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86
‘……어떻게 알았지?’
새삼 그녀는 감탄했다.
‘역시 현명한 지혜의 소유자!’
과연 자신이 선택한 남자다운 놀라운 혜안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이쯤 되면 슬슬 지혜의 범주도 아닌 것 같지만 한번 씌워진 콩깍지는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고 있었다.
“그,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네…….”
총총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가는 이니야를 보며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꼭 도망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이 자리에서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뭐지?”
의아해하다가, 레펜하르트는 그냥 신경 끄고 식사에 열중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며 이번엔 평소처럼 시리스가 식사를 들고 왔다.
“어서 와, 시리스.”
입가에 소스를 묻힌 채 레펜하르트가 손을 들었다. 시리스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조용히 물었다.
“어머나? 벌써 식사 중이시네요?”
“응, 이니야가 갖다 준 거야. 그것도 내려놔. 같이 먹자.”
별생각 없이 레펜하르트가 테이블에 손짓을 했다. 제라드에게서 수련을 받을 시절엔 오크 일개 중대 단위의 솥단지도 싹싹 비웠던 몸이다. 까짓것 2인분쯤이야 얼마든지 먹어 치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오호? 이니야 씨가 왔다 갔었군요?”
테이블 위에 식사를 내려놓으며 시리스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순간 레펜하르트는 움찔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시리스의 표정이 대단히 살벌했다.
분명 입가는 웃고 있는데 눈이…… 눈이…….
‘왜 저러지?’
“그럼 맛있게 드세요.”
차분하게 요리를 내려놓은 뒤 시리스가 사뿐사뿐 방을 나섰다.
“어? 같이 안 먹어?”
“배 안 고파요.”
쾅!
문이 대단히 거칠게 닫혔다. 레펜하르트는 당황했다. 왠지 시리스가 화가 난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화낼 만한 짓을 저지른 기억이 없었다.
“음…….”
레펜하르트는 진지하게 전후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마법사답게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바람이 좀 세게 불었나 보군.”
☆ ☆ ☆
집무실을 빠져나온 이니야는 흐느적흐느적 걸음을 옮겼다.
얼굴이 연신 화끈거렸다.
‘하아, 들킨 걸까? 눈치채고도 모른 척해 준 걸까? 부끄러워…….’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호리호리한 엘프 남자가 그녀를 보며 물었다.
“이니야 님, 표정을 보니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군요?”
그는 이니야의 부관, 세르펠이었다. 이니야의 심복으로 그녀가 수장이 된 이래 50년 넘게 곁에 머무른 충성스러운 수하다.
“그렇게 저 인간 남자가 좋으십니까?”
회랑 저편을 보며 세르펠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이니야가 싸늘한 눈으로 세르펠을 바라보았다.
“흐음.”
호리호리하면서도 날렵한 체구에 여인처럼 우아한 미모를 지닌 세르펠은 스티리아 일족 사이에서도 제법 인기가 많은 편이다.
이니야가 갑자기 세르펠을 등 뒤에서 껴안았다. 등 뒤로 풍만한 가슴이 와 닿는데도 세르펠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니야가 혀를 차며 몸을 뗐다.
“넌 이렇게 껴안아도 전혀 흥분이 되지 않아.”
세르펠이 진지하게 대꾸했다.
“만약 흥분하셨으면 울면서 반항했을 겁니다.”
이니야는 아련한 눈으로 회랑 저편, 레펜하르트의 집무실을 바라보았다. 그의 우람한 가슴팍을 떠올리기만 해도 절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달라.’
역시 일족의 남자들은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해도 전혀 흥분이 되지 않는다. 이니야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그분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남의 요리로 사기 치는 것보다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차분하게 대꾸하는 세르펠을 향해 이니야는 눈을 흘겼다. 이 충성스러운 수하는 다 좋은데 너무 말을 고르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강력한 전사입니다. 이니야 님의 장점을 충분히 알아봐 줄 거라 봅니다만.”
“그럴까?”
물론 입은 좀 험해도 세르펠은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당연히 수장인 이니야의 행복을 마음 깊이 빌고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여기저기 정보를 모아 두기도 했다.
“이건 들은 이야기인데…….”
세르펠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레펜하르트 님은 완벽한 권사이지만, 한 분야는 유독 취약하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특별히 그 분야를 신경 쓰고 계시다고…….”
이니야가 고양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옹?”
☆ ☆ ☆
백왕성 중턱의 레펜하르트 전용 연무장.
그곳에 지금 두 남자가 웃통을 벗은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읍!”
숨을 멈추며 러스가 낮은 자세로 태클을 들어간다. 순간 레펜하르트가 두 다리를 뒤로하며 러스의 등을 눌러 태클을 막았다. 러스가 이내 레펜하르트의 허리를 잡고 다리를 노리자 바로 손을 밀어 다리를 빼며 재차 자세를 잡는다.
교착 상태가 되자 러스가 칭찬을 건넸다.
“많이 좋아지셨군요, 형님.”
몸을 떼며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그래? 확실히 이젠 좀 개념을 알 것 같아.”
테스론에게 호되게 당한 후, 레펜하르트는 틈만 나면 러스를 상대로 그라운드 기술에 대해 배워 왔다. 지금도 업무 중간에 짬을 내어 대련 중이었다.
