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Indomitable Martial King RAW novel - chapter 198
그동안의 경험으로 러스도, 실란도 바로 알아들었다. 던전 같은 곳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외침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저것은 분노한 악마의 외침이었다.
☆ ☆ ☆
고요에 휩싸여 있던 차탄 왕궁은 발칵 뒤집어졌다.
드넓게 조성되어 있던 아름다운 왕궁 정원, 그곳에서 끔찍한 포효가 터져 나온다.
“크라라라!”
포효의 주인공은 흑사자에 거인의 상체를 달아 놓은 듯한 외모의 대악마, 세피아탄이었다. 거대한 칼날을 좌우로 휘두르며 세피아탄이 분노에 차 불길을 토해 낸다. 불길의 강이 정원을 가로지르며 자욱한 연기의 벽을 드리운다.
한참 잠에 빠져 있던 왕실 근위대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아, 악마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병사들이라 해도 인간인 이상 이런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허겁지겁 지휘관들이 병력을 지휘하려 하고 있었지만, 그런 지휘관들 본인조차도 제대로 무장조차 갖추지 못했을 정도이니 오죽할까.
게다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짜 날벼락도 떨어지고 있었다.
우르르릉!
세피아탄이 나타난 정원 근처, 그곳에서 또 다른 악마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거대한 푸른 도마뱀의 형상을 한 이계의 악마, 제타렐이 뇌전을 사방에 뿌리며 파괴의 향연을 즐기는 중이었다.
“크아아!”
우르르릉!
포효가 터질 때마다 뇌성이 울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푸른 전격이 허공을 가로질러 왕성 여기저기를 때려댄다.
번뜩이는 섬광 사이로는 박쥐 같은 날개를 단 붉은 체구의 악마, 피엔드가 대검을 들고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붉은 핏물이 튀어 올랐다.
“크하하하하!”
통쾌한 듯 웃음을 터트리며 세 악마들은 마음껏 차탄 왕궁을 유린했다.
이계의 악마로서 작은 석상 안에 봉인당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던 이들이었다. 너무도 오랜 세월 갇혀 산 탓에 고위 악마로서의 지성이나 이성은 사라진 지 오래. 그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분노만이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들을 노리며 가차 없이 파괴의 힘을 휘둘러 댄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왕성 시종들이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고 그 사이로 병사들의 절규가 아우성쳤다. 불길이 치솟고 대지가 흔들린다.
뒤늦게 무장을 갖추고 나타난 차탄 왕궁 기사단, 저들의 단장인 클라트 경이 세 악마를 바라보며 치를 떨었다.
“대체 어디서 저런 악마들이!”
클라트 경은 검을 뽑아 들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저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악마를 소환하는 수법은 최소 7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만이 가능하다. 특히나 저 정도의 대악마라면 대마법사쯤은 되어야 소환할 수 있다.
‘그런데 심지어 세 개체나?’
게다가 강력한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이곳에서 악마를 소환할 정도의 마법진이 구성되었다면 알람이 울리지 않을 리 없었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어쨌거나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다. 클라트 경이 검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부우우웅!
눈부신 붉은 오러가 밤의 어둠을 찢어발긴다.
클라트 경이 몸을 날렸다.
“꺼져라! 무엄한 악마 놈!”
오러의 잔광이 밤하늘 위를 길게 수놓는다. 클라트 경의 전신이 공간을 좁히며 붉은 거구의 악마, 피엔드의 정면으로 쇄도해 갔다.
막 좌우로 검격을 뿌리던 피엔드가 경각심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크라라!”
피엔드가 외침을 터트렸다. 악마의 대검이 불길을 머금은 채 클라트를 향해 길게 뻗어 나갔다.
허공에서 손을 뻗어 클라트는 충격파를 날렸다. 오러를 응축했다 터트려 그 파문을 내뿜은 것이다.
퍼펑!
폭음과 함께 대검에 휩싸인 불길이 모조리 날려 가 버렸다. 동시에 클라트가 충격파의 반동으로 허공에서 몸을 뒤틀었다. 악마의 대검이 클라트를 빗맞히고 허공으로 비껴나간다.
순간 클라트가 검을 고쳐 쥐며 비기를 날렸다.
“블러드 레인!”
