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73
“하앗!”
불길이 일렁이며 두 줄기 참격이 머리 위로 쇄도해 온다. 제이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리스가 승리를 확신하며 눈을 빛낼 때였다.
“블링크!”
펑!
갑자기 눈앞에서 제이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두 줄기 참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헉?”
놀라며 시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코앞에 있던 상대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등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젠장, 고작 엘프 따위에게 블링크 부츠까지 써 버리다니…….”
☆ ☆ ☆
시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제이드가 인상을 구긴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신고 있는 부츠, 그 표면에 빛의 문양이 떠올라 희미하게 점멸하는 것이 보였다.
‘저거 설마…… 공간을 이동하는 아티팩트?’
정말 공간을 뛰어넘는 권능을 지닌 기물이라면 마갑 엘드라드처럼 대륙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아티팩트일 터였다.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시미터를 내리쳤다.
“가라! 샐러맨더!”
검에 꽂혀 있던 샐러맨더가 쏙 빠지며 날아갔다. 샐러맨더가 저만치 떨어진 제이드를 향해 몸을 던졌다. 막 샐러맨더가 적중하려는 순간…….
펑!
또다시 제이드가 사라지며 샐러맨더가 바닥에 충돌해 폭발했다. 그는 어느새 좌측에 나타나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소용없다, 엘프 계집.”
틀림없었다.
공간 이동, 그것도 개체 공간 이동이 가능한 은의 시대 아티팩트였다.
시리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마음껏 공간을 이동하며 강력한 마법을 쏘아 대는 고위 마법사를 대체 무슨 수로 막으란 말인가?
게다가 제이드가 가진 아티팩트는 저 블링크 부츠뿐이 아니었다.
“엘프 따위에게 쓰기엔 아까운 것이지만…….”
제이드가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된 이상 아낄 이유가 없지.”
손에 낀 장갑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섬뜩한 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여, 시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뒤로 펄쩍 뛰었다.
사악!
섬뜩한 음향과 함께 날카로운 빛의 원반이 날아와 그녀가 서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두꺼운 성벽 상단이 절단되며 스르륵 아래로 미끄러졌다.
경악한 얼굴로 시리스는 잘린 성벽을 바라보았다. 절단면이 어찌나 매끄러운지, 얼굴이 비칠 정도였다. 이 정도로 엄청난 절삭력이라니?
‘마법? 오러?’
어느 쪽이건 어마어마한 위력이다.
오른손에 낀 장갑을 들어 보이며 제이드가 자랑스레 중얼거렸다.
“단절의 검.”
부우웅!
장갑으로부터 섬광이 솟구치며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시리스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한 검 형태의 빛, 하지만 속에 깃든 기운이 어찌나 강한지 보고만 있어도 절로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재주껏 막아 봐라.”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또다시 제이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공간을 뛰어넘어 시리스의 등 뒤로 돌아간 뒤 바로 빛의 검을 휘두른다. 시리스도 잽싸게 몸을 틀어 피했지만 조금 늦었다. 옷자락이 찢어지며 핏물이 튀었다.
“으윽!”
신음을 흘리며 그녀는 참격을 날려 반격에 나섰다. 하지만 그 자리에 이미 제이드는 없었다. 어느새 옆으로 돌아가 검을 휘둘러 후속타를 날린다. 또다시 핏물이 튀어 오른다.
연속으로 공간을 뛰어넘으며 제이드는 사정없이 시리스를 압박해 갔다. 정신없이 밀리는 그녀의 전신에 점점 상처가 늘어났다.
“이이익!”
고통과 굴욕감으로 시리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상대의 검술이나 움직임 자체는 별것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체술을 익힌 마법사 정도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저 빌어먹을 공간 이동이 곁들여지니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간신히 치명타를 피하는 것만이 현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쳇, 잘도 피하네.”
갈대처럼 휘청대면서도 용케 급소를 지키는 시리스를 보며 제이드는 혀를 찼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닥여 마법을 발동시켰다.
“홀드 슬로우!”
하위 서클 주문이지만 잠깐이나마 움직임을 억제하기엔 충분했다. 순간적으로 시리스의 움직임이 멎었다.
“제법 설쳤다만, 이젠 끝이다.”
꼼짝도 못하는 시리스를 향해 제이드가 빛의 원반을 쏘아 냈다. 조금 전 성벽을 갈랐던 그 절삭의 빛이었다.
위이이잉!
빛의 원반이 괴상한 소음을 흘리며 날아온다. 다급해진 시리스가 시미터를 교차해 앞을 막았다.
타탕!
요란한 금속음과 함께 두 자루 시미터가 박살이 나 버렸다. 흩어진 섬광의 파편이 그녀의 전신을 뚫고 지나갔다. 전신을 덮쳐 오는 고통에 시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가녀린 육체가 피투성이가 되어 비참하게 나가떨어진다. 쓰러진 시리스는 바닥을 기며 신음을 흘렸다.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전신에서 흐르는 피가 성벽을 붉게 물들였다.
“으, 으윽…….”
“하하핫! 개처럼 기는 걸 보니 이제 좀 엘프년답구나!”
통쾌한 듯 웃으며 제이드가 손을 들어 마법을 준비했다. 최후의 일격만큼은 자신의 마법으로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 불길이 일렁이며 이내 거대한 화구로 변해 갔다.
