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69
“나의 기사들이 돌보고 있습니다. 레펜하르트 공께서 서둘러 준 덕에 반 정도는 살아남을 수 있었구려.”
마을의 참상에 침울해진 얼굴로 갈린 남작이 대답했다. 그리고 죽은 로커스트 용병단의 시체를 보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체타스 남작이 독이 올랐군. 이 흉악한 놈들까지 고용했다니…… 이들이 어떤 놈들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러는 동안 안타레스 기사 한 명이 레펜하르트와 시리스를 위해 두 필의 말을 끌고 왔다. 갈린 남작이 레펜하르트에게 권했다.
“일단 진지로 돌아가시지요. 뒤처리는 제 기사들이 할 것입니다.”
“그럽시다.”
레펜하르트가 말에 올라타자 다른 이들도 일제히 말머리를 돌려 마을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3
체타스 남작은 크로방스 왕국 남부의 유력 귀족들 중 하나였다.
비옥한 토지로부터 나오는 소출, 그리고 교역 도시 자루드 덕에 체타스 남작가는 대대로 크로방스 왕국 내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다. 지닌 무력 역시 상당해서 칠백 명의 병력과 쉰 명의 기사를 수하로 두고 있었다. 작위는 낮지만 오러 유저 그란디아드 경과 인척 관계를 맺고 있어 귀족들 사이의 권세도 꽤나 높았다.
그리고 인접한 갈린 남작가의 오랜 앙숙이기도 했다.
이웃이나 다름없는 두 가문이지만 사이는 결코 좋지 못했다. 전통의 귀족가인 체타스 남작가는 상인 출신인 신흥 귀족 갈린 남작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천한 놈들이 돈으로 작위를 샀다며 경멸하곤 했다.
그 분위기가 수하들에게도 전해져, 두 가문은 언제나 사소한 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때마다 세력이 약한 갈린 남작가가 굴욕을 무릅쓰고 뒤로 물러섰기에 큰 전쟁으로 번지지 않았을 뿐이다.
문제가 터진 것은 크로방스 왕위 계승 전쟁 후였다.
새로운 국왕, 유벨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많은 귀족들이 왕도 크로틴을 찾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갈린의 후계자인 베르랑트와 체타스의 후계자, 자크도 있었다.
내전 속에서 체타스 남작가는 그란디아드 경을 믿고 중립을 표했다가 뒤늦게 유벨 군에 가담했다. 반면 갈린 남작은 처음부터 유벨 국왕을 지지했고 그 대가로 당당히 공신의 반열에 들었다. 그렇다 보니 더 이상 두 가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게 된 것이다.
수도에서 오랜 숙적, 자크를 만난 베르랑트는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체타스 남작가에게 꿀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당당히, 귀족다운 태도로 자크를 대했다.
하지만 자크에겐 여전히 베르랑트는 천한 출신일 뿐이었다. 태도가 변한 베르랑트를 보며 크게 분노했다.
-이 천한 놈이 주제도 모르고!
당연히 시비가 붙었다. 말싸움이 오가고, 분위기가 격해지며 결국 결투로 이어졌다.
문제는, 방심한 자크가 베르랑트의 검에 찔려 죽어 버렸다는 것이었다.
사실 귀족들 사이의 결투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것, 그리고 그 결투의 결과는 승복하는 것이 귀족들 사이의 예의다.
하지만 어디 세상 일이 논리대로 돌아가는가?
-갈린의 천한 놈이 감히 내 아들을 죽였단 말이냐! 내 갈린의 모든 핏줄을 이 땅에서 말살해 버리리라!
후계자를 잃은 체타스 남작은 극도로 흥분해 병력을 일으켰다. 유벨 2세가 중재에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제 갓 왕위에 오른 데다가 내전까지 치룬 이후라 아무래도 왕의 권위가 예전만 못했다.
그리고 체타스 남작에게는 나름대로의 명분도 있었다. 상대를 귀족으로 인정치 않으니, 결투의 결과 또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군사를 일으키고 막대한 금액을 들여 천여 명의 용병들을 고용한 체타스 남작은 곧바로 갈린 남작령을 침공했다.