수십 줄기의 참격이 피엔드의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피의 비라는 명칭 그대로, 붉은 오러가 소나기가 되어 강타한다. 거친 붉은 피부가 찢기며 악마의 그것임을 증명하는 푸른 피가 튀어 올랐다.
“크아아악!”
고통을 느끼며 피엔드가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피엔드의 비명에 다른 두 악마도 놀란 듯 잠시 살육을 멈추고 클라트 쪽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잠시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 클라트가 고함을 질렀다.
“왕실 근위대! 대열을 갖춰라! 1대대는 왕족들을 피신시키고 2대대는 병사들을 이끈다! 3대대는 나를 따라라!”
클라트 경의 굳건한 외침에 흔들리던 기사며 병사들의 움직임이 안정화되었다. 다들 정신없는 와중에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레펜하르트 일행은 성벽 위에 몸을 숨긴 채 정원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란이 날뛰는 악마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저건 또 어디서 구했어요?”
가끔 고대의 기물 중에 이계의 악마가 봉인된 아티팩트가 있다는 소문 정도는 실란도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희귀해서 전문적인 던전 탐사가라 할지라도 평생 한 번 보기 힘들 정도인 것이다.
“어디긴? 우리가 턴 던전이 한두 개냐?”
“아, 하긴…….”
실란은 바로 납득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레펜하르트와 함께 털어 댄 던전 숫자는 족히 수십이었다. 전문적인 던전 탐사가 십여 명이 평생 턴 던전 숫자보다도 오히려 많은 것이다. 그만큼 무식하게 털어 댔으니 없는 것이 도리어 이상했다.
“제어도 안 되고 너무 위험해서 팔지도 못할 물건이었는데, 잘 써먹는 거지, 뭐.”
작게 중얼거리며 레펜하르트는 계속 상황을 지켜보았다.
초반에는 정신없이 유린당하던 왕궁 기사단이었지만 클라트 경이 참전한 이후로는 빠르게 대열을 정비, 착실하게 악마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휴우, 그래도 클라트 경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군.’
레펜하르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록 자신의 손으로 일군 참상이라지만, 불필요한 희생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저들을 잠시 왕궁에 묶어 두는 것뿐.
그런 의미에서 클라트 경은 레펜하르트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 주고 있었다.
‘역시 차탄의 유일한 기사.’
제대로 된 기사는 차탄 공국에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차탄 공국의 기사들이 엉망이라는 소리다.
기사다운 긍지나 명예보다는 실리를 우선하고, 본신의 실력보다는 더 좋은 마검이나 마갑만 찾아 대는 것이 차탄의 기사들이라는 편견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데, 사실 이것은 편견이 아니라 100퍼센트 사실이었다. 애초에 차탄 공국의 국민성 자체가 저 모양인데 기사라고 뭐 다를 것이 있겠는가?
하지만 클라트 경은 달랐다.
그는 기사다운 명예와 긍지를 알며, 마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순수한 실력으로 오러 유저의 경지에 다다른 자였다. 아무리 썩어 빠진 나라라도 인물은 나게 되어 있다는 살아 있는 증거랄까?
마도구를 거부한 탓에 마법기사단 제플린 나이츠에 속하지 못하고 차탄 기사단장을 맡고 있을 뿐, 클라트 경은 누구나 인정하는 공국 최강의 기사였다.
어쨌거나 그 클라트 경의 지휘 덕에 차탄 기사단들은 차분하게 악마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세 악마들의 무력 역시 만만치 않아 전투가 쉽게 마무리될 기색은 아니었다.
장기전, 그야말로 레펜하르트가 기대했던 대로다.
‘좋아, 이걸로 당분간 정신이 없겠지.’
차탄 기사단을 상대하던 피엔드가 분노로 몸을 떨며 전신의 마력을 개방했다.
“크라라라!”
개방된 마력이 거대한 불기둥이 되어 차탄 왕궁의 상공을 붉게 물들였다. 제플린 시내 어디에 있든지 눈뜬 이라면 보지 않을 수 없을 거대한 불기둥이었다.
레펜하르트가 러스와 실란에게 눈짓을 했다.
“신호탄이 올라갔다. 빨리 움직이자고.”
러스가 실소를 흘렸다.
“신호탄 한번 화려하기도 하군요.”
