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87
인정받은 것이 기뻤는지 이니야가 활짝 웃었다. 레펜하르트는 혀를 내둘렀다.
‘와,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밑으로 깔려 버렸네.’
그렇다고 이니야가 레펜하르트보다 강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이 상태로도 레펜하르트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갈 방법이 있었다. 굳이 마법이나 스파이럴 가드가 아니더라도, 근력 자체가 월등한 이상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는 것이다.
예전에야 어느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할지 몰라서 당했지만, 이제 그도 관절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기술을 배우기 위한 대련이다.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합니까?”
“몸을 옆으로 뒤틀면서 오른 무릎을 드세요. 그리고 제 무릎을 밀면서…….”
이니야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방법대로 몸을 움직이자 자연스럽게 몸이 빠져나간다. 안 그래도 고민이었는데 타이밍 좋게 이런 달인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그대를 만나 다행이군요, 이니야.”
저 말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이니야의 표정이 순간 새빨개졌다.
“카르지안 유술은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예전에 엘프인 걸 숨기고 대륙의 강자를 찾아 떠돌아다녔던 적이 있지요. 그때 연이 닿았답니다.”
엘프 여성은 가슴이 작다는 것이 대륙 전체에 퍼진 정설이다. 그렇다 보니 긴 귀를 가리고 인간에게 나올 수 없는 보랏빛 머리칼만 염색하면, 풍만한 가슴의 소유자인 이니야를 엘프라고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던 것이다.
이니야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계속해 볼까요?”
“부탁드립니다.”
두 사람은 엉겨 붙은 채 계속 기술을 교환했다. 그 와중에 오러를 이용, 상대의 흐름을 제어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졌다.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그라운드 기술뿐 아니라 오러의 운용법 역시 배울 점이 컸다. 땀을 흘리며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계속 이니야의 가르침대로 몸을 움직였다.
문득 레펜하르트가 물었다.
“이것이 카르지안 유술입니까?”
“네, 이것이 카르지안 유술이랍니다.”
레펜하르트의 가슴에 안긴 채 이니야가 나긋나긋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레펜하르트가 살짝 의아해하며 질문을 이었다.
“카르지안 유술에 이렇게 가슴을 더듬는 기술도 있습니까?”
어째 기술 공방을 계속하며 이상하게 자꾸 이니야가 그의 가슴팍이며 복부, 팔뚝을 더듬었던 것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저 손짓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니야가 배시시 웃었다.
“이건 레펜하르트 님의 육체 포텐셜을 측정하는 거랍니다.”
“아, 그렇군요.”
과연, 카르지안 유술과는 관계없는 것이었구나.
납득하며 레펜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아하던 부분이 싹 날아가며 다시 머리가 맑아진다. 정신을 집중하며 그는 다시 대련에 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니야.”
“네?”
“포텐셜을 좀 자주 측정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보다 정확한 측정을 위해서랍니다.”
“그렇군요…….”
뭔가 살짝 수상하긴 한데, 딱히 또 흠잡을 부분은 없는 대답이었다. 가르침을 받는 성실한 제자의 자세로, 레펜하르트는 그냥 납득하고 계속 대련에 임했다.
레펜하르트는 열심히 이니야와 대련을 했다. 물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다 보니 거의 바닥에 깔려 나뒹굴 뿐이다.
그리고 이니야는 실실 웃고 있었다.
‘아, 복근도 정말 강철처럼 탄탄해!’
“이, 이니야. 왠지 웃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레펜하르트 님이 빨리 배우시니 기뻐서요.”
“…….”
☆ ☆ ☆
시리스는 씩씩대며 회랑을 걷고 있었다.
‘이니야라는 저 여자 뭐야? 레펜하르트 님은 또 뭐고?’
걸음을 옮기다보니 항시 마법을 수련하던 앞뜰이 나온다. 시리스는 투덜대며 나무 아래 설치된 의자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뚱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저만치서 머리를 곱게 땋아 올린 작은 소녀가 다가왔다. 외모는 어린 주제에 가슴만은 풍만한, 드워프 처녀 틸라였다.
틸라가 시리스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어머나, 시리스? 왜 그리 화가 났어요?”
“화 안 났어요.”
틸라가 놀리는 목소리로 시리스의 뺨을 쿡 찔렀다.
“양 뺨을 그렇게 부풀리고 씩씩대면서 대답해 봤자 설득력 없어요.”
“……우웅.”
곁에 앉아 틸라가 슬쩍 물었다.
“역시, 그 이니야라는 분 때문에 그런 거죠?”
안색이 확 바뀌는 시리스를 보며 틸라는 속으로 웃었다.
질투다. 역시 질투하는 거다.
‘귀엽네.’
아직 사춘기 소녀인 시리스에 비해 틸라는 어엿한 성인 드워프, 실제로 살아온 세월도 30년 이상 차이 난다. 이 어린 엘프 소녀를 보며 틸라가 달래듯 말을 건넸다.
“거봐요. 레펜하르트 님 정도면 정말 멋있는 남자라니까요?”
“……레펜하르트 님이 멋있어요?”
시리스가 뜨악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녀는 엘프였고, 엘프다운 심미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레펜하르트가 좋은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긴 하지만 멋있냐고 하면 그건 좀…….
‘만날 웃통 벗고 가슴 씰룩거리면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멋?’
틸라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레펜하르트 님? 무지 멋있잖아요? 우리 일족 여자들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수염만 기르셨으면 완벽한데 아쉽게 면도를 하셔서…….”
드워프에게 남자다움이란 넓은 어깨와 두꺼운 가슴팍, 레펜하르트는 드워프 기준에도 훌륭하게 멋진 남성이었다.
