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97
카를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냥 동화책은 아니지요. 현재 변질되어 버린 옛 설화나 이야기들, 그것들을 이종족들에게 들은 대로 원본화하여 배포했습니다.”
현존하는 설화나 동화가 인간 위주로 변했다는 것은 이미 시리스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원본으로 바꾸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의아해하는 시리스를 보며 카를이 말을 이었다.
“별 상관없어 보이겠지만, 사실 이게 영향력이 꽤 됩니다.”
카를이 배포한 것은 모든 동화들의 원전, 제대로 이종족들이 활약하는 원래의 이야기였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라지만, 사실 그동안의 동화책들은 뭔가 어색한 점이 컸죠. 저도 어릴 적 이야기 들으면서 의문을 느꼈을 정도니까.”
잠든 공주를 지키는 일곱 명의 어린아이는 제대로 드워프가 되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광산에서 돌을 캐고 저희들끼리 살아가는 건 솔직히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인간 어른으로 만들면 공주가 침대 일곱 개를 붙여서 자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드워프라면 모든 스토리가 납득이 가게 변한다. 미녀 정령사도 엘프가 되면 납득이 간다. 팔다리가 잘리는 부상을 입고도 하룻밤만 자면 나아 버리는 용맹한 전사의 이야기도 트롤이 주인공이라면 어색할 것이 없다. 근육만 숭상하는 야만인들의 이야기는 오크가 되면 훨씬 쉽게 이해가 간다.
“어느 누구도 동화책에는 신경 쓰지 않지요. 실제로 여러분도 신경 쓰지 않았잖습니까? 동화는 고작해야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효과가 있나요?”
“엘프들에게는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들려주는 것은 어른들이거든요.”
대부분의 엘프들은 하녀나 성노로 쓰인다. 그리고 아이들을 보는 유모로도 쓰인다.
그렇기 때문에 엘프들은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화책 역시 열심히 외워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을 달래고 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플린의 엘프 노예 경매장 전 곳에 이 동화책들을 흘려 넣었지요. 물론 혹시나 수상하게 여길까 봐 소가 노래하고 당나귀가 바이올린 켜는 그런 식의 동화책들 사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가축을 의인화하나 노예를 의인화하나 별 차이를 못 느낀다. 역시 아이들 보는 동화책답게 유치하다고 여길 뿐이다. 이것이 현 시대 인간의 사고방식.
“당연히 인간들은 읽어 봐야 별 느낌 못 받겠지만…….”
카를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사자들에겐 꽤 느낌이 다를 겁니다.”
2
불야성不夜城이라고까지 불리는 대륙 최대의 상업 도시, 제플린.
하지만 그 제플린이라 할지라도 정말 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해가 짐과 동시에 도시의 기능이 멈추는 다른 도시와 달리 제플린은 분명 밤새도록 온갖 상인들과 유동 인구로 북적거린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자정이 넘어가면 확실히 어둠이 제플린 이곳저곳을 뒤덮기 마련이다.
특히 건물 사이사이의 좁은 골목은 횃불 없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대로의 가로등이나 달빛 정도로는 이 복잡한 도시의 건물 사이를 누빌 수는 없는 것이다.
복잡한 건물 그림자 사이는 그야말로 완벽한 사각지대, 단 몇 걸음만 들어가도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죽어도,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짙은 어둠이다.
깊은 새벽, 레펜하르트와 러스, 실란은 그 골목의 어둠을 따라 빠르게 제플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대로를 따라 야경대가 오가고 채 잠들지 않은 몇몇 행상들이 숙소를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채 이동하는 이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들은 어떤 광원의 도움 없이 어둠을 누비고 있었으니까.
레펜하르트와 러스야 오러 유저의 기감이 있으니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별로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실란조차도 마치 대낮인 양 자연스럽게 어두운 골목을 달리며 발 한번 헛디디지 않고 있었다.
실란이 문득 자신의 눈가를 매만지며 혀를 내둘렀다.
“이 마법, 정말 신기하네요. 불을 밝히지도 않고 사물을 이리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다니.”
밤눈이 어두운-이라기보다는 그냥 정상적인 인간의 밤눈을 지닌 실란을 위해 레펜하르트가 특별히 마법을 걸어 준 것이다. 보통 어둠을 밝히기 위한 마법은 라이팅 계열 정도가 전부인데, 특이하게도 레펜하르트가 걸어 준 마법은 어둠 그 자체를 꿰뚫어 보게 해 준다.
“마법사들도 제법 알고 지냈는데, 이런 마법은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인프라 비전은 원래 엘프들의 것이라 인간 마법사들에겐 그 개념이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앞장서 달리며 레펜하르트가 작게 대꾸했다. 실란이 주위를 힐끔거렸다.
“확실히 은밀한 행동을 하기에 최고의 마법인 것 같아요. 하지만 세상이 온통 빨갛게 보이는 건 좀 불편하네요.”
