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44
이것이야말로 제라드가 제자에게 남겨 주었던 진정한 선물이었다.
전생에 하산했던 테스론은 몇몇 용병일로 돈을 모으며 세상에 대해 배우고 난 뒤 바로 이곳부터 찾았다. 그리고 수백의 악령들과 싸운 후 극도로 날카로워진 감각 속에서 이 석비를 읽으며, 결국 4중첩의 경지를 넘어 5중첩의 캘러미티 혼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난 당연히 마왕도 벌써 이곳을 지나쳐 5중첩의 경지에 다다랐을 줄 알았지. 그래서 그토록 그를 두려워했다.’
테스론이 쓴웃음을 지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어. 지금의 그는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 둘 다 완성되지 않은 마법사이며 완성되지 않은 무인일 뿐!’
그의 손에 들려진 장검이 싯누런 오러를 발했다. 테스론이 검을 들어 석비를 겨누었다. 비록 짐 언브레이커블의 오랜 보물이며 추억이 어려진 물건이지만…….
“대륙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외침을 터트리며 테스론이 석비를 향해 검을 길게 찔렀다.
“스파이럴 블레이드!”
소용돌이치는 오러가 석비를 강타했다. 두꺼운 석비가 산산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부서지는 석비 앞에서 테스론이 유쾌하게 웃었다.
“으하하! 레펜하르트! 비록 오늘은 패했지만 그냥 물러가진 않는다! 여기까지 와서 허탕치고 어디 한번 울화통 터져 봐라!”
☆ ☆ ☆
레펜하르트 일행은 열심히 통로를 달렸다. 길 따윈 몰랐지만 헤매지는 않았다. 바로 조금 전 테스론 일행이 발자국 대놓고 남기며 앞서 간 덕분이었다. 능숙한 사냥꾼이기도 한 타시드에게 이 정도 발자국이면 이정표를 남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열심히 테스론 일행의 자취를 따라 가다 보니 계단이 나오고, 통로 끝에 위치한 석실이 보인다. 발자국이 석실과 계단 양쪽으로 향해 있는 걸 보고 타시드가 의아해했다.
“어라? 은인, 발자국이 둘로 갈라집니다.”
“응? 어째서?”
발자국을 유심히 살핀 뒤 타시드가 대답했다.
“일단 저 석실을 갔다가, 다시 계단으로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갸웃하며 석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른 이들도 뒤따라 들어갔다. 시리스가 중앙의 제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가 부순 자국이 있는데요?”
네모반듯한 바위 같은 것이 박살 난 흔적이었다. 살펴보니 부서진 파편마다 공용어 글자가 적혀 있었다.
‘무슨 묘비 같은 건가?’
파편이 너무 사방으로 퍼져 있어 이 글자들이 무슨 문장을 이루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마법으로 검사해 보았지만 무슨 마도구나 은의 시대 유물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 마법도 부여되지 않은, 흔해 빠진 돌조각일 뿐이었다.
도망가기도 바쁜 와중에 대체 이 비석을 왜 부순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레펜하르트가 고민하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성깔 못 이겨서 난동이라도 부렸나? 하긴, 그 양반 예전부터 다혈질이긴 했지.”
아무것도 모르는 레펜하르트는 그냥 어깨만 으쓱이며 바로 석실을 빠져나갔다. 뭐,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울화통 터질 일도 없는 것이다
“쯔쯔, 하여튼 성질하고는…….”
혀까지 차며 레펜하르트는 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지상으로 올라가며 러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형님, 대체 그 테스론이란 자는 누구입니까? 보니까 형님이랑 굉장히 잘 아는 사이 같던데.”
안 그래도 그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 중이던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썼다.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테스론의 존재를 어찌 설명할까?
궁여지책으로 레펜하르트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랑 고향 친구 같은 사이인데…… 음, 일종의 동문이라고 해야 하나? 사실 처음부터 친한 사이는 절대 아니었어. 이종족에 대한 의견이 많이 차이가 났거든. 그쪽은 내가 이종족을 해방시키는 것이 인류에 지대하게 해를 끼친다고 믿고 있지. 그래서 나를 적대하고 죽이려 한달까…….”
애매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또 틀린 말 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레펜하르트의 사상이 얼마나 위험하며 이 시대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인지는 러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긴…… 극단적인 반응 같지만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군요.”
납득하며 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안도하며 레펜하르트는 어깨에 짊어진- 여전히 잠들어 있는 실란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설명이면 실란도 러스처럼 납득을 하리라.
“어쨌거나 빨리 이 저주받은 곳에서 떠나자, 치 떨린다.”
☆ ☆ ☆
계단은 짐 언브레이커블의 초대 무문이 위치한 그 폐가 뒷산을 통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온 타시드가 감격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오오! 태양이다! 태양! 저 태양이 이리 반가워 보일 줄은 생각도 못 했소.”
“전적으로 동감이다.”
