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95
레펜하르트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차탄 공국을 공격해야 할 때가 됐어.”
대륙에서 제일가는 상업 국가, 차탄 공국.
그라임 왕국과 크로방스 왕국, 바실리 왕국, 라스틸 공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쥬란 강을 통해 신성 바슈탈론 제국과 할라인 왕국, 테이칸 왕국과도 교역하는 차탄 공국은 그야말로 대륙의 모든 물산이 오가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노예 매매 역시 대부분 차탄 공국 수도, 제플린을 통해 거래되고 있었다.
엘프는 워낙 수명이 길어 제플린에서 밖에 생산되지 않는 주요 특산품이다. 드워프 역시 부락 단위여야 노예로서 쓸모가 있는 특성상, 제플린의 중개가 있어야 제대로 된 거래를 할 수 있었다. 드워프 노예는 보통 마을이나 일족 단위로 단체 구매를 해야 하는 만큼 오가는 액수도 컸다. 믿을 만한 중개 상인이 있어야 안심하고 거래할 수가 있는 것이다.
오크들 역시 제플린을 통하는 숫자가 상당하며, 워낙 유동 인구가 많다 보니 연금술사 길드 역시 규모가 컸다. 힐링 포션의 구매자가 많은 만큼, 제플린에 붙잡혀 있는 트롤들의 숫자도 대륙에서 가장 많았다.
“그동안 손 닿는 대로 많은 이들을 구해 냈지. 슬슬 자리를 잡기도 했고.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제플린을 공격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네.”
차탄 공국, 특히 수도 제플린에 묶여 있는 이종족 노예의 숫자는 엄청나다. 그곳의 동포들만 해방해도 백국의 이종족 숫자가 단숨에 두 배 이상 치솟을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수가 적은 엘프들을 대량으로 구해 낼 수가 있다.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플린의 상인들이 몰락하면 대륙 전체의 노예 매매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니까. 전생 때도 제국을 세우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이 이거였지.”
선공을 거의 하지 않았던 레펜하르트가 유일하게 먼저 공격한 나라가 바로 차탄 공국이었다. 다른 나라는 대화를 통해 어떻게든 그의 뜻을 이해해 주길 기다렸지만, 차탄 공국만큼은 도저히 내버려 둘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원자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곳만큼은 결코 좌시할 수 없지요.”
마켈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다면 제플린의 수도 방위 능력이나 병력에 대해 조사할 필요가 있겠군요.”
“대충은 알고 있다네. 시기가 다르니 조금 오차가 있긴 하겠지만.”
어차피 전생에서 한번 털어 본 곳이니만큼, 레펜하르트도 제플린에 대한 꽤나 상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사육 시설까지 갖춘 대규모 엘프 경매장이 둘, 엘븐하임과 엘로인. 유통을 맡은 엘프 경매장이 넷, 대규모 오크 경매장이 열둘이고 드워프 경매장이 일곱 곳이지. 연금술사 길드는 한 곳이지만 규모가 커서 잡혀 있는 트롤의 숫자도 쉰 명 정도는 될 걸세. 아틸카가 예전에 조사해 뒀더군. 너무 위험해 여태껏 손을 못 댔다고 하던데.”
마켈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제플린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대륙 제일의 상업 도시이며 인구만 이십만에 가까운 대도시, 유동 인구도 십만이 넘으며 수많은 용병대와 상단 호위대가 오가는 제플린은 그 인구 자체로도 강력한 철옹성이다.
“일만의 정예병에 마검사만 천 명이 넘는다. 역시 돈 많은 나라라 비싼 마도구를 막 뿌린다니까.”
왕실 근위대 역시 마검 정도는 전원 착용하고 있으며, 마갑과 마검으로 중무장한 왕실 직속 차탄 기사단의 경우라면 타국의 이름난 기사단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무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차탄 공국 최강의 전력, 넷이 모이면 오러 유저 하나를 감당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제플린 나이츠쯤 되면 감히 마검사라 폄하할 수 없는 수준이다.
수도 방비 수준으로만 보면 신성 바슈탈론 제국과 비교해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워낙 값비싼 물건이 대량으로 오가는 요충지인 만큼 제플린은 군사력에도 어마어마한 액수를 투자하고 있었다.
“단지 군사 편제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제국 수도에 비해 통제력은 약한 편이지. 하지만 까다롭다는 건 틀림없다네.”
레펜하르트가 설명을 마치자 마켈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랜드 포지의 수장으로서, 그 역시 동족들이 가장 많이 붙잡혀 있는 차탄 공국에 대해 언제나 신경은 쓰고 있었다. 하지만 힘에서 상대가 안 되기에 이제껏 어떻게 손을 못 썼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현재의 안타레스 백국으로도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문득 마켈린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 때엔 어떻게 공략하셨습니까?”
“그땐 별로 안 어려웠지.”