아무리 공신 반열에 올랐다지만 당장 갈린 남작가의 세력이 커진 것은 아니다. 힘을 키울 시간이 없었던 갈린 남작에게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재력도 무력도 체타스 남작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영지전이 시작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영지의 절반 이상을 체타스 남작군이 휩쓸어 버렸다. 평소 형제처럼 지내던 인근의 다른 귀족들도 소용이 없었다. 도움을 청해도 다들 체타스 남작 뒤에 있는 오러 유저, 그란디아드 경을 두려워 해 못 본 척할 뿐이었다. 가문을 보전하기 위해 굴욕적인 조건으로 협상을 해 보기도 했지만, 그것마저 거절당했다.
영지 곳곳이 참혹하게 짓밟히는 절망적인 상황, 갈린 남작이 자결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였다.
예상외의 장소에서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다.
대단히 크고 굵고 질기고 단단한, 황금빛 동아줄이었다.
☆ ☆ ☆
칼바람이 불어오는 체타스 남작령 내의 한 들판.
수백 명의 용병들이 단 한 명의 사내에 의해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연환 기격탄!”
황금빛 오러가 쏟아지며 방패를 뚫고 갑옷을 우그러뜨린다. 거구의 용병들이 낙엽처럼 사방팔방 나가떨어진다.
용병들 사이를 돌진하며 사내가 전신의 오러를 폭발시켰다.
“흐아아압!”
금빛의 오러가 폭풍이 되어 용병대를 밀어붙였다. 폭풍이 수십, 수백의 펀치와 킥을 동반하며 용병들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근육이 터지고 살이 찢어지며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비명이 메아리가 되어 들판을 메우고 또 메웠다.
“커억!”
“으악!”
“사, 살려!”
이들은 체타스 남작가에 고용된 용병들이었다. 한때는 갈린 남작령을 사정없이 유린하며 승승장구하던 체타스 남작군, 하지만 지금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해 도로 체타스 남작령까지 밀린 처지였다.
전부 눈앞의 저 황금빛 거한 때문이었다.
“권왕 레펜하르트!”
후방에서 서 있던 체타스 남작가의 기사대장, 가란드가 그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작자는 왜 갑자기 이 일에 끼어들었단 말이냐!”
가란드는 전장을 둘러보았다. 용병들의 사기가 눈에 보이게 꺾여 가고 있었다.
당연했다. 황금빛 오러를 보란 듯이 뿜어 대는, 창칼도 통하지 않는 저 압도적인 괴물을 상대로 대체 누가 용맹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였다. 정석대로라면 여기서 대장인 가란드가 직접 나서서 상대의 위세를 꺾어야 하겠지만, 솔직히 겁나긴 그도 마찬가지다.
‘저런 괴물을 무슨 수로 상대하라고!’
대신 용병들에게 미끼를 던졌다.
모두 들어라! 저자에게 작은 상처만 내도 금화 천 닢을 내리겠다!”
금화 천 닢이면 부호인 체타스 남작에게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권한도 없는 주제에 가란드는 호언장담을 해 버렸다. 어차피 지금은 그런 세세한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까짓것, 나중에 오리발 내밀면 된다.
“금화 천 닢이라고?”
“상처만 내는 정도라면야!”
침착하게 생각하면 거짓이란 걸 모를 리 없거늘, 금화 천 닢이라는 소리에 용병들의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역시 칼 밥 먹고 사는 놈들답게 생각이 얕은 것 같았다.
말을 탄 용병 몇 명이 눈을 번득이며 창을 들고 레펜하르트에게로 돌진했다.
“이랴!”
아무리 이름 높은 오러 유저, 권왕이라지만 상대는 두 발을 땅에 디딘 상태다. 돌진하는 기마의 힘으로 밀어붙이면 작은 상처 정도야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죽어라아아아아!”
흙먼지를 일으키며 기마병들이 사방에서 창을 찔러 온다. 레펜하르트가 그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중얼거렸다.
“돈으로 생명을 거래하는 자들…….”
찔러 오는 창칼을 비껴 스치며 레펜하르트가 기마병 사이로 파고들었다. 실로 완벽한 회피 기법이었다. 그동안 러스며 타시드, 아틸카를 상대로 열심히 수행해 온 그였다. 이제 이 정도 공격쯤 마음만 먹으면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의 생명이 가벼이 여겨진들 억울해 하진 못하리!”
고함을 지르며 레펜하르트가 몸을 띄웠다.
단숨에 마상 위의 용병들과 눈높이를 맞춘 뒤 그대로 주먹을 뻗는다. 오러를 실은 강렬한 훅이 용병들의 머리통을 일제히 분쇄해 갔다.
콰콰콰쾅!
