 같군요?”
크리스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갑자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당신들과 함께 가게 해 주세요. 저는 반드시 그자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테스론은 눈을 빛냈다.
세이어의 성기사라면 훌륭한 전력이다. 게다가 현재 크리스틴의 눈동자엔 분노와 증오의 불길이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자세한 것은 더 물어봐야겠지만, 레펜하르트에 대한 원한이 어찌 큰지 저 눈빛만으로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지경이다.
테스론이 씨익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환영합니다. 당신의 제안을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군요. 여기 있는 모두가 그 이유를 가진 자들이니.”
크리스틴이 힘차게 테스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옆에서 그걸 지켜보던 필레나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난 그런 이유 없는데.’
물론 원한이 차고 넘치는 유서스와 스테반은 반색을 하며 크리스틴을 환영했다. 일행에 합류하며 그녀가 원하는 정보를 입에 담았다.
“그 저주받을 자가 지금 향한 곳은…….”
☆ ☆ ☆
레펜하르트 일행이 안타레스 백국을 떠난 지 여드레째.
세텔라드 산맥 남쪽, 던전 켈테의 최중심부에서 한 악마가 울부짖고 있었다.
“크아아아!”
악마는 두꺼비 인간을 연상케 하는 상체에 도마뱀을 닮은 하체를 지닌 사족 보행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깨 높이만도 자그마치 3미터가 넘는 엄청난 거구, 긴 두 팔로 거대한 할버드를 휘두르며 악마가 바닥을 깊숙이 쓸어 갔다.
휘이이익!
콰콰쾅!
자루 길이만도 무려 5미터, 무기라기보다는 건축용 건물 지지대로 써도 될 법한 커다란 할버드의 창날이 바닥을 파헤치며 연달아 폭음을 터트렸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두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빠져나왔다.
“허점이다! 기회야, 타시드!”
푸른 광채의 롱 소드를 손에 쥔 인간 청년이 악마를 향해 돌진하며 고함을 질렀다.
“알았다, 러스! 내가 좌측을 맡지!”
커다란 참마도를 든 오크 청년이 빠르게 대꾸하며 반대편으로 크게 돌았다. 좌우로 파고드는 두 사내를 노려보며 악마가 다시 한 번 분노를 터트렸다.
“크윽! 타로브 마르비자드 루자리!”
악마어로 ‘이 빌어먹을 조그만 것들이!’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분노와 달리 악마는 빠르게 창을 거두어 반격 태세를 갖출 수가 없었다. 방금 날린 공격은 강력한 만큼 창을 거두는 시간도 길었다. 휘두른 창을 채 회수하기도 전에 이 ‘조그마한’ 것들은 그의 좌우로 다가와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타아앗!”
“가라! 다카르!”
푸른 블레이드 오러가 악마의 오른팔을 깊숙이 벤다. 두터운 참마도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악마의 왼쪽 어깻죽지에 박혔다가 스스로 뽑힌다. 좌우로 푸른 핏줄기가 분출했다. 고통에 악을 쓰며 악마가 정신없이 할버드를 팔방으로 휘둘러 댔다.
“으아아아!”
하지만 그 가공할 공격 범위에도 불구하고 악마의 공격은 헛되이 허공을 스칠 뿐이었다. 악마가 채 공격 자세로 돌아가기도 전에 이 작은 불청객들은 범위 밖으로 피해 있었던 것이다.
울분에 차 악마가 그 흉악한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이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이냐!’
그는 아몬 나이트, 그렐비스트와 함께 악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위치한 존재였다. 비록 유적의 마력에 붙잡혀 수호자 노릇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런 작은 존재들과는 비견할 수도 없는 강대한 권능의 소유자인 것이다.
그런데 저 작은 인간과 오크는 너무도 쉽게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좋아, 1차 공격 지나갔다, 러스!”
“다음 공격 간다, 세븐 슈레더!”
인간이 뒤로 뛰어오르며 허공에 검을 휘두른다. 일곱 개의 푸른 섬광이 초승달 형태가 되어 원거리에서 아몬 나이트를 두들겨 댄다. 할버드를 휘둘러 공격을 쳐 냈지만 그때마다 할버드 여기저기가 금이 간다.