레펜하르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제플린 왕궁에 미티어 하나 떨어트려서 수뇌부 전멸시켜 통제력을 빼앗고…… 그다음에 환영술로 도시 내에 언데드가 창궐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혼란을 끌어냈지. 대부분 마검사로 이루어진 차탄 기사단은 그냥 AMP 쇼크웨이브 터트려서 처리했고…… 수도 방위군은 헬 오브 더 월드로 그냥 악마 좀 불러서 해치웠다. 그 틈에 다른 이들이 동포들 구출했고. 우리 편 피해가 전무한 깔끔한 공략이었지.”
마켈린과 시리스가 입을 쩍 벌렸다. 시리스가 물었다.
“레펜하르트 님.”
“응?”
“그 헬 오브 더 월드란 거, 악마 일만 개체 소환하는 거죠?”
“응.”
마켈린도 물었다.
“그 미티어라는 거, 대체 범위가 어느 정도입니까?”
“그때그때 다른데? 제플린에 떨어트렸던 건 왕궁 소멸시키고 근처 거리 두어 개 정도 같이 휘말린 정도였던 것 같아.”
“…….”
일만의 악마를 부르고 하늘의 별로 떨어트려 왕궁을 통째로 소멸시키고 도시 안을 좀비로 가득 채워?
마켈린과 시리스는 둘 다 기가 차 헛웃음을 흘렸다. 듣고 있자니 참, 상대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제플린 시민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시리스가 더듬거리며 질문했다.
“대체 인명 피해가 얼마나…….”
“한 일만 명쯤?”
“어, 생각보다는 적네요? 인구 이십만의 대도시에서 일만이면 저지른 짓에 비해 그리…….”
시리스가 표정을 좀 풀려 할 때, 레펜하르트가 딴청을 피우며 작게 말을 덧붙였다.
“……살아남았던 것 같은데.”
“…….”
마켈린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
“훌륭한 마왕이셨군요.”
“아니, 그게 우리 편 피해를 최소화하려다 보니…….”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레펜하르트를 향해 맹렬히 눈을 흘기고 있었다. 저런 짓을 해 놓고 뭐? 마왕으로 불리긴 억울해?
“아니, 그게…….”
레펜하르트가 뺨을 긁었다.
사실 저때도 저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 때는 지금처럼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 오지에 사는 강력한 이종족 전사들을 모두 합류시킬 수가 없었다. 칼켄이나 스탈라가 이끄는 오크 전사들이라든가 이니야의 스티리아 일족처럼 오지의 강력한 엘프들, 그리고 아틸카의 트롤들도 없던 시절이었다. (저들은 모두 안타레스 제국이 세력을 넓힌 다음에야 합류한 이들이다.)
믿을 만한 전력은 그랜드 포지와 단하임 일족, 그리고 시리스와 타시드뿐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노예로 살아가다 간신히 구출된 약한 이들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레펜하르트가 본격적으로 힘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억울한 부분은…….
“어이, 마켈린. 저 작전, 자네가 세운 거였거든?”
“엑? 그랬습니까? 거참, 내 성격이 그렇게까지 변했었나?”
마켈린이 머리를 긁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당시라면 자신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이쪽 힘은 모자라고, 상대는 강력하니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 피를 볼 각오를 했을 법도 하다.
“하여튼, 지금은 그때만큼 마력이 높지 않으니까 저렇게는 못하고…… 또 할 수 있어도 저랬다가는 엄청나게 반감을 살 테니 다른 방법을 찾고 싶네.”
“그렇군요…….”
마켈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수염을 쓰다듬었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몇 가지 떠오르는 거야 있습니다만…….”
“어떤?”
레펜하르트의 물음에 마켈린이 말을 이었다.
“지금 제 생각에는 구원자께서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의아해하는 레펜하르트를 보며 마켈린이 부드럽게 웃었다.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요. 저보다 더 전문가가 있지 않습니까? 인간을 상대하는 법은 인간이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 ☆ ☆
카를은 오늘도 집무에 열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서재에 앉아 온갖 서류를 빠르게 처리하는 그 모습은 과연 일국의 재상에 걸맞은 것이었다.
하지만 어색한 광경도 있었으니, 그는 한 손으론 사인을 하며 반대 손으로는 열심히 묵직한 아령을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로 몸 만들 시간이 영 나질 않아서요.”
주군을 맞이하며 카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레펜하르트가 감탄을 흘렸다.
“자네, 몸이 상당히 좋아졌군.”
안 그래도 신장 185센티미터에 기사다운 탄탄한 몸을 지녔던 카를이었다. 그리고 레펜하르트로부터 맨투맨으로 강습을 받아 온 지금, 카를은 떡 벌어진 어깨에 두꺼운 팔뚝, 풍성한 수염을 지닌 우락부락한 외모로 변해 있었다.
일하는 것만 보면 일국의 재상이 아니라 산적 두목이 하루의 수입을 셈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다.
“일단 앉으시지요. 차라도 한잔 드시겠습니까?”