“으음…….”
기가 막혀 고개를 젓는 시리스를 향해 틸라가 은근히 말을 이었다.
“오크들 사이에서도 얼마나 레펜하르트 님이 인기가 좋은데요? 오크 여자들이 만날 이런 말 한다잖아요? 우리 남편이 레펜하르트 님 반만 되었어도 얼마나 좋을까~라며.”
“……아니, 그건…….”
시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오크들이야 원래 근육 충만하면 장땡인 종자들이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실란 씨 목표도 레펜하르트 님 같은 멋진 남자가 되는 거잖아요?”
실란이야 예전부터 근육 예찬론자였으니 그렇고.
“인간 하녀들 사이에서도 인기 좋아요, 레펜하르트 님. 플로라나 다른 엘프 분들도 은근 노리는 눈치던데…….”
다른 이종족들은 그렇다 치고 인간 하녀와 엘프들에게도 인기 좋단 소릴 듣고 나니 슬슬 시리스의 표정도 변했다.
“그, 그래요?”
생각해 보니 확실히 플로라나 다른 엘프 여인들처럼 레펜하르트와 오래 함께 지낸 이들은 호감을 보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백왕성 내의 하녀들이나 엘프 여인들에게 레펜하르트는 인기가 많았다. 겉보기와 달리 레펜하르트는 굉장히 점잖아서, 절대 일개 하녀에게도 손을 뻗거나 하질 않는다. 일단 초반의 인상만 넘기고 나면 듬직하고 성실하며 능력 좋은 남자인 것이다. (사실 레펜하르트만큼 능력 좋은 남자도 세상에 흔치 않다.)
레펜하르트가 워낙 대놓고 시리스를 아끼는 것이 보여서 다들 멀리서만 바라볼 뿐이지, 인기 자체는 상당한 편이다.
‘어, 사실은 레펜하르트 님 되게 멋있는 건가?’
뭔가 주위에서 다 멋있다고 하니 막 혼돈이 온다. 틸라가 실소를 흘리며 시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리스…….”
그리고 은근히 그녀를 부추겼다.
“이대로 있다가는 후회할걸요?”
“후, 후회는 무슨…….”
당황하는 시리스를 보며 틸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 이니야라는 아가씨, 대시가 심상치 않아요. 남자는 저러다가 앗 하는 순간 넘어가 버린다고요.”
“넘어가든 말든 저랑은 아무 상관이…….”
“게다가 그 아가씨, 가슴도 크던데. 남자는 특히 저런 취향에 약하거든요?”
정확히는 드워프 남자들이 저런 취향에 약한 것이지만, 어쨌건 인간 남자도 딱히 다르진 않다. 정곡을 찌른 틸라의 말에 시리스의 안색이 더더욱 굳었다.
시리스는 무심코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뭐, 봉긋하고 귀여운 가슴이었다. 하지만 이니야와 비교하면 상당히 부실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끄응…….”
낑낑대는 시리스를 귀엽다는 듯 지켜보다가 틸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카를과 데이트가 있어서 이만 가 볼게요.”
“카를 씨 오늘 업무 다 끝내셨나 봐요? 아까 레펜하르트 님이랑 운동하시던데.”
틸라가 문득 양손으로 뺨을 가리며 얼굴을 붉혔다.
“네, 안 그래도 레펜하르트 님이랑 운동하게 된 이후 점점 듬직해져서 어찌나 멋있는지!”
시리스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확실히 요 근래 카를의 덩치가 상당히 커지긴 했다. 수염도 더 덥수룩해졌다.
‘……그게 듬직?’
시리스가 보기엔 슬슬 원숭이에서 고릴라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외모만 보면 재상이 아니라 무슨 전장을 누비는 장수, 그것도 돌진밖에 모르는 무식한 맹장으로밖에 안 보인다.
덕분에 안타레스 백국은 본의 아니게 전투 국가로 이름이 높았다.
지배자는 권왕이요, 재상은 고릴라에, 명성을 떨친 계기도 전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서로 좋다니 별문제는 없겠지만…….’
자리를 뜨며 틸라가 다시금 뒤를 돌아보았다.
“자! 시리스! 저런 굴러온 돌에 지지 말아요! 파이팅!”
그렇게 응원을 보낸 뒤 틸라는 앞뜰을 떴다. 멍하니 시리스는 떠나는 틸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지 말라고?’
혼란했던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점차 그녀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누차 말하지만, 시리스는 은근히 승부욕이 강하다…….
3
레펜하르트는 자기 방 카펫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후우우…….”
가부좌를 튼 채 레펜하르트가 길게 심호흡을 했다. 호흡을 하며 내면을 관조, 체내의 마력을 움직여 안정화시킨다.
그는 지금 매일같이 행하는 마법사의 일과, 명상meditation을 통해 마력의 그릇을 높이는 중이었다. 음식도 과하게 먹으면 체하듯 마력을 높이는 것도 한꺼번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마력이 올라가는 수준에 맞춰 그릇, 즉 허용량 역시 따라 넓혀야만 했다.
마나 드레인을 통해 마력은 언제든지 흡수할 수 있지만 그릇을 넓히는 것은 역시 시간이 드는 문제인 것이다. 이미 지저 태양 마그림을 통해 체질을 바꾸는 편법까지 써 버렸으니, 남은 것은 그저 정석대로 차분히 명상에 임하는 길뿐이었다.
잠시 후 레펜하르트가 눈을 떴다. 체내의 마력을 감지하며 그가 한숨을 쉬었다.
“꽤 마력이 모이긴 했지만 그래도 8서클의 경지는 요원하군, 아직.”
고위 서클로 갈수록 필요로 하는 마력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