뒤이어 오크가 참마도를 들고 날쌔게 아몬 나이트의 품으로 파고든다. 할버드를 휘두르던 차라 미처 반격할 여지가 없다. 정확하게 타이밍을 파고든 오크가 참마도를 길게 뻗었다.
푸욱!
아몬 비스트의 상반신이 깊숙이 베이며 또다시 선혈을 토했다. 잽싸게 거리를 벌리며 오크가 광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
통쾌하기 그지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또다시 상처를 입은 아몬 비스트가 굴욕감으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으으으!”
생각 같아서는 바로 이 할버드를 버리고 맨손으로 이놈들을 상대하고 싶었다. 이 할버드는 너무 커서 저런 빠르고 작은 존재를 상대하기엔 맞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아몬 나이트는 할버드를 놓을 수 없었다. 그의 전신 사지, 아니 육지六肢를 얽매고 있는 마력의 사슬이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아몬 나이트가 흉악한 입을 쩍 벌리며 다음 공격을 시도했다.
“데필 크라드 렌카타!”
일렁이는 환염의 폭풍, 아몬 나이트가 지닌 최강의 암흑 마법이 공동 안에 작열했다. 모든 것을 불태우는 새까만 어둠의 불길이 부챗살 형태로 퍼져 가며 전방 30여 미터를 모조리 뒤덮어 갔다. 상식적이라면 아무리 움직임이 날쌔다 한들 이 불길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터, 하지만 저 인간과 오크는 이번에도 아주 간단히 공격을 피해 냈다.
“아, 역시 이거 날아오네.”
“범위도 정확하군.”
이유는 간단했다. 저 작은 존재들은 애초에 아몬 나이트가 암흑 마법을 준비하기 전부터 일찌감치 공격 범위 밖으로 피한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내 공격 패턴을 미리 알고 있는 거냐!’
울화통이 터질 것 같았다. 아몬 나이트가 완벽하게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이미 적이 피한 자리에 마법을 날리는 병신 짓을 할 리가 있나? 하지만 지금 그는 유적에 묶여 있는 몸이었고, 유적이 강요하는 전투 프로토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유적에 묶여 있는 최상위 악마들, 일명 던전의 수호자라 불리는 이들은 결코 그들의 의사로 전투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움직임을 봉인당한 채 유적이 시키는 대로만 싸움에 임하는 꼭두각시 신세인 것이다. 전투를 행하는 아몬 나이트의 움직임에 정작 악마 본인의 의지는 조금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가자, 러스!”
“좋아, 타시드!”
오크와 인간 청년이 또다시 공격을 가해 온다. 아몬 나이트도 열심히 반격했지만 자신의 공격 방식을 훤히 꿰뚫고 있는 놈들을 상대로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계속 전신 여기저기에 상처가 늘어났다.
“제길, 이런 멍청한 전투를 시킬 거면 그냥 자율권을 좀 주란 말이다!”
울분에 차 아몬 나이트가 악을 써 댔지만 고장 나 버린 유적의 방어 시스템이 들을 리가 없다. 뭐, 자율권이 있었다면 애초에 아몬 나이트 자신이 유적의 제어 장치를 부수고 도망쳤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시스템이긴 하다.
게다가 더 열받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우와, 둘이서도 잘 싸우네요, 레펜 씨?”
“공략법 다 숙지하고 싸우는 건데 당하면 병신이지. 안 그래, 실란?”
“어머나, 레펜하르트 님. 이것도 꽤나 마력이 높은 유물인 것 같아요.”
“응, 그것도 무한의 주머니에 넣어 줄래, 시리스?”
전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공동의 벽 아래, 상체를 벗은 근육질의 남자 하나가 미소녀 둘(?)을 끼고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몬 나이트가 속으로 치를 떨었다.
‘남은 죽어라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물건 챙기지 마!’
이 던전 켈테의 중심부까지 쳐들어온 탐사자들의 숫자는 모두 다섯, 하지만 정작 아몬 나이트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둘뿐이었다. 나머지 놈들은 아예 아몬 나이트는 무시하고 일찌감치 유물부터 털고 있었던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악마 중의 악마로서 어찌 이런 굴욕을 참아 낼까?
“크르르르!”
아몬 나이트가 적의를 불태우자 그것을 느낀 유적의 전투 프로토콜이 저 따로 노는 놈들 역시 적의 범주 안에 집어넣었다. 공격 명령을 받은 아몬 나이트가 고개를 비틀며 불길을 토했다.