“건방지게 내 마법을 막아 냈겠다?”
화구가 점점 커지며 마력의 열기를 내뿜는다. 압축되고 압축된 폭염의 힘이 당장이라도 터질 듯 일렁인다.
시리스의 눈동자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레펜하르트 님!’
2
“시리스!”
성벽을 바라보며 레펜하르트는 눈을 부릅떴다. 시리스가 웬 정체불명의 마법사에게 사정없이 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게 상대하는 것 같더니, 마법사가 빛의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자 곧바로 몰려 패색이 짙어진다.
‘별 위험 없을 줄 알았는데 어디서 저런 놈이 튀어나온 거야!’
초조해하며 레펜하르트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리스를 홀로 전장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저곳으로 달려가 그녀를 돕고 싶지만…….
‘젠장! 거리가 너무 멀어!’
예전의 레펜하르트, 10서클의 대마도사였던 그라면 그냥 허공을 날아 단숨에 성벽까지 주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속으로 하늘을 나는 비행 마법, 플라이는 8서클의 고위 주문이었다. 지금 레펜하르트가 쓸 수 있는 것은 5서클의 단순 부유 주문, 레비테이션뿐이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열심히 달려가 봤자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이 뻔하고.
“그, 급하다…….”
레펜하르트는 다급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해서였다.
그때 그의 눈에 거대한 투석기가 들어왔다.
“저거다!”
눈을 빛내며 레펜하르트는 투석기로 달려갔다. 막 바위를 장전하고 있던 기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권왕님?”
“잠시 빌리겠다!”
고함을 지르며 레펜하르트가 투석기 위로 뛰어올랐다. 가볍게 걷어차는 것만으로 장전되어 있던 바위가 붕 떠올라 옆으로 날아가 버렸다. 바위가 있던 자리에 착지하는 그를 보며 병사들이 당황해 물었다.
“에엑?”
“권왕님, 지금 뭐 하시는 거…….”
“서, 설마?”
아무런 대꾸도 없이 레펜하르트가 팽팽히 당겨진 밧줄을 향해 수도를 뻗었다. 황금빛 오러의 칼날이 쏘아져 밧줄에 깊이 파고들었다.
타아아앙!
밧줄이 끊기며 투석기가 강렬한 힘으로 장전한 탄환을 허공에 쏘아 냈다. 물론 여기서 그 탄환은 바로 레펜하르트 자신이다.
슈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레펜하르트의 거구가 단숨에 훈다르가드의 성벽까지 날아가기 시작했다. 적도 아군도, 그 순간 모두 기겁하며 고함을 질렀다.
“저, 저거!”
“뭐 하는 짓이야!”
“저런 미친!”
☆ ☆ ☆
“마그마 플레어!”
제이드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쏘아진 화염구가 폭염을 일렁이며 격류가 되어 거칠게 밀어닥쳤다. 흐릿해진 시리스의 눈동자 위로 이글거리는 불길의 강이 선명히 비쳤다.
끔찍한 열기가 전신을 찌른다. 이미 사지는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정령을 부를 힘조차 남지 않았다.
시리스는 죽음을 각오하며 눈을 감았다.
“…….”
불길의 강이 성벽을 타고 흐르며 그녀를 덮치기 바로 직전…….
휘이이익!
파공음이 울리며 하늘에서 황금빛 유성이 떨어졌다.
쿠우웅!
유성이 성벽을 강타하며 지축을 뒤흔들었다. 놀란 시리스가 눈을 번쩍 떴다. 철탑 같은 거한이 어느새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레, 레펜하르트 님?”
잠시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분명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야 할 그가 어떻게 이 자리에? 죽음에 임박해 환각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동시에 불길의 강이 두 사람을 덮쳤다.
콰아아아아!
“이리 와, 시리스!”
허겁지겁 시리스를 품에 껴안고 레펜하르트는 몸을 돌렸다. 전신의 오러를 끌어 올리며 등으로 모든 열기를 막아 낸다.
화르르륵!
작열하는 불길이 레펜하르트와 시리스를 휘감으며 성벽 위를 가득 메웠다. 지독한 열기가 성벽 위를 벌겋게 달구었다.
잠시 후 화염이 사그라지며 레펜하르트가 시리스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저 강력한 불길도 짐 언브레이커블의 오러를 뚫지는 못했던 것이다.
오러를 운용해 시리스의 전신을 지혈하며 그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
멍하니 시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줄만 알았으니 아직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아직도 심장이 미칠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안겨 있는지를 깨달았다. 순간 시리스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
노예 시절 이런저런 치욕을 당하긴 했지만, 항상 초반에 반품당한 덕에 실제로 남자를 접한 적은 없는 시리스였다. 이렇게 남자 품 안에 깊숙이 안겨 보긴 처음인 것이다.
그것도 그냥 남자 품인가? 오늘도 변함없이 레펜하르트는 웃통을 까고 있었다. 쉽게 말해 맨살, 근육의 열기가 고스란히 닿는다는 소리다. 사춘기 소녀에겐 참으로 부담스러운 포옹이 아닐 수 없다.
“내, 내려주세요……!”
“응? 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