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92
“심지어 왕국의 추적조차도 그놈들을 잡지 못했다는데, 이건 뭐 몬스터 정도가 아니라 유명한 산적이나 도적단 못지않잖습니까?”
프로지안 도적단의 피해가 속출하니 당연히 차탄 공국이나 그라임 왕국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군대를 동원해 세텔라드 산맥 외곽을 훑으며 소탕 작전을 몇 번이나 펼쳤다.
하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무슨 수를 쓰는 것인지, 놈들은 기괴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흔적은 남겼다. 하지만 아무리 추적해 봐도 항상 오지 안쪽에서 모든 자취가 뚝 끊겨 버리는 것이다.
상식 밖의 일이었다. 몬스터들이 들끓는 저 세텔라드 산맥의 험지에서 노예들이 살아남았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거니와, 설사 그렇다 해도 거기 서식하는 이상은 분명 자취를 남겨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바운티 헌터를 고용해 추적하고 마법사를 동원해 아무리 탐지를 해 봐도 놈들의 근거지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찾는 것은 언제나 잠깐 머물고 간 야영지의 흔적뿐이었다.
오죽하면 이름난 바운티 헌터, 다운트가 이런 발언마저 하며 포기 선언을 했을 정도였다.
-말도 안 돼! 이놈들은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져 산맥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다가 다시 사라져 버리는 것 같지 않은가?
룸다드가 경계 어린 눈으로 대열 뒤의 노예들을 바라보았다.
“이해하기 힘들단 말이지. 오크 검투사 놈들이 있으니 전투에 익숙한 것이야 이해한다손 쳐도 대체 뭔 수로 군대의 탐색마저 피하는 건지…….”
용병대에서 뼈가 굵은 룸다드도 군대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할 자신은 전혀 없었다. 뒤따르던 용병 사내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놈들도 나름대로 필사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저 같아도 제 형제나 가족이 저런 꼴을 당하고 있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하려 할 것 같습니다만.”
룸다드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용병 사내를 바라보며 그가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꼭 놈들이 사람인 것처럼 말하는군.”
“으음, 하지만 몬스터가 저런 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잖아요, 절대? 짐승도 제 새끼 정도야 챙깁니다만 동족까지 챙기진 않습니다.”
용병 사내가 머리를 긁으며 멋쩍게 대꾸했다. 룸다드는 빤히 사내를 바라보다가 그냥 말 머리를 돌렸다.
지위상 일단 한 소리 하긴 했지만, 솔직히 그도 용병 사내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칼 밥 먹는 이가 상대해야 할 적의 전력을 과소평가하면 그 대가는 자신의 목숨으로 지불하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룸다드가 파악한 프리지안 도적단의 행보는 결코 흉폭한 몬스터 무리가 아니었다. 보통 몬스터 대하듯 대하다간 분명 황야에 뼈를 묻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속내를 남들 앞에서 보일 수는 없는 노릇.
“상인들 앞에선 그런 티는 내지 말게나. 불쾌하게 여길 게야.”
슬쩍 핀잔을 던지며 룸다드는 앞쪽 마차를 손가락질했다. 안에 탄 드라그와 다른 노예 상인들의 성난 목소리가 밖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어! 권왕이란 작자는 노예 따위를 사람 취급하질 않나, 가축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뭘 안다고 동포를 해방한다고 설쳐 대?”
“그러게 말이오. 뭣도 모르는 것들이 쓸데없이 선동되어서 질서나 어지럽히고 말이야, 에잉!”
“얌전히 말만 잘 들으면 어련히 잘 키워 주고 먹여 줄 건데 뭐가 그리 나쁘다고…….”
시끄러운 상인들의 마차 뒤를 따라 상단 행렬은 계속 길을 갔다. 산속의 해는 짧은 법, 세텔라드 산맥을 깊숙이 들어갈수록 점점 해가 뉘엿뉘엿하게 저물어 간다.
그렇게 막 행렬의 선두가 고갯길을 넘어갈 때였다.
휘이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동시에 수십 대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와 말을 탄 호위들에게 향했다.
“커억!”
“으악!”
“컥!”
순식간에 호위 세 명이 비명을 지르며 말에서 떨어졌다.
‘헉!’
룸다드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쓰러진 이들 대부분은 체인 메일과 방패로 전신을 무장하고 있었다. 어떤 습격이건 선공은 화살로 하는 것이 정석인 바, 그래서 미리 충분히 대비를 했다. 그런데 이 화살들은 무장한 용병의 갑옷 틈새를 정확히 관통해 있었다.
‘이 정도면 정규 궁사 훈련을 받은 수준인데?’
투기장에서 활 쏘는 검투사 봤나? 오크 검투사들은 결코 궁술은 훈련받지 않는 것이다. 이종족 노예들로 이루어진 프리지안 도적단에게 이런 활솜씨가 있을 리 없었다.
‘설마 그놈들이 아닌가?’
혼란 속에서도 룸다드가 고함을 질렀다.