성벽에서 뛰어내리며 레펜하르트가 빙그레 웃었다.
“좋잖아. 설마하니 저렇게 거창한 걸 신호탄이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테니.”
3
무릇 노예라는 것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 재화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적이나 강도들에게 가장 기피되는 탈취 대상이 노예인 것도 사실이다.
금이나 보석처럼 부피가 작지도 않으며, 발이 달려 있어 언제 도망갈지 모르니 운반 및 보관에 있어서도 훨씬 까다로울뿐더러, 혹여나 제대로 탈취해 제값 받고 판다 해도 입이 달려 있으니 바로 자신들의 정보를 유출해 버릴 수 있다.
예를 들면 ‘저 원래 어디어디 노예였는데 그 사람들이 훔쳤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왕 위험부담 안고 도둑질을 할 거라면 보다 편한 대상이 널려 있는데 굳이 노예 경매장에서 노예를 훔치겠다는 발상을 하는 이가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덕분에 제플린 서부지구에 위치한 오크 전문 노예 경매장 ‘오드란’의 경비 태세는 그야말로 간략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사실 오드란의 경비 태세는 철통같았다. 오드란의 금고와 주인 가족의 거처는.
하지만 오드란의 경매장주는 오크 노예들을 보관해 놓은 숙소의 경비까지 인건비를 투자하진 않았던 것이다. 사나운 오크 검투사도 아닌 농업용 오크들이 감히 도망갈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디노드, 오크 노예 숙소의 경비를 맡고 있는 이 20대 청년은 눈앞에서 숙소 문이 열릴 때까지도 아무런 경각심을 느끼지 못했다.
“응?”
분명 두꺼운 자물쇠로 잠겨 있던 나무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오크 노예 몇 명이 밖으로 고개를 내민다. 디노드는 혀를 차며 손짓을 했다.
“이런, 자물쇠가 고장 났나? 이놈들아! 들어가서 잠이나 처자지 왜 밖을 기웃거려? 무슨 구경났냐?”
생각해 보니 구경이 나긴 났다. 짙은 어둠이 깔렸어야 할 제플린 시가지의 하늘, 그 위로 화광이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으니까.
‘저기면 왕궁 근처인데…… 무슨 일이지?’
그렇게 멍하니 딴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크들이 들어가긴커녕 오히려 디노드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슬그머니 접근해 오는 오크들을 바라보며 디노드가 인상을 썼다.
“아, 이 멍청한 놈들. 말귀도 못 알아듣나? 나니까 눈감아 주는 거지 다른 사람이 보면 큰일 나! 어서 들어가라고!”
손까지 휘저으며 디노드는 노예들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던 중 문득 디노드는 어색함을 느꼈다.
‘어라?’
앞장선 오크 노예 하나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 것뿐 아니라 태연스럽게 입까지 연다.
“이 친구, 그래도 마음씨는 착하군.”
뒤에 선 다른 오크 장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친구였습니다. 정도 많았고.”
오크어로 나눈 대화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노예들이 보일 태도는 아니었다. 그제야 디노드가 경각심을 느끼고 창을 고쳐 잡았다.
“어? 뭐, 뭐야?”
순간 디노드는 눈앞 가득 뭔가가 뒤덮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앞장선 오크의 두꺼운 주먹이었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경비병을 앞장선 오크, 잘카토가 잽싸게 부축했다.
“영차! 이 친구는 심성이 괜찮으니 그냥 이대로 기절만 시켜 놓아도 되겠지.”
뒤에 선 또 다른 오크가 손짓을 했다.
“모두들 나와!”
숙소에서 한 무리의 오크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겁먹은 표정이 역력한 오크들이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숙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었다. 숙소 안쪽에서 문을 부수고, 어설픈 경비를 쓰러뜨리며 수많은 오크들이 두리번거리며 숙소 밖으로 조심스레 걸어 나온다.
“나, 나가도 되는 건가…….”
“이러다가 혼날 텐데…….”
“혼나는 거 아프다…….”
“아픈 거 싫다…….”
대부분 겁먹고 움츠린 이들, 별로 탈출에 대한 열망이 보이는 얼굴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을 이끄는 오크들은 달랐다. 사나운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며 선두에 선 오크들이 호통을 쳐 댔다.