“적외선 시야가 원래 그렇지, 뭐. 그래서 전투 시에는 되도록 안 써, 나도.”
“……적외선?”
“그냥 사물의 온도를 본다고 이해해. 또 고대어를 써 버렸네.”
“……온도를 봐요?”
“아, 그냥 좋은 마법이거니 해, 그럼.”
살짝 실소하며 레펜하르트는 말을 끊었다. 지금 느긋하게 마법 강론이나 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니까.
한참을 그렇게 어둠에 몸을 숨기며 달리던 레펜하르트 일행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구획을 지나며 제플린 중심 거리까지 도착한 것이다.
골목의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러스가 대로를 살펴보았다.
“몰래 이동하는 것은 슬슬 한계군요, 형님.”
대로 저편에 흐릿하게 보이는 커다란 궁성, 바로 차탄 왕궁이었다. 북문 거리를 벗어나 상업 거리를 횡단해 귀족 거리까지 도착한 것이다.
복잡한 건물들이 어지럽게 세워져 있던 북문이나 상업 거리와 달리, 왕궁 근처는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크고 화려한 저택 거리에 좁은 골목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길목이 대로 수준으로 훤하게 뚫려 있다. 몸을 숨길 어둠 자체가 없는 것이다. 모든 시야가 확실하게 드러나 사각 지대 따윈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레펜하르트는 조심스레 왕궁 거리를 살펴보았다.
“역시 여기서부터는 경계가 철저한데.”
일국의 왕성이 위치한 곳이니만큼 치안이나 경계는 그들이 통과했던 북문 거리와 비교도 되지 않았다. 도로마다 중무장한 병사들이 세 명씩 짝지어 경계를 돌고 있고 사거리마다 고정된 장소에서 경비들이 혹여나 있을지 모를 불량배들의 발호를 확실히 막겠다는 듯 보초를 서고 있었다.
하나같이 중장비에 차탄 기사단만은 못해도 마법기 역시 어느 정도 착용하고 있는 듯했다. 왕성 근처를 경비하는 만큼 정예만을 배치한 것이다.
개판 5분 전인 북문 경비대와 비교하니 참 심각할 정도의 격차가 느껴진다.
실란이 문득 혀를 찼다.
“저 병력 10분의 1만 빼내서 다른 지역에 배치했으면 제플린 치안이 두 배는 좋아졌을 텐데.”
“대신 이 지역 보안이 조금 위태로워졌겠지. 없는 놈 치안 두 배로 챙겨 주느니 자기 집 보안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게 가진 놈들이 당연히 취할 행동 아니겠냐?”
무덤덤한 말투로 대답하며 레펜하르트가 러스에게 눈짓했다.
몰래 접근하는 건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무력행사가 필요하다.
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풀었다.
“바로 갈까요, 형님?”
레펜하르트가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아직. 저놈들은 쓰러지면 자동으로 신호가 가게 되어 있다.”
저들이 착용하고 있는 마도구 중에는 경비가 미처 연락을 취하기도 전에 쓰러지는 것을 대비, 경비의 의식과 연동해 이상이 생길 경우 신호를 보내는 방식의 기물도 있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의 왕성에서도 비슷한 경비 체제를 갖추고 있기에 러스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변형된 알람 마법이군요. 그럼 어떻게?”
“내가 처리한다.”
레펜하르트가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실란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마법을 쓰려고요? 일국의 왕성이라면 마법 사용에 따른 검색 결계도 설치되어 있을 텐데요? 걸리지 않을까요?”
마법에 의한 암살을 막기 위해, 모든 왕성에는 마법 사용을 감지하는 결계 설치가 필수다. 고위 성직자인 실란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차탄 왕궁 역시 예외는 아닐 터.
하지만 레펜하르트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난 안 걸려.”
수인 맺기를 끝마친 뒤 레펜하르트가 나직하게 언령을 준비했다. 실란이 입술을 삐죽였다.
“자신만만하네요.”
레펜하르트가 오러만큼이나 마법에 대한 조예 역시 깊다는 것은 이제 실란도 잘 알고 있으니 딱히 믿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잘난 척하다가 또 사고 치는 것 아녜요?”
저 인간이 잘난 척하다가 일 터진 게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미덥잖다는 눈빛을 보내는 실란의 모습에 레펜하르트는 잠시 울컥했다.
‘이래 봬도 내가 한때는 대륙을 떨쳐 울렸던 10서클 대마법사였는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상황을 검토해본다.
‘……라지만 그런 것치곤 사실 그동안 실수가 많긴 했지? 음,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자.’
잠시 후 레펜하르트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확실해. 안 걸려.”
레펜하르트의 전신으로 보이지 않는 마력장이 안개처럼 은밀하게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력에 의한 흐름을 훼방 놓는 간섭 마력장이었다.