“적습이다! 모두 대열을 갖춰라!”
미리 훈련한 대로 용병대와 호위대가 발맞춰 빠르게 대열을 짰다. 방패를 들어 마차를 호위하며 노예들을 둘러싼 채 원진을 구축한다. 이렇게 하면 노예들의 이탈도 막을뿐더러, 만약 저들이 프리지안 도적단일 경우 화살 공세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용병들을 노리다 동족에게 화살을 꽂을 수는 없을 테니까.
과연 용병들이 대열을 갖추자 화살 비가 뚝 끊겼다. 대신 나무 여기저기서 활을 든 이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분노한 기색이 역력한 남녀, 특히 여성 비율이 높은 그들을 보며 룸다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전원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그래도 뾰족하게 나온 양쪽의 긴 귀는 저들의 정체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에, 엘프? 엘프가 어떻게 활을 다루는 거야?’
동시에 나무 등치 아래에 숨어 있던 한 무리의 병력이 요란한 외침과 함께 일어났다.
“우리는 프리지안 해방단!”
“억압받는 동포들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일어섰다!”
이들 역시 나무 위 엘프들처럼 복면으로 눈 아래쪽을 가리고 있었다. 덮고 있던 수풀을 밀어 던지며 수십 명의 중무장한 오크와 드워프 무리가 상단 행렬을 덮쳐 갔다.
“형제들이여! 고통받는 동포를 구하자!”
“와아아아아!”
상인들과 용병들이 동시에 외쳤다.
“몬스터다!”
“프리지안 도적단이다!”
☆ ☆ ☆
산길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거대한 도끼며 대검을 휘두르며 흉폭한 인상의 오크들이 용병들 사이를 종횡무진 누빈다. 외곽에선 할버드와 배틀 해머 등으로 무장한 드워프들이 대열을 짠 채 압박을 가한다. 머리 위로는 연거푸 화살이 날아온다. 나무 위에 오른 엘프들이 연달아 사위를 튕길 때마다 비명이 아우성친다.
“으악!”
“크아악!”
수하들의 비명 속에서 룸다드가 절규하듯 외쳤다.
“세이어시여! 저 흉폭한 놈들로부터 우리를 가호하소서!”
인간들끼리 싸울 때는 보통 투신 아레스의 이름을 부르곤 하지만, 상대가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나 몬스터일 땐 인류의 신, 세이어의 가호를 찾는 것이 기사나 용병들의 입에 밴 습관이었다.
세이어의 가호를 외치며 룸다드가 검을 뽑았다. 할버드를 든 드워프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룸다드가 이를 갈며 검을 내리쳤다.
“죽어라!”
“죽지 마라!”
상반된 대꾸를 돌려주며 드워프가 할버드를 휘둘렀다. 섬광이 눈앞에 번쩍이며 룸다드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고통 속에서 정신이 아득해지며 룸다드는 의식을 잃었다.
“크어어…….”
쓰러지는 룸다드를 보며 드워프, 카다마이트는 힐끔 상대의 안위를 살폈다. 절묘하게 급소를 피한 덕에 중상이지만 생명은 끊어지지 않았다. 굉장히 고도의 기법이지만 오러 유저인 그에겐 별로 힘든 것도 아니다.
또 다른 용병 하나를 베며 회색 피부의 오크 하나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이, 카다…….”
“으익! 본명 부르지 마쇼!”
카다마이트가 펄쩍 뛰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갔다. 그레이 오크, 회색 솔개 부족의 족장 하다툼이 뜨끔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맞다. 여하튼 이놈들 안 죽이는 것 맞지?”
“맞소.”
현재 이종족 군세, 프리지안 해방단은 용병들을 상대로 살기를 뿌리지 않았다.
이미 며칠간이나 몰래 상단의 뒤를 따르며 상황을 정탐한 후다. 마울 상단 놈들은 살려 둘 가치도 없는 말종이었지만 룸다드가 이끄는 이 룸 용병단은 좀 달랐다.
‘오면서 보니까 애들이 인성이 꽤 괜찮더라고.’
룸 용병대는 딱히 노예들에게 가혹하게 굴지도 않았고, 간간히 식사에도 신경 써 체력을 유지하게 해 주었다. 상인들이 노예를 막 굴리려 할 때 말려 주기도 했다. 대륙 전체에 퍼진 이종족에 대한 인식 변화, 그것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막 대하기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난 것이다.
‘이런 인간들은 살려 둬야 그만큼 돌아오는 법이지.’
노예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이들은 모두 참살당하지만, 온화하게 대한 이들은 모두 살아남는다. 이런 사실이 퍼져 나가면 그만큼 다른 노예들에 대한 대우도 완화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채찍질을 하려 해도 한 번은 더 생각하게 될 테니까.
물론 그래 봤자 절대 다수는 여전히 예전처럼 행동하겠지만, 원래 변혁이라는 것은 이런 사소한 데서부터 출발하는 법이다.