머리 잃은 주인을 실은 말들이 울부짖으며 전장 여기저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중갑을 걸친 용병들이 도끼며 해머를 들고 나타났다.
“한 대!”
“한 대만 때리면 돼!”
“그러면 금화 천 닢이다!”
탐욕에 물든 눈으로 용병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한다.
“멍청한 놈들!”
레펜하르트는 용병들의 머리 위를 타고 넘으며 그대로 대지에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아발란시 킥!”
폭발과 함께 오른발이 꽂힌 대지가 진동했다.
쿠쿵!
오러의 파동이 땅거죽을 갈아엎으며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마치 눈사태라도 일어난 것처럼 거대한 대지의 파도가 용병들을 뒤덮었다. 주위에 포진해 있던 수십 명의 용병들이 흙더미에 파묻혀 휩쓸려 갔다.
파묻힌 오른발을 뽑은 뒤 레펜하르트가 허공에 주먹을 들었다. 용병들을 향해 우렁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 정도로 이 권왕을 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더냐!”
압도적, 참으로 압도적인 무력이었다. 흙더미 속에서 허우적대던 용병 하나가 절규를 터트렸다.
“빌어먹을! 이런 말은 없었잖아!”
결국 공포에 질린 용병들이 무기를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레펜하르트가 오른손을 들어 손짓했다. 곧바로 그의 등 뒤에서 한 무리의 기마대가 나타났다. 아스레일 경이 이끄는 안타레스 기사단이었다.
“안타레스 기사단! 적들의 잔당을 처리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아스레일이 검을 뽑아들고 외침을 터트렸다.
“전원 돌격! 주군께 그대들의 용맹을 보여라!”
“와아아아!”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서른 기의 기사들이 일제히 용병들의 뒤를 덮쳐갔다. 그뿐이 아니었다. 용병들의 좌측에서도 또 다른 기사단이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뒤처지지 마라, 갈린의 기사들이여!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다!”
“가족을 짓밟은 더러운 자들이다! 모두 죽여라!”
안 그래도 영지를 짓밟히고 울분에 차 있던 터였다. 다들 복수심에 가득 차 야수처럼 체타스 남작군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갔다.
순식간에 체타스 남작군의 진영이 붕괴되며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다급해진 가란드가 말머리를 돌리며 소리쳤다.
“후퇴! 전원 후퇴하라!”
패주하는 체타스 남작군을 뒤로한 채 레펜하르트는 진지로 돌아갔다. 시리스가 그에게 다가와 커다란 조끼와 망토를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레펜하르트 님. 이제 뭐 좀 걸치세요. 보는 제가 다 춥네요.”
때는 바야흐로 호수가 얼어붙는 한겨울, 그런데 지금 레펜하르트는 우람한 상체를 그대로 드러낸 상태인 것이다.
계면쩍어하며 레펜하르트가 옷가지를 받았다.
“아, 응. 그래야지.”
“아무리 단련되어서 추위를 모른다지만, 왜 그렇게 벗고 다니는 거예요? 한겨울인데.”
옷을 걸치는 그를 보며 시리스가 입술을 삐죽였다. 레펜하르트가 머리를 긁었다.
“아니, 살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게 편해서…….”
레펜하르트는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하다 보니 절로 자괴감이 들었다.
‘아아, 어쩌다 보니 짐 언브레이커블 계승자의 길을 완벽히 따라 걷고 있구나. 하지만 진짜 편한 걸 어쩌라고?’
살다 보니 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괜히 역대 짐 언브레이커블의 무인들이 한겨울에도 조끼나 망토만 걸치고 다녔던 것이 아니었다. 벗거나 입기 쉽고 가격도 싸고, 찢어져도 수선이 쉬우니 절로 취향이 이쪽으로 가 버린다.
조끼를 입은 레펜하르트에게 망토를 마저 걸쳐 주며 시리스가 투정을 부렸다.
“아무리 그래도 챙겨 입을 건 좀 입고 다니세요. 보기 흉하잖아요.”
“휴, 흉하다니…… 너무하잖아?”
레펜하르트는 울상을 지었다. 역시 시리스는 근육질보다는 마르고 날씬한 쪽이 취향이었던 것인가? 하긴, 대부분의 여자들이 저런 취향이긴 하다.
“흥!”
시리스가 혀를 날름 내밀며 딴청을 피웠다. 망토를 걸치던 레펜하르트가 문득 생각났는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