찾아온 레펜하르트와 시리스를 향해 카를이 자리를 권했다. 과연 좋은 혈통의 귀족답게 단순한 동작 하나하나에도 귀족다운 우아함이 묻어 나온다.
“고맙네. 차는 필요 없다네.”
레펜하르트도 우아한 태도로 화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명색이 일국의 황제였던 이답게 레펜하르트도 원하면 언제든지 귀족다운 우아함을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시리스는 고상 떠는 두 근육 떡대들 사이에 끼어 소름에 몸을 떨었다.
“우에에…….”
“응? 왜 그래, 시리스?”
“아뇨, 아무것도.”
소파에 마주 앉아 카를이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절 찾으셨는지?”
레펜하르트가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카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니까 제플린을 공략하시고 싶다 이 말씀이군요.”
“그렇다네. 마켈린이 말하길, 아무래도 자네가 좀 더 적합할 거라 하더군.”
“뭐, 아무래도 드워프인 마켈린 공보다야 제가 적임자이긴 하겠지요.”
쓴웃음을 지으며 카를이 차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제플린을 점령하는 게 아니라 노예로 살아가는 이들을 빼돌리겠다는 말씀이시죠? 안타레스 백국의 정체는 숨기고?”
“그렇다네. 되도록 인명 피해가 적은 방향으로 해결하고 싶은데 제플린의 세력은 만만치 않으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닌지라…….”
근심 어린 어조로 중얼거리는 레펜하르트를 향해 카를이 어깨를 으쓱였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응?”
놀란 눈으로 레펜하르트는 카를을 바라보았다.
카를, 한때 왕위 계승자 카르사스였던 그라면 차탄 공국과 제플린의 힘은 레펜하르트보다도 더 정확히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저렇게 자신만만하다니?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점령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리어 반문하며 카를이 의아해했다.
“단순한 노예 빼돌리기, 즉 게릴라전을 원하시는 것이라면 지금 안타레스 백국의 힘으로도 충분합니다.”
“게릴라전이 정규전보다 더 쉽다는 의미인가?”
“현재 안타레스 백국의 상황이라면 그렇습니다.”
빙그레 웃으며 카를이 입을 열었다.
“현재 안타레스 백국이 보유한 오러 유저만 몇 명인 줄 아십니까? 인간 오러 유저가 둘에 오크 오러 유저가 일곱, 드워프 오러 유저가 셋에 엘프 오러 유저가 한 명입니다. 게다가 아틸카 공 같은 경우는 궤가 다를 뿐, 오러 유저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지요.”
레펜하르트가 인상을 썼다. 그 역시 저 정도쯤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 오러 유저의 숫자는 그 다섯 배 이상일세.”
대단한 숫자인 것 같지만, 네 종족의 힘을 모두 합쳐서 고작 저 정도라는 것은 저들이 얼마나 몰락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카를은 고개를 저었다.
“그야 종족 단위로 보면 그렇지요. 하지만 국가 단위로 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대륙 최강국인 신성 바슈탈론 제국의 오러 유저 숫자가 열하나, 단순히 숫자로만 치면 안타레스 백국보다 더 많은 오러 유저를 보유한 나라는 대륙에 없습니다.”
사실 안타레스 백국의 공격력은 이미 어지간한 강국 수준이다. 수는 적지만 정예 병력의 질이 대단히 높은 만큼, 전격전이나 침략 전쟁에 있어선 대륙의 강국인 그라임이나 할라인도 안타레스 백국을 상대하기 힘든 것이다.
병력의 절대적인 숫자가 적다 보니 방어력이 워낙 낮아 타국의 영토를 점령할 수는 없겠지만, 단순히 약탈전이라면 지금의 힘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카를의 설명이었다.
“마법 전력이 심각하게 약하다는 게 문제라서 일단 그쪽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만, 뭐 이건 엘프들의 정령술로 어느 정도 메꾸어지고. 하여튼 현재 안타레스 백국은 병력 수는 적지만 정예군이 많고 일당백의 초인이 득실거리며 공간 포털을 이용한 엄청난 기동성을 지니고 있지요. 게릴라전 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자신이 넘치는 카를의 설명에도 레펜하르트의 표정은 밝아지지 않았다. 레펜하르트도 저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이종족을 구출할 수 없느냐가 아니라, 그 와중에 입을 아군의 피해였다.
“그렇다 해도 제플린의 군사력은 만만치 않아. 일만의 정규군은 그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지.”
그러자 카를이 피식 웃었다. 과연 레펜하르트는 통치자이지 전략가는 아니다. 제플린의 군사력이 일만이라 해서, 그 일만 명을 전부 상대할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다.
“게릴라가 뭐하러 모든 정규군을 다 상대합니까? 마주치는 적만 처리하면 그만인 것을.”
일만의 적을 일만이 아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전술이고 전략이다.
레펜하르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가능하겠는가?”
“충분히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