“크억!”
“으악!”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용병들의 숫자가 점점 늘었다. 하지만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없었다. 이 이종족 전사들과 용병들의 실력 차는 그야말로 극심해서, 생명에 지장 없이 쓰러뜨리고도 상황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프리지안 해방단은 사실 도망친 노예들로 이루어진 이들이 아니었다.
드워프 오러 유저 카다마이트와 말로이드, 오크 오러 유저 하다툼에 단하임 일족의 족장 렐하드, 그리고 그들이 이끄는 각 종족의 최정예들로 모인 이들인 것이다.
이것이 그라임 왕국과 차탄 공국이 이들을 찾지 못하는 이유였다. 노예 상단 털 때마다 다이만 터미널의 공간 포털을 이용, 그랜드 포지나 안타레스 백국으로 날라 버리는데 무슨 수로 흔적을 찾겠는가?
나무 위에서 렐하드가 소리쳤다.
“제3열, 사격 개시!”
엘프들이 순차적으로 계속 화살을 쏘아 댔다. 그때마다 화살이 정확히 용병들의 갑옷 틈을 노리고 허벅지며 어깨를 관통한다. 생명에 지장은 없지만 전투 불능에 빠지기엔 충분한 부상이다.
실로 놀라운 솜씨였다. 화살 자체야 누구나 쏠 수 있겠지만, 그게 과녁을 맞히게 되기까진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자리의 엘프들은 누구나 일류 궁사와 같은 활솜씨를 선보이고 있다.
화살을 당기며 렐하드가 속으로 웃었다.
‘정령력이 늘어서 그런가, 이제 이 정도 거리에서 맞히는 건 일도 아니군.’
바람의 정령과 소통하며 바람의 결을 읽을 수 있는 엘프들은 전통적으로 타고난 궁사였다. 왜곡되기 전의 옛이야기 속에선 항상 엘프 하면 활이란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잊힌 진실, 하지만 세계수가 부활하며 엘프들의 궁술에 대한 감각 역시 다시 부활한 것이다.
그렇게 전투가 한창 이어질 때였다. 대열 저편에서 오크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라악!”
“응?”
말로이드와 하다툼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별 볼 일 없는 줄 알았던 용병대에 오크 전사를 쓰러트릴 기량을 갖춘 이가 있었던가?
뒤이어 드워프 전사의 비명도 들렸다.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오크와 드워프 전사들, 그들 뒤로 십여 명의 기사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용병들과 달리 갑옷부터가 번들번들 윤기가 돌고 있었다.
“역시 나타났구나! 도망 노예 놈들!”
기사들은 하나같이 불길이며 뇌전이 일렁이는 장검을 들고 있었다. 오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말로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마검사로군!”
이들은 마울 상단이 특별히 초빙한 차탄 공국의 기사들이었다. 상업을 국가의 근원으로 삼는 차탄 공국은 적절한 대가만 지불하면 이렇게 기사들도 상단의 업무에 참가시키곤 하는 것이다.
원래 기사라 하면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 아무리 명령이라도 고작 일개 상단 호위에 나설 리 없다. 하지만 차탄 공국의 기사들은 그 국민성상 명예라든가 긍지라든가 하는 개념이 상당히 약해서 이런 일이 꽤 잦았다.
마차 속에서 그라드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흐흐, 언제까지고 네놈들이 설치게 내버려 둘 줄 알았느냐!”
마검사들이 검을 뽑고 자신만만하게 이종족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진 건 돈 밖에 없는 나라답게 다들 값비싼 마갑으로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마검사들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얌전히 투항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말로이드가 자신의 대검을 매만지며 비릿하게 웃었다.
“우리가 왜 투항을 해야 하지?”
“노예들답게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당장 엎드려 빌어도 모자랄 판이거늘!”
마검사 중 하나가 코웃음을 쳤다. 그가 걸친 갑주는 평범한 기사는 상대도 되지 않는 강력한 근력과 반사 신경, 그리고 방어력을 제공해 주는 뛰어난 마갑이었다. 이런 마갑을 걸친 차탄 공국의 기사들이라면 일개 병사 수십 명을 일거에 참살할 수 있는 것이다.
“네깟 놈들이 우리 상대가 될 것 같으냐?”
마검사들이 마갑의 마법을 발동시키며 육체 능력을 강화시켰다. 그리고 막 매운 맛을 보여 주겠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 때였다.
말로이드 옆에 서 있던 카다마이트가 할버드를 높이 치켜들었다.
“안 될 건 또 뭔데?”
우우웅!
선명한 적갈색 오러가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허억?”
마검사의 눈동자에 당혹과 경악이 사이좋게 스쳐 지나갔다. 뿐만이 아니었다. 하다툼도 말로이드도 각자 블레이드 오러를 끌어 올렸다.
“이건 대체!”
투구 속 마검사의 눈동자 위로 세 줄기 블레이드 오러가 선명히 비친다. 마검사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뭐,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