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79
“껍질 벗기기!”
고함을 터트리며 칼켄이 여인의 좌우로 대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드레이크나 히드라의 껍질을 벗길 때 주로 쓰는, 한 호흡에 좌우 사연격을 날리는 연속 참격이 여인의 사지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흡!”
순간 숨을 멈추며 여인이 세검으로 연달아 원을 그렸다. 검광이 원형으로 흘러내리며 칼켄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 버렸다. 상대의 힘을 이용해 공격의 궤도를 바꾼 것이다.
보고 있던 러스가 감탄사를 흘렸다.
“대단한 검술이다!”
오러가 실린 칼켄의 대검을, 그것도 연속 참격을 저리도 깔끔하게 흘릴 수 있다니?
저 여인의 검술이 보통이 아니란 증거였다. 러스도 칼켄의 공격을 저렇게 오직 검술만으로 흘릴 자신은 없었다. 그였다면 오러를 운용해 공격력 자체를 흩는 수법을 썼을 것이다. 효과야 같겠지만 훨씬 체력, 오러 소모가 큰 수법이다.
여인이 세검을 교묘히 찔러가며 반격에 나섰다. 은빛 블레이드 오러가 춤을 추며 허공 가득 빛의 궤적을 그렸다. 세검이 칼켄의 전후좌우를 어지러이 누비며 그를 압박해 갔다.
“하아아앗!”
수십 개의 은빛 검광의 꽃이 초원 위로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칼켄이 강맹한 일격을 날려 꽃봉오리를 떨어트릴 때마다 또 다른 검화劍花가 피어나 공격을 가로막는다.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칼날을 타고 검을 흘리며 급소만을 노려 대는 엘프 여인의 기술은 오크들의 그것과 확실히 달랐다. 훨씬 기교적이고 세련되고 복잡한 검술이다.
저 엘프 여인은 검술만 놓고 보면 칼켄은 물론, 스탈라보다도 우위에 있었던 것이다.
기대에 차 러스가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안 그래도 슬슬 검술 자체에 대해 고민하던 차다.
‘오! 오늘도 한 건 건지나?’
날도둑 하나가 자신의 검술 야금야금 빼먹고 있다는 사실은 추호도 모른 채, 여인은 계속 검격을 날렸다. 뒤로 밀리던 칼켄이 문득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대검을 발치로 뻗었다.
“으랏차! 어금니 막기!”
칼켄의 대검이 그를 중심으로 땅 위에 크게 원을 그린다. 파인 선을 따라 녹색 오러가 폭발하듯 터져 나오며 오러의 장벽이 위로 솟구쳤다. 솟구치는 오러의 흐름이 세검의 연격을 모조리 튕겨 버렸다.
타타탕!
“하하핫!”
호통하게 웃으며 칼켄이 대검을 휘둘러 오러의 칼날을 연달아 뿜어냈다. 녹색의 블레이드 오러가 대지를 파헤치며 날아들었다. 상대의 복잡한 검술에 끌려 다니던 칼켄이 그냥 속편하게 대규모 파괴로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대의 공격은 날카롭지만 두껍지 않구나!”
상황이 일변했다.
오러의 칼날을 계속 흘리며 여인은 계속 뒤로 물러났다. 검술은 그녀가 분명 우위에 있었지만, 오러 운용 능력은 별 차이가 없고 오러양은 아무래도 칼켄이 월등했다. 막대한 오러양으로 밀어붙이니 도저히 반격의 틈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여인은 세밀한 검의 흐름으로 녹색 오러를 죄다 흘리며 상처 없이 물러서고 있었다. 도저히 이대로라면 쉽사리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것 같았다.
칼켄이 감탄하며 뻐드렁니를 드러내 웃었다.
“강하군, 엘프 투사!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의 찬사에도 여인은 그저 싸늘한 표정만을 고수할 뿐이었다. 칼켄이 자신의 대검을 두 손으로 받쳐 들더니 곧게 세웠다.
“좀 더 놀아 보자!”
대검을 허공으로 던지며 칼켄이 표효를 터트렸다.
“가라! 나의 맹우, 마그눔!”
☆ ☆ ☆
2미터가 넘는 대검이 녹색 오러를 머금은 채 허공을 갈랐다. 날아든 대검이 허공에서 선회하며 녹색 오러탄을 쏘아 댔다. 머리 위 공격에 당황하며 여인이 손을 뻗었다.
부우웅!