러스가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제 슬슬 저는 형님 상대하기가 힘에 부치네요. 역시 육체적 차이가 너무 커서…….”
예전에야 워낙 문외한이라 그 좋은 육체 가지고도 테스론에게 농락당했지만, 어느 정도 그라운드 레슬링에 조예가 있으면 근력 자체도 훌륭한 무기가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테스론과 맞붙을 수 있을까?”
“글쎄요, 제가 아는 그라운드 기술도 그냥 기사들이 기초적으로 배우는 것에 불과해서, 제대로 된 카르지안 유술가를 상대로라면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으음, 전문가를 초빙해야 하려나?”
그렇게 레펜하르트가 고민하던 때였다. 연무장에서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아, 이니야 씨.”
러스가 이니야를 보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요새 이니야는 아예 백왕성에 방 하나 잡고 자기 집처럼 돌아다니고 있어, 이렇게 갑자기 연무장에 나타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오러 유저다 보니 이미 이니야의 존재 자체는 아까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연무장 안으로 들어서며 이니야가 레펜하르트에게 물었다.
“저도 그라운드 기술은 조금 알고 있는데, 한번 대련해 보시지 않겠어요?”
“에, 그게…….”
레펜하르트는 당황하며 이니야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그녀는 평소처럼 털토시를 착용하지 않은 간단한 옷가지만을 걸친 단순한 차림이었다. 슬슬 날씨가 더워져 그런지 날씬한 팔다리도 시원하게 내놓고 있다.
저런 차림의 여인과 엉겨 붙어 그라운드 레슬링을 하라고? 맨살이 그대로 닿을 텐데?
레펜하르트가 당황하며 중얼거렸다.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무인에게 남녀 구별이 어디 있나요?”
진지한 그녀의 반문에 레펜하르트는 말을 더듬었다. 확실히 이건 상대를 전사로 인정치 않는 무례한 발언이다.
“그, 그렇지요, 죄송합니다.”
러스가 눈을 빛내며 뒤로 물러났다. 안 그래도 이니야와 칼켄이 싸울 때 옆에서 구경하며 참 건진 게 많았다. 이번에도 한 건 올리나 싶어 러스가 대련을 부추겼다.
“해 보시죠, 형님. 그녀의 실력은 대단합니다. 칼켄 공과 맨손 체술로도 밀리지 않았으니까요.”
레펜하르트가 새삼 놀란 눈으로 이니야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니야가 연무장 가운데로 자리를 옮겼다. 전사다운 자세로 탈바꿈한 이니야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진지하게 대련에 임해 주세요.”
화르륵!
은빛 오러가 불길처럼 타올라 이니야의 전신을 감쌌다. 그 강렬한 기세에 레펜하르트도 감히 경시할 수 없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건넨 뒤 레펜하르트도 오러를 끌어 올렸다. 연무장 좌우로 금빛과 은빛의 오러가 소용돌이친다. 순간 레펜하르트가 몸을 날렸다.
“헙!”
대지를 밟으며 그가 펀치를 길게 찔러 넣었다. 파워와 스피드를 평소의 절반 정도로 줄인 일격이 이니야의 어깨를 노리며 뻗어 갔다.
펀치가 막 이니야에게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빙긋 웃으며 그녀가 몸을 뒤로 뉘였다. 동시에 레펜하르트를 향해 양다리를 활짝 벌린다.
“어?”
대단히 야한 자세라 레펜하르트가 순간 얼굴을 붉힐 때였다.
“흡!”
숨을 멈춘 채 이니야가 양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며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어라라?”
돌진하던 레펜하르트가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바로 앞으로 엎어져 버린다. 이니야가 허리를 감은 양다리를 그의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종아리와 허벅지를 이용해 레펜하르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삼각 조르기가 제대로 들어간 것이다.
구경하던 러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거, 카르지안 유술이잖아? 엘프가 어디서 저런 인간의 기술을 배운 거지?’
게다가 기술의 정확성과 스피드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정통 카르지안 유술가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으음!”
단숨에 목이 죄이자 레펜하르트가 빠르게 반격에 나섰다.
이젠 그도 예전처럼 그라운드 기술에 전혀 문외한인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기술이 들어올 줄 몰라 잠시 허를 찔렸지만, 바로 상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경동맥을 보호했다.
하지만 그 동작마저도 이니야에게는 다음 기술을 걸기 좋은 자세일 뿐이었다.
경동맥으로 옮겨진 레펜하르트의 왼손을 도리어 밀어내더니 바로 몸을 뒤틀며 반동을 이용해 자세를 바꿨다. 그러자 이번엔 레펜하르트가 자기 팔뚝으로 자기 목을 조르는 꼴이 되어 버렸다.
“캑캑!”
숨이 막힌 레펜하르트가 억지로 힘을 써서 이니야를 떼어 냈다. 그러자 그 힘을 이용해 몸을 빙글 돌렸다. 단숨에 두 남녀의 자리가 뒤바뀌며, 이니야가 레펜하르트의 배를 깔고 올라탔다.
마운트 자세를 취한 채 이니야가 레펜하르트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소감이 어떠냐는 표정이었다.
레펜하르트가 진심으로 감탄을 건넸다.
“대단한 실력이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