뒤따라 밖으로 나오며 러스도 어깨를 으쓱였다. 뒤이어 시리스와 실란을 짊어진 레펜하르트도 땅 위에 발을 디뎠다. 주위를 살펴보며 레펜하르트가 혀를 찼다.
“쩝, 역시 테스론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 하긴, 그토록 시간을 지체했는데 여태 이곳에 머물고 있을 리가 없지.”
시리스가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미안해요, 레펜하르트 님. 괜히 이곳에 오자고 해서…….”
그녀가 이곳으로 오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괜한 고생할 일도 없었고 다른 이들이 저토록 부상을 입을 리도 없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덕분에 정신을 차렸어. 이곳에 와서 진짜 다행이다.”
딱히 시리스를 달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레펜하르트는 진심으로 테스론과 조우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난 마법만 되찾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줄 알았지. 그건 오만이었어.”
아직도 테스론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침이 마른다. 그만큼 테스론의 기술은 그에게 있어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당했는데도 대체 뭘 어떻게 당한 건지조차 모르겠어. 분명 내 목을 조르고 있는 팔을 풀었는데 그게 더 내 목을 조르질 않나,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조여 오는데…….”
그것이 레슬링 계열 관절 기술의 무서움이다. 타격기나 검술 같은 무술은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라 잘 모른다 해도 감각적, 본능적으로 센스가 있으면 어떻게든 대응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래플링 기술은 그렇지 않다. 서로의 육체적 성능이 절대적으로 차이 나지 않는 이상, 모르면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러스가 혀를 찼다.
“저도 형님 정도 되는 무인이 그라운드 레슬링에는 그렇게 문외한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검사도 아니고 권사시면서…….”
아무리 기사라도, 낙마했을 때라든가 무기를 놓쳤을 때를 대비해 어느 정도 레슬링 기술에 대해 익히는 법이다. 애초에 레슬링이라는 것 자체가 갑옷을 입은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기 위해 출발한 기술인만큼 러스도 기본적인 소양은 지니고 있었다.
“우리 무문은 쪽팔리게 땅바닥에서 구르지 말라고 가르치거든.”
“그, 그건 확실히 공감이 가지만…… 어쨌건 레슬링 계열은 연습 좀 하면 방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시간 나는 대로 좀 가르쳐 드릴까요? 전문적인 것은 무리지만 기술 안 들어오게 방어하는 기법은 좀 아는데.”
“제발 좀 부탁한다.”
의외로 레펜하르트가 진지하게 러스의 의견을 승낙했다. 참 호되게 당하긴 당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딱히 그 기술뿐만이 아니더라도…… 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조차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반성하며 레펜하르트는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딱히 그래플링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테스론은 무인으로서 모든 점에서 그를 압도했다. 분명 육체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레펜하르트를! 이것은 결코 무시하고 지나갈 부분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하산한 이래 그의 무인으로서의 기량은 거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워낙 기본적인 성능이 뛰어나다 보니 이 육체만으로도 얼마든지 만족했다. 그래서 오로지 마법을 되찾는 데만 급급했다.
‘틀린 생각이었어.’
모든 것이 바뀐 지금, 그는 더 이상 마왕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법만큼이나 무술 역시 진지하게 마주해야 한다.
돌아가면 진지하게 무술 쪽 수련도 매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레펜하르트가 어깨를 폈다. 뭐, 이것이야 그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여전히 시무룩해 있는 시리스를 보며 레펜하르트가 화제를 바꿨다.
“그리고 건진 게 없지는 않아. 저기 또 하나의 오러 능력자를 당당히 건졌잖아?”
그제야 시리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런 거예요?”
타시드가 가슴을 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렇다. 덕분에 나는 드디어 투혼의 축복을 받았다. 시리스,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운도 없었겠지.”
껄껄 웃는 타시드를 보며 시리스도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런 둘을 보며 레펜하르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타시드가 벌써 오러를 각성할 줄은 몰랐지. 10여 년 뒤에나 각성해야 정상인데.’
전생의 타시드가 오러 능력자가 되는 것은 푸른 곰 부족에서 나와 세상을 떠돌 때의 일이다. 그는 인간들 세상 속에서 항상 쫓기며 온갖 강자들과 맞서 싸웠고 그때마다 새롭게 자신의 한계를 부쉈다.
‘그러다가 할라인 왕국의 오러 능력자 카메룬과 맞서 싸우며 오러를 각성하게 되었다고 했지?’
생각해 보면 지금의 타시드는 전생보다 훨씬 일찍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크로방스 왕국 내전을 통해 온갖 전투를 겪으며 성장했고, 꾸준히 러스와 붙어 가며 오러에 대한 감각도 많이 잡았다. 칼켄이나 스탈라와 달리 러스는 인간 오러 유저였고, 그래서 오크 오러 유저만을 상대할 때에 비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버서커 아머를 쓰는 스테반을 맞이해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 들면서 결국 막혔던 둑이 터진 것이다.
