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37
‘거참, 뒷맛이 씁쓸하네.’
그러던 중이었다.
“음? 뭔가가 다가온다?”
기감만큼은 레펜하르트보다 월등한 러스가 또다시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공동 반대편에 뚫린 또 하나의 통로에서 한 무리의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악령? 아니, 이번엔 확실하게 물리적 존재가 느껴지는 기척인데?”
잠시 후 다른 일행들도 기척을 느꼈다. 레펜하르트가 의아해하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서, 설마 짐 언브레이커블에서 제자들 지박령 만든 걸로도 모자라 근육질 좀비로까지 만들었나?’
아무리 막 나가는 짐 언브레이커블이라도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지만, 솔직히 이 꼴 당하고 나니 무문에 대한 무한한 불신감이 싹트는 레펜하르트였다.
그때, 한 남자가 통로를 빠져나오며 툴툴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여긴 뭐요? 뭔 던전이 유물은 하나도 없고 유령만 득시글거려?”
뒤이어 검은 갑주 차림의 남자가 나타나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게다가 그 유령들, 무섭게 나타나서 한번 훑어보더니 도로 사라지는 이유는 또 뭔지?”
그러자 로브를 걸친 여인이 거구의 여인과 함께 종종 걸음으로 뒤따르며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러니까 여기는 던전이 아니라니까요? 설명 이미 들었잖아요, 여긴…….”
통로를 빠져나온 이들이 무심코 공동 안쪽을 바라본다.
레펜하르트 일행과 통로를 빠져나온 이들이 동시에 눈을 마주친다.
순간 러스의 표정이 굳었다. 가장 먼저 나타난 남자, 그의 얼굴이 너무도 낯익었기 때문이었다. 저 황금의 갑주를 걸친 사내는…….
“유서스 형님?”
“러스! 역시 여기 있었군!”
실란도 거구의 여인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으악! 크리스틴? 어떻게 저 사람들이랑?”
“아, 실란!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검은 갑주를 걸친 사내가 레펜하르트를 바라보더니 흥분한 목소리로 고함을 터트렸다.
“드디어 찾았구나, 레펜하르트!”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그 사내를 보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지 못 알아봤다. 현재 그의 정신은 저 검은 갑주의 사내 뒤에 서 있는, 여마법사에게로 온통 쏠리고 있었으니까.
‘필레나? 쟤가 어떻게 여기에?’
어린 시절 마탑에서 함께 자랐던 전생의 죽마고우, 필레나. 그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설마 테스론인가!”
통로 안쪽에서도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찾았구나, 마왕 레펜하르트!”
곧이어 검은 머리의 잘생긴 미청년이 통로 밖으로 튀어나왔다. 레펜하르트도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검은 머리의 미청년과 거구의 근육질 거한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테스론!”
“레펜하르트!”
전생에서도 이렇게 노려보았던 두 사람, 하지만 현재 둘의 위치는 완전히 바뀌어 있다.
시공을 넘어 드디어 조우한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보며 적의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 적의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둘 다 상대를 보며 적의 대신 다른 감정을 느낀 탓이었다.
당혹해하며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누구냐, 너?”
7권
제21장 운명의 격돌
1
테스론은 경악에 차 눈앞의 거한,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의 얼굴이었다. 분명 자신의 몸이었다.
그럼에도 테스론은 저 육체가 자신의 몸이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구냐, 너?”
저게 정말 레펜하르트? ‘내 몸’에 들어간 그 마왕이란 말인가?
“몸이 왜 저렇게 왜소해진 거냐아아아!”
2미터에 달하는 근육질 거구를 보고 왜소하다고 한탄하는 그 모습에 유서스며 다른 동료들이 잠깐 테스론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다. 하지만 테스론은 진심이었다.
230센티미터에 달했던 신장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다.
어지간한 성인 여성 허리 굵기였던 자랑스러운 팔뚝이 고작(?) 어린애 허리 굵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두툼했던 어깨며 가슴도 사이즈가 팍 줄어 버렸다.
테스론이 울분을 터트렸다.
“남의 몸을 가져가서 제대로 간수도 못 하다니!”
레펜하르트 역시 비슷한 기분으로 테스론, 자신의 육체를 차지한 전생의 권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뚜렷한 이목구비, 날렵한 턱선, 오똑한 콧날에 살짝 치켜 올라가 색기마저 느껴지는 눈매, 분명 그의 원래 얼굴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리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누구냐? 너?”
단지 그 감상은 테스론과 정반대였다.
‘우와! 저 근사한 총각은 대체 누구여?’
얼굴이야 엇비슷했다만 몸이 완전히 달랐다. 전생의 시리스가 잘 벼려진 칼날 같다고 칭찬한,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그냥 말라비틀어진 멸치 쪼가리였던 그 육체가 놀랍도록 변모해 있었다.
“그, 그거 내 몸이냐?”
레펜하르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여자인 시리스와 날씬함을 경쟁하던 그 좁던 어깨가 딱 벌어져 완연한 남성미를 자랑한다. 그렇다고 울퉁불퉁한 근육질도 아니다. 흑표범처럼 날렵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는, 한 치의 군살조차 없이 단련된 몸이었다. 전신의 균형이 완벽히 잡혀 있고 키도 상당히 커져서 거의 185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허, 내 몸에 저 정도 잠재력이 있었단 말인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리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테스론이 버럭 성질을 냈다.
“잠재력은 무슨 잠재력? 정말 네놈 몸 저질이었다! 이걸 그나마 이만큼이나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해?”