크라라라라!
굉음이 진동하며 불꽃의 창이 불꽃의 창이 길게 뻗어졌다. 그러자 이럴 줄 알았다는 듯 근육 좋은 놈이 바로 다른 미녀들을 감싸고 공격을 가로막았다.
“스파이럴 가드!”
뭔가 눈부신 빛이 번쩍번쩍 빙빙 돌더니 그대로 불꽃의 창을 분쇄해 버린다. 자신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갔는데도 아몬 나이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어차피 저 따로 노는 놈들 공격해 본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었다. 그리고 결과 역시 항상 같았다.
‘저건 대체 뭔데 아까부터 남이 때리건 말건 신경도 안 쓰는 거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유물 감식을 시작하는 놈들을 보니 정말 뒷목 잡고 쓰러지고 기분이었다. 하지만 유적의 전투 프로토콜은 아몬 나이트가 고혈압에 시달리건 말건 여전히 정해진 대로 명령을 내릴 뿐이다.
-침입자를 격퇴하라!
유적의 명령에 따라 한차례 공격을 날린 아몬 나이트가 다시 검 든 인간과 오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꼴이라 계속 상처가 늘어났지만, 그때마다 유적이 마력을 동원해 아몬 나이트의 부상을 치유하고 있었다.
‘이거 정말 연습 되네.’
아몬 나이트의 할버드를 피하며 러스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비록 공격 패턴을 다 알고 있다지만 그렇다 해도 저 악마의 파괴력과 스피드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강자를 상대로 약속 대련을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웃! 역시 굉장한 일격! 방심했다간 큰일 나겠어.”
보아하니 타시드도 비슷한 기분인 듯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공략법을 다 아는 상황이니 죽거나 할 일은 없다. 진지하게 살기를 터트리면서 약속 대련을 해 주는 상대라니? 이렇게 기량을 높이는데 좋은 수행 방법도 그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계신 거지?’
그동안 던전 많이 털어 본 러스지만, 그래도 매번 던전을 탐사할 때마다 레펜하르트의 지식에 대해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척척 진행하고 어디에서 무슨 마물이 나오며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죄다 알려 주는데, 그 정보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이곳, 던전 켈테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펜하르트 일행이 켈테에 진입해 여기 중심부까지 진입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반나절이었다. 보통 던전 하나 탐사하는 데 보름은 족히 걸리는 걸 감안하면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듣자하니 형님의 사부, 권황拳皇 제라드에게서 들은 정보라는데…….’
새로운 권왕 레펜하르트가 탄생한 후 사람들은 전대 권왕이던 제라드를 권의 황제, 권황이라는 칭호로 높여 부르고 있었다. 이 또한 짐 언브레이커블이 대륙에 모습을 드러낸 이래 누누이 전해져 오는 전통이었다.
추후 레펜하르트가 제자를 가르쳐 세상에 내보내면 그가 권황이라 불리고 제자가 권왕이라 불릴 것이다. 뭐, 그때까지 제라드가 살아 있으면 호칭이 꼬이지 않을까 싶겠지만, 여태껏 짐 언브레이커블 3대가 동시에 나올 만큼 인재가 넉넉한 시대가 존재하지 않아 딱히 문제된 적은 없었다. 애초에 여태 가르침이 이어진 것이 기적일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제라드 공께서 던전 탐사의 달인이셨다지만 이건 좀 정도가 심한 것 같단 말이지?’
러스는 슬쩍 의심스러운 눈으로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쯤 되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긴, 사람마다 감추고 싶은 비밀 한둘쯤은 있을 테니.’
러스는 의심을 거두었다. 의심하기엔 레펜하르트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다.
‘언젠가는 형님도 모든 것을 말해 주시겠지.’
레펜하르트는 여전히 시리스와 실란을 데리고 유물 감식에 열중이었다. 틸라가 빠진 현재 레펜하르트 일행은 시리스와 실란, 러스와 타시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열심히 유물 감식 중이던 레펜하르트가 등을 돌리더니 고함을 질렀다.
“러스! 타시드! 슬슬 시간 됐어! 2페이즈로 바뀔 거다! 준비해!”
과연 곧이어 복잡한 고대어 음성이 유적의 공동 안을 웅웅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