은빛의 방패가 생성되며 오러탄을 일제히 막아 냈다. 그 틈에 칼켄이 돌진했다. 땅을 파헤치며 달려가 두 주먹을 연거푸 뻗어 낸다.
“맨주먹 비늘 깨기!”
허공으로 내뻗은 두 주먹에서 녹색 오러가 포탄처럼 쏘아졌다. 여인이 몸을 뒤틀어 피하자 빗나간 오러탄이 협곡 내 절벽에 적중했다. 굉음이 울리며 절벽 일부가 무너져 바윗덩어리가 굴러떨어졌다.
우르르릉!
머리 위로 파편이 떨어지는데도 킨지르며 하다툼, 러스 등 세 오러 유저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듯 동시에 머리 위로 손을 뻗어 오러의 장막을 펼친다.
퉁, 퉁, 투퉁!
비 오는 날 우산이라도 쓰듯, 대수롭잖게 파편들을 막아 내며 하다툼이 중얼거렸다.
“저 양반 신 났네.”
킨지르도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오. 나중에 나도 한판 붙을 수 있을까? 재밌어 보이는데.”
과연 호전적인 오크의 수장들다운 태도였다. 뭐, 러스라고 딱히 심정이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은 나도 붙어 보고 싶은데…… 건질 것 되게 많을 것 같은데…….’
그러는 동안, 엘프 여인에게 접근한 칼켄이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넘실거리는 녹색 오러를 가득 머금은 주먹이 연거푸 내질러졌다.
“가죽 다지기!”
좌우 훅에 뻗어 치는 스트레이트가 여인의 전신을 노리고 쇄도해 온다.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여인은 허리를 틀고 머리를 숙이며 계속 공격을 피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의 세검은 계속 칼켄의 급소를 예리하게 찔러 갔다.
쿠우우웅!
주먹에 깃든 녹색 오러와 세검에 깃든 은빛 오러가 뒤섞이며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흩어진 오러의 파문이 절벽 좌우를 연이어 부수며 가공할 파괴의 흔적을 남긴다. 두 오러 유저가 맞붙은 탓에 슬슬 이 주변은 이미 더 이상 협곡도 아니었다. 좁은 골짜기 사이로 뻥 뚫린 공터가 생겨 버렸다.
기합을 토하며 칼켄이 왼팔을 크게 휘둘렀다.
“허업!”
웅장한 레프트 훅이 여인의 턱을 노리고 날아든다. 간신히 공격을 피하는 여인의 등 뒤로 칼켄의 애검, 마그눔이 찔러 온다. 상대가 둘이 되어 버리니 완전히 상황이 기울어 버렸다. 스스로 허공을 날면서 오러를 쏘아 대고 칼날을 휘두르는 마그눔의 움직임에 여인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오크들의 전승 기술이군, 역시 까다롭네.”
갑자기 여인이 공중제비를 넘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상태로 세검에 손을 댄 체 나직이 중얼거린다.
“로시아, 샤이드. 내 검에 깃들렴.”
사아아아…….
순간 칼켄은 당황했다. 여인의 세검, 은빛의 블레이드 오러를 통해 싸늘한 한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어? 이거 정령술?”
물의 정령 로시아와 어둠의 정령 샤이드가 은빛 오러에 깃든다.
두 정령력이 섞이며 강렬한 냉기로 화한다.
은빛의 오러가 냉기를 띤 입자로 변하며 눈보라가 되어 칼켄에게 몰아쳤다. 갑작스러운 냉기에 칼켄의 사지가 얼어붙으며 돌진 속도가 늦추어졌다.
구경하던 러스가 혀를 내둘렀다.
‘오러에 원소력을 깃들일 수 있다니!’
원래 오러란 것은 기본적으로 생명의 기운, 그 근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형태를 변화하고 파괴나 치유 등의 속성을 띨 수는 있어도 원소력까지는 불가능하다. 시리스가 검에 정령력을 깃들여 구사하는 것은 자주 보았지만, 설마 오러에도 가능했을 줄이야.
‘어? 그럼 저건 나는 못 쓰는 거잖아? 쳇.’
감탄하던 러스가 대놓고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하도 베껴 댔더니 슬슬 양심의 가책도 못 느끼는 모양이었다.
“신기한 기술! 하지만 이 정도라면…… 하아압!”
얼어붙은 칼켄이 오러를 전신에 두르며 냉기를 떨쳐 냈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되며 반짝거렸다.