삿대질까지 해 가며 테스론이 타박을 해 댔다. 그간 이 비실거리는 육체를 여기까지 단련하느라 그가 한 고생은 거의 왕년 제라드 밑에서 수행할 때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걸 잠재력 따위로 치부하려 하다니?
물론 레펜하르트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울컥하며 받아쳤다.
“그, 그러는 네놈 대가리는 뭐 고성능이었는 줄 알아! 이게 머리냐? 모자걸이지? 어떻게 가장 기본적인 마법 하나 외우는 데 10분이 넘게 걸리냐? 원숭이한테 시켜도 이것보단 빨리 계산하겠다!”
씩씩대며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본다. 다른 이들이 멍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실란이 모두를 대변하듯 중얼거렸다.
“뭐야? 고향 친구인가?”
그제야 테스론과 레펜하르트가 동시에 정신을 차렸다. 눈앞에 나타난 자신의 몸이 너무 충격적이라 잠시 적의를 잃긴 했지만, 지금 그들이 이렇게 사이좋게 수다나 떨고 있을 사이가 아니다.
“으음…….”
신음을 흘리며 테스론이 허리춤의 장검을 뽑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전의를 끌어내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다시 만났구나, 마왕 레펜하르트!”
“아니, 이제 와서 근사한 척 목소리 깔아 봤자…….”
옆에서 필레나가 초 치는 소리를 했지만 테스론은 애써 무시했다. 분위기를 바꾸며 그가 근엄하게 소리쳤다.
“또다시 대륙을 전화의 불길에 휩싸이게 할 수는 없다! 이 자리에서 그대를 처단하고 정의를 되찾겠다!”
☆ ☆ ☆
테스론이 검을 뽑자 그의 동료들도 전투태세를 갖췄다. 유서스를 본 러스나 전생에 대해 알고 있는 시리스는 이미 전투준비에 들어갔지만 타시드나 실란은 도통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눈만 굴릴 뿐이었다.
실란이 레펜하르트에게 물었다.
“뭐예요, 레펜 씨? 아는 사람?”
레펜하르트가 빠르게 대꾸했다.
“적이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 줄게!”
의아해하면서도 실란이 안색을 굳히며 기도를 올릴 준비를 했다. 타시드도 참마도를 들고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거대한 공동 속에서 두 일행이 서로를 노려보고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레펜하르트가 문득 물었다.
“어떻게 여기에 우리가 있는 줄 알았지?”
테스론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산타라 마을에 흔적을 남겼더군.”
레펜하르트의 종적을 찾아 세텔라드 산맥에 도착한 테스론 일행은 인근 산촌을 뒤져 정보를 모았다. 그 와중에 산타라 마을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너무 늦어, 이미 레펜하르트가 던전 켈테 탐사를 끝내고 떠났다는 소리도 들었다.
실망하며 혹시나 싶어 여관 주인에게 혹시나 다음 목적지에 대해 들은 것이 없냐고 물었었는데, 의외로 여관 주인이 행적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여관 주인은 바트 산 근처라고만 답했지만 테스론은 바로 알아차렸다.
“사부님이 남긴 선물을 찾으러 간 것일 줄 알았지.”
그도 전생에 제라드가 남겼던 저 선물을 받은 바 있었다. 참으로 신 나는 경험이었다. 부담 없이 팰 수 있는데 손맛도 짜릿하고 숫자도 백 명이 넘는다. 하루 밤낮을 미친 듯이 날뛸 수 있던 훌륭한 수행이었다.
“역시 사부님다운 선물이었지. 후, 사부님의 진심이 느껴져 얼마나 고마웠는지.”
사부의 은혜는 하늘같구나! 감동하며 열심히 유령들을 패고 그 후 진짜 ‘선물’도 받아 챙겨서 나온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테스론이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자 레펜하르트가 질린 얼굴을 했다. 역시 저게 ‘제대로 된’ 짐 언브레이커블의 후계자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저렇게 안 돼서 정말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테스론이 손에 든 장검을 레펜하르트에게 겨누며 차갑게 웃었다.
“결국 운명이 내 손을 이끌어 그대 앞에 서게 했지. 이제 모든 악몽을 끝낼 시간이다, 마왕 레펜하르트!”
주먹을 내밀며 레펜하르트가 코웃음을 쳤다.
“무식했던 놈이 말 하나는 잘하게 됐군. 남의 좋은 머리 가져간 덕을 톡톡히 보나 보지?”
차가운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살기가 피어올라 아지랑이처럼 둘 사이를 맴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공기가 팽팽해진다.
“레펜하르트…….”
“테스론…….”
시간을 거슬러 온 두 사람이 운명의 대적자를 노려보며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레펜하르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너무 변해 버린 자신의 육체에 순간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 저건 더 이상 내 몸이 아니야.’
혹여나 테스론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와 싸우게 되었을 때 과연 자기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고민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는 더 이상 없다.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으며, 지금 이 육체야말로 세상에 하나뿐인 그의 육신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실감해 버렸다.
부우우웅!
레펜하르트의 전신에서 황금빛 오러가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가 양손 가득 오러를 머금은 채 고함을 터트렸다.
“안 그래도 신경 쓰이던 참이었지. 이 기회에 확실하게 후환을 없애 주마!”
☆ ☆ ☆
“타아아앗!”
기합을 길게 지르며 레펜하르트가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테스론이 검을 든 채 옆으로 몸을 날려 공세를 피했다. 빗나간 주먹이 대기를 찢으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검은 갑주의 사내, 스테반이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레펜하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