‘행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황당한 일인 것만도 아니지.’
“어쨌건 원래 목표였던 제룬팅도 찾았고, 예상외의 보너스도 얻었으니 이번 여행은 결과가 좋군요.”
러스의 말에 동의하며 타시드도 말을 받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푹 좀 쉽시다.”
이제는 모두 안타레스 백왕성을 집이라 칭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집이란 표현을 쓰는 타시드를 보며 레펜하르트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돌아가자. 우리의 집으로.”
제22장 붙잡힌 자, 풀려난 자
1
울창한 열대 수림 사이로 세 개의 그림자가 빠르게 숲 속을 질주하고 있었다. 우둘투둘한 피부에 거미처럼 길고 깡마른 팔다리를 지닌 종족, 트롤이었다. 성인으로 보이는 장신의 트롤이 돌칼로 정신없이 수풀을 가르며 두 명의 어린 트롤들을 이끌고 있었다.
“헉헉헉!”
연신 가쁜 숨을 내쉬며 바위를 뛰어넘고 덤불을 헤친다. 어린 트롤 하나가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울상을 지으며 트롤 아이가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헉, 헉, 헉! 더 못 뛰겠어, 우트랑!”
“쓰러지면 안 돼! 인간들이 쫓아온다!”
“하, 하지만…….”
가슴을 할딱대는 어린 트롤들을 보며 우트랑은 난처해했다. 이미 성년식을 치른 그와 달리 이 어린 트롤들은 아직 재생력이 발달하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 폐를 혹사시키다간 생명이 위험하다. 설령 팔다리가 잘린다 해도 끼니 좀 잘 챙겨 먹으면 말끔히 치료되어 버리는 성인 트롤들에 비해, 어린 트롤들은 과로나 과다출혈만으로도 쉽게 죽음에 이르는 연약한 존재였다.
초조해하며 우트랑이 숲 저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인간들에게 잡혀 버릴 텐데…….”
트롤들으로부터 200여 미터쯤 떨어진 열대 우림 저편, 커다란 넝쿨이 어지럽게 얽힌 숲 사이로 한 무리의 인간들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석궁이며 창칼을 든, 질 좋은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 격인 중년 사내가 숲을 헤치고 나가며 외쳤다.
“흔적을 찾았나?”
앞장서서 바위며 흙바닥을 살피던 청년 하나가 손가락질을 하며 대답했다.
“저쪽으로 도망갔습니다, 런든 대장!”
중년인, 런든이 히죽 웃으며 석궁에 화살을 재었다.
“좋아! 좌우로 포위망을 좁히면서 예정대로 몰아라!”
“알겠네!”
런든의 명에 따라 다른 이들도 빠르게 숲 사이로 사라져갔다.
이들은 할라인 왕국 남부, 덴키드 지방에서 제법 명성이 있는 마물 사냥꾼들이었다. 마물들의 피며 생체 조직은 연금술사들에게 귀한 재료였기에, 연금술사 길드의 의뢰를 받아 각종 마물을 사냥하는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은 마물이 바로 트롤이었다.
트롤의 피는 힐링 포션의 훌륭한 재료가 된다. 원래 힐링 포션은 연금술사들이 여러 귀한 약초들을 조합하고 마법사가 마력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지는데, 트롤의 피가 있다면 저 과정이 대폭 줄어든다. 싸구려 약초를 써도 트롤의 피 몇 방울만 넣으면 정통 힐링 포션 못지않은 약효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마법사의 마력도 필요 없어진다.
힐링 포션은 한 병에 은화 열 닢은 족히 나가는 비싼 물건, 당연히 트롤의 피는 같은 무게의 황금과도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런 트롤을 사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롤 자체가 어지간히 노련한 마물 사냥꾼들이 아니면 잡기 힘든 강력한 몬스터였고, 게다가 깊숙한 숲 속에서만 서식하는 습성 때문에 쉽게 인간들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그런 면에서 런든은 운이 좋았다.
마물 사냥을 하던 중 우연히 묵은 밀림의 한 마을에서, 트롤 하나가 근처에 나타났으니 퇴치해 달라며 부탁해 온 것이다. 그리고 런든과 그의 일행들은 트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만큼 노련하고 강력한 마물 사냥꾼들이었다.
일주일 동안 마을 주변 밀림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결국 트롤을 발견하고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런든이 욕심 가득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렵게 찾은 대박인데 놓칠 수야 없지, 후후후.”
☆ ☆ ☆
인간들의 포위망이 점점 좁혀 온다. 우트랑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혼자만이라면 어떻게든 저들을 피해 달아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을 데리고는 불가능하다.
‘내 실수다!’
통한의 심정으로 우트랑은 가슴을 쳤다. 부락을 이끄는 구루 마테로의 말을 듣지 않고 금지 구역 밖으로 향한 것이 문제였다.
‘그 폭포에 가서는 안 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