이 틈에 여인이 세검을 칼켄의 대검, 마그눔에게 던졌다.
“얼어붙어라!”
싸늘한 외침과 함께 세검이 마그눔과 충돌했다. 녹색 오러가 냉기의 오러와 충돌하며 서로 상쇄된다. 반투명한 얼음이 세검을 타고 솟아나 마그눔의 전신을 뒤덮어 버렸다.
퉁!
엉겨 붙어 얼음덩어리가 된 두 검이 땅으로 뚝 떨어졌다. 서로의 무기가 무효화된 걸 보며 칼켄이 히죽 웃었다.
“이러면 둘 다 맨손인가? 실수했구나, 엘프 투사!”
스피리츠 웨폰을 봉인한 그 기술은 분명 대단하다. 하지만 양쪽 다 맨손이면 신장 2.3미터에 두꺼운 근육으로 뒤덮인 칼켄과, 가녀린 저 엘프 여인의 승부는 뻔할 뻔 자다.
“타아아앗!”
승리를 확신하며 칼켄이 전신의 오러를 끌어 올렸다.
“하아아앗!”
엘프 여인도 마주 보며 은빛 오러를 전신에 휘감았다.
두 오러 유저가 서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칼켄이 두 주먹을 휘두르며 고함을 터트렸다.
“가죽 다지기!”
수십 발의 펀치가 여인의 전방을 모조리 점유한다. 여인이 버들가지처럼 한들거리며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사뿐히 스텝을 밟으며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은빛 오러를 머금은 수도로 예리한 반격에 나선다.
“호오?”
칼켄은 잠시 놀랐다. 맨손임에도 불구하고 저 여인의 기량은 그에 뒤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러스가 눈을 반짝였다.
‘이야, 검술을 저런 식으로 하면 바로 맨손 체술이 돼 버리는구나. 저 발놀림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칼켄이 강의 극치라면 엘프 여인의 움직임은 유의 극치.
연달아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쉽사리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
녹색 섬광과 은빛 궤적이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으며 흐르고 꺾이고 막히며 맹렬히 부딪친다.
콰콰콰쾅!
오러가 허공에서 충돌하며 파공음을 울렸다.
“후후, 이 정도로 재미있는 싸움은 정말 오랜만이군.”
칼켄이 목을 매만지며 전의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잔뜩 흥분한 그를 향해 갑자기 여인이 손을 내저었다.
“그만 싸우죠.”
막 몸을 날리려던 칼켄이 실망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왜? 재미있는데 더 싸우지?”
엘프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협곡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검에 깃든 두 정령이 떠나며 얼음이 녹아내렸다. 손짓을 하자 세검이 허공을 날아 다시금 그녀의 손에 잡혔다.
검을 허리에 차며 그녀가 차분하게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저를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 ☆ ☆
이미 여인에게는 조금의 전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김이 샌 칼켄도 자신의 대검을 거두었다. 회수한 마그눔을 등 뒤에 차는 칼켄을 향해 문득 여인이 물었다.
“저는 전사인가요?”
어째 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눈을 껌벅거리다 칼켄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그대는 훌륭한 전사, 아니 투사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 엘프 여인은 충분히 강력한 투사였다. 인정치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인이 다시 물었다. 이번엔 칼켄뿐 아니라 킨지르와 하다툼까지 시선에 둔 질문이었다.
“오크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한바탕 싸워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저는 당신들에게 신뢰를 보였습니까?”
오크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 엘프 여인은 칼켄과 검과 주먹을 맞대며 자신을 증명했다. 전사의 긍지와 영혼을 가졌음도 확인했다.
합창이라도 하듯 세 오크 투사들이 일제히 말했다.
“당연히 그러하다!”
“그대는 이제 우리 자매다!”
“강한 자매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
오크들의 얼굴에 호의의 표정이 가득 떠올랐다. 엘프 여인이 안도한 듯 중얼거렸다.
“오랜 이야기 속이라 조금 미심쩍었는데, 다행히 맞는 것 같군.”
그제야 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지금 설마 호투의 의식 한 거였습니까?”
여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러스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뜸 왜 싸우나 했더니…….’
엘프란 종족이 합리적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설적으로 들이댈 줄은 몰랐다. 보통 통성명 정도는 먼저 하잖아?
오크들도 그 생각은 한 모양이었다. 칼켄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푸른 곰 부족의 칼켄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