대놓고 흐름을 가로막는 방식이라면 연락이 차단된 시점에서 뭔가 눈치를 채겠지. 하지만 지금 레펜하르트가 사용하는 방식은 철저히 차탄 왕궁의 마법 스타일에 맞춰 중간에 정크 신호를 끼워 넣는 방식이었다. 이 일대에 설치된 마법 결계를 속속들이 알아야 가능한 수법이라 어지간한 대마법사라도 불가능하겠지만…….
‘대륙의 왕성치고 내가 모르는 방식의 마법 결계는 없으니까.’
이미 그는 전생에 모든 왕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바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생에서도 한번 해 봤던 짓이다.
‘물론 그때는 아예 간섭 마력장으로 제플린 전역을 뒤덮어 버렸지만 지금 마력으로는 택도 없는 소리고.’
그래도 반경 10여 미터 정도를 뒤덮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마력장이 왕성 앞의 대로를 서서히 잠식해 간다. 보초를 서고 있던 경비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굳건한 얼굴로 자신의 경비 지역을 살펴볼 뿐이었다. 이들은 분명 정예병이었고 군기 역시 확실했지만, 마법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마도구를 사용할 뿐이다. 간섭 마력장을 감지할 수는 없다.
레펜하르트가 눈짓을 했다.
“가자, 러스.”
“네, 형님!”
두 사내가 표범처럼 골목을 뛰쳐나갔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두 사내가 단숨에 대로를 가로지른다. 한 걸음에 10여 미터씩 죽죽 거리를 좁히는 그들을 보며 경비와 보초들이 안색이 굳어 창을 겨누었다.
“누,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놀란 와중에도 3인으로 구성된 경비들은 빠르게 대응했다. 둘은 바로 습격자를 향해 공세를 취했으며 연습한 대로 남은 한 명이 연락용 폭죽을 터트리기 위해 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그보다 두 사람이 훨씬 빨랐다.
“흡!”
짧은 호흡과 함께 어느새 경비의 코앞까지 도달한 러스가 가벼운 펀치를 날렸다. 단순한 잽에 가까운 펀치였지만 그것이 오러 유저의 정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격에 경비의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끄어어…….’
뒤이어 러스는 팔꿈치 돌려 찍기와 끊어 차기의 이연타로 나머지 경비들도 침묵시켰다. 그리고 옆을 돌아보니 이미 레펜하르트도 혼절한 보초들을 정중히 초소 벽에 눕혀 주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 여섯 명의 경비와 보초들이 모조리 쓰러진 것이다.
분명 이 경비병들은 정예 중의 정예였다. 경계도 똑바로 했고 방심하지도 않았으며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빠르게 대처했다. 허구한 날 창 들고 조는 동네 경비들에 비하면 실로 프로페셔널한 이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절대적인 실력 차 앞에선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오러 유저와 일반 병사에게는 그 정도의 벽이 존재하니까.
그렇게 감시를 무력화시키며 레펜하르트 일행은 왕성을 향해 전진했다. 두어 번 정도 비슷한 짓거리를 되풀이하고 나니, 커다란 차탄 왕궁의 성벽 아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높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러스가 중얼거렸다.
“용케 작전대로 여기까지는 도착했군요.”
실란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든 채 대꾸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죠.”
여기서부터는 차탄 왕성 본역.
이곳부터는 경계의 강도가 차원이 달라진다. 강력한 마법 방호망에 오러 유저를 대비한 여러 마도구들이 설치되어 있을뿐더러, 차탄 공국의 이름 높은 오러 유저, 왕성 기사단장 클라트 경 역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러스가 굳은 얼굴로 뇌까렸다.
“아무리 저나 형님이라도, 오러를 쓰지 않고 이 안까지 진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러스와 실란이 동시에 레펜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들었던 작전 내용은 여기까지였다. 여기까지 진행하면 그다음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고만 들었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들을 직시하며 레펜하르트가 피식 웃었다.
“진입할 생각도 없어.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것은 혼란뿐이니까.”
레펜하르트가 품에서 주먹만 한 석상 세 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을 들기 좋게 손에 쥐며 싱긋 웃는다.
“아무리 강력한 결계나 오러 유저의 기감이 있다 해도 그냥 짱돌 던지는 걸 막을 방법은 없거든?”
성벽 너머를 겨냥한 뒤 레펜하르트가 석상을 던졌다.
휘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석상이 저 높은 성벽을 가뿐히 넘어갔다. 짐 언브레이커블의 가공할 육체로 이 정도 투척은 일도 아닌 것이다.
“잘 날아가는구먼.”
히죽거리며 레펜하르트가 남은 석상 두 개를 마저 던졌다. 역시나 바람을 가르며 석상이 성벽을 넘어 어둠 저편으로 모습을 감춘다.
실란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체 저게 뭐예요?”
대답은 레펜하르트가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금세 대답을 들을 수 있었으니까. 레펜하르트가 아닌, 성벽 너머 왕궁의 대정원에서.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우렁찬 외침이 들려